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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소설 속 로빈-192화 (192/303)

192화

그리고 그게 성공적으로 마무리되면, 특공대에게 미스릴 갑주를 입히고 마음 편하게 상급 마수를 상대할 수 있을 거 같았다. 이놈의 방어력이 어느 정도인지는 이걸 입은 언데드를 상대할 때 충분히 실감했으니 말이다.

“그러세요. 아마 당분간은 조용할 거 같거든요. 최소한 겨울이 지날 때까지는요.”

“그렇다니 다행이군. 갑자기 영주가 이곳에 오는 바람에 섬뜩했는데 말이야. 그때는 우리 귀염둥이들이 내 얼굴을 잊어버릴 뻔했다니까.”

“아, 그래요. 아이들은 잘 크죠? 제가 정신이 없어서 따로 찾아가보지도 못했네요.”

히센과 쌍둥이의 결실이 올해 봄쯤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신기하게도 같은 날 같은 시각에 각각 여자아이를 출산한 건데 엄마가 쌍둥이라서 그런지 두 아이조차 매우 닮아있었다. 유전학적으로 깊이 파고들면 사실 말이 안 되는 일인데 실제로 그런 일이 버젓이 일어난 것이다.

마치 쌍둥이 같은 두 아이를 품에 안은 채 히센은 기쁨의 오열을 터트렸다고 한다.

그 모습을 직접 보지 못한 것도 조금 아쉬운데다 지금까지 따로 챙겨주지 못한 건 아무래도 좀 미안한 일이었다.

“하하, 영주도 엄청 바쁘지 않았나. 지금까지 그걸 계속 건네준 것만 해도 영주가 할 일은 다한 거였네.”

“그렇게 생각해 주시면 저야 고맙지만요.”

돌을 몇 개월 앞둔 젖먹이 아이들이라.

참 귀엽긴 할 거 같았다. 그런데 얼굴도 제대로 못 보고 지냈단 말이지? 이래서야 일을 마음 놓고 맡기기도 좀 미안해진다.

대체 뭘 위해 그렇게 살아야 하는 건데?

“히센 님, 그러지 말고 마법 공학자를 좀 더 뽑을까요? 저희가 돈이 없는 것도 아닌데 너무 궁상맞은 거 같기도 하고요.”

“나쁘지 않은 생각이긴 한데, 저 녀석들만큼 해주는 놈들도 별로 많지 않아서 말이야. 애들을 가르치면서 일하면 더 피곤하기만 할 거야. 지금은 좀 좋아졌다지만 아직도 제대로 된 마법 공학자들은 황도를 선호하는 편이고. 앞으로도 일이 계속 많은가?”

히센을 보고 있자니 내가 너무 혼자 바둥거린 게 아닌 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다섯 개 영지의 물건은 우리 쪽에서 처리하는 게 옳았지만, 그 이상을 하겠다고 설치는 건 오만이라는 생각도 들었고.

그러니 방향을 좀 바꿔야겠다.

원래는 상당량의 마법 가죽 갑옷을 만들어 전국에 유통할 생각도 있었다. 이제 곧 황태자가 움직여 무슨 수를 써서라도 제국 병사들의 방어구를 마법 가죽 갑옷으로 바꿀 것이기 때문이다.

1회 차에서 큐브 포털을 겪었으면 그건 너무 당연한 수순이었다.

하지만 생각해 보니 전국 단위의 일은 그냥 황태자에게 넘기는 게 현명한 일이었다.

“음……. 많다면 많은데. 아무래도 큰일은 황궁 쪽으로 떠넘겨야겠네요. 좋아요. 그렇게 해야겠어요.”

“무슨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뭔가 싸한 게 지나간 기분이군 그래.”

그렇죠. 잘못했으면 히센 님이 가죽 갑옷을 수만 벌이나 인챈트할 뻔했으니까요.

그렇게 마음을 먹은 로빈은 마법 공학자들과 히센에게 예산과 상관없이 잘 부탁한다는 마지막 당부를 남기고 공방을 나섰다.

* * *

집을 짓는 것에는 달인의 경지에 오른 릭스터와 동생들, 그리고 마법 공학자들이 적극적으로 나서자 생각보다 빨리 집이 올라가기 시작했다.

거기다 소식을 들은 아버지와 어머니까지 나서 정원 쪽을 손보고 있었다.

몇 년간 영주 저택의 큰 정원을 관리한 아버지는 이쪽 방면에서는 상당한 실력을 자랑했는데 탁월한 예술적 감각 때문인지 아버지가 손보고 나면 평범한 나무들도 뭔가 대단히 품격 있게 느껴졌다.

“상황 전하께서 예전에 내 그림을 사주신 분이라며? 그때 우리가 그분께 신세를 진 셈이긴 하지. 돈도 돈이지만 내 그림을 황실 미술관에 전시했다는 소리에 가슴이 먹먹했었단다. 그런데 인연은 인연인지 이렇게 사돈으로 맺어지게 되었구나.”

“아, 그랬죠.”

상당히 오래 지난 일이나 잊고 있었는데 그런 일이 있었다. 정체를 모르던 구매자가 상황 전하라는 건 아버지의 그림이 황실 미술관에 전시된 후에 알게 된 일이고.

그때 아버지가 참 많이 기뻐했었다. 그 일을 계기로 계속 작품 활동을 이어와 앤이 말했던 그 작은 미술관도 만들어지게 된 거였으니까.

그렇게 보면 상황 전하가 아버지의 대단한 팬인 셈인데, 나중에 우연이라도 그 미술관에 가보면 많이 놀랄 거 같았다. 따로 서명을 넣진 않았지만, 아버지의 화풍을 몰라볼 리는 없고 그때보다 더 발전한 화풍으로 지금까지 수십 점도 넘게 그렸으니 말이다.

솔직히 미술에 문외한인 자신이 봐도 아버지의 그림은 좀 대단했다.

어쨌든 모두가 힘을 합쳐 건물이 빠르게 올라갔다.

게다가 제법 기합이 들어갔는지 마법 공학자들은 그 작은 저택에도 풀장을 추가해 버렸다. 덕분에 돈이 좀 깨졌지만 효도하는 셈 치기로 했고.

자신의 부모에게 나름 신경 써주고 있다는 걸 느꼈는지 앤 역시 고마워하는 눈치였다.

물론 저렇게 꾸민다 한들 황도에서 사는 것과 비교하면 상대도 안 되겠지만 내 나름대로는 최선을 다한 것이다.

그리고 집이 마무리되고 가구를 어떻게 할지 고민하던 찰나에 두 분이 돌아왔다. 뭔가 좋은 소식을 들은 건지 처음보다는 많이 밝아진 모습이었다.

“허허, 설마……. 그사이에 이걸 준비한 건가? 뭘 이렇게까지…….”

“정말 마음에 꼭 들어요, 사위님.”

가장 높은 곳에 있었지만 의외로 소박한 두 분은 집을 보고 매우 흡족해하셨다. 특히 여기저기서 공수해 온 후 아버지가 따로 손본 정원수들과 한쪽에 설치된 풀장을 보고는 잠시 할 말을 잃을 정도였다.

“세상에, 여기에 이런…….”

“저 정원수는 대체 누가 손본 건가? 황실 정원사도 저렇게까지 감각적으로 가꾸진 못했거늘.”

“마음에 드신다니 다행이네요.”

“정말 딱 내가 꿈꾸던 정갈한 보금자리군. 고맙네, 백작.”

“참고로 이 저택의 마법 물품들과 풀장을 만드신 분들은 장인어른이 지원해 주시는 장학금을 받고 마법 공학을 익힌 평민 출신 마법 공학자 분들이었어요. 다들 장인어른의 집을 만든다니까 두 팔 걷어붙이고 나서더라고요.”

“…그런가. 그래. 그런 정책도 시행했었지.”

“지금도 그 정책 덕분에 많은 마법 공학자들이 학업에만 열중할 수 있을 겁니다. 그렇게 마법 공학이 발전하고, 백성들의 삶도 조금씩 편해지겠죠.”

“그렇군.”

잘못된 자식 교육 때문에 삶의 의욕을 많이 잃은 거 같은 장인어른을 위해 조금이나마 기운을 차릴 수 있는 말을 덧붙였다.

그리고 그 말을 듣고 표정이 조금 달라지시는 걸 보니 자신의 말이 제법 효과가 괜찮은 거 같기도 했다.

“어머, 이렇게 계속 서있지 말고 들어가요.”

룩센 대제가 멍하니 생각에 잠겨있자 안 되겠다 싶었는지 소피아 황비가 일행을 안으로 이끌었다.

사실 아직 내부 정리가 완료되지 않아 다소 휑한 느낌이었지만 그래도 차 한 잔 마시는 데에는 큰 무리가 없었다. 하지만 굳이 이런 상황에서 자신까지 안으로 데려온 걸 보면 무슨 중요한 할 말이 있는 모양이다.

“요즘은 정말 모든 일이 잘 풀려 나가는 거 같아요. 사위님도 그렇지만 라이언도 제 짝을 찾았지 뭐예요.”

“형님께서요?”

“페리안이 중신을 섰네. 상대는 크라우 백작가의 영애인데, 예전에 나도 몇 번 본 적이 있었지. 단아하고 얌전해서 며느릿감으로는 손색이 없다고 생각했었어.”

“크라우 백작 영애면…….”

크라우 백작 영애에게 얌전이라.

물론 단아하고 고상한 여자인 건 맞는데 얌전하다고 판단하는 건 좀 무리일 거 같았다. 앤에게 그 흉측한 그레이트 V를 선물한 것만 봐도 보통은 아니랄까?

아카데미 소식통 앤의 지인 피셜에 의하면 크라우 백작 영애는 자신의 아버지처럼 늠름하고 강건한 남성이 이상형이었다. 강한 남성에게 거칠게 압박당하는 게 성적 판타지라고 했었고.

라이언 형님은 분명 강한 남성이긴 하지만 그쪽으로는 어떨지 모르겠다. 이곳 여자들에게는 그런 것도 상당히 중요한 문제라고 했으니 말이다.

다만 점잖아 보이는 형님이라도 어쨌든 이쪽 남자이기 때문에 보통은 할 거 같긴 했다.

“확실히 페리안이 신경을 많이 쓴 티가 나는 인선이었어. 정략적으로나 인간적으로나, 누구도 손해 보지 않는 거래였달까? 확실히 그런 면은 나보다 낫더란 말이야.”

“덕분에 우리도 한시름 놓았지 뭐예요. 크라우 백작 영애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아이죠. 저도 몇 번 본 적 있는데 참 참한 아이였거든요. 라이언도 은근히 마음에 드는 기색이었고요.”

어쨌든 두 분 모두 크라우 백작 영애를 마음에 들어 하시는 거 같았다. 그러니 저렇게 기분 좋아하시는 거겠지. 확실히 결혼 당사자인 라이언도 마음에 들어 한다면 더 이상 따질 것도 없는 일이었다.

“자, 들게.”

때맞추어 시녀 하나가 차를 준비해 왔다.

그녀는 로빈도 익숙한 여자였는데 바로 아카데미에서 다이앤을 시중들던 애니였다.

원래 소피아 황비를 시중들던 애니는 다이앤이 로빈과 결혼을 앞두고 따로 신혼살림을 차리게 되자 다시 소피아 황비에게 복귀한 상황이었다.

그리고 지금도 다렌하고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니 그의 성품을 생각하면 상당히 놀라운 일이긴 했다.

사실 그녀도 상당히 성깔 있어 보였으니 다렌이 벌써부터 꽉 잡혀버린 건 아닌지 모르겠다. 물론 그놈은 그렇게라도 해야 결혼할 수 있을 거 같긴 했지만 말이다.

“고마워요, 애니.”

로빈이 웃으며 아는 척하자 그녀는 빙긋 웃으며 살짝 고개를 숙인 후 다시 자신의 자리로 돌아갔다. 아무래도 새집이다 보니 시녀인 그녀도 할 일이 제법 많을 것이다.

“우선 이걸 받게나. 라이언이 전해주라고 하더군.”

“이건…….”

룩센 대제가 로빈에게 건넨 건 바로 통신 수정구였다.

여동생부터 시작해 부모들까지 모조리 이곳에 자리를 잡자 아무래도 상당히 신경 쓰이는 모양이다. 아마 무슨 일이 있으면 바로 연락하라고 따로 수정구를 준비한 게 분명했으니까.

사실 로빈도 이걸 준비할 생각이었는데 상대가 먼저 준비해 주니 부담을 좀 덜었다. 적어도 다음 분기까지는 이걸 구입할 여유가 없었으니 말이다.

“우리들까지 이곳에 자리 잡는다니까 이걸 주더군. 아무래도 제법 신경 쓰여 그러는 거 같은데 너무 마음 쓰지 않았으면 해.”

“네, 그럼요. 당연한 일이죠.”

그렇게 수정구를 전해 받고 이런저런 담소, 특히 라이언과 다이앤의 어린 시절 이야기를 들으며 여유 있는 시간을 보낸 후 로빈은 자신들의 보금자리로 향했다.

남자들에게 특히 좋다는 영양탕을 준비할 테니 자주 놀러 오라는 장모님, 소피아 황비의 간곡한 부탁에 조만간 따로 시간을 내겠다고 약속까지 한 후였다.

특제 영양탕이라, 이게 결국 씨암탉과 동급이란 건데 어떤 건지 궁금하긴 했다.

* * *

상황 전하 내외의 보금자리까지 준비하고 나니 겨울이 한창이었다.

예년과 비슷한 정도로 마수들의 습격이 이어졌지만 철저한 준비 덕인지 기사들과 전사들의 좋은 경험치가 될 뿐이었다.

그레이츠 영지뿐만 아니라 다른 영지 역시 비슷한 상황이었는데 각 영지의 상황을 전해 들은 로빈은 이제야 뭔가 제대로 돌아간다는 생각이 들었다.

“중급 마수 가죽도 잘 관리해 두세요. 나중에 다 황도로 넘길 거거든요.”

그리고 중급 마수의 시체까지 다 돈으로 보이는 걸 보니 확실히 상황이 양호하긴 했다. 예전이라면 딱히 그런 생각할 여유 없이 마수들을 상대하는 데만 급급했을 테니 말이다.

하긴 지금까지 준비해 놓은 걸 생각하면 이게 당연한 일이었다.

다만 돌발 상황이 발생하면 이야기가 좀 달랐는데 이를 대비해 북쪽 관문에는 린이 버티고 있고, 남쪽 요새는 대수림 깊숙한 곳까지 꾸준히 정찰하고 있어 이상 징후가 발견되더라도 바로 대처할 수 있을 것이다.

“영지의 방비는 괜찮은 거 같으니 우린 다시 일해야죠. 마을 축제나 결혼식의 준비는 잘 되고 있는 건가요?”

“결혼식 준비는 마님이 전담하고 계시는데 준비 자체는 별문제 없이 진행되는 모양입니다.”

“그래요? 또 무슨 엉뚱한 일을 벌이시진 않겠죠?”

“그래도 결혼식인데 그러기야 하시겠습니까?”

가끔 엉뚱 발랄한 일을 벌이는 마리아나지만 그래도 며느리인 다이앤에게 체면 깎이는 일을 벌일 거 같진 않았다. 게다가 우리 가족만 있는 것도 아니고 사돈인 상황 전하 내외까지 계시니 더욱더 그럴 수 없을 거고.

“다만 광장에서 공개적으로 진행하는 결혼식이라 안전이 걱정스럽군요.”

“영지민들만 참석하는 결혼식인데 그럴 리가요. 하지만 혹시 모르니까 존에게 각별히 신경 써달라고 해야겠네요. 외지인들만 문제를 일으키지 않으면 별일 없을 거라고 확신할 수 있죠.”

다른 건 몰라도 영지민들은 믿을 수 있었다. 영지민들 간에 단합이 잘되고 영주를 잘 따른다는 게 이곳 그레이츠 영지의 장점이었으니 말이다.

(다음 화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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