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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소설 속 로빈-180화 (180/303)

180화

그리고 뭔가 다른 생각을 하는 황태자에게 지금은 약이 없고 영지의 흑마법사가 직접 와 황제와 황비의 체질을 분석해 따로 약을 만들어야 한다고 이야기하자 잠시 고민하다 우선 귀족 회의를 통해 이 일을 논의해야 한다고 대답했다.

황태자가 섭정인 건 맞지만 아직 황제인 건 아니라 절차상 당연한 일이었기에 로빈도 그저 고개를 끄덕이며 물러날 뿐이었다.

“하, 역시 안 되네. 웬만하면 그냥 황태자 손에서 해결하고 싶었는데. 물론 이런 식으로 어른의 사정이 끼어들 거 같긴 했다만.”

그리고 마지막 황태자의 반응을 보니 역시 이런 일은 번민할 수밖에 없나 보다.

조셉 공작은 죽었지만 3황자와 황후가 모두 살아있는 상황이었다. 황제가 쓰러지는 바람에 모든 논공행상과 처벌이 뒤로 미뤄진 상태였고.

이대로 황제가 죽으면 자연스럽게 황태자가 황위에 오르면서 그 즉시 둘을 역적으로 처단할 수 있지만, 만약 황제가 살아나서 다른 소리를 하면 상황이 이상하게 꼬일 수 있었다.

만약 혈육의 정 때문에 둘을 그냥 살려둔다면?

그 뒤에 어떤 후환이 있을 지 알 수 없었다.

게다가 살가운 부자 관계도 아니고 사실상 사무적으로만 대하던 사이였다. 심지어 친모가 얽힌 해묵은 원한까지.

그런 황제를 살리기 위해 위험을 감수할 가치가 있을까?

황제라는 자리가 원래 그렇다. 권력을 잡기 위해서라면 무슨 일이든 일어날 수 있는 자리였으니 말이다.

배다른 동생이 자신에게 암수를 펼치고 자신은 그를 잡아 반역자로 처단해야 하는 그런 자리.

지금 황태자는 그런 번민에 빠진 것이다.

“저건 내가 뭐라고 할 수도 없는 문제지. 웬만하면 순리에 맞는 판단을 해줬으면 좋겠는데 말이야. 나도 생각 좀 해봐야겠네.”

어쨌든 귀족 회의까지 가야 할 테니 로빈 역시 차근차근 고민해 봐야 했다.

로빈의 예상대로 황태자는 자식 된 도리와 황제의 자리 사이에서 번민하고 있었다.

어차피 황제의 자리야 시간이 지나면 자신의 것이 되겠지만 황제가 깨어난 후 3황자와 일당들을 어떻게 처리할지가 가장 문제였다.

황제는 초인이어야 한다고 항상 말하던 자신의 아버지가 과연 자신의 말대로 행동할 수 있을까?

황태자도 이 부분은 확신할 수 없었다.

“그나마 다행인 건 그 약이 벌써 나왔다는 거야. 전염병이 너무 빨라 가슴이 철렁했는데 벌써 그 약을 만들다니. 역시 알버스 원로를 바로 그레이츠로 보낸 건 신의 한 수였군.”

원래라면 지금쯤 그레이츠 영지로 향했을 알버스 원로를 말도 안 되는 이유로 미리 보낸 건 이 일을 위해서였다. 그리고 덕분에 수십만이 넘는 제국민을 살릴 수 있게 되었다.

“…부황의 문제는 생각을 좀 해봐야겠지. 후…….”

한 가지 기쁨과 한 가지 번뇌.

페리안은 그날 밤늦게까지 잠을 이룰 수 없었다.

* * *

사안이 사안이라 바로 다음 날 임시 회의가 열렸다.

물론 미리 도착한 실비아는 자신을 대체 왜 보낸 거냐고 투덜거리다가 로빈에게 꿀밤을 얻어맞고 눈을 흘겼지만 말이다.

그리고 같이 돌아온 다이앤이 그런 실비아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달래주고 있었다. 대단히 아름답고 가슴이 두근거리는 투 샷이었지만 회의에 나서야 하는 상황이라 마음이 가볍지는 않았다.

오늘 임시 회의에 상정된 안건은 두 가지.

황제의 치료를 위해 체질 분석을 허락할지 여부와 2황자가 난리 중에 병사를 이끌고 황도를 활보한 것을 어떻게 처리할지 논의하는 거였다.

공교롭게 두 가지 사안 모두 로빈과 연관된 것이라 오늘 회의에서만은 그가 주인공이었다. 전혀 반갑지 않은 일이었지만 말이다.

“황제 폐하의 체질 분석이라니요. 이 무슨 망측한 말입니까?”

“그레이츠 쪽에서 역심을 품고 있는 게 아닙니까?”

“조금의 가능성이라도 있으면 해야 합니다. 지금 협회의 고명한 흑마법사는 물론 신심이 깊은 사제들도 원인을 파악하지 못하고 있어요.”

“그러니까 그분들도 원인을 알 수 없는 일인데 어떻게 그 어린 여인이 알아낼 수 있겠습니까?”

“그럼 이대로 황제 폐하를 보고만 있어야 한단 말입니까?”

“그레이츠 백작의 진의부터 파악해야 합니다!”

회의장은 그야말로 아수라장이었다.

실비아와 로빈의 진의가 의심된다는 얼빠진 소리부터 그냥 이대로 두고 봐야 한다는 신중론.

그리고 무조건 할 수 있는 일은 다 해야 한다는 의견까지.

하지만 황제를 살리기 위해선 뭐든지 해야 한다는 몇몇 귀족들을 제외하고는 오히려 황태자가 빨리 황위에 오르기만을 기다리는 눈치였다.

로빈은 귀족들의 뻔한 작태에 혀를 차며 아무런 발언도 하지 않고 있었다. 자신이 뭐라고 한다 한들 저들의 생각이 바뀔 리도 없고, 선택은 무조건 황태자가 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솔직히 황태자가 어떤 선택을 하든 그저 받아들일 생각이었다. 그리고 그 업보는 결국 황태자 자신이 지게 될 것이다.

물론 생각은 이렇게 했지만, 생각만 그렇고 몰래 2황자를 만나 이미 황제와 1황비의 체질 정보를 빼내어 약을 만들어놨다. 만약 회의 결과가 엉망이면 우선 약을 먹인 후 모른 척할 생각이었고.

아무것도 안 했는데 그냥 살아났다고 하면 다들 의아해하겠지만 누구도 뭐라 할 수 없기 때문이다.

물론 황태자는 의심하겠지만 뭐, 어쩌겠나. 우선 내 식구부터 살리는 게 중요한데.

그렇게 실비아가 직접 약을 만드는 장면을 처음으로 보게 되었는데 이 녀석은 정말 천재였다. 약을 만드는 과정이 엄청 복잡하고 난해한데도 그걸 순식간에 해결해 버렸기 때문이다.

그 손놀림이 어찌나 빠르고 정확하던지.

물론 다 마무리 짓고 손끝을 샥샥 돌리면서 자신의 하복부를 지그시 바라보는 게 뭔가 섬뜩하긴 했지만 뭐 그 정도는 웃으며 넘어갈 수 있었다.

그렇게 여러 의견이 난립하는 사이에도 황태자는 그저 눈을 감고 무언가를 생각하는 거 같았다.

그리고 회의가 소강상태에 들어가자 가만히 지켜보던 레오니스 공작이 입을 열었는데.

“어떤 선택이든 후회하지 않을 선택을 하십시오, 전하. 마음속에 어떠한 미몽조차 남겨서는 안 될 것입니다.”

레오니스 공작까지 발언을 마치자 황태자가 눈을 떴다.

“황족의 체질을 분석한다는 건 매우 위험한 일이나, 사안이 급하니 이를 허락하겠다. 그레이츠 백작은… 바로 황제 폐하의 치료에 최선을 다하라.”

“전하… 그건.”

일부 귀족들이 끝까지 만류했지만 황태자의 결정은 변하지 않았다. 황태자의 마음이 어떤지 정확히 알 수는 없었지만 어쨌든 불확실한 위험을 피하기보다 천륜을 선택한 것이다.

그렇게 귀족들이 불만에 휩싸여 있을 때 다음 안건이 올라왔다.

바로 2황자 문제.

표면적으로는 2황자가 황실의 허가 없이 근위대와 황도 치안대를 이끈 것을 문제 삼은 거지만 사실 따지고 보면 3황자가 사라진 가운데 2황제를 견제하거나 이마저 처단하고자 하는 귀족들의 검은 속내였다.

“준전시 상황이었습니다. 이는 역모에 준하는 반역 행위라고 할 수 있습니다.”

상황이 상황이다 보니 대부분 근신이나 귀향 정도를 이야기하는데 굳이 역모로 처단해야 한다는 얼빠진 놈도 있었다.

물론 오늘은 이렇게 대충 흘러가다 근신 정도로 마무리되겠지만 앞으로도 이런 식의 견제가 계속 이어질 것이 뻔했기에 로빈은 아예 이 자리에서 해결을 볼 생각이었다.

솔직히 사람 하나 바보 만들겠다고 작정하고 달려들면 역모죄를 뒤집어씌우는 건 일도 아니었으니 말이다.

“조셉 공작이 역모를 일으켰을 때 자택에서 숨만 쉬고 있던 귀족 분들이 황실을 위해 직접 검을 들고 싸운 2황자 전하에게 죄를 묻는 이 상황이 참 인상적이군요.”

“흠흠.”

“말이 심하지 않습니까, 그레이츠 백작?”

심하긴. 아가리만 놀리고 있는 네놈들이 더 심하지.

“솔직해질 필요가 있을 거 같군요. 어차피 귀족 분들은 2황자 전하가 후환이 될까, 이러시는 거겠죠? 그리고 이런 일들은 앞으로도 계속 반복될 거고요. 아마 2황자 전하가 죽을 때까지 계속 이어질 겁니다.”

정곡을 정확히 찌르는 로빈의 말에 귀족들도 할 말이 없는지 입을 닫았다.

“2황자 전하의 성품이 어떤지는 아마 아무런 상관이 없을 겁니다. 네, 물론 저도 인정합니다. 권력이란 게 원래 그런 거니까요. 무조건 안전한 게 좋은 거 아니겠습니까?”

“음. 그건…….”

“그래, 그레이츠 백작은 어떻게 생각하지? 2황자랑 제법 가깝게 지내던 거 같던데.”

너무 직설적인 말이라 쉽게 인정하지 못하는 귀족들을 보니 헛웃음만 났는데 황태자 역시 마찬가지인지 그가 직접 나섰다. 아무래도 자신의 말에 호기심을 느낀 모양이다.

난리 중에 만났을 때도 2황자에 대한 미움이나 증오를 느끼진 못했으니 저 황태자도 2황자를 살릴 방도가 있으면 그걸 선택할 가능성이 컸다.

“방법은 아주 간단합니다. 2황자 전하께 황위 계승권이 없으면 되는 거 아닙니까? 다들 걱정하는 게 그거잖습니까?”

“말은 간단하지. 하지만 황위 계승권은 황족의 당연한 권리야. 그걸 어떻게 없앤단 말인가?”

무대가 완성되었으니 이제 한 판 벌이고 안전하게 다이앤을 차지하는 일만 남았다. 원래 마음에 드는 여자를 차지하는 건 이렇게 어려운 일인가 보다.

“남동부 변경백 작센 백작이 이제 곧 은퇴하실 생각입니다. 하지만 그분은 일가친척 피붙이도 없으신 분이죠.”

“그래서?”

“2황자 전하가 작센 백작의 양자가 되어 작센 백작령을 이어받으시면 됩니다.”

“그런 말도 안 되는!”

제국 남부 해안가 너머에는 두 개의 나라가 자리 잡고 있다. 남서쪽에는 남부 연합국이, 그리고 남동부에는 제라 해상 왕국이 위치해 있는 것이다.

로빈의 아버지 윌리엄의 고향이기도 한 남부 연합국은 비교적 온건한 사람들이지만 저 제라 해상 왕국이 항상 문제를 일으켰다. 마치 전생에서의 왜구처럼 제국 남동부를 끊임없이 약탈하는 놈들이었으니 말이다.

그리고 작센 백작령은 그 해상 왕국의 해적들과 싸우는 최전방이었다.

작센 백작령은 지금까지 계속 제라 해상 왕국의 해적들을 막으며 영지를 굳건히 지켰다.

그러던 어느 날, 그러니까 수십 년쯤 전에 해적들의 습격으로 영주의 가족이 인질로 잡히는 사건이 발생했는데.

설마 영주 성까지 들어와 영주 가족을 납치할 리는 없다고 방심한 게 큰 화를 부른 것이다. 그리고 가족을 가지고 협박하는 그 해적들이 해안가를 약탈하는 걸 그저 보고만 있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약속을 지키면 그들을 해적이라고 부를지도 않았을 거다.

해적들과 작센 백작령은 이미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넌 사이였고, 해안가를 벗어나자마자 영주 가족을 무참히 살해하는 것으로 그들은 지금까지 죽은 동료의 넋을 달랬다.

이렇게 작센 백작은 단 한 번의 실수로 모든 가족을 잃고 후계자까지 잃게 된 것이다.

가족을 구하기 위해 이를 악물고 놈들을 놓아주었는데 결국 가족까지 잃게 된 작센 백작은 자신의 남은 인생을 해적 토벌에 바치게 된다.

다른 사람이라면 당연히 다시 부인을 맞이해 새롭게 대를 이었겠지만, 자신에게 가족이 있다는 게 해적과 싸울 때는 족쇄가 될 수 있다는 걸 깨달은 작센 백작은 후계자를 포기하고 영지 수호를 선택한 것이다.

그리고 그 후, 수십 년 동안 작센 백작은 수많은 해적을 토벌해 혁혁한 공을 세웠다.

하지만 세월이 가는 건 막을 수 없고, 작센 백작도 나이를 먹어가면서 변경백의 자리가 점점 버거워지기 시작했다.

그렇기에 황실에서도 후계자도 없는 작센 백작이 은퇴하면 그 뒤를 이을 자를 선별해 보내야 하는데 그 대상 역시 마땅치 않았다.

즉, 지금은 황위 계승 때문에 정신없지만 이 일이 마무리되는 대로 작센 백작령의 문제도 해결해야 한다는 의미였다.

그리고 로빈은 지금 그 자리를 언급하고 있는 것이다.

“왜 말이 안 됩니까? 다들 쉬쉬하고 있지만 2황자 전하께서 지난 5년간 작센 백작령에서 혁혁한 공을 세웠다는 걸 모르시는 분이 있습니까? 병사들과 기사들도 진심으로 2황자 전하를 따르고 있고요.”

“그래도 황족을 변경백으로 임명하는 법은 없습니다. 그건 그야말로 반란을 조장하는 꼴이 아닙니까?”

가끔 소설을 읽다 보면 정말 바보 같은 녀석들이 나온다. 그건 아무래도 작가 역시 대단한 천재는 아니다 보니 주인공의 뛰어남을 강조하기 위해서는 상대적으로 다른 캐릭터들을 낮출 수밖에 없어서일 것이다.

그리고 저놈을 보니 딱 그런 놈이었다.

하지만 어쩌겠나. 말을 꺼냈으니 마무리를 지어야지.

“분명 양자로 들어간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렇게 되면 황족도 아니게 되니 그건 상관없겠죠? 그리고 반란을 말씀하셨는데……. 이미 황족도 아닌 2황자를 누가 따를지 모르겠지만 그게 아니라도 작센 백작령에서는 반란이 불가능하지 않겠습니까?”

“그게 무슨…….”

(다음 화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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