소설리스트

이상한 소설 속 로빈-143화 (143/303)

143화

3황자파의 본거지가 대부분 남부 쪽이다 보니 아마 남쪽에서부터 이야기가 퍼져 나오기 시작한 모양이다.

이거, 3황자파 쪽에서 너무 악수를 두는 게 아닌가? 흑마법사들이 다 빠져나가면 환자들은 누가 치료해? 치료사나 신관을 믿고 있는 건가?

원래 소설에서는 이 일이 흑마법사 탄압까지 이어지지는 않았는데 황태자는 이 일을 어떻게 처리할지 모르겠다.

만약 황태자가 이 일을 무난하게 처리하면 3황자파 쪽에서는 괜히 흑마법사들의 인심만 잃게 되는 결과를 얻게 될 것이다. 그들도 바보가 아닌 이상 자신들이 정치적인 희생양으로 낙점되었다는 사실을 모를 리가 없을 테니 말이다.

하지만 무슨 부탁을 하려고 이렇게까지 거창하게 이야기를 꺼내시는 건지 이해할 수 없었다. 원래 설명이 좀 긴 분이시긴 하지만 이건 좀 너무하지 않나?

“그런데 남쪽에서 지내던 내 제자들이 이곳으로 온다더군. 영주, 만약 괜찮다면 그놈들이 이곳에서 머물 수 있게 허락해 줬으면 좋겠네.”

이곳이라면 당연히 영주 저택이겠지?

알버스도 저택에서 머물고 있으니 그게 그렇게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몇 분이나 되시는데요?”

“그렇게 많지는 않네. 대충 열 명 남짓 되겠구만.”

많으면 많다고 할 수 있는 수였다.

그런데 뜬금없이 왜 이곳으로 온다는 거지?

알버스의 제자쯤 되면 상당한 능력자들로, 찾는 곳도 많을 텐데 느닷없이 이곳을 방문하겠다는 이유를 이해할 수 없었다.

“머무시는 거야 그렇게 어렵지 않죠. 그런데 왜 굳이 여기까지…….”

“그게 말일세. 하하. 내가 그만 자랑을 해버렸지 뭔가. 이번에 들인 제자에 비하면 너희들은 그냥 바퀴벌레 수준이라고 했더니, 이 녀석들이 당장 이곳으로 달려온다는군.”

아, 예. 도발하셨군요.

하긴 누구라도 스승에게 바퀴벌레라는 말을 들으면 흥분할 만하다. 특히 자신이 잘났다고 생각하고 있을 저명한 흑마법사들에게 그런 말을 했다니.

그러니까 요지는 남쪽의 일로 깊게 빡친 흑마법사들이 스승의 도발에 폭발하여 실비아를 물어뜯으러 온다는 말이렷다?

“그런데 그 정도로 뭘 그렇게 심각하게……. 그냥 잠깐 묵고 가는 거잖아요?”

“하, 그놈들이 죄다 날 닮아놔서 오자마자 테스트다 뭐다 소란을 피울 테니 그게 걱정돼서 말일세. 게다가 작은 영지라고 무시라도 하면 내 입장만 곤란하지 않은가? 그렇다고 오지 말라고 할 수도 없고, 참 답답하군.”

그러니까, 초반에 남부 운운한 건 밑밥이고 본론은 저 제자들의 방문인데, 제자들의 성격이 개차반이라 좀 무례해도 남부에서 욕먹고 온 불쌍한 놈들이니까 넘어가달라고 부탁하고 싶으신 거군.

이 어른도 은근히 능구렁이네.

이걸 어쩐다.

알버스의 제자들이면 그래도 상당한 수준의 흑마법사들이 분명한데 어떻게 이용할 방법이 없을까?

“알버스 님, 알버스 님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제자 분들이 실비아를 인정할까요?”

“인정하고 말고 할 게 뭐가 있겠나. 지들도 눈이 있고 생각이 있다면 느끼는 바가 있겠지. 실비아, 그 아이는 천재라니까. 너무 명백해서 억지를 쓸 수도 없어. 그건 자기가 멍청하다고 인정하는 것과 마찬가지거든.”

역시 그런가? 딱 보니 자존심 때문에라도 인정하지 않는 척하진 않겠네.

그럼 어차피 연고지도 정리하고 올라오시는 분들이니 아예 영지에 눌러 앉히는 것도 나쁘지 않겠는데.

만약 그분들을 모시고 의학 연구소(?)라도 만든다면? 그야말로 고부가 가치의 상징과도 같은 신약을 개발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고부가 가치라. 그야말로 아름답기 그지없는 울림이 아닌가?

특히 새로 개발된 물품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특허권과 비슷한 권리를 인정하는 제국이었기 때문에 제대로 개발만 된다면 그야말로 앉아서 편하게 돈을 벌 수 있는 것이다.

물론 한두 해 걸릴 일은 아니었지만 어떻게 되지 않겠어? 게다가 위급 시에는 의사로 써먹을 수도 있다.

그래, 이건 무조건 해야 한다.

“그럼 혹시요. 이렇게는 안 될까요? 그러니까 내기를 하는 거예요. 내기로 한 3년? 아니면 5년이라도 이곳에 눌러 앉히는 거죠. 알버스 님의 제자니까 자신의 능력에 대한 자신감이나 자부심도 대단하겠죠?”

로빈의 설명을 들은 알버스는 헛웃음을 짓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영주가 그놈들을 다 고용하고 싶은 모양이군. 그래. 놈들이 능력보다 상당히 오만하긴 하지. 놈들의 버릇을 한번 고쳐주는 것도 나쁘지 않겠어.”

“그럼요. 역시 알버스 님은 참스승이시네요. 그러면 잘 좀 부탁드릴게요.”

알버스도 제자들을 골탕 먹인다는 사실에 즐거워하고 있었다.

이래서 이 양반이 괴짜라는 거군. 평소에 너무 점잖기만 해 실감하지 못했는데 이런 모습이 숨어있었다니. 제자한테 바퀴벌레라고 하는 것도 그렇고, 참 재미있는 어른이었다.

“그런데 어르신, 실비는 요즘 어떤가요? 말을 들어보니 제법 많이 배운 거 같긴 한데 잘하고 있는 건가요?”

“확실히 실비아는 천재가 분명하네. 분명한데…….”

뭐지? 이 반응은? 무슨 문제라도 있는 건가? 실비를 천재라고 추켜세울 때는 언제고 저런 애매한 표정을 지으시면.

하지만 로빈도 이어지는 알버스의 설명을 듣고는 저 표정의 의미를 이해할 수 있었다.

그러니까 실비가 대단한 천재는 맞지만, 창의력이 너무 뛰어난 나머지 자꾸 이상한 걸 만들려고 한단다.

그 정점을 찍은 것이 최근에 만든 그 여성 흥분제였다. 그러니까 예전에 린이 실비한테 미친 거 같다고 성토했던 그 이상한 물약 말이다.

“도대체 그 좋은 재능을 왜 그런 곳에 낭비하고 있는지 모르겠네. 게다가 자기한테 확 와닿는 게 아니면 전혀 흥미가 없으니 참 고민이야.”

그게 그렇게 문제인가? 이쪽 세상이라면 그런 약도 수요가 있을 거 같은데.

왠지 이곳이라면 그걸 발라놓고 여성을 농락하며 서로 즐기는 커플이 있어도 이상하지 않았으니 말이다. 아니면 첩실의 몸에 그런 걸 발라놓고 본처와 같이 첩실을 농락…….

내가 미쳤나? 왜 이러지?

여기까지 생각한 로빈은 자신이 너무나도 타락한 거 같아 자괴감을 느끼며 고개를 저었다.

“게다가 실비가 만드는 약품들은 다 자신의 오리지널임과 동시에 물질 변환으로 자신의 마나가 들어가네. 실비의 마나가 들어가지 않으면 완성되지 않는다는 뜻이야.”

오, 그건 괜찮은 거 아닌가? 절대 남이 따라 만들 수 없는 실비만의 특제품이라는 의미였으니 말이다.

로빈의 표정에서 그의 생각을 읽은 건지 알버스가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로빈도 움찔할 수밖에 없는 이야기를 덧붙였는데.

“그러니까 자신밖에 못 만드는 건 좋지만 덕분에 양산도 할 수 없네. 아무리 좋은 걸 만들어도 많은 사람이 사용하지 못하면 그게 무슨 소용인가?”

“…그건 그렇네요, 어르신. 뭔가 방법을 생각해 봐야겠어요.”

양산이 불가능하다는 건 팔 수 없다는 의미와 같았다. 그러니 그건 정말 곤란한 일이었다.

설령 세상을 구원할 대단한 약품을 개발한다고 해도 그걸 사람들에게 팔지 못하면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로빈도 이제야 심각함을 느끼곤 이 사태를 반드시 해결해야겠다고 다짐했다.

어쨌든 알버스의 제자들은 히센의 친구들과 함께 영지를 방문하기로 했다. 히센이 알버스에게 수학하면서 다른 제자들과도 어느 정도 안면이 있었고, 히센의 친구들과도 모르는 사이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이거 이러다가 진짜 히센의 동문회처럼 변하는 건 아닌지 모르겠네.”

사실 그래도 상관없는 일이었다. 일만 잘하면 장땡이었으니 말이다.

* * *

남은 기간 동안 알버스가 알아서 자신의 제자들을 골탕 먹일 준비를 하겠다고 했으니 로빈이 할 일은 없었다. 게다가 알버스의 계획을 전해 들은 히센까지 재미있겠다며 동참했기에 그 흑마법사들이 이곳에 눌러앉게 되는 건 불 보듯 뻔한 일이었다.

오히려 로빈은 예산 문제나 다른 영지들과의 공조를 어떤 식으로 진행해야 할지를 고민해야 했다.

예산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들어온 지온은 오자마자 흑마법사의 이야기부터 꺼냈다.

“영주님, 흑마법사 분들을 고용한다고 하시던데요.”

“들으셨어요? 알버스 님의 제자들인데 능력 면에서는 나무랄 데가 없을 거예요.”

물론 인성으로는 나무랄 데가 있을 수도 있지만, 스승인 알버스가 버티는 이상 어느 정도 안심할 수 있었다.

“그런 분들을 고용하려면 예산이 많이 듭니다. 거기다 따로 연구소까지 운영하실 생각이시죠?”

“네, 가능하면요. 흠, 그건 확실히 그렇네요. 그래서 고민인데……. 지금 수준으로 그걸 감당할 수 있을까요?”

“글쎄요. 어쩌면 다시 허리띠를 졸라매야 할지도 모르겠군요. 그리고 그전에 워프 게이트부터 물 건너가는 거 아닙니까? 너무 충동적인 결정 같습니다.”

지온의 지적대로 로빈도 자신이 충동적이라는 것 정도는 인지하고 있었다.

하지만 흑마법사를 섭외하는 건 예전부터 생각해 왔던 거였다. 사제들이 그 능력을 발휘했다고는 하지만 힐러(?)는 언제나 옳은 거고, 자신들의 적이 앞으로도 계속 마수뿐이라고 장담할 수 없기 때문에 수술을 할 수 있는 흑마법사들이 탐난 것이다.

그리고 지금처럼 특별한 상황이 아니라면 저 정도로 능력 있는 흑마법사들이 소속도 없이 이곳을 방문할 리도 없었다. 그래서 어떻게든 이 기회를 놓치지 않으려는 거고.

하지만 이 때문에 게이트 건설이 난항을 겪게 된 건 정말 안타까운 일이었다.

“게다가 변경백 업무 때문에 생각보다 많은 지출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마님이 저택에서 보관하고 있던 돈을 흔쾌히 넘겨주셨지만, 그걸로 충분할지는…….”

로빈의 개인 자금을 관리하고 있던 마리아나는 영지에서 필요하다는 말에 바로 그 돈을 꺼내줬다.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지만 로빈의 입장에서는 특별한 지출 없이 그 돈을 고스란히 보관하고 있던 마리아나에게 고마움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그녀가 사치하지 않고 알뜰하게 살아온 덕분에 당장 급할 때 이 돈을 사용할 수 있었으니 말이다.

지금껏 가난하게만 살던 사람에게 갑자기 큰돈이 생겼을 때 어떤 행동부터 하는지를 생각해 보면 이 일이 그저 평범한 일만은 아니라는 걸 쉽게 깨달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문제는 그것보다도 더 큰돈이 필요한 상황이라는 점이었다.

“하지만 게이트를 포기할 순 없죠. 좋아요. 최후의 수단을 쓰겠어요.”

“…어쩌실 생각입니까?”

“황태자님께 연락드릴 생각이에요. 억지로 변경백에 앉혀놨으니 책임지시라고요.”

별수 있나. 돈이 없으면 형을 불러야지.

이 세계에 도의가 남아있다면 황태자도 가만히 있진 않을 거다. 웬만하면 이러고 싶지 않았지만 당장은 특별한 수가 없었다.

[…잠시만 기다리십시오.]

쇠뿔도 단김에 빼랬다고 굳이 미룰 일은 아니라 바로 황실로 통신을 넣어 면담을 신청했다.

이 양반이 바쁘다고 거절하면 어쩌지?

지온에게 큰소리는 쳐놨지만, 솔직히 좀 불안하긴 했다. 황태자도 지금은 한창 정신이 없을 시기였기 때문이다.

귀족들을 감찰하고 견제하는 조셉 공작까지 신경 쓰려면 아마 할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닐 것이다. 그러니 바쁘다고 거절해도 할 말이 없긴 한데.

[그레이츠 백작, 무슨 일인가? 자네가 접견을 요청하다니 정말 의외로군.]

“황금 독수리에 영광을. 황태자 전하, 로빈 그레이츠입니다.”

[그래, 예의는 그 정도로 됐네.]

“그런데 전하, 안 바쁘십니까?”

[…면담을 신청한 건 자네일세.]

아, 그렇지. 내가 신청한 거였지.

생각보다 너무 빨리 황태자가 나타나는 바람에 살짝 당황해서 말이 헛 나왔다.

“흠흠, 죄송합니다.”

[싱거운 친구 같으니. 그래, 용건은 뭔가?]

로빈은 이번 겨울을 안전하게 나기 위해선 각 영지에 상당한 지원이 필요하고, 그렇게 되면 게이트를 제때 오픈할 수 없으니 황실의 지원이 필요하다고 간략하게 설명했다.

그런 후 상황을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게 자세한 설명을 덧붙이려고 했지만.

[의외로군. 게이트를 벌써 열겠다고? 원래 한두 해 정도 간을 보다가 황도가 좀 잠잠해지면 그때나 시작할 줄 알았는데 말이야.]

…이 양반, 진짜. 날 너무 잘 아는 거 아냐?

이렇게 자신의 의도를 꿰뚫고 있으니 굳이 말을 돌릴 필요도 없어 보였다.

“그러려고 했는데 1년 안에 열면 50%를 지원해 주신다니 시간을 늦출 수 없겠더라고요.”

[아아, 그게 있었지. 그럼 이해할 만하군. 하지만 그레이츠 영지의 살림으로 그게 불가능할 리가 없는데. 무슨 큰일이라도 있는 건가?]

이분이 재무 조사까지 하셨나? 왜 이렇게 잘 알아? 무슨 첩자라도 있는 거 아냐?

[무슨 생각을 할지 알 만하군. 그레이츠 영지의 재정 상태야 군부에 요청해 판매 대금만 알아봐도 금방 알 수 있어. 그리고 황실의 일을 너무 가볍게 보지 말게나. 그 정도도 알아보지 않고 변경백을 임명할 리가 있나.]

너무 맞는 말이라 할 말이 없었다.

(다음 화에서 계속)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