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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소설 속 로빈-188화 (188/303)

188화

“물론 따로 사제 교육을 받은 건 아니지만, 제가 워낙 독실하다 보니 영향을 많이 받을 수밖에 없었어요. 황녀지만 그래도 최소한 지아비를 섬기는 법 정도는 알아야 할 거 같아서 그쪽으로는 확실히 가르쳤거든요. 혹시 우리 앤이 무슨 실수라도 했나요?”

“아뇨, 아뇨. 그럴 리가요.”

너무 좋아서 문제였죠. 네네. 완전 감사합니다, 장모님.

경험도 없다는 여자가 제대로 배운(?) 사람처럼 봉사하길래 이게 뭔가 했더니 이런 비밀이 숨어있었나?

아아, 그래서…….

소피아 황비가 교단 출신이라는 말을 들으니 몇 가지 의문이 풀려 나갔다.

우선 너무나 능숙하고 현란하게 봉사하던 다이앤.

봉사하는 스타일이나 자신을 대하던 태도가 뭔가 좀 익숙하다 했더니, 예전에 들었던 사제들의 경험담과 흡사한 면이 있었다. 시집간 사제들도 남편을 상대로 항상 최고의 봉사를 선보인다고 했으니 말이다.

그리고 이건 좀 다른 이야기인데, 황도의 환락가를 황실에서 관리하지 않게 된 이유가 바로 이것 때문인 모양이다.

황실에서 그곳을 직접 관리하게 되면 세금을 내지 않는 봉사의 교단은 당연히 자리를 비워 줘야 한다. 그러니까 룩센 대제가 환락가를 포기한 건 자신의 처가와 같은 봉사의 교단을 핍박하고 싶지 않아서인 것이다.

그럴 바에는 좀 더 교단을 돌봐주면 되지 않겠냐는 생각도 들었지만 아마 그 정도가 룩센 대제에게는 최선이었던 거 같았다. 자신의 사욕을 위해 권력을 다루는 그런 사람은 전혀 아니었으니 말이다.

만약 룩센 대제가 그런 사람이었으면 백성들에게 ‘대제’라고 불리며 존경받지도 않았을 것이다. 정말 피곤하게 사는 사람이 아닐 수 없었다.

“네. 여부가 있겠습니까, 장모님. 어디든 편한 곳에서 사시면 됩니다. 그래도 성물이 있는 영주 성이 가장 낫겠죠? 아예 영주 저택에서 같이 사시는 건 어떨까요?”

“어머, 말은 고맙지만 그건 안 될 거 같아요. 영주 저택이라니요. 전 그저 신전 근처에 있는 작은 집이면 족하답니다.”

“그래, 백작. 말은 고맙지만 그렇게 하는 건 좀 그렇네.”

“역시 그건 그런가요? 알겠습니다. 제가 다녀오실 동안 좋은 곳을 알아볼게요.”

“호호. 그럼 사위님만 믿을게요.”

그렇게 결혼식 전에는 돌아오겠다는 말만 남기고 두 분이 떠나갔다.

아마 이곳에서 머물며 사돈댁 수준(?)이 어떤지 살펴보고 신전을 구경한 후, 자신을 만나고 떠날 계획이었던 모양이다. 그러다 사돈댁 식구와 신전 모두 너무 마음에 들어 정착할 마음이 생겼을 테고.

하여간 다른 건 몰라도 친화력 하나는 갑이라니까, 우리 식구들이.

두 분이 돌아오시기 전에 신전 바로 옆에 러브 하우스나 하나 지어 드려야겠다.

자신이 두 분께 잘하는 만큼 우리 앤도 부모님께 잘할 거로 생각하니 없는 의욕도 생겨나는 기분이었다.

* * *

그렇게 두 분을 보내 드리고 저택 정문 안으로 들어섰는데 뭔가 참 많이 바뀌었다. 특히 본채랑 조금 떨어진 곳에 작은 집이 하나 생겨난 것이 가장 큰 변화였고.

“로빈, 어서 오렴. 이쪽으로 와보겠니?”

앤과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웃음꽃을 터트리던 마리아나 여사는 로빈이 들어오자마자 바로 팔을 잡아끌어 새로 생긴 작은 집으로 데려갔다.

“여기가 너의 신혼집이야. 우리야 상관없다지만 그래도 황녀님인데 남들의 눈을 신경 쓸 수도 있겠다 싶더라고. 신혼이면 시간과 장소를 불문하고 불이 붙을 텐데 우리 며느님이 얼굴 붉혀서야 되겠니?”

따지고 보면 그 황녀님이 우리 집안에서 가장 스페셜리스트라 왠지 노출, 혹은 공개 플레이를 은근히 즐길 거 같았지만 굳이 그걸 언급하지는 않았다. 다이앤은 몰라도 로빈 자신은 좀 낯 뜨거웠기 때문이다.

자신이 신혼 때의 부모님처럼 남들이 왔다 갔다 하는 거실에서 대놓고 응응한다고 생각하니 얼굴이 달아오를 지경이었다.

물론 그렇다고 전혀 그러지 않을 생각은 아니었고, 적어도 남들이 없는 곳에서 그럴 생각이었다. 그러니 이렇게 분가 아닌 분가를 준비해 준 부모님의 마음 씀씀이가 더 고마울 수밖에 없었다.

“원래 신혼집은 이렇게 좁을수록 좋은 거야. 호호호. 그래야 불이 파파박 붙는 거 아니겠니? 그러니 앞으로는 앤과 린, 그리고 실비와 이곳에서 지내도록 해.”

그렇게 들어선 신혼집은 정말 아늑했다.

사실 넷이 지내기에는 좀 좁다는 표현이 더 정확할 것이다. 실내도 대여섯은 충분히 같이 잘 수 있는 거대한 침대와 한쪽을 차지하고 있는 식탁을 제외하면 다른 건 아무것도 없었으니 말이다.

게다가 이젠 별로 씻을 일도 거의 없는 네 사람이 머무는 곳인데 따로 욕실만 크게 설치해 놓은 건 대체 무슨 이유일까?

로빈은 저 욕실의 용도가 단순히 몸을 씻기 위한 장소가 아니라는 것에 전 재산을 걸 수 있었다.

“…정말…….”

“어머! 정말 마음에 들어요, 어머님. 집 안의 모습이 한눈에 다 들어오는 것도 정말 좋고요. 정말 이런 아늑한 곳에서 꼭 한번 살아보고 싶었는데.”

좁다고 말하려는 찰나에 앤이 미리 선수를 쳐버렸다. 정말 마음에 들어서 저러는지는 모르겠지만 우선 이곳에서 살아야겠다고 마음먹은 모양이었다.

“호호. 그러니? 하지만 이 집의 진가는… 바로 이거지.”

그렇게 벽 한쪽을 차지하고 있던 커튼을 열어버리자 유리 벽 너머로 작은 풀장이 보였다. 이 집을 설계할 때 따로 작은 풀장을 설치해 놓은 것이다.

물론 벽 자체가 투명한 통유리로 되어있기 때문에 풀장에서도 침대 위를 그대로 볼 수 있다는 건 좀 충격적이었지만, 원래 그런 세상이니 그렇다 치고, 풀장이 바로 코앞에 있다는 건 정말 매력적이었다.

“게다가 저 풀장은 그냥 평범한 풀장이 아니야. 겨울에도 들어갈 수 있는 풀장이거든?”

“맙소사, 저거 설마…….”

저건 그저 따듯한 물이 나오는 온수 풀장과는 수준이 다른 물건이었다. 무수한 마법진과 마나석을 동원해 물의 온도를 포함한 주변의 온도 자체를 바꿀 수 있는 그런 풀장이었기 때문이다.

21세기에서도 실내가 아닌 실외에 저런 풀장을 설치하는 건 거의 불가능할 정도인데 대체 무슨 짓을 한 건지 의심스러울 정도였다.

“마법 공학자 분들이 수고를 많이 했어. 물론 여기뿐만 아니라 집 정원에도 하나 설치했고, 모야족 마을의 풀장도 그렇게 바꿨거든. 돈은 제법 들었는데, 그건 영주 개인 자금과 마법 공학자 분들이 분담해서 부담했단다. 정말 고마운 분들이지.”

…마법 공학자라면 히센의 그 친구들을 말하는 거겠지?

그 인간들의 습성을 생각했을 때 영주 저택의 작은 풀장 두 개는 그저 구색 맞추기에 불과하고 그들의 주목적은 모야족 마을의 큰 풀장이 분명했다. 그들이 가장 한가한 시간이 겨울이다 보니 겨울에도 모야족 여성들이 풀장에서 즐기길 바란 것이다.

그렇게 따지면 그들의 수작에 넘어간 거라 화가 나야 당연한 건데…….

겨울에도 수영을 즐길 수 있는 개인 풀장이 생겼다고 생각하니 입꼬리가 내려올 생각을 하지 않는다. 특히 수영복이나 속옷, 혹은 알몸으로 수영을 즐길 세 여성의 눈부신 자태를 상상하니 더욱 그랬다.

게다가 언제나 영지를 위해 용감하게 싸우는 모야족 역시 그 정도 복지를 누릴 자격이 있었다.

그래서 마법 공학자들에게는 일 폭탄을 안겨주는 거로 응징을 대신하기로 했다. 한 1년 편하게 지냈으니 이제 쥐어짤 때도 되었으니 말이다.

“그리고 로빈, 여기는 자체 정화 능력도 갖추고 있거든~ 호호. 그러니까…….”

헉, 그 말은 설마… 저 안에서?

와, 미쳤네. 진짜.

마법 공학자 어르신들, 정말 감사합니다. 물론 그렇다고 일이 줄어들진 않겠지만요.

어쨌든 신혼집은 상당히 마음에 들었다. 물론 결혼식 전까지는 참아야 하겠지만 그 뒤로는 마음껏 폭발할 수 있었으니 말이다.

자신도 남자라 초미녀 셋과 함께할 결혼 생활이 기대되지 않는 건 아니었다.

“결혼식은 아무래도 봄이 좋겠지? 우리 영지 사정상 겨울은 좀 걸리는 게 많잖니?”

“네, 아무래도 그렇죠. 다섯 번째 달에는 황태자 전하의 대관식이 있으니까 그 시기는 피해야겠지만요.”

“결혼식을 하고 바로 영지 축제를 개최할 생각이란다. 저번처럼 진행하면 모두에게 즐거운 축제가 되지 않겠니?”

축제라면 로빈이 승작하기 위해 황도로 넘어가는 바람에 구경도 못 한 그 축제를 말하는 거였다. 그게 벌써 2년 전이니 확실히 지금쯤이면 축제를 한 번 할 만도 했다.

영주의 결혼이라는 중요한 행사가 맞물렸으니 영지민에게 뭔가 베푼다는 의미도 있었고.

물론 그 검은 옷 입은 놈들이 조금 걱정되긴 하지만 외지인이 참석하지 않는 영지만의 축제였으니 별 상관없을 것이다.

“좋네요. 그렇게 해요. 가만있자……. 그러면 제 결혼식을 세 번째 달 정도로 하면 되겠네요. 축제 기간은 3일로 하고요.”

황태자가 결혼식을 핑계로 자신을 미리 부를 수도 있으니 결혼식과 축제를 모두 앞당길 생각이었다. 결혼도 하기 전에 또 불려가면 정말 폭발할 거 같아서였다.

그때는 정말 계급장 떼고 한 판 붙…으면 내가 두들겨 맞겠구나. 그 인간은 괴수고 난 쭈구리니까.

어쨌든 이번에는 무조건 결혼식을 치르고 마을 축제에 참석할 생각이었다.

흠흠, 이번에도 교단에서 그런 걸 해주려나? 이거 은근히 또 궁금하네.

* * *

로빈이 결혼식을 상상하며 음흉(?)하게 웃고 있을 때 룩센 대제와 소피아 황비는 이미 게이트를 타고 황도에 도착한 후였다. 이곳에서 하룻밤을 머물고 다시 내일 작센 백작령을 향해 출발할 생각이었으니까.

처음에는 사람들에게 알리지 않고 배를 타고 올까도 고민했지만 그래봤자 황태자의 눈을 피할 수 없을 테니 시간이라도 아끼자는 생각에 바로 게이트를 탄 것이다.

“상공, 앤은 괜찮겠죠? 물론 사위님도 그렇고 가족들도 모두 좋은 사람 같았지만, 그거랑은 또 다른 문제잖아요? 고부 갈등이란 말이 괜히 있는 것도 아니고요.”

“그건 걱정 없을 거야. 솔직히 사치나 향락이 아니라 평안만을 생각하면 그곳만 한 곳도 없거든. 우리에게 못 받은 사랑도 듬뿍 받을 거고.”

“그렇겠죠? 하긴 누구 딸인데요.”

“그래, 우리 소피의 딸이지. 소피를 딱 빼닮은 우리 딸.”

“피, 외모는 상공을 더 닮았어요. 그 찰랑거리는 금발 하며, 영롱한 푸른 눈도 그렇고요.”

“그래서 더 귀여운 아이였지. 그런 아이를……. 몇 번 안아주지도 못하고 이렇게 시집보내야 한다니. 가끔은 내가 황제라는 사실이 한스럽기도 했어. 황제라는 자리는 필부보다 못할 때도 많은 자리였으니까.”

“상공…….”

그렇게 넋두리하던 룩센 대제는 다시 마음을 다잡고 부드럽게 웃어 보였다.

“그나저나, 우리 사위의 인기가 상당하던데.”

“그러게요. 그렇게 많은 주민들이 사위님을 환영하기 위해 항구로 모여들다니요. 그리고 들었어요? 사위님이 인기가 많으니 우리 앤에게도 그렇게 환호성을 지르더라고요.”

“그 집안 성격상 주민들을 동원했을 리는 없고 그게 다 자발적으로 나온 걸 텐데……. 확실히 영지를 잘 다스린 모양이야.”

“신전에서 자매님들께 들은 말인데 우리 사위님이 태어나기 전에는 그렇게 영지 사정이 안 좋았대요. 그때는 먹고살기도 팍팍했는데 사위님이 태어난 다음부터 조금씩 좋아지더니, 사위님이 영주가 된 이후에는 생활이 완전히 달라졌다더라고요. 그러니 주민들이 사위님을 좋아할 만도 하죠.”

“인구는 많지 않지만 넉넉하고, 강한 기사들이 보호하는 영지라. 확실히 좋은 곳이더군. 게다가 하나를 보면 열을 안다고, 그레이츠 백작은 앤을 많이 아껴줄 거야. 앤을 위해 라이언이 살길까지 따로 준비한 녀석이니까.”

“정말 다행이에요.”

“멀쩡한 아들을 양자로 보낸 건 괘씸하지만, 그것보다 더 확실한 방법은 없었어. 물론 명예나 자존심을 전혀 생각하지 않은 처사지만 라이언도 그런 거랑은 거리가 먼 녀석이었지.”

“우리 아들이 보고 싶네요. 우리 아들도 빨리 결혼해서 번듯한 가정을 꾸려야 할 텐데요.”

“그렇군. 이제 작센 백작으로 자리 잡았으니 곧 소식이 있겠지. 예전에도 입지가 곤란해서 가정을 꾸리지 않은 거잖아?”

“그러게요. 그랬으면 좋겠는데…….”

“아마, 페리안이 가만있지 않을 거야. 그러니 우린 그저 얌전히 인사만 하고 돌아가자고. 그게 라이언을 도와주는 일이야.”

* * *

룩센 대제의 예상은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맞아 들어갔다. 크라우 백작 영애를 라이언 작센의 짝으로 만들기 위해 작업에 들어간 지 오래였으니 말이다.

처음 목표는 로빈이었지만 로빈이 그렇게 다이앤과 맺어지면서 붕 떠버린 크라우 백작 영애.

황태자에게는 그녀의 혼사를 책임져야 할 의무가 있었다. 만약 황태자의 만류가 아니었으면 이미 다른 곳으로 시집가고도 남을 레이디가 바로 크라우 백작 영애였기 때문이다.

“…라이언 작센 백작 말씀입니까?”

(다음 화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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