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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소설 속 로빈-195화 (195/303)

195화

“특허를 리아넨 공작에게 팔아버리고, 혼 래빗 수출을 막아버리면 굳이 제가 가서 의논할 것도 없습니다. 상대가 저희 가죽으로 그런 짓을 했으니 수출 계약을 파기해도 뭐라 할 말이 없겠죠. 있다면 일상적인 항의 정도? 하지만 그런 거야 제가 알 바는 아니지 않습니까?”

[흠, 좋은 생각이군. 그러면 상대도 아르마늄 수출량을 줄이면서 보복하겠고, 난 가만히 앉아서 목적을 달성하겠군? 게다가 욕은 후작이 다 먹을 테니 손해도 없고 말이야. 혼 래빗 가죽을 못 팔면 그레이츠뿐만 아니라 다른 네 곳 영지의 수익도 줄어들 텐데, 그걸 감당할 수 있겠나? 돈 잃고 욕먹고. 제국을 위해 그렇게까지 해주겠다니 역시 후작은 충신이군. 정말 대단해.]

아후, 앓느니 죽지. 물에 빠져도 주둥아리만 둥둥 뜰 인사 같으니라고.

“결국 황태자 전하도 마수 가죽이 필요하실 텐데요. 저한테 이러시면 곤란하지 않겠습니까? 제가 결혼도 못 하고 황도에 올라가면 짜증 나서 그걸 다 불살라버릴 수도 있어요. 거기에 빅 테일의 것도 포함되어 있거든요? 다른 건 몰라도 이건 탐나시겠죠? 아르마늄 의존도를 줄인다고 하셨으니 어차피 대체품은 마수 가죽뿐이잖아요?”

[…많이 모아놓았나?]

“네, 저희 영지에서는 예전부터 꾸준히 모으고 있었고, 다른 영지들도 재작년부터 모으기 시작했죠. 그 물량이 다 저희 창고에 있고요. 그런데 상황을 보니 왠지 오늘 밤에 창고에서 원인을 알 수 없는 화재가 일어날 거 같군요.”

이건 통했는지 잠시 동안 아무 말도 못 하던 황태자는 다시 창고에 모인 물량부터 확인했다.

[그 정도나 있다고?]

“네, 솔직히 중급 마수 정도는 득실득실하거든요. 상급 마수라면 위험 부담이 좀 있지만, 중급이라면 무난하죠.”

[확실히 북부군이 강군은 강군이야. 좋아. 후작이 그렇게까지 요청하니 도의상 받아들일 수밖에 없겠군.]

어디서 거짓부렁이야? 입에 침이나 바르고 말씀하시지.

창고에 불을 낸다는 말에 자기도 움찔했으면서 참 뻔뻔한 양반이다. 하지만 그것과는 상관없이 예전부터 빅 테일의 가죽과 뼈를 황실에 보내야 할지 고민이 많았다. 마지막에 잡은 빅 테일은 사실상 계산 밖의 수확이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영지에서만 네 마리의 상급 마수를 잡았다. 그리고 창고에 잠자고 있던 녀석들까지 합치면 사실 영지 전력으로는 소화할 수 없는 양이 모여버린 것이다.

물론 좋은 물건을 잘 가지고 있은 것만으로도 이익이지만 제국의 전력을 올리는 것도 그에 못지않게 중요한 일이었다. 그러니 이번에 황태자의 저 저주받은 주둥아리를 다물게 하는 조건으로 어차피 보낼 물건을 보낸다고 생각하면 딱히 아깝지도 않았다.

저걸로 얻을 수 있는 건 기껏해야 돈이나 공적인데 이젠 둘 다 별 의미가 없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후작이 필요한 건 사실이야. 후작과 후작의 기사들이야말로 마수 가죽 마법 갑옷이 얼마나 좋은 물건인지를 정확히 알고 있는 사람들이지 않은가?]

“그거야 그렇죠. 물론 중급 마수로 만든 건 병사들이 입고 있지만요.”

[그러니 되도록 빠르게 황도로 들어오도록. 될 수 있으면 결혼식 마치면 바로. 어차피 결혼식을 마치면 바로 후작이니, 첫 분기 귀족 회의에 참석해야 하니까.]

“결혼식 마치고, 신혼집에서 딱 3일 쉬고 올라가죠. 물론 물건은 미리 보낼 생각입니다. 저희 배로는 한 번에 안 되니 배 좀 보내주시겠어요? 리퉁도 같이 보내게요.”

[좋아. 그 정도는 인정하지. 그리고 해상 왕국에서 전염병이 일어났어. 그러니 작센 백작령과 그 주변에 치료제를 팔아줘야 할 거 같군. 크라우 쪽은 내가 책임지지.]

“…그래요?”

전염병이 해상 왕국에서 발발했다는 소식은 정말 종잡을 수 없는 이야기였다. 놈들의 목적이 뭔지 더욱 오리무중에 빠져버렸기 때문이다.

대부분 저런 흑막은 세상을 지배하거나 복수를 위해 움직이는 경우가 많았다. 그리고 놈들이 움직이는 꼴을 보니 권력 투쟁보다는 복수를 위해서일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했다.

실제로 소설 속 린이 제국의 귀족들은 다 쓰레기 같다고 말하기도 해서 어느 정도는 그런 방향으로 확신하고 있었다.

하지만 뜬금없이 해상 왕국에 전염병을 풀다니. 복수의 대상이 제국이 아니었던 걸까?

다만 소설과는 달리 해상 왕국에 전염병을 푼 걸 보면 놈들도 실비아가 만든 물약의 존재를 알고 있고, 그 물약을 무력화시킬 방법을 찾지는 못한 모양이다. 그러니 남부 연합국이 아니라, 적국이라 물약을 대량으로 공급할 수 없는 해상 왕국에 전염병을 풀었을 것이다.

이건 다행이라면 다행인데, 놈들의 목적은 조금 모호해질 수밖에 없었다.

[정말 낮도깨비 같은 놈들이라 무슨 생각을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조심하게. 물건은 빠르게 보내주고.]

“네, 그렇게 하죠. 하지만 이렇게 되면 저희가 가죽을 보내 드릴 수 없는데요. 배를 남쪽으로 띄워야 할 테니까요.”

[그렇군. 그럼 가죽은 우리 쪽에서 보내는 배로 해결하지. 리퉁도 마찬가지고.]

그렇게 통신을 마무리하려는데 황태자가 마지막으로 한마디 덧붙였다.

[그러고 보니 북부 쪽은 비가 별로 내리지 않던가? 눈은 제법 많이 오는 거로 아는데. 아마 올여름에는 비가 제법 올 거야. 후작도 알아서 준비하게나.]

“아, 네. 알겠습니다.”

그러고 보니 재앙이라고 하긴 그렇지만 원작에서 전염병이 오기 전, 그러니까 올여름에 큰 홍수가 있었다. 홍수로 수해를 입은 후 바로 전염병이 들이닥쳐 피해가 더욱 늘어났던 것이다.

원래대로라면 지금도 권력 다툼이 한창이었을 때라 따로 대비하지 못해 제법 피해가 있었지만 황태자의 말을 들어보니 알아서 대비하고 있는 거 같았다.

소설 속 황태자가 조셉 공작과 귀족들의 반대로 치수 사업을 진행하지 못하게 되었을 때 엄청 짜증을 냈었다. 자기 창고에 쌓인 황금만 신경 쓰는 머저리들이라고 했던가?

어쨌든 지금은 그 누구도 황태자의 말을 거역할 수 없는 시기이니 황태자가 감찰관을 보내 각 영지를 둘러보면 그의 말을 듣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우리 영지는 비가 많이 와도 문제없겠죠?”

황태자와의 통신을 마무리 짓고 혹시나 하는 마음에 지온에게 물어 영지의 상황을 확인했다.

“그렇습니다. 예전에 홍수가 난 건 원래 비가 많이 오지 않는 곳에 갑작스럽게 폭우가 쏟아져 그렇게 된 거였죠. 하지만 이미 전례가 있어서 마을을 지을 때 이 부분을 가장 신경 썼습니다.”

역시 마을을 새로 지을 때 따로 준비한 게 이번에도 유효한 거 같았다.

다만 다른 영지의 상황은 알 수 없었다. 솔직히 전염병만 신경 쓰다 홍수는 잠시 잊고 있었으니 말이다.

“몇 년 동안은 상당히 가물었지만, 올해는 비가 많이 내릴 거 같다네요. 다른 영지에도 주의를 줘야겠어요. 원래 이쪽은 별로 비가 많이 오지 않는 곳이라 조금 취약할 수도 있잖아요?”

“네, 즉시 관리들을 보내서 직접 확인해 보겠습니다.”

“그래요. 이런 건 직접 확인하는 게 최고죠.”

다행히 로빈이 책임져야 하는 네 개 영지는 그의 말을 아주 잘 듣는 편이었다. 리퉁과 혼 래빗 가죽을 판매하며 여유 자금도 있었고.

그러니 조금 귀찮아도 북부 변경백의 말을 무시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래서 영주님, 황도로 올라가는 건가?”

“일이 좀 그렇네요. 가서 귀족 회의랑 대관식만 보고 바로 빠질 거예요. 굳이 거기에 오래 있을 이유도 없어서요.”

“결혼식을 마치고 가는 거니 린도 데려가. 어차피 남겨둬 봤자 기사들을 두드려 패는 것 외에는 딱히 하는 것도 없잖아?”

“그러게요. 단장인데 좀 그렇게 됐네요. 르보른 경에게 따로 감사 인사를 전해야 할 거 같아요.”

어쩌다 보니 린보다 르보른이 기사단을 이끄는 날이 많아져 그의 업무가 다소 무거워졌다. 사실 훈련은 몰라도 통솔 측면만 보면 르보른이 훨씬 낫기도 했고.

“뭐, 폴 경처럼 혼자서 책임지는 단장도 있지만 린처럼 날뛰는 돌격 대장 같은 단장도 있는 법이니까.”

“그건 그렇죠. 기사단이 따르기만 한다면야 방향은 상관없는 거 같아요.”

영지의 수뇌부 중 하나인 린이 자꾸 자리를 비우는 건 좋은 일이 아니었지만, 황도행 역시 중요한 일이라 린을 포함시키지 않을 수 없었다. 무슨 일이라도 일어나면 가장 믿을 만한 인물이 린과 백랑인데, 백랑은 남쪽 요새를 지켜야 하기 때문이다.

“그건 그렇고. 어쨌든 알몸 심사는 뺄 거예요. 백랑 님은 남의 보X 말고 집에 있는 거나 잘 챙기시죠? 월아 님이 사제가 된 이후에 조금 시원찮다는 말이 있던데요? 아무리 백랑 님이라도 사제한테는 안 되는 건가요?”

“뭐… 뭐? 대체 어떤 놈이 그런 소리를……. 아직 한창때인데 무슨 개소리야? 어제도 꽉꽉 눌러서 실신시켰다고.”

우리 작은 장인어른의 가정 사정 역시 아직 건재하시군. 하긴 저 양반은 적어도 20년은 끄떡없어 보였다.

그런데 백랑을 도발하기 위해 농담을 던지긴 했는데 이게 은근히 패륜적이었다. 따지고 보면 사위가 장인한테 장모를 대상으로 섹드립을 친 셈이었기 때문이다.

즉각적인 반응도 재미있고, 다들 아무렇지 않아 하니 별 상관없으려나?

저런 농담이 자연스럽게 나오는 것도 백랑과 지온이 자신의 장인이 된다는 게 별로 실감 나지 않아서였다.

두 장인이라. 우리 영지, 정말 괜찮은 건가?

전사들을 총괄하는 백랑과, 영지 재정을 전부 관리하는 지온.

두 장인이 영지에 기여하는 바는 실로 지대했다. 심지어 치안대장 루이와 궁수들을 관리하는 월연 역시 혈연이라면 혈연이었고.

정말 가족 경영의 끝을 보여주는 그레이츠 영지가 아닐 수 없었다.

“하긴 부정도 없고, 일만 잘하니까 별 상관없긴 하지.”

어쨌든 백랑에게 적당히 일침을 날리고 회의를 마친 로빈은 조금 쉬고 라이언에게 연락을 넣을 생각이었다. 지금까지 만들어놓은 약품을 대량으로 수송할 계획이었으니 말이다.

* * *

[전염병……. 그렇지. 덕분에 요즘 해적 놈들이 좀 잠잠해서 안심하고 있던 참이야. 앤의 결혼식에 안심하고 다녀올 수 있을 거 같더라고.]

“그렇죠. 하지만 작센령은 그놈들하고 접촉이 빈번하잖아요? 밀매도 벌어지고 있고요. 아무래도 좀 위험하달까요?”

[그렇군. 밀매라……. 그건 생각도 못 했어. 하지만 그건 막을 방법도 딱히 없어서.]

약품 수송을 위해 라이언에게 연락했더니 그쪽도 해상 왕국의 움직임을 예의 주시하고 있었다. 밀수를 통해 병이 옮을 가능성은 염두에 두고 있진 않았지만 말이다.

사실 로빈도 소설에서 읽지 않았으면 전혀 모르고 있었을 것이다.

서로가 적국이라 대놓고 거래가 일어나진 않지만, 남부 연합국 상인인 척하며 몰래 들어와 거래하는 걸 일일이 다 막을 순 없는 일이었다.

거의 비슷하게 생긴 남부 연합국 사람과 해상 왕국 사람을 육안으로 구별하는 건 사실상 불가능했고, 거래 허가증으로 상대를 분별하고 있었는데, 해상 왕국 상인이 교묘하게 위조한 거래 허가증을 내밀면 사실상 답이 없었다.

유일한 방법이라면 해상 거래를 완전히 금지하는 것뿐이었지만 그랬다가는 아르마늄을 수입할 수 없어질 뿐만 아니라 온갖 복잡한 문제와 마주치게 될 것이다.

게다가 작센 백작령과 크라우 백작령 모두 해상 왕국 상인이 몰래 들여와 파는 마나석이나 기타 사치품으로 상당한 이익을 얻고 있었다. 남부 연합국에서 사가는 식량이나, 각종 생필품 역시 마찬가지였고.

이런 현실적인 사정 역시 해상 거래를 전면 중단할 수 없는 중요한 이유였다.

“네, 아무래도 그렇죠. 그래서 그쪽에 물약을 대량으로 싣고 갈 생각이에요. 접촉을 최소한으로 줄일 방법을 생각해 보세요. 내일 중에 물량을 싣고 떠나면 대략 보름 정도 걸리지 않을까요?”

[접촉을 줄인다라……. 우선 항구 쪽을 동결해 놓고 기다리지. 한 병만 먹어도 일주일 동안 문제가 없다니 항구 쪽에서 일하는 사람들 모두에게 먹이면 되겠어.]

“이미 발병한 사람이 있을지도 몰라요. 물론 저쪽도 이제 막 퍼지기 시작한 모양이라 완전히 퍼지려면 시간이 좀 걸리겠지만 조심해서 나쁜 건 없죠.”

[잠복기가 어느 정도 있다니 그럴지도 모르겠군. 항구에서 일하는 일꾼들하고 그 가족들까지 신경 써야겠어.]

이제라도 항구를 묶어놓는다면 어느 정도 확산을 방지할 수 있겠지만 문제는 그 많은 물약을 구입할 자금이었다. 로빈이 염가로 넘긴다고 해도 어느 정도는 수익을 내야 하고, 보내는 물량이 워낙 많아 쉽게 해결할 수 없는 금액이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그냥 외상으로 넘기고 꾸준히 상환하는 방법도 있지만 앞으로 물약이 얼마나 더 들어갈 지 알 수 없는 상황이라 그것도 쉬운 일은 아니었다.

[그렇다고 이걸 안 살 수도 없고, 곤란하구만. 알다시피 이곳도 돈 쓸 데가 한두 군데가 아니라서 말이야.]

“그렇죠. 배 자체가 돈 먹는 하마잖아요? 수익의 대부분이 군비로 나가는 것도 그렇고요.”

(다음 화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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