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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소설 속 로빈-201화 (201/303)

201화

이런저런 일을 겪고 나니 영지민이 모두 여신을 믿는 것도 무리가 아닌 것이다. 심지어 저 교단은 교리조차 서로 사랑하고 봉사하라는 깃털처럼 가벼운 것뿐이었다.

솔직히 여신상 앞에서 기도할 때마다 활력이 솟아나고 교리조차 전혀 부담이 없는 이 종교를 믿지 않는 게 더 이상한 일이었다.

그러니까, 그 따듯한 느낌은 신앙과 성물의 상호 작용이고, 나한테서 그게 가장 크게 느껴지는 건 여신의 보은이라는 그 타이틀 때문이다?

내가 그걸 못 느끼는 건 내가 여신님을 믿지 못해서 그런 거고?

막상 여신님을 믿지 않는 자신에게서 가장 두드러지게 느껴진다는 건 좀 어이없었지만, 타이틀을 생각하면 어느 정도는 이해할 수 있는 일이었다.

“만약 그렇다면 일반 병사들도 그 차이를 느낄 수 있겠네요? 병사들이 여신님을 믿는다는 전제하에서는요.”

아무래도 이건 확인할 필요성이 있어 보였다. 하지만 치안대를 풀어서 영지민으로 위장한 놈을 무려 네 번이나 찾아낸 걸 보면 일반 병사들도 그걸 느끼고 있을 가능성이 컸다.

“좋아요. 그건 다시 한 번 알아보고요. 치안대를 늘리는 건 어떻게 생각하세요?”

“외지인이 문제를 일으킨다고 영지를 고립시킬 순 없습니다. 그러니 차라리 치안대를 늘리는 것도 나쁘지 않겠군요.”

“사실 영지에서 범죄가 거의 일어나지 않아 그렇지 치안대의 수가 너무 적긴 했습니다. 다른 영지도 대부분 천 명은 넘지 않습니까?”

“지금까지는 영지의 인구가 너무 적어서 치안대를 늘릴 여유가 없었지만…….”

“어때요, 지온? 저희 영지에서 치안대를 늘린다고 재정에 문제가 생기진 않겠죠?”

“네, 영주님이 이상한 사업만 하지 않으신다면 상관없을 겁니다. 영주님 말씀대로 마수 가죽이 꾸준히 팔려 나간다면 더 그럴 거고요. 그런데 얼마나 늘리실 생각입니까?”

이 사람이, 내가 언제 이상한 사업을 했다고 저러시나?

혼 래빗이나 그레이트 A도 그렇고 다 아래에서 알아서 시작한 사업이었기 때문에 조금 억울했다. 자신이 주도한 사업은 영지의 흑마법사들을 쥐어짜 새로운 의약품을 만든 것뿐이었기 때문이다.

예전에 만든 의복 공장이나 도로 확장은 자신이 아니라 전대 영주였던 할아버지 카인이 주도한 사업이었다.

물론 마수 가죽으로 만든 마법 갑옷이나, 마법 무기도 사업이라면 사업이었지만 그건 큰돈이 들어간 사업도 아니었다.

“음, 지금 치안대가 500명 정도였던가요? 천 명 정도는 더 늘리고 싶은데요.”

“천 명을 더 늘린다면…….”

“세 배가 되는 거군요. 영지의 청년들이 부쩍 늘고 있으니 모집하는 거 자체는 무리가 아니지만.”

마수를 상대로 싸울 인원이 아니라지만 무장이나 월봉은 계속 나갈 수밖에 없기 때문에 재정을 관리하는 지온의 입장에서는 신중하게 생각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하지만 로빈은 이 기회에 무조건 인원을 늘릴 생각이었다.

“지금 황도에서 마수 가죽에 대한 이야기가 오가고 있죠. 그리고 아르마늄의 소비를 줄이기 위해 마수 가죽의 수요가 늘어나면 북쪽 방면으로 방문객들이 늘어날 수밖에 없어요. 그중에는 용병처럼 성깔 있는 남자들도 많을 거예요. 그들이 여기까지 올라올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대비는 해야 하지 않을까요?”

겸사겸사 청년이 된 남자들의 일자리까지 늘어날 테니 영지 운영 차원에서도 크게 나쁜 일이 아니었다.

문제는 재정인데, 지금 상황에서 그 정도 숫자를 늘린다고 휘청거릴 정도로 사정이 안 좋은 것도 아니었고.

“루이 경은 내일부터 바로 치안대를 모집하세요. 훈련시키는 것까지 책임지실 수 있죠?”

“네, 영주님. 철저하게 훈련시키겠습니다.”

“그리고 남서쪽 관문에서 검문검색을 강화하도록 하세요. 이번처럼 그딴 걸 들고 영지에 들어오는 놈은 없어야죠. 검문을 거절하면 체포하거나 추방해도 무방해요. 이제 제 작위도 높아졌고, 제법 끗발 날리게 됐으니 대놓고 따질 수 있는 놈도 별로 없어요.”

물론 흥선대원군처럼 영지를 꽁꽁 싸맬 순 없지만, 이 정도 방비는 필요했다.

누가 뭐라고 하면 상황 전하를 들먹여도 괜찮았고. 누군가가 장인어른인 상황 전하를 인질(?) 삼아 문제를 일으키면 황태자도 곤란할 테니 할 수 있는 말도 많았다.

“영주 저택에 대한 경비도 강화해야 합니다. 솔직히 지금까지는 너무 무방비했습니다.”

“그건 그렇죠. 경비를 늘려야겠어요.”

우선 여성인 두 어머니와 실비아, 그리고 다이앤을 위해 모야족 여성 전사들을 차출했다.

영지에 따로 여기사가 없었기에 불가피한 일이었는데 일이 그렇게 되자 아버지와 할아버지의 경호도 모야족 쪽에서 전담하기로 했다.

여전사들의 짝은 거의 전사였기 때문에 그들을 떨어트려놓는 것보다 다 같이 영주 저택에서 머물면서 경호하는 게 더 낫다고 판단한 것이다.

사실 딱딱한 기사들보다는 능글능글한 모야족 전사들이 어른들이랑 어울리기는 더 좋았다.

대신 저택의 경비 자체는 기사단에서 맡기로 했다.

“영주님의 호위는 린 단장과 듀발이 전담하는 게 좋을 거 같습니다.”

그리고 내 호위는 린과 듀발로 결정되었다. 그 투덕거리는 듀오가 같이 있는 건 좀 그렇지만 영지 최고의 방패와 검이었기 때문에 이론의 여지가 없었다.

그나마 문제가 있다면 린이 기사단을 이끌고 있다는 거였다.

“…기사단이 좋아하겠군요.”

“원래부터 지휘는 르보른 경이 했으니…….”

하지만 사람들의 반응을 보니 그건 걱정하지 않아도 될 거 같았다.

넌 대체 기사단을 어떻게 이끄는 거냐, 린? 이따가 면담 좀 하자.

“상황 전하 쪽도 경비를 철저히 해야겠는데요. 영지에 방문객이 늘어나면 그 성물 자체가 명소처럼 취급받지 않을까요?”

“그렇군요. 신전의 경비도 강화해야겠습니다. 아무래도 아이들이 워낙 많은 곳이라.”

“네, 세심하게 인선해 주세요.”

그렇게 호위 확충과 그에 대한 재정 문제까지 이야기를 나누고 나니 하루가 거의 저물어갔다.

회의를 마무리해야 할 시간이 된 것이다.

“집에서도 걱정하지 않으시겠습니까? 중요한 안건은 대충 마무리되었으니 어서 가보시죠.”

“그렇네요. 하, 왠지 좀 긴장되는데요. 많이 놀라셨겠죠?”

“아무래도 그렇지 않겠습니까?”

연기한 축제 문제는 내일 있을 결혼식을 마치고 다시 모여 이야기를 나누기로 했다. 우선 다른 마을을 뒤져 놈이 영지에 남아있는지부터 확인하는 게 우선이었기 때문이다.

아마 지금도 기사단과 치안대, 전사단까지 모두 각 마을을 뒤지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미 늦었지만, 놈을 발견하면 무조건 사살하라고 명령을 내렸다.

오늘 큰 난리가 있었고 집안 어른들도 많이 놀랐을 거다. 물론 괜찮다고 전언은 보냈지만 이러저러한 급한 일들을 처리하느라 집에 들르진 못했기 때문이다.

솔직히 그놈의 마나 폭탄만 아니었으면 집에 가서 어른들부터 달래줬을 것이다.

* * *

“어머~ 로빈, 괜찮니. 다친 데는 없지?”

“네, 엄마. 운이 좋았어요. 고마워요.”

사실 내가 무사할 수 있었던 건 어머니의 말대로 미스릴 흉갑을 걸쳐서였다. 그게 아니었으면 크게 다치거나 재수가 없었으면 죽었을 수도 있었다.

결국 어머니의 사자 사랑(?)이 내 생명을 살린 것이다.

“이게 무슨 일인지, 원. 자작일 때는 상상하지도 못한 일이 벌어지고 말았구나. 역시 자리가 높아지면 그만큼 잃는 것도 있는 모양이야.”

“그러게요. 별로 원한 건 아니었지만, 뭐…….”

“그래, 힘들었을 테니 어서 쉬어라. 새아기들도 걱정이 많았으니 잘 달래주고.”

“네, 그럴게요. 그리고 앞으로는 호위가 강화될 거예요. 혹시나 해서 그러는 거니 이해해 주세요.”

“그래, 그렇게 해라. 그래야 네가 안심될 테니, 그래야지.”

오늘 일이 있어서 그런지 가족들 모두 순순히 호위가 늘어나는 걸 받아들였다. 만약의 사태를 생각하면 주변에 호위 병력이 있는 것과 없는 건 천지 차이였으니 말이다.

그렇게 한참을 부모님과 이야기하고 로빈은 신혼집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하지만 부모님들에게까지 호위를 강제해야 하는 지금 이 상황이 썩 마음에 들지 않아 머리가 무거워졌다. 원래 자유롭게 지내는 걸 즐기는 분들이었기 때문이다.

놈들의 시선을 끌게 된 건 아무래도 실비아의 신약 때문일 가능성이 컸다.

어쨌든 약은 개발되었고, 가족들은 실비아의 특제 비약으로 영구적인 효과를 받고 있다고 들었다. 만약 이 약을 공개하지 않고 가족들이랑 영지민만 보호했으면 놈들의 눈에 띄지 않아 안전했을까?

그냥 그렇게 해야 했나?

솔직히 정말 어려운 문제였다.

약을 공개하지 않았다면 상황 전하와 황비님을 살리지 못했을 것이다. 당연히 앤은 부모님을 모두 잃게 되었을 거고.

황실에서 그 약을 쓰게 되면 약의 존재가 드러나는 건 시간문제였으니 말이다.

그리고 수많은 제국민이 소설에서처럼 죽어갔을 것이다.

물론 약을 개발한 후 그걸 공개했다고 모든 일이 해결된 건 아니었다. 비록 제국민은 살렸지만, 대신 해상 왕국에서 난리가 났고, 나는 놈들의 타깃이 되기까지 했으니까.

어차피 어디에서, 누군가가 죽을 거라면 그냥 내 주변 사람들에게만 약을 나눠 줘 안전을 도모하는 게 옳았을까?

전염병이 발발한 후 약을 팔았으면…….

하지만 그건 의미가 없었다.

어차피 나중에라도 약이 공개되고 병세를 잡으면 당연히 날 타깃으로 삼았을 거다.

“에이, 애당초 전제가 틀렸네. 내 판단이 문제가 아니라 처음부터 그 새끼들이 문제잖아? 그 새끼들을 족쳐야 하는 거군.”

어쨌든 이제 나까지 놈들의 타깃이 되었다면 당하기 전에 먼저 놈들을 찾아 제거해야 했다. 이곳에서 살아가기 위해서는 어쨌든 그놈들과 충돌할 수밖에 없었으니까.

물론 놈들의 정체에 대해서 아는 게 전혀 없지만 그건 시간이 지날수록 조금씩 알게 될 것이다. 황태자도 놈들의 행적을 유심히 살피고 있었기 때문이다.

오늘 같은 실수를 하지 말고 찾자마자 바로 목부터 날려버려야 할 놈들이었다. 마치 황태자가 적을 그렇게 처치했듯이 말이다.

세상의 파멸과 제국의 멸망을 바라는 그림자를 처단하라.

[진행 상황]

???

???

???

???

익살스러운 그림자 - 조우

보상: ???

페널티: ???

기한: 세상의 멸망. 모든 그림자의 제거

로빈이 결심하자 퀘스트가 나타났다.

딱 봐도 최종 퀘스트로 보이는 아주 특별한 퀘스트.

물론 저 물음표만 봐도 경기가 일어서 윗고리를 전부 부숴 버리고 싶은 지경이었지만 이제는 아무래도 좋았다. 생각보다 퀘스트가 너무 많은 걸 알려주고 있었기 때문이다.

“웬일이지? 이렇게 인심을 쓴다고?”

상대가 세상의 파멸과 제국의 멸망이라는 지극히 중2스러운 걸 노리고 있다는 사실과 적의 간부가 다섯이라는 정보는 정말 큰 정보였다.

아마 그만큼 저 퀘스트가 중요한 모양이었다.

어쩌면 로빈 자신이 이곳에서 다시 태어난 건 저것 때문일지도 모르겠다고 생각될 정도였으니까

그리고 그 말은.

“황태자로서는 그놈들을 못 막는 건가? 사실 내가 황태자보다 나은 것도 없는데, 대체 무슨 차이지? 설마, 봉구 이 새끼. 해피엔딩이 아니라 멸망 엔딩이냐? 네가 고자가 아니라면 그런 짓은 안 했을 거야. 그렇지?”

작가 입장에서는 뭔가 여운이 남는 거 같아 흐뭇하지만 독자가 보기에는 뭔가 개똥 같은 찝찝함만 남는 멸망 엔딩.

하지만 또라이에 가까운 봉구라면 충분히 그런 짓을 할 수 있었다. 애초에 독자의 입장을 생각했으면 그딴 식으로 소설을 진행하지도 않았을 테니 말이다.

“아씨, 모르겠다. 우선 황태자 옆에 빌붙어 있다가 상황 봐서 놈들을 조져야겠다.”

어차피 놈들은 이제 내 주적으로 확정되었고, 황태자 옆에 알짱거리고 있다 보면 놈들과 조우할 수 있을 것이다. 황태자와 달리 자신은 상태창으로 놈들을 알아볼 수 있기 때문에 놈들을 상대하기에는 더 수월했다.

물론, 이건 전적으로 로빈의 예상일 뿐이었다. 모든 건 시간이 지나 봐야 확인할 수 있는 일이었으니까.

* * *

그렇게 생각을 정리하고 집에 들어섰더니 세 여자 모두 걱정스러운 얼굴로 로빈을 기다리고 있었다. 아무래도 암살 위협은 그녀들에게도 상당히 충격이었나 보다.

“로빈, 다행이에요.”

“그러게. 내가 그래도 엄마 말은 참 잘 들었거든. 그래서 복을 받은 모양이야.”

“그래요?”

“그럼, 엄마가 항상 예쁘고 착하고 멋진 신붓감을 데려오라고 했거든. 내가 딱 그랬잖아.”

“에이, 그게 뭐예요. 그래도 농담하는 걸 보니 괜찮아 보이네요. 마음이 놓여요.”

그렇게 앤의 마음부터 풀어주고 나니 우리 린나니가 날뛰기 시작했다.

“그 거지 같은 새끼는 놓친 거 같아, 주인. 우리 주인은 약하니까 꼭 나랑 같이 다니자. 내가 보호할게.”

이 녀석아, 내가 약한 건 맞지만 그래도 그렇게 뼈 때리기 있냐?

(다음 화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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