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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소설 속 로빈-172화 (172/303)

172화

“반갑군, 그레이츠 백작. 영지로 돌아온 것을 환영하네.”

어이없게도 영지에서 가장 먼저 로빈을 반겨주는 건 황태자였다.

분명 내일이나 모레쯤 도착한다고 했는데 무슨 일인지 어안이 벙벙할 지경. 게다가 남의 영지에서 객식구인 황태자가 그 주인을 반겨주는 건 또 무슨 개그인가 싶었다.

“미리 영지를 둘러보았네. 정말 대단하더군. 이 정도면 조셉 공작이 마음먹고 달려들어도 할 만하겠어. 그… 백랑과 흑웅, 그리고 자네의 첩실이라는 기사단장 린은 정말 진심으로 탐날 정도였어.”

로빈 자신이 타이틀로 상대를 파악하는 것처럼 황태자 역시 알 수 없는 능력으로 상대의 현재 능력을 가늠할 수 있었다. 그게 꿰뚫어보는 눈이었지 아마?

어쨌든 그걸로 그들의 능력치를 확인하고 상당한 능력자임을 알아챈 모양이다.

이럴 걸 알고는 있었지만, 어차피 앞으로도 계속 마주칠 거 같아서 굳이 막지는 않았다. 자기 사람한테서 아랫사람을 빼갈 정도로 그렇게 경우 없는 인물도 아니었으니 말이다.

“그건가요? 하하. 좋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리고 신전에 자리 잡은 성물이나 성물을 보호하고 있는 대형 그레이트 A도 인상적이었네. 그걸 자네가 고안한 거라더군. 정말 대단해.”

“예, 뭐. 그렇긴 하죠.”

신전을 살피러 갔다가 성물을 보호하고 있는 네 개의 대형 남근석도 확인한 모양이다. 하지만 그걸 남이, 그것도 진심으로 칭찬하니 왠지 모를 자괴감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그리고 진짜 독이 있더군. 나도 모르는 사이에 어떻게 중독된 모양이야. 사실 일정을 급히 당긴 것도 그 이유였지. 안전한 곳에서 몸을 추스를 필요가 있었거든.”

역시 이건 막을 수 없었나 보다. 하지만 황태자의 표정을 보니 그렇게 심각한 건 아닌 모양인데.

“너무 걱정 말게나. 이제 거의 다 됐으니. 하루 정도? 이제 내일이면 다시 정상으로 돌아올 거야.”

확실히 빅 테일이 제 몫을 해준 거 같았다. 소설에서는 분명 이 독을 도저히 어쩌지 못해 무력하게 당했는데 벌써 정상으로 돌아왔다니 말이다.

물론 소설에서보다 무위가 높은 것도 제법 도움이 되었겠지만, 빅 테일의 역할도 작지 않았을 것이다.

이러면 우선 무력하게 당하는 건 얼추 예방된 셈인가?

물론 상대가 대군을 동원할 수 없고, 자신의 전사들이 황태자를 뒤에서 보호하긴 하겠지만 만일의 사태를 생각하면 황태자의 상태가 완벽한 쪽이 훨씬 나았다.

“그렇군요. 다행입니다.”

“어쨌든 내가 백작의 덕을 크게 봤어. 내 잊지 않도록 하지.”

“하하. 신하 된 몸으로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한 거죠.”

이렇게 하나씩 포인트를 쌓으면…….

“그래놓고 속으로는 뭘 바랄지 계산하고 있는 건 아니겠지?”

…이 양반이 또 관심법을?

하여간 몸 상태가 만전이라니 이제 정말 조셉 공작의 암살자를 물리치고 무사히 황궁으로 돌아갈 일만 남았다.

* * *

“로빈. 이제는 어른이 다 됐구나! 벌써 이렇게 컸다니.”

“잘 왔어. 얼마나 머물다 가는 거니?”

“거기다가 자기 짝까지 알아서 찾아오다니, 역시 내 아들답다.”

“우아하고 아름다운 귀족 영애라니, 빨리 만나고 싶어~”

“흥! 악랄한 시누이가 뭔지 제대로 보여줄 거야!”

언제나 유쾌한 가족들이 로빈을 반기고, 오랜만에 모든 가족이 한자리에 모인 푸근한 저녁 식사가 시작되었다.

로빈 역시 그리웠던 정겨운 광경에 웃음이 절로 나왔는데.

“오늘도 부인의 솜씨는 대단하군요. 감탄스럽습니다.”

“호호. 고마워요, 전하. 많이 드세요.”

“그럼, 염치 불고하고.”

“오늘은 북부 관문 쪽에 다녀오셨다죠?”

“네, 그랬습니다. 역시 그레이츠라는 말이 절로 나올 정도로 삼엄하고 엄중한 경계 태세더군요. 이렇게 북쪽에서 힘써주시는 덕분에 남쪽도 평안한 게 아니겠습니까? 항상 고맙게 생각합니다.”

“하하. 오히려 신세는 저희가 졌습니다. 중급 마수를 그렇게 쉽게 해치우시다니.”

다만 그 자리에 황태자와 젝트 역시 자연스럽게 끼어있는 게 인상적이었다. 로빈이 오기 불과 3일 전에 도착했다면서 한 몇 년은 한솥밥을 먹은 것처럼 익숙하게 행동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귀족 집안의 만찬이라기에는 너무 격식 없는 자리라 좀 민망하기도 했는데 황태자의 표정은 너무나 평온했다. 오히려 평민인 젝트는 이런 자리가 어색한지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리고 있는데 그 모습과는 너무 대조적이랄까?

하여간 대단한 양반이다. 게다가 들어보니 때마침 내려온 중급 마수를 혼자서 쓱싹 해버렸단다.

몸 상태가 완전히 회복되었다는 황태자의 말도 빈말이 아닌 것이다. 덕분에 황태자의 무위를 직접 확인한 기사들의 사기도 제법 올라갔다니 신세를 졌다는 카인의 말도 거짓은 아니었고.

“황태자 전하께서 생각보다 이곳에서 오래 머무시는데 이게 작은 일은 아닌가 보구나.”

“네, 그렇죠.”

“황도 정쟁에 몸담은 것이냐? 난 걱정되는구나.”

“걱정하지 마세요, 할아버지. 그냥 황태자 전하께서 잠시 쉬어가시는 거예요. 영지 쪽에 문제가 될 건 전혀 없는 일이죠.”

저녁 식사를 마친 후 조용히 다가온 카인은 조심스럽게 염려의 뜻을 내비쳤다. 정확한 내막은 모르지만 황태자가 며칠이나 머무는 모습에서 무슨 문제가 생겼다고 느낀 것이다.

하지만 이미 시작된 일이고 영지에 피해가 올 일은 없었기에 그 점을 설명하며 안심시킬 수 있었다.

“그래? 그렇다면 다행이고. 황태자 전하의 호위가 너무 단출하더구나. 네가 좀 신경 써줘야겠어.”

“그래야죠.”

“그래, 로빈. 수고하거라.”

그렇게 풍파를 몰고 올 걸 걱정하면서도 황태자의 호위가 적은 건 또 걱정되시나 보다.

참으로 한결같은 분이었다. 그래도 며칠 같이 지냈다고 나름 정이라도 든 거 같은 표정이었으니 말이다.

그리고 다음 날, 떠나는 황태자를 배웅하는 길.

“정말 잘 쉬었네, 백작. 백작의 가족들이 날 진심으로 환대하더군.”

“그분들이야, 뭐… 너무 격식 없는 자리라서 송구스럽네요.”

“아니, 아니야. 처음에는 좀 당황했지만, 원래 가족의 식사가 그런 게 아니겠나?”

“평민들도 그 정도로 화기애애한 분위기에서 식사를 나누는 경우는 드물지만요.”

젝트의 말을 들어보니 딱 봐도 황태자든 뭐든 신경 쓰지 않고 그냥 하던 대로 행동했나 본데, 황태자가 격식에 그리 구애받는 성격이 아니라 다행일 정도였다.

아니, 그런 걸 대충 눈치채고 그런 거겠지? 그분들도 생각이 없으신 분들은 아니니까.

하여간 화목한 저녁 식사가 황태자의 기억 속에 제법 오래 남을 거 같았다. 저렇게 따로 이야기까지 하는 걸 보니 말이다.

“가족은 그래야지. 그래야 해.”

혼자 작게 중얼거리던 황태자를 보니 왠지 좀 짠했다. 모르고 있을 땐 괜찮았는데 저 양반이 별로 좋지 못한 환경에서 자랐다는 걸 알고 나니 마음이 편치 않다고 할까? 그나마 레니아 공녀와 첩실들이 황태자에게 변함없는 애정을 쏟아붓고 있어서 다행이었다.

거리에는 떠나는 황태자를 배웅하는 동시에 돌아온 자신들의 영주를 환영하는 인파가 쭉 늘어서 있었다. 황태자 역시 이런 자발적인 참여가 인상 깊은지 환호하는 그들을 계속 살피고 있었고.

[경! ‘영주님 탈동정’ 축! 다음은 린이다! 가즈아!]

“…백작은 주민들에게 인기가 많군.”

“네, 뭐……. 죄송합니다.”

…저거 모야족이지? 이 인간들이 진짜…….

아무리 영주가 주민들과 친하다고 해도 아무나 저런 걸 흔들 순 없는데다가, 내용만 봐도 딱 모야족일 수밖에 없는 플래카드였다.

지금까지 모야족의 행적을 생각하면 저게 그렇게 놀라운 일도 아니었지만, 옆에 황태자가 있어서 그런지 부끄러움으로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다. 이건 그야말로 영지 망신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황태자는 저걸 보고 다른 걸 생각하는 거 같았다.

“나도 저렇게 많은 사람이 자발적으로 따르는 황제가 될 수 있을까? 저렇게 웃고 떠들며 진심으로 환호하는 그런 황제 말이야.”

“네, 전하. 그렇게 되실 겁니다.”

다른 건 몰라도 이건 장담할 수 있었다. 황태자가 백성들에게 진정으로 존경받는 황제가 된다는 것 말이다.

친서민적인 정책을 꾸준히 시행하는데다가 위험에 처한 백성들을 위해 직접 검을 들고 싸우는 용맹한 황제.

이런 황제를 존경하지 않을 백성들이 얼마나 될까?

일부 귀족들의 불만을 사는 건 어쩔 수 없지만, 백성들은 이 경이로운 황제에게 진심으로 환호하게 된다.

“그래? 그렇다면 다행이군. 자네가 그렇게 말하니 왠지 진짜 그럴 수 있을 거 같아서 말이야.”

로빈의 자신 있는 한마디에 웃음 짓던 황태자는 젝트와 기사 둘을 대동한 채 그렇게 영지를 떠났다.

“주인, 걱정 마! 한 명도 다치게 하지 않을 거니까.”

“응, 뭐. 그러면 좋긴 하지.”

“영주님, 우리가 알아서 할게.”

황태자가 떠나고 바로 영지의 전사들이 그 뒤를 따르기로 되어있었다.

당연히 별일 없을 거로 생각하지만 이렇게 대규모로 원정을 떠나는 건 또 처음이라 은근히 걱정된다고 할까? 특히 린나니와 사고뭉치 백랑이 함께 저 많은 전사들을 책임지는 셈이라 걱정도 두 배였으니 말이다.

그래도 병력을 운영하면서 사고 친 적은 한 번도 없었고 영주인 자신이 따라갈 수 있는 일도 아니라 믿는 것 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었다.

그렇게 전사들까지 떠나자 로빈은 오랜만에 영지 일을 살펴보았다.

다른 건 다 지온이 알아서 해결해 놓았지만 새로 개발한 신약을 대량 생산하는 문제는 로빈이 직접 확인한 후 허가해야 하는 큰 사안이라 지금 처리해야 했다.

그래서 가장 먼저 흑마법사들과 실비아가 같이 일하는 연구소 쪽으로 발길을 옮겼다.

* * *

“영주님!!”

무려 1년이나 만나지 못했던 실비아는 이제 누가 봐도 성숙한 여인이었다.

조금씩 미진했던 것들이 모두 짜 맞춰져 완벽한 퍼즐이 된 느낌이랄까?

그리고 그런 성숙한 실비아가 저를 발견하자마자 달려들어 와락 끌어안자 그 기분 좋은 압박감이…….

“하~ 영주님, 물론 좋지만 만나자마자 이러시면…….”

아, 실수. 하지만 이거… 생각보다 더 대단한데?

나도 모르게 앤에게 하듯이 가슴으로 손이 넘어가버렸다. 습관이란 게 이래서 무섭다는 건가 보다.

그런데 손끝에서 느껴지는 그 묵직함이란……. 이 녀석, 도대체 1년 동안 뭘 먹었길래 저렇게까지.

“하……. 짜릿했어.”

하지만 로빈이 당황하는 것과 상관없이 실비아는 붉어진 두 뺨을 감싼 채 자신만의 세계에 빠져있었다. 게다가 몸도 살짝 떠는 것이 생각보다 자극이 심했던 모양인데.

내가 무슨 갓 핸드도 아니고 대체 왜 이러지?

처음에는 전혀 몰랐는데 요즘 앤과의 접촉이 늘어나다 보니 조금 의아한 점이 있었다. 생각 이상으로 그녀가 반응이 거칠고 자극적이었기 때문이다.

이게 사람마다 개인차가 있는 일이라 그녀가 좀 예민하다고 생각하며 그냥 넘어갔는데 실비아마저 제 손길 한 번에 저렇게 되니 다시 의구심이 생겨난 것이다.

“하하. 영주, 오랜만이군. 어서 들어가자고. 영주도 깜짝 놀랄 성과가 기다리고 있으니 말이야.”

“예, 그러죠.”

하지만 알버스가 나서서 연구실 안으로 안내하자 의구심은 잠시 접어둘 수밖에 없었다. 나중에 린에게도 한번 확인해 봐야겠다고 생각하면서 말이다.

“자, 그래요. 대체 무슨 신약을 개발한 거죠? 지온까지 흥분하며 자랑하는 걸 보면 정말 대단한 놈이 나온 거 같던데요.”

“그래, 영주. 정말 대단한 녀석이 나왔지.”

“이번에는 영주님도 저한테 큰 상을 내릴 수밖에 없을 거예요. 후후.”

상이라. 하긴 공을 세웠으면 상을 받는 게 너무나 당연한 일이지.

연구진의 자신만만한 모습을 보니 기대감 역시 점점 커져갔다. 정말 제대로 사고를 친 모양이니까.

“이번에 저희가 개발한 건 애널 섹스용 장내 청결제. 시중에 판매되는 클린 마법 주문서보다도 우월한 품질을 자랑하는 제품이에요.”

…응?

요즘 고민이 많아서 생각을 깊이 했더니 이렇게 가끔 헛것이 들리기도 한다. 무슨 보약이라도 한 첩 지어 먹어야 하려나?

“그래서 신약의 이름은 ‘언제나! 자신 있게!!’. 이제 제국민은 1년 내내! 아무 데서나! 애널 섹스를 즐길 수 있게 된 거예요! 이건 혁명이라고요!”

…아니네. 헛것이 아니야.

“게다가 이 약의 효과는 그것만이 아니에요. 이건 전천후 섹스 보조제라고요.”

실비아의 설명에 의하면 이 약은 관장 따위는 필요 없이 장내를 완전히 비워 줄 뿐만 아니라 약의 효과가 지속하는 일주일 동안이나 그 상태를 유지해 준단다.

게다가 체외로 분출되는 모든 체액에 강력한 세정 효과가 추가되며 꿈에나 그리던 온갖 플레이를 현실로 만들 수 있는 대단한 위력을 자랑한다는데.

(다음 화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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