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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소설 속 로빈-177화 (177/303)

177화

* * *

요 며칠 사이 로빈은 세 여자의 티타임을 구경하거나 힐데 후작령에서 있었던 일들을 전해 들으며 조셉 공작이 실각했다는 소식만을 기다리고 있었는데 역시 세상일이란 게 그리 만만하지는 않은가 보다.

상황을 한 번에 반전시키는 말도 안 되는 일이 벌어졌으니 말이다.

“황제 폐하께서 쓰러지셨어요? 아니, 느닷없이 그게 무슨……. 게다가 섭정이 황후라고요? 황태자 전하가 아니라요?”

바로 룩센 대제가 갑자기 쓰러졌다는 소식이었다.

게다가 점입가경이라고, 황태자가 황제 시해 용의자로 쫓기고 있단다. 그래서 황후가 섭정을 하기 시작했다는데.

이제 정당하게 황위를 물려받을 일만 남은 황태자가 황제를 해쳤다는 건 정말이지 지나가는 개도 웃지 않을 일이었다.

“미치겠네. 이 양반은 대체 뭘 했기에 그렇게…….”

사건의 내막까지는 알 수 없지만 가장 황당한 건 황제의 명만 따른다는 황실 근위병이 황태자를 쫓고 있다는 거였다. 이건 황후가 그사이에 황실 근위병 상당수를 포섭했음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황실 근위병은 황태자의 텃밭과도 같은 곳인데 그곳에서 배신자가 나오다니. 그나마 황태자의 수족 같은 브릴리언트 캣 쪽에서 이 일을 지급으로 알려온 걸 보니 무사히 몸을 빼긴 한 거 같아 다행이었다.

“그래, 원래 그런 양반이긴 했지. 1회 차가 변했어도 이건 안 변하는구나. 하지만 그래도 그렇지, 이렇게 황당하게 통수를 맞는다고?”

대단한 무위를 자랑하며 단호하게 적을 썰어버리는 황태자가 주인공인 소설.

하지만 이 소설이 사이다물이 아닌 건 이런 식으로 자꾸 통수를 맞아 독자들의 복장을 터트렸기 때문이었다.

조셉 공작의 영지까지 살펴보고 있다더니 상대의 본진만 신경 쓰다 자신의 본진이 털려버렸으니 얼마나 황당한가.

그야말로 어이가 털릴 지경이었다.

“보험으로 전사들을 데려오긴 했는데……. 이걸로 뭔가 할 수 있는 게 있나?”

보험은 그야말로 보험.

보험에 가입했다고 집이 홀라당 다 타버리길 바라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로빈 역시 보험은 그냥 보험으로만 남길 바랐는데 상황이 좀 이상해졌다.

자신에게까지 소식이 전해진 마당이니 조셉 공작도 빠르게 움직이고 있을 테고, 이대로 넋 놓고 있다가는 놈에게 잡혀 무슨 일을 당할지 알 수 없었다. 재수 없으면 황태자가 뭘 하기도 전에 황족 시해죄를 뒤집어쓰고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질 수도 있었으니 말이다.

“주인! 황궁으로 돌격이야!”

“돌격은 무슨. 황실 근위대만 2천인데 가서 무슨 짓을 하려고 그래?”

황후가 황실 근위대를 얼마나 장악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당장 그곳으로 돌격하는 건 정말 미친 짓이었다. 그 많은 수를 상대하기도 어렵거니와 설령 황실 근위대를 모조리 때려눕힌다고 해도 그 뒷감당은 누가 한단 말인가?

“아씨. 무슨 정보라도 있어야 뭘, 어쩌지. 대체 뭐야?”

이럴 때는 황태자나 참모들과 직통으로 연결하는 통신 수정구가 없다는 게 원통할 뿐이었다. 적어도 그 양반이 어떤 상황인지라도 알아야 뭘 해보기라도 할 텐데 그것도 아니었으니 말이다.

황태자가 이미 황도에서 내뺐는데 황제를 구한답시고 황궁으로 들어가 봤자 아무런 의미도 없었다.

“좋아. 어쩔 수 없지. 가자!”

없는 시간을 쪼개서 고민하던 로빈은 결정을 내렸다. 우선 영지로 도망치기로 말이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자신을 보호할 능력이 없는 다이앤과 애니, 실비아와 자신은 무조건 영지로 몸을 피해야 했다.

“황태자는 주인공이라서 적당히 도망치다 무슨 반전을 만들어내겠지만 난 아니란 말이지.”

역시 긴박하고 상황을 알 수 없을 때는 무조건 도망치는 게 최고였다. 우선 살아야 뭐라도 할 수 있었으니 말이다.

“그레이츠 백작! 널 체포한다! 순순히 항복하라!”

“이 새끼들이 미쳤나! 가뜩이나 짜증 나는데.”

하지만 상황이 급박하긴 한지 내빼기도 전에 벌써 병사들이 저택에 들이닥쳤다. 상대는 사병으로 보이는 귀족들의 병사들과 기사들이었다.

조셉 공작의 입장에서는 자신이 레오니스 공작가나 크라우 백작가에 이어 3순위나 4순위쯤 될 텐데 자신에게 저 정도 병력만 보낸 걸 보면 상대도 급박한 상황에서 갑자기 일을 일으킨 게 분명했다.

“죽어! 이 자식들아!”

“조져버려!”

“야, 다 죽이진 마라! 대가리는 살려둬야 해!”

이쪽의 전력도 파악하지 못한 채 용감하게 저택 문을 박차고 들어온 병사들은 전투에 굶주린 모야족 전사들에게 먼지가 나도록 얻어맞고 목숨을 잃었다.

백랑, 흑웅, 린을 위시한 전사들과 제필과 듀발이 포함된 영지의 기사들, 그야말로 영지의 에이스들이 모조리 모인 곳이었으니 저런 놈들은 간식거리조차 못 되었다.

그렇게 저택까지 들이닥친 조셉 공작의 기사들을 적당히 손봐주고 바로 골목으로 숨어들었다.

놈들의 대장을 적당히 주물러주면서 알게 된 건데 황실 근위대뿐만 아니라 3황자파 귀족들의 사병까지 합세했고, 세 개의 성문과 게이트까지 이미 점거되었단다.

이렇게 되면 외부의 병력 지원을 기다리기도 어렵게 되었다.

그나마 다행인 건 근위대가 전원이 황후를 따르는 게 아니라 일부의 인사들만 황후를 따르고 있으며 황후를 따르지 않는 자들은 마비 독을 먹고 구금되었다는 이야기였다.

수도 구금된 쪽이 압도적으로 많다니 만약 황태자가 그들을 무사히 구할 수만 있으면 다시 반전을 만들어낼 수 있을 것이다.

확실히 갑작스럽게 위기에 몰린 조셉 공작이 서둘러 일을 벌이다 보니 그런 허점이 생긴 모양이다.

하지만 그거야 황태자 사정이고, 자신들이 황궁에 쳐들어가는 건 너무 무모했기 때문에 로빈은 무조건 퇴로부터 확보하기로 했다.

“그나마 게이트 쪽이 가장 헐겁다는군요.”

“아무래도 그렇겠죠? 마법 공학자들을 다 쫓아버렸으니 게이트를 운용할 사람도 없잖아요? 황태자의 무위를 생각하면 세 개의 성문을 막아내는 것도 버거울 테니 말이에요.”

만약 황후가 근위대를 완벽하게 장악했으면 황태자를 잡기 위해 황도를 뒤지는 동시에 황태자파 귀족들의 저택을 습격해 사병들을 모조리 처리하려 했을 거다.

하지만 병력이 그리 넉넉하지 않기 때문에 가장 문제가 될 만한 레오니스 공작가 같은 곳에 병력을 파견해 분위기를 조장하고, 다른 사람들이 정신 차리기 전에 황태자를 없애버리려는 게 분명했다.

“만약 레오니스 공작가의 사병들과 합류할 수만 있으면 할 만한데요. 안 되는구나. 그쪽으로는 이미 엄청 몰려갔겠지. 이 일을 어쩐다. 이 양반이 도망가기 전에 다른 곳에 제대로 알리긴 한 거야?”

상황을 파악할 수 없으니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지금은 통신실마저 조셉 공작이 장악했을 게 뻔했으니 말이다.

“게이트라도 움직일 수 있으면…….”

로빈이 아는 마법 공학자를 찾기 위해 머리를 굴릴 때 옆에서 지켜보던 실비아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응? 영주님, 나 그거 할 수 있는데요. 좌표만 잡아주면 되는 거잖아요?”

그러고 보니 이 녀석도 일종의 마법 공학자였다. 게다가 이해력 쪽으로는 천재에 가까운 녀석이었고.

이걸 이 녀석이? 대체 언제 배운 거지?

이 녀석을 바로 보내지 않은 게 정말 신의 한 수가 된 순간이었다. 이대로 게이트를 뚫을 수만 있으면 최소한의 도주로는 확보되는 셈이었으니 말이다.

“좋아. 우선 게이트로 가자. 거기부터 뚫고 생각하자고.”

만약 황태자가 지방에 도움을 청했으면 뭔가 반응이 있을 거다. 아무런 반응도 없으면 그냥 그대로 도망친 후 훗날을 기약하면 되고.

“그래도 주인공이잖아? 나중에 뭔가 반전이라도 있겠지.”

어차피 최악의 경우도 내전이었고, 내전이 일어나면 사실상 동부는 당연하고, 북부와 남서부의 두 변경백이 황태자의 편이었다.

물론 리아넨 공작이랑 그릭스 대공자가 조셉 공작에게 붙잡혀버리면 중부는 버려야겠지만 그 정도는 어쩔 수 없는(?) 희생이리라.

목표를 결정한 이상, 서두를 필요가 있었다. 자칫 잘못하면 이 황도에서 발이 묶일 수도 있었으니 말이다. 그리고 괜히 이쪽으로 병력이 쏠리면 피곤하기만 할 테니 되도록 조셉 공작 쪽을 자극하지 않는 게 좋았다.

최대한 신속하게 게이트 쪽으로 이동했다.

사람들 역시 무슨 변고를 느꼈는지 거리는 한산했고, 덕분에 별다른 방해 없이 게이트에 도착할 수 있었다.

게이트는 입구부터 제법 많은 병사가 지키고 있었다. 그리 위협적인 적은 아니지만, 수가 많다는 건 어쨌든 부담스러운 일이었다.

“음, 제법 많네요. 대부분 병사긴 하지만 기사들도 드문드문 보이고요.”

“저 정도면 바로 돌파할 수 있을 겁니다.”

자신감 넘치는 제필의 말에 백랑과 린도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맞는 말이긴 했다. 겨우 병사들로 전사들을 막을 수는 없으니 말이다.

다만 병사의 수가 제법 많아서 저들을 깔끔하게 정리할 수 없다는 게 마음에 걸렸다. 놈들이 사방으로 도망치면 이곳의 사정이 즉시 알려지게 되기 때문이다.

“어쩔 수 없지. 조셉 공작이 황도 성문에 전력을 집중하고 있기만을 바라야겠네. 백랑, 린. 처리하자.”

로빈의 명이 떨어지자 용맹한 전사들이 일제히 게이트 쪽으로 내달렸다.

“웬 놈이냐!!”

“으악!”

갑작스런 기습에 놀란 병사들은 급히 무기를 들고 대항했지만, 전사들의 무위를 감당하지 못하고 하나둘씩 쓰러져갔다.

그리고 밖이 소란스러워지자 안쪽에서 기사들이 모습을 드러냈는데.

“누구냐! 자카 자작가의 베레스가 상대해 주마!!”

베레스, 베레스… 뭔가 좀 익숙한 이름인데? 아아. 저놈, 제국 8검이구나.

어쨌든 제국 내에서 칼 좀 쓴다는 제국 8검.

뭔가 당당하더니 자신의 무위에 제법 자신이 있는 녀석인가 보다.

그나저나 자카 자작가라.

거긴 황태자파 아닌가?

자카 자작은 영지보다 황도 쪽에 집중하고 있는 전형적인 출세 지향형 귀족이었다. 이리저리 간을 보다가 황태자파 쪽으로 넘어간 거로 아는데 여기서 저러고 있다는 건…….

“에휴. 우리 황태자 전하, 진짜.”

상황이 급박하게 흐르며 황태자파 귀족들 일부도 조셉 공작 쪽으로 넘어간 모양이다. 황태자가 이상한 누명을 쓰고 있으니 귀족들도 할 말은 있겠지만 참 어지간하다 싶었다.

어쨌든 마스터(S), 제국 8검(U), 검술의 달인(R) 타이틀을 달고 있으니 그럭저럭 칼질은 좀 하는 거 같은데 저 정도야…….

“악! 비겁하다! 이렇게 한꺼번에 덤벼들다니!”

힘 좀 쓸 거 같은 녀석이 나타나자 반색하며 달려드는 모야족 전사들.

그리고 선두에 선 린과 백랑 부녀의 어택에 이리저리 치이던 베레스는 억울하다는 듯 저렇게 외쳤지만 그런 것을 신경 쓸 우리 전사들이 아니었다.

뭐래, 저 병신은? 이 상황에서 저런 소리를 지껄이는 놈이 있단 말이야?

로빈이 어이없어하는 와중에 백랑의 도끼와 린의 대검이 놈의 허리를 갈라버렸다. 사방에서 공격이 쏟아지자 당황하다 결국 가장 강력한 둘의 움직임을 놓친 것이다.

놈을 따르던 기사들 역시 전사들에게 목숨을 잃기는 마찬가지였다. 역시 기사라고 다 같은 기사는 아닌가 보다.

그런데 마스터라더니, 저거 거품 아니야? 아무리 협공을 당했다지만 저렇게 허무하게 무너진다고?

제국 8검, 진짜 못 쓰겠네.

저런 놈들을 제국의 검이라고 믿어야 하는 제국민이 안타까워지는 순간이었다.

“…도망쳐!!”

믿고 있던 대장과 기사들이 허무하게 목숨을 잃자 병사들은 혼비백산해 사방으로 흩어졌다.

그리고 로빈과 일행들은 도망치는 병사들은 내버려두고 서둘러 게이트 안쪽으로 뛰어들 뿐이었다.

한 무리의 병사들을 물리치자 더 이상 거칠 게 없었다. 아무래도 마법 공학자들을 다 해산시켜 이쪽은 크게 경계하고 있지 않은가 보다.

게이트 내부에 들어서자 로빈은 실비아에게 빨리 게이트를 열라고 재촉했다.

“어? 영주님. 이쪽으로 연결이 와있는데요? 그러니까……. 라이언 트와이드 외 9인? 이거 어떡할까요?”

“2황자가? 우선 열어봐!”

“네.”

실비아가 게이트를 조작하자 게이트가 열리며 한 남자가 뛰어나왔다. 그리고 뒤이어 건장한 남자들이 줄줄이 뛰쳐나왔는데.

“요청을 넣은 지가 언제인데 왜 이렇게 늦는 거……. 어? 매부?”

“아. 예, 2황자 전하.”

“여기서 뭐 하는 거야? 마법 공학자는 어디 가고 이런 아가씨가…….”

로빈은 당황하는 2황자에게 지금 상황이 어떤지 모두 설명했다.

2황자 역시 의외의 상황이 당황스러운지 고민에 빠져들었는데.

“하, 어쩐지 통신을 넣어도 뭔가 석연찮고 이상하다 했더니 그런 일이…….”

“작센 백작님이 이곳으로 지원을 오는 건 역시 무리겠죠?”

“아무래도 그렇지. 마나석이란 게 그리 넉넉한 물건은 아니라서. 사실 저 녀석들을 호위로 데려온 것만 해도 제법 무리한 거거든.”

남동쪽을 지키는 변경백인 작센 백작이라도 마나석 같은 고가의 물건을 무더기로 쟁여놓지는 않는다.

(다음 화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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