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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소설 속 로빈-173화 (173/303)

173화

청소 펠라나 혀로 몸을 닦는 일도 실질적인 의미를 가지며 서로 섹스를 나누며 땀을 흘릴수록 점점 더 깔끔해진다는 말에는 로빈도 할 말을 잃을 수밖에 없었다.

“…이건 또 무슨 오버 테크놀로지냐? 대체 그 좋은 능력으로 왜 이런 것만 만드냐고. 그리고 저건 대체 어떻게 저런 미친 효과를…….”

전생의 상식으로서는 상상도 못 할 대단한 효과라 감탄이 절로 나오긴 했지만 그런 훌륭한 재능으로 고작 이런 걸 만들었다고 생각하니 갑자기 속이 쓰려왔다.

“영주님, 마음에 안 드세요? 영주님이 원하는 대로 만들었는데.”

“영주가 원한 게 획기적이면서도 대량 생산이 가능하고, 잘 팔릴 거 같은 약이라고 들었네. 이 정도면 충분하지 않겠나?”

물론 획기적이기도 하고 대량 생산이 가능하다니 정말 놀라운데, 이게 상업성이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솔직히 그렇게 싼 물건으로 보이지는 않았으니 말이다.

애널 섹스라면 항문에 성감대가 있는 것도 아니라 그저 아프고 불쾌하기만 한 걸로 아는데 그걸 누가 즐기겠냐는 생각에서였다. 물론 다른 부수적인 효과는 제법 매력적으로 들리긴 했지만 말이다.

그럴 거면 애널 섹스용 장내 청결제라는 이름보다는 차라리 섹스 보조제가 맞지 않을까?

“…다 좋은데요. 애널 섹스를 즐기는 사람들이 있긴 해요? 대부분 불결하다고 생각하지 않나요?”

그래도 힘들게 신약을 개발한 사람들 앞이라 최대한 조심스러운 태도로 물었다. 만약 실비아 혼자 있었으면 알밤을 먹이고 시작했겠지만 말이다.

“응? 그러니까, 사업성을 걱정하는 건가? 대체 그걸 왜 걱정하지? 당연히 불티나게 팔릴 게 뻔하지 않나?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애널을 즐길 수 있는데다가, 가격도 클린 스크롤보다 싸니 말이야. 효과도 무려 일주일이나 지속되고.”

“이 약을 사용한 영지의 여성들 500여 명에게 물었을 때 대만족이라는 대답이 477명. 그리고 만족스럽다는 대답이 23명이었습니다. 유일한 불만 사항은 지속 시간이 좀 더 길었으면 좋겠다는 거고요.”

지금 나만 다른 세상에 살고 있나? 그러니까 일부 취향이 특이한 남성만 애널 섹스를 원하는 게 아니라 여성들까지 즐긴다고? 그게 말이나 돼?

“하하, 영주도 나중에 한번 사용해 보게. 이게 정말 물건이야.”

기존에 관장 용도로 사용하던 물건 중 가장 고급품이 바로 클린 스크롤. 각종 판타지 소설에 흔히 나오는, 특정 부분을 깨끗하게 만들어주는 일회용 마법 스크롤이었다.

그러니까 그 말은 그 비싼 마법 스크롤을 사서 기껏해야 애널 섹스를 즐겼다는 말이 된다. 그래도 관장약보다 편하고 깨끗해서 인기였다는데.

“…좋아요. 한번 만들어서 팔아봅시다. 이게 그렇게 유망하다니 못 팔 이유도 없죠.”

어차피 그 흉악한 그레이트 A 덕분에 이미지는 이미 망했으니 못 할 것도 없었다. 게다가 정실부인감도 이미 구해서 다른 사람들의 눈을 신경 쓸 이유도 없었고.

그리고 그렇게 마음먹자 놀라운 일이 벌어졌는데.

[완료!]

실비아의 재능이 만개해 드디어 세상을 구할 명약을 개발해 냈다.

보상: 실비아의 각성

페널티: 세상의 혼란

기한: 정체를 알 수 없는 전염병의 창궐

이게 무슨 개소리야? 무슨 이따위 약이 세상을…….

아니, 잠깐. 이게 세상을 구할 명약이란 거지?

이름은 병맛 가득한 ‘언제나! 자신 있게!!’지만 이게 그런 거라고?

처음에 실비아를 구할 때 받은 퀘스트를 보면 분명 실비아가 세상을 구할 가능성을 품고 있다고 했었다. 그리고 그 가능성이 만개하여 만든 물건이 바로 이름도 거창한 이 애널 섹스용 장내 청결제고.

이거 설마…….

두 번째 재앙인 전염병 치료제냐? 그런 거야?

* * *

이제 곧 두 번째 재앙이 다가온다.

첫 번째 재앙은 언데드가 직접 공격하는 거라 뭐라도 할 수 있었지만 사실 이 두 번째 재앙은 그저 지켜보는 수밖에 없었다.

원인을 알 수 없는 전염병이 그 주인공이니 말이다.

사실 소설 속 황태자도 회귀하자마자 흑마법사 학회를 점거하다시피 하며 이 병의 치료제를 발명하기 위해 안간힘을 썼지만 결국 치료제 개발은 실패하고 제국 전역이 전염병에 시달리게 된다.

게다가 황태자도 끝까지 이 병의 원인이나 치료 방법을 알지 못했다.

그건 결국 이 소설을 읽은 로빈 역시 원인이나 치료 방법은 전혀 모른다는 의미였다.

발생 원인이나 치료 방법도 모르는데다가 황태자가 흑마법사 학회를 뒤흔들며 몇 년이나 투자했는데도 찾지 못한 해결책을 저가 발견할 수 있을 리가 없기 때문에 로빈은 이 부분은 사실상 운에 맡기려 했었다.

하지만 로빈 역시 아예 손 놓고 있던 건 아니었다.

어쨌든 문제는 전염병.

전염병이 일어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해 준비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최대한 청결을 유지하기 위해 모든 마을의 상하수도 시설을 정비하고, 마을마다 대형 목욕탕을 설치한 것도 바로 그런 이유에서였다.

그리고 이 세상에서 세상을 구할 정도의 약이라고 하면 그것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애당초 소설 안에서 전염병이라고는 그거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세상에, 이건… 천운이야. 이걸 대량 생산할 수 있다고 했죠?”

“그렇네. 가능하지. 다만 영주의 허락이 필요한 일이 있는데…….”

“뭔데요. 말씀만 하세요.”

좀 시큰둥했던 로빈이 갑자기 적극적으로 달려들자 의아하긴 했지만 좋은 게 좋은 거라고, 알버스도 마음 편하게 요구 사항을 밝힐 수 있었다. 어쨌든 영주 개인의 재산을 요구하는 일이라 마음속으로는 제법 껄끄러웠기 때문이다.

“사실 생산 시설을 만드는 건 그리 어렵지 않은데 그 뭐냐, 마수 핵이란 물건이 좀 많이 필요해. 물론 소모성으로 계속 필요한 건 아닌데 대충 50개 정도? 그걸 변환 수조에 설치해서…….”

뒤에 설명이 좀 있었지만 그건 로빈이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이었고, 결국은 마수 핵 50개가 필요하다는 의미였다.

결국 자신이 가볍게 던져준 빅 테일 마수 핵 하나로 이런 성과를 만들어냈다는 건데.

하지만 만약 마수 핵이 그 정도나 필요하다면 이걸 만들 수 있는 곳은 불행히도 자신의 영지뿐이었다. 지금 상황에서 그 정도 마수 핵을 가진 사람은 자신뿐이었기 때문이다.

예전에 황태자에게 보낸 것은 이미 다 써버리고 난 후일 테니 말이다.

“이건 큰일이네. 이곳에서 생산하는 걸로 제국 전역을 커버할 순 없을 텐데.”

하지만 없는 것보다는 나았기 때문에 당장 만들라고 지시했다.

그나마 다행인 건 이미 가장 핵심 시설인 변환 수조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준비해 놓았기 때문에 본격적으로 생산에 들어가는 것도 그리 멀지 않았단다.

“그러니까, 이건 생산 시설만 있으면 제국 어디에서든 만들 수 있다는 거죠?”

“맞아요, 영주님. 괜찮죠? 잘했죠? 히힛.”

“그래. 잘했네. 정말 잘했어.”

네가 몇 명의 목숨을 살렸는지 알면 아무리 너라도 놀라 뒤집어질 거다.

어쨌든 예전에 황태자에게 상당수를 보냈지만, 아직도 백 단위가 넘는 마수 핵이 남았다.

그 말은 적어도 두 군데에서는 이 약을 생산할 수 있다는 거다.

우선 영지에서 생산하고, 이번 일이 마무리되면 바로 황태자에게 말해 황도에도 생산 시설을 갖출 생각이다. 모든 물자가 모여드는 황도이기 때문에 그곳에 생산 기지가 만들어지면 영지에서 만드는 것보다 훨씬 많은 양을 찍어낼 수 있을 테니 말이다.

믿기 힘든 일이지만 이 약이 그렇게 사업성이 좋은 물건이라면 누가 강요하지 않아도 알아서들 사갈 테니 전염병으로 인한 피해는 많이 줄일 수 있을 것이다.

이름: 실비아 루페시

성향: 맹목적, 헌신적, 음란

타이틀: 연금 여제(L). 신의 경지에 달한 이해력(O). 치료학의 대가(SR)

실비아가 각성했다더니 연금술 탐구자가 연금 여제로 변해있었다. 저 약도 사실상 연금술적인 수단이 많이 가미된 약인 모양이다.

밝힘이 음란으로 업그레이드된 건 좀 걸리지만, 치료학 전문가도 치료학의 대가로 한 단계 올라섰고, 저 연금 여제는 이름만 들어봐도 뭔가 있어 보이는 멋진 타이틀이었다.

설명을 보니 조건이 맞아떨어지면 상상을 초월하는 무언가를 만들 수 있다는데, 솔직히 지금 만든 저 물건 정도만 돼도 상상도 못 한 엽기적인 물건이긴 했다. 이런 게 세상을 구할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지만 말이다.

“좋아! 실비. 이번에 진짜 제대로 된 걸 만들었는데, 뭐 받고 싶은 건 없니?”

돈도 제법 될 거 같은데다가 뭔가 세상을 구한 거 같은 뿌듯함으로 너그러워진 로빈은 처음으로 실비아에게 직접 원하는 걸 물었다. 지금까지 실비아의 의견을 묵살한 채 상관없는 것만 선물한 것에 비하면 장족의 발전이었는데.

“있어요. 사실 동정은 그 정실부인이 가져갔다는 걸 알고 있어요. 당연하겠죠. 성인이 된 지 벌써 반년도 넘었으니까요.”

“뭐, 그렇다고 치고. 그래서?”

“그러니 이 약을 사용해서 영주님과 함께……. 히힛. 해주실 거죠?”

…음, 꼭 그거여야 하니?

그러니까 나랑 그걸 하자고?

예전에는 몰랐는데 앤과 대화하면서 느낀 게 많았다. 이곳 여성들에게 있어서 사랑하는 남자와의 스킨십이나 접촉이 생각보다 중요하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물론 그때는 아직 어른도 아니었지만, 자신만을 원하는 여성 둘을 그저 그렇게 내버려두기만 한 건 결국 자신의 잘못이라는 거다. 이 두 여성도 자신이 아끼고 평생을 같이해야 할 중요한 사람들이었으니 말이다.

그래서 웬만한 스킨십 정도는 너그럽게 받아줄 생각이었는데.

그래도 이건 좀 그렇잖아? 제대로 경험도 없는데 느닷없이 그걸 하자고?

하지만 저 녀석의 초롱초롱한 눈망울을 보니 100% 진심이었다.

“음, 좋아. 하지만 당장은 아니야. 나중에 앤이랑 린까지 다 모이면 그때 진지하게 이야기해 보자.”

“어? 진짜요?”

당연히 거절과 함께 꿀밤이 날아올 줄 알고 머리를 슬쩍 가리며 도망갈 준비를 하던 실비아는 로빈이 반쯤 허락하자 당황한 얼굴로 자신이 잘못 들은 건 아닌지 재차 확인하는데.

“그래, 진짜. 물론 당장은 안 돼. 이것저것 신경 쓸 게 좀 많아서. 그 정도는 이해해 주라.”

“당연하죠. 대신… 그건 제가 처음이에요. 아셨죠?”

“…그래, 뭐. 그러자.”

순간 앤이랑 린도 이걸 원할까 싶어 잠시 망설여졌지만 이게 무슨 큰 의미가 있겠나 싶어 그냥 허락했다.

이게 생각보다 큰 파장을 몰고 올 거라는 사실은 전혀 눈치채지 못하고 말이다.

* * *

어쨌든 영지에서 개발한 신약이 앞으로 다가올 두 번째 재앙의 치료제인 게 거의 확실한 상황에서 로빈이 할 일은 그저 황태자가 조셉 공작의 계략을 분쇄하고 무사하다는 소식을 기다리는 것뿐이었다.

제법 유망한 사업이라고 적당히 잘 버무리면 이걸 황태자에게 소개하고 황도에 생산 시설을 갖추는 건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니었으니까.

“그런데 존은 왜 아직 안 돌아오는 거야? 딱 봐도 문제없이 임무를 완수한 거 같은데 어디서, 뭘 하는 건지 모르겠네.”

황태자에게 힐데 후작의 악랄함을 각인시켜 준 용사 존은 아직 영지로 돌아오지 않았다. 존뿐만 아니라 뒤에서 존을 지원하던 동생들 몇이랑, 같이 행동한 릭스터와 용병들도 마찬가지였고.

발각되었을 때를 대비해 통신 수정구조차 들고 가지 않았기에 로빈 역시 그쪽의 사정을 전혀 알 수 없었고 그저 그들이 무사히 돌아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물론 황태자의 반응을 봤을 때 그들 모두 아무 일 없다는 것만은 확실하지만 말이다.

“어? 린이다.”

[주인, 우선 대충 해결한 거 같아. 완전 미친놈들이더라. 이놈들이 마나 폭탄인가? 그걸로 협곡 입구를 막아버렸다니까.]

그리고 드디어 로빈이 바라던 연락이 도착했다.

조셉 공작이 뭔가 대단한 수작을 부릴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지만 마나 폭탄을 이용해 산사태를 일으키고 뒤이어 수십 명이나 되는 암살자와 기사들이 연달아 습격했다는 말을 듣고는 로빈도 탄식을 터트릴 수밖에 없었다.

화약이 없는 세상에서 광산에서나 사용하는 마나 폭탄으로는 기사들에게 직접적인 피해를 줄 수 없는 건 둘째 치고, 그런 류의 물자는 철저하게 관리하고 있어 덜미가 잡히기 딱 좋은 물건인데 그런 걸 사용했기 때문이었다.

이제 황태자가 돌아가 황도에 비축된 마나 폭탄의 수와 그 일련번호만 철저히 조사해도 이게 어디서 나온 건지 알아낼 수 있을 테니 누군가는 분명 줄초상을 당할 것이다.

“폭발 물자를 관리하는 곳이라 봤자 기껏해야 세 군데뿐인데, 조셉 공작이 자기 손으로 그걸 준비했을 리는 없고. 그걸 빼돌린 놈을 찾아서 족친다고 조셉 공작과의 연관성을 찾아낼 수 있을까?”

상대가 무리수를 뒀으니 이게 기회인 것만은 분명한데 조셉 공작이 그 정도로 생각 없이 막 나갔을 거 같진 않았다. 결국 조셉 공작의 꼬리만 쫓다 그렇게 흐지부지해지겠지.

로빈으로서는 그저 조셉 공작에게 이용당하고 버려진 누군가가 불쌍할 뿐이었다.

(다음 화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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