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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소설 속 로빈-193화 (193/303)

193화

“축제는 어때요? 저번처럼 장기 자랑이나 여러 가지 공연을 준비하고 있는 거죠?”

“네, 영지민들도 지금 들썩이고 있습니다. 저번에 압도적으로 우승했던 ‘그레이츠의 옥음’ 루루 양이 다시 우승을 차지할 수 있을지, 아니면 뉴 페이스가 등장해 루루 양의 2연패를 저지할지가 큰 관심사라더군요.”

“그래요?”

저 ‘그레이츠의 옥음’이라는 명칭이 붙은 루루는 저번 축제 때 압도적인 지지를 받고 우승을 차지한 대단한 여자였다. 목소리에서 느껴지는 호소력 자체가 대단하다나?

결국 심금을 울리는 목소리라는 건데 솔직히 얼마나 대단하길래 옥음이라는 소리까지 듣는지 궁금하긴 했다. 다행히 이번에도 출전한다니 조만간 이 궁금증을 해결할 수 있으리라.

“문제는 역시 요청 행사겠죠. 이번에도 무슨 엉뚱한 걸 하겠다는 사람이 있던가요?”

“다들 평이했습니다. 아무래도 마님께서 결혼식 준비에 전념하고 계셔서 그런 게 아닐지.”

“아, 그랬네요. 폭탄 하나가 다른 데로 갔죠.”

“흠흠. 네, 뭐. 따지고 보면 그렇죠.”

로빈이 대놓고 마리아나를 폭탄이라고 했지만 지온 역시 아니라고 반박하지는 못했다. 저번에 마리아나가 입안한 그 어이없는 시합이 아직도 기억 속에 생생했기 때문이다.

“어디 보자. 교단은……. 300인 집단 군무? 미쳤네. 영지 내에서 교단의 위상이 대단한 건 알고 있었지만 이런 행사에 300명이나 동원할 수 있다고? 그런데 이걸 대체 어디서 하겠다는 거지?”

“그렇지 않아도 인원을 줄이라고 연락을 넣었습니다. 30명까지 줄이라고 했으니 이 정도면 중앙 광장 무대에서도 충분히 소화할 수 있을 겁니다.”

“잘하셨어요. 30명으로도 충분하죠.”

대체 무슨 짓을 하려고 300명이나 동원하려고 한 거야? 정말 대책 없는 사람들이라니까.

“보자, 이건 그러니까 입안자가 백랑이고, 내용이… 모야족 수영 한마당? 이건 그냥 평범한 수영 대회네요.”

마법 공학자들이 힘을 써주면서 결혼식이 열릴 초봄, 제법 쌀쌀한 날씨에도 수영 대회를 열 수 있게 되었다. 그러니 백랑도 당당하게 이런 대회를 요청할 수 있는 것이다.

“네, 수영 대회긴 한데. 몇 가지 이상한 점이 있습니다.”

“어? 진짜네. 착용 의상 자유. 경기 후 여성부 참가자의 의상을 바로 경매에……. 이 양반은 또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

그러니까 입고 경기를 마친 수영복, 물론 선수들이 수영복만 착용할 거라고 순진하게 믿을 수도 없었지만, 어쨌든 그걸 경매에 부친다는 말이었다.

“하~ 이게 입고 있던 속옷을 변태들한테 파는 거랑 뭐가 달라? 경매는 반려하세요. 풀장에서 수영 대회를 여는 건 당연한 거니 그냥 내버려두시고요.”

순수한 모야족조차 이런 거로 돈을 벌려고 하다니. 정말 자본주의와 돈은 무서운 놈이었다.

“그런데 혹시 모야족 풍속 중에 입던 속옷을 선물한다든지, 입던 속옷을 강탈해 구애하는 그런 풍습은 없겠죠?”

“설마 그런 게 있겠습니까?”

워낙 똥꼬 발랄한 모야족이다 보니 무슨 숨은 의미가 있나 싶어 다시 고민해 봤지만, 설령 그렇다고 해도 저건 막아야 할 거 같았다.

“그래요. 그렇게 처리해 주세요. 만약 그렇다고 해도 저건 안 되겠네요.”

“네, 그렇게 처리하겠습니다.”

그 밖에 특이한 거라고는 그레이츠 영지 미인 선발 대회나 남자부 정력왕 선발 대회 정도였는데 미인 선발 대회야 그렇다 치더라도 정력왕 선발 대회는 대체 무슨 기준으로 선발할지 알 수 없어서 반려하고 대신 무투 대회를 추가하기로 했다.

참가자 간의 실력 차이가 심하면 재미가 떨어지겠지만 기사부와 병사부로 나누어 진행하면 그리 큰 문제는 없을 것이다.

물론 린이나 제필, 백랑 등등의 수뇌부는 참가를 허락하지 않을 생각이었다. 그 인간들이 나가면 대회의 물만 흐릴 거 같아서였다.

“무투 대회는 상금을 많이 거세요. 참가율이 저조하면 그것도 문제니까요.”

“네, 그렇게 하겠습니다. 우승하면 단상 위에서 공개적으로 구혼할 수 있는 자격도 부여하면 반응이 괜찮겠군요.”

공개 구혼이라, 여자들이 가장 난처해하는 것 중 하나라던데 괜찮으려나? 그래도 재미는 있을 거 같으니 반대할 생각은 없었다.

“그러세요. 재미있겠네요.”

대충 축제에 대한 논의가 마무리될 때쯤 다이앤이 집무실에 들어왔다. 그녀는 뭔가 놀라운 것을 발견한 듯 제법 상기된 상태였다.

“로빈! 미술관에… 미술관에…….”

“응? 무슨 일이야?”

“말도 안 돼요. 미술관에 글쎄, 윌의 그림이 잔뜩 있는 거예요. 대체 어떻게 된 거죠?”

어떻게 되긴, 자네 시아버지가 윌이니까 그런 거지.

흥분한 모습을 보니 그녀 역시 윌의 상당한 팬인 거 같았다.

“그거야…….”

“제가 가장 좋아하는 그림이 윌이 그린 그 두 아이 그림이었거든요. 엄청 귀여운데다가 보기만 해도 마음이 푸근해져서요. 그런데 여기에도 그 그림이 있는 거예요.”

로빈은 그 그림에 그려져 있는 아이가 자신과 세이라란 걸 말해도 되는 건지 판단을 내릴 수가 없었다. 자고로 환상은 환상으로 내버려두는 게 가장 좋았기 때문이다.

자신이야 그렇다 치고(?) 그림 속의 그 귀여운 아이가 영지의 두 번째 비글인 세이라란 걸 알게 되면 상당히 실망할 거 같아서였다.

“음, 뭐. 그래. 그거 때문에 놀랐어?”

“네, 놀랐죠. 더 이상 윌의 다른 그림을 볼 수는 없을 거로 생각했거든요. 천재는 단명한다더니 정말 하늘이 야속하다니까요.”

“그…렇긴 하지.”

“그러고 보니 저택에도 윌의 그림이 몇 점 있던데요? 대체 윌과는 어떤 관계이신 거예요? 후원자셨어요?”

“좀 비슷하긴 해.”

자신이 아버지에게 물감이며 그런 것들을 다 대주고 있으니 후원자라면 후원자였다. 그것도 평생 후원자.

“대단해요, 로빈. 그런 대단한 예술가의 진가를 알아보고 후원까지 해주시다니.”

다이앤의 반응이 너무 격렬해서 괜히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는데 뭔가 한심한 놈을 본다는 듯한 지온의 눈빛에 정신이 번뜩 들었다. 이러다가는 거짓말이 계속 덩치를 불릴 거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하하, 사실은 윌이 우리 아버지야. 윌리엄 그레이츠. 우리 아버지의 풀 네임이 그렇거든? 소싯적에 윌이라는 이름으로 그림을 그리신 거고.”

“네?”

로빈을 꼭 닮은 준수하고 멋있는 시아버지.

훗날 로빈이 나이가 더 들면 꼭 저렇게 될 거 같아 가슴이 두근거리던 그분이 자신이 가장 존경하는 화가인 윌이라는 사실에 그녀는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그리고 로빈은 난처한 얼굴로 그런 그녀에게 그 당시 사정을 설명했는데.

“세상에, 그런 일이…….”

“이게, 참. 사기라면 사기인데, 그때는 영지 사정이 좀 그랬거든?”

“네, 물론 이해해요. 좀 놀랍긴 하지만요. 잠깐, 그럼 앞으로도 윌의 그림을 계속 볼 수 있다는 거잖아요? 아버님이 아직도 작품 활동을 하신다고 했죠?”

“그렇지.”

“와, 윌의 신작을 계속 볼 수 있다니… 정말 감격이에요.”

어쨌든 아버지 윌리엄의 그림이 그녀에게도 상당한 의미가 있는 모양이었다.

그런데 앤이 이 정도로 격렬한 반응을 보이는 걸 보니 룩센 대제는 어떤 반응을 보일지 두려워졌다. 사기를 쳤다고 멱살이나 잡히지 않으면 다행이었으니 말이다.

“자자, 그건 그렇고. 알아본 건 어떻게 됐어? 무슨 계획이 서긴 했어?”

“아, 그렇지. 맞아요. 몇 가지 생각해 놓은 게 있어요.”

다이앤은 며칠간 영지 이곳저곳을 오가며 영지에 만들 만한 유흥 거리를 조사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렇게 찾아와 말을 꺼내는 걸 보니 뭔가 떠오르는 게 있긴 한 모양이었다.

물론 성과를 기대하고 있는 건 아니지만 그녀가 무슨 말을 할지는 제법 궁금했다.

“우선 남쪽 마을의 풀장은 너무 단조로운 거 같아요. 음… 그러니까 단순히 수영하는 거 말고 다른 재미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거죠. 예를 들어 큰 미끄럼틀이나 그런 거요.”

결국 모야족 마을의 풀장을 워터파크 수준으로 업그레이드시키자는 이야기였다.

그리 나쁜 생각은 아니었지만 사실 남쪽 요새는 따지고 보면 군사 요충지였다. 그런데 그런 위험한 곳에 위터파크를 만든다면…….

물론 그곳에 이미 풀장까지 설치된 마당에 그런 걸 따지는 것도 웃기지만 이게 괜찮을지는 잘 모르겠다.

“그건 우선 모야족 사람들하고 의논해 볼게. 생각 자체는 나쁘지 않은데 몇 가지 걸리는 게 있어서 말이야.”

“네, 로빈.”

“그건 그렇게 하고, 또 다른 건?”

“음……. 그리고 영주 성에 소극장이라도 하나 있었으면 좋겠어요. 그곳에서 주기적으로 공연을 하는 거죠. 공연이 없는 날에는 영지민들의 요청에 따라 공개하기도 하면 사설 공연도 조금씩 늘어나지 않을까요? 사람들을 만나보니 그런 게 있었으면 하는 사람들도 제법 있더라고요.”

“소극장에다가 사설 공연이라. 하긴 그런 사람이 없으리란 법은 없지.”

외지인이 그리 찾지는 않는 곳이니 결국 영지민들만 사용하는 작은 공연장을 운영하자는 이야기였다.

영지의 규모를 생각하면 당연히 적자가 날 수밖에 없는 일이지만 주민 복지를 생각한다면 영주 측에서 그런 걸 운영하는 것도 그리 나쁜 이야기는 아니었다. 황도라면 개인 누군가가 운영할 수도 있는 공연장이지만, 이곳이라면 사실 영주밖에 그런 일을 할 사람이 없었다.

“다만 문제는 공연 팀이네. 꾸준히 공연한다면 전문적인 공연 팀이 필요할 거야.”

“그건 웬만하면 영지에서 찾아보고 싶어요. 영지 내에서 재주 많은 사람을 모아 극단을 꾸리는 거죠. 우선 이번 장기 자랑 입상자들을 위주로 한번 알아볼 생각이에요.”

물론 나쁜 생각은 아니었지만 그렇게 하면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릴 것이다. 그러니 영지 극단이 제 구색을 갖출 때까지는 외부에서 극단을 초청하는 게 오히려 나으리라.

“우선 이번 축제에 초청된 극단에 장기 계약을 요청해 볼게. 그들에게 따로 돈을 더 지불하면 조금이나마 배울 수도 있을 거야. 그들이 거절한다면 황도에서 전문가를 초빙하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 은퇴할 때쯤 되면 이렇게 한가로운 영지가 오히려 반가운 법이거든.”

“어머, 그럼 제 말대로 해주시는 거예요?”

“나쁘지 않은 의견이니까. 영주 성에 아직도 남은 자리가 많으니 그곳에 공연장부터 따로 만들어야겠네. 어차피 영지민들만을 상대로 하는 곳이니 그리 클 필요도 없을 테고.”

다른 건 몰라도 소극장을 짓고 자체적으로 공연을 하겠다는 건 괜찮은 생각이었다.

어차피 마음먹은 거, 겨울이 끝나고 자금이 돌기 시작하면 바로 극장부터 준비해야겠다.

영지에 와서 처음으로 하는 일이니 이 일은 전적으로 다이앤에게 맡기면 좋을 거 같다. 이번 일을 훌륭하게 마무리 지으면 그녀의 능력도 제법 인정받을 수 있을 것이다.

* * *

그렇게 로빈이 영지에서 축제나 결혼식을 준비하고 있을 때, 황도는 국외 문제로 시끄러웠다.

문제의 발단은 바로 그레이트 A, 남부 연합국에서 그레이트 A를 무단으로 만들어 팔고 있는 걸 리아넨 공작가 측에서 발견하고는 조치를 취해달라고 요청한 것이다.

게다가 다른 귀족들은 별로 신경도 쓰지 않았지만, 해상 왕국 쪽에서 전염병이 발생한 것 역시 황태자에게는 고민거리였다.

제국의 특허권에 대하여 남부 연합국은 항상 애매한 태도를 취해왔다.

제국과 거래하는 각 왕실은 그런대로 소정의 로열티를 지급하고 물건을 만들어왔지만, 민간에서 자체적으로 짝퉁을 만들어 파는 걸 적극적으로 규제하지는 않은 것이다.

제국 황실 역시 먼 타국에서 제국에서 고안한 물건을 만들어 파는 걸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웬만한 물건은 제국 내에서 소비하는 걸 충당하기도 벅차 다른 나라까지 신경 쓸 여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즉, 제국의 규모가 워낙 커 국내에 물건을 팔아먹는 거로 충분했고, 그 물량을 소화하기도 바빴던 것이다.

그런데 이번 일은 예전의 일들과는 뭔가 분위기가 달랐다.

남부 연합국 각 나라의 왕실에서 군용품으로 쓰겠다며 혼 래빗 가죽을 수입해 가서는 그 가죽으로 그레이트 A의 짝퉁을 만들어 팔고 있었기 때문이다.

군용품으로 사용하고 남은 게 민간으로 흘러나가 그렇게 된 건지, 아니면 아예 수입한 가죽 일부를 거기에 사용하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리아넨 공작가나 그레이츠 백작가 입장에서는 일이 좀 우습게 되었다.

특히 혼 래빗 가죽의 수출은 황실에서 주관하는 일이었다.

결국 이 어이없는 사태에 황실 역시 책임이 있었고, 뭔가 기만당한 듯한 이 행태를 보고만 있을 수는 없게 된 것이다. 아니, 정확히는 두 귀족가보다 황실에서 더 날뛸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표현할 수 있으리라.

(다음 화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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