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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소설 속 로빈-206화 (206/303)

206화

“끙.”

할 년은 지가 알아서 다 했다는 말에는 할 말이 없었다. 원래 어떤 상황이라도 자기 연애는 자기가 알아서 하는 법이었으니 말이다. 뜯어말려도 몰래 하는 판인데 이곳은 아무도 말리지 않는 그런 세상이었으니까.

성 군기 따위를 신경 쓰는 사람도 없는데 아직 못 했다는 건 본인 탓도 없진 않을 것이다. 백랑의 말대로 영지에 훈련하러 오면서 영주 성 남자들과 맺어진 여궁수들도 제법 있었다.

“어쨌든 그렇게 해주세요. 정예만 남기자고요. 그리고 남는 궁수들에게는 따로 교육 좀 하세요. 적당히 봐가며 알아서 결혼하라고요. 결혼한다고 궁수대에서 빠지는 것도 아니잖아요?”

귀족 영애들과 달리 민간에서는 여자들이 일하는 것에 관대한 편이었다. 재능이 큰 역할을 하는 세상인데다 재능이란 게 남녀 차별하면서 찾아오는 건 아니었으니 말이다.

그 와중에 여기사들이 드문 건 또 의아한 일이지만 어쨌든 기본은 그랬다.

* * *

치안대와 축제에 대한 논의를 마친 로빈은 마이 스위트 홈으로 향했다.

그나마 이번 난리를 겪으며 가장 기분 좋은 건 황도에 미리 가지 않아도 되는 것이었다. 아마 아니었으면 내일쯤에는 바로 황도로 넘어가야 했을 거다.

“우선 그놈만 처리하면 좀 마음이 편할 텐데 말이야.”

놈이 잡히면 마음 편히 지내겠지만 그건 좀 더 지켜봐야 했다.

집에 도착해 보니 본가는 완전 술판이었다. 상황 내외분을 포함한 모든 가족이 즐겁게 술잔을 기울이고 있었으니 말이다.

“내 딸이 어떤 아이인데, 이렇게 도둑 결혼식을……. 영지민의 축복을 받으며 행복하게 결혼해도 시원찮을 판에!”

“이게 다 그 망종 같은 녀석 때문이죠. 우리 손자가 죽을 뻔했다니까요!”

가만히 들여다보니 겉으로 표현은 안 했지만 두 어른 모두 상당히 서운해하시는 거 같았다. 꾹 참고 있던 상황 전하까지 술이 많이 들어갔는지 진심이 나오고 있었으니까.

저기에 들어가 봤자 무안하기만 할 거 같아 로빈은 슬쩍 빠져나와 신혼집으로 발길을 돌렸다. 딱 보아하니 처가 두 어른 모두 이곳에서 주무시고 갈 기세였다.

“로빈!”

왜 여자들이 본가에 없는가 했더니 집에서 자신이 먹을 음식을 준비하고 있었다. 저 작은 부엌이 장식품이 아니라 진짜 음식을 만들 수 있는 공간인가 보다.

실비아와 린은 이쪽으로는 최악의 똥손이라 전혀 기대하지 않았는데 예상외로 다이앤이 음식을 좀 할 줄 아는 거 같았다.

“로빈이 좋아한대서 따로 준비했어요. 이런 걸 좋아하신다죠?”

“오!”

다이앤이 준비한 건 매콤하게 볶은 혼 래빗 고기였다. 자신이 매콤한 걸 좋아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이렇게 준비한 모양이었다.

이게 웬 떡인가 싶어 콧노래를 부르며 식탁에 앉아 느긋하게 식사를 즐겼다.

매콤한 양념에 달달 볶아 불그스름한 고기는 때깔부터 남달랐는데 맛은 더욱 죽여줬다. 다만 식감이 지금까지 자신이 알던 혼 래빗과는 조금 달라 그 점은 조금 의아했다.

“이거, 혼 래빗 맞아? 뭔가 좀 다른데?”

“헤헤. 이거 사육장에서 오늘 바로 잡은 거래요. 그거 있잖아요, 그거. 남자한테 엄청 좋다는데요?”

“아… 그거?”

그제야 이게 뭔지 눈치챌 수 있었다.

모든 남자가 환장을 하고 찾는 바로 그것. 없어서 못 먹는다는 바로 그것.

영지뿐 아니라 제국 내에서도 인기 만점인 바로 그것이었다.

솔직히 말로만 들어보고 직접 먹는 건 처음이었는데 뭔가 좀 묘한 식감이 신기했지만, 맛은 나쁘지 않았다.

원체 인기 있는 물품이고, 대부분 황도로 넘어가는 건데 이게 이렇게 여기 있는 걸 보면 자신의 결혼 소식을 접한 관계자들이 몰래 빼놓은 거 같았다. 막 결혼한 새신랑이고 신부가 셋이나 되니 기력을 보하기 위해 그런 모양인데.

물론 그 뜻은 고맙지만 이래도 될까 싶었다.

“흠, 좋긴 한데. 내가 이런 걸 먹어도 되겠어? 그럼 너희들, 다 죽을 텐데?”

“…헉.”

“그… 그래도 좋은 게 좋은 거 아니겠어요?”

살짝 움찔했지만 그래도 끝까지 음식을 치우지는 않는 그녀들.

오호라, 요것들 보소.

앞으로 이런 걸 안 내놓게 하려면 오늘도 제법 혼(?)을 내줘야 할 거 같았다.

새신랑의 자존심 같은 게 걸려있으니 말이다.

“영주님! 급보입니다!!”

자제하기로 결심한 게 바로 오늘.

하지만 식탁에 혼 래빗 그것이 올라온 이상 그냥 넘어가고 싶지 않아 적당히 아내들과 어울려주고 있는데 전령이 들이닥쳤다. 한밤중에 이게 무슨 일인가 싶어 기가 막혔지만, 저 정도로 호들갑을 떠는 걸 보니 보통 일은 아닌 거 같았다.

“무슨 일입니까?”

로빈의 신혼집 안으로 들이닥친 전령은 집 안에서 벌어지는 난행에 살짝 당황했지만, 꿋꿋이 자신의 의무를 다하겠다는 듯 다급한 소식을 전했다. 실로 투철한 직업 정신이 아닐 수 없었다.

물론 거의 알몸으로 뒹굴던 세 여자 모두 전혀 아랑곳하지 않고 로빈의 물건을 계속 핥고 있었지만 말이다.

“남쪽 요새 방면에서 대수림으로 뛰어든 신원 미상의 남자를 발견. 전사들이 그 뒤를 따라 대수림으로 추격해 들어갔습니다.”

예상치 못한 소식에 로빈은 헛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지금 이 상황에서 정체불명의 남자라 봤자 그놈밖에 없었고, 백랑 역시 자신과 같은 생각으로 놈의 정체를 확신한 게 틀림없었다. 그게 아니라면 이 밤중에 굳이 대수림까지 따라 들어가진 않았을 거다.

“네, 고마워요.”

“네. 좋은 시간 보내는 와중에 죄송합니다!”

전령이 집을 떠나자 침대 위로 다시 몸을 날린 로빈은 대자로 누운 채 한숨을 내쉬었다.

대수림이라니.

솔직히 그건 생각도 못 했다.

하지만 항구와 관문이 아니라면 그쪽으로 나가는 수밖에 없었다. 물론 목숨을 걸어야 하겠지만 말이다.

놈에게 대수림을 건너갈 수 있는 특별한 방법이라도 있는 걸까? 그게 아니라면 이 밤중에 대수림으로 도망치지는 않았을 거 같았다.

다만 놈의 판단과 행동이 생각 이상으로 빨랐다. 그 방향 역시 허를 찌르는 면이 있었고. 역시 머리가 돌아가지 않는 녀석들은 아닌 모양이다.

“주인, 놓친 거 같지? 야밤에 대수림이라니.”

“아무래도? 이 정도로 과감하게 움직이는 상대가 대책도 없이 자살하러 들어갔을 거 같진 않네.”

물론 대수림은 모야족 전사들의 앞마당이나 마찬가지였기에 완전히 포기한 건 아니지만 왠지 놈이 무사히 도망칠 거 같은 예감이 들었다.

하지만 상황이 완전히 종결될 때까지는 한번 기다려봐야 할 거 같았다.

“음, 그놈도 은근히 불쌍한 거 아냐? 이 밤중에 대수림이라니. 도망치면서도 끝까지 개고생하는 거잖아?”

“그러냐?”

내 표정이 안 좋다고 느껴서일까? 린이 평소답지 않게 적극적으로 다가오더니 손끝으로 유두를 톡톡 건드리며 말을 이었다.

아무래도 내 기분을 풀어주기 위해 이러는 모양이었다. 말로는 따먹는다, 어쩐다 하면서도 사실 은근히 부끄러움을 많이 타는 여자였으니 말이다.

“그놈 입장에서 생각해 보니까, 이게 엄청 웃기더라. 주인, 생각해 봐. 딴에는 머리 써서 영지에 숨어들었는데 결혼식 날 자기 말고 다른 남자들은 다 똑같은 옷을 입고 있는 거야. 그래서 바로 딱 걸렸잖아?”

“음…….”

“그리고 볼트를 명중시켜 됐다 싶었는데 신랑이라는 녀석이 결혼식 날 갑옷을 입고 있네?”

“이게 뭔가 싶긴 했겠네요.”

“심지어 변장해도 다 걸리고, 도망치는 족족 사방에서 달려드는데 얼마나 짜증 나겠어? 그 와중에 폭탄까지 찾아내서 완전히 실패했으니…….”

“그게 그렇게 되냐?”

그렇게 생각하니 그놈도 황당하긴 했을 거다. 처음부터 끝까지 자신들의 예상대로 흘러가는 게 하나도 없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황태자의 말을 들어보니 폭탄이 터졌어도 별 효과가 없었을 거 같았다. 그러니까 내가 사자 갑옷을 입는 순간 놈이 목적을 이룰 가능성은 전혀 없었다.

“…너, 누구야? 멍청이 아니지?”

“에이씨, 이 꼬맹이가…….”

뭔가 미심쩍은 눈으로 린을 요리조리 살펴보는 실비아.

하긴 평소의 린답지 않게 제법 논리적인 분석이었다. 이 녀석은 원래 다른 사람의 입장에서 생각할 줄 아는 녀석이 아니었으니까.

“다렌이 그러더라고. 자신 같으면 다시는 이곳에 얼씬도 하고 싶지 않을 거래.”

음, 그 엉덩이 가벼운 녀석이 그런 소리를? 물론 진짜 그렇게 되면 나쁜 것도 없지만.

실비아는 그럼 그렇지, 하는 눈으로 린을 바라보며 고개를 저었다.

뭔가 무시당했다는 생각에 울컥한 린은 그 날렵한 몸놀림으로 실비아를 압박하는데.

두 여자의 나체 몸싸움은 물론 흥미진진했지만, 그전에 실비아에게도 궁금한 게 좀 있었다. 우리 영지의 공장도 그런 안심(?) 설계가 되어있는지 알고 싶었으니 말이다.

“실비, 황태자 전하가 그러는데 마나 폭탄이 네 개나 터졌는데도 황도 공장은 멀쩡하대. 우리 공장도 그 정도로 튼튼한 거야?”

“떨어져, 이 멍청아! 예? 아, 그거요. 당연하죠. 마나적인 가공을 끊임없이 지속하는 건물이잖아요. 그런 건물은 무조건 내구도 강화가 필수라고 배웠어요.”

…당연하냐?

솔직히 건설비 아끼려고 쓰레기 같은 철근으로 집을 짓는 세계에서 살다 와서 그게 당연한 건지는 몰랐다. 전생의 우리 집도 실비 같은 녀석이 설계하고 만들었어야 했는데.

“누구한테 배웠는데?”

“당연히 도리아 스승님이죠. 그걸 못 지켜서 낭패 보는 연금술사나 마법 공학자도 제법 많대요. 의도적으로 그랬다가 잘못 걸리면 사형이잖아요? 돈보다는 목숨인데 돈 좀 만지겠다고 그런 짓을 하다니, 천벌 받아야 할 놈들이라니까요.”

도리아 여사님이? 잘 배우긴 했네.

하지만 그 정도까지 강화 마법을 넣지는 않는다던데. 무슨 지진이라도 방비할 생각이었냐?

실비아의 전 연금술 스승이자, 현재는 외할아버지 카인의 애인이며, 식만 올리지 않았지 실제로는 자신의 외할머니와 마찬가지인 도리아 여사.

흑마법사들이 마녀라고 부르는 건 좀 의심스럽긴 하지만 그래도 성품만은 곧은 분이었다.

실비아가 알버스 원로를 모시고 의학을 공부하면서 자기만의 시간을 보내는 걸로 아는데 요즘은 뭘 하시나 모르겠다. 물론 오늘 결혼식에도 참석하셨지만 그런 걸 물어볼 여유는 없었으니 말이다.

“스승님은 요즘 신전에서 아이들을 가르치세요. 제가 졸업해서 소일거리 삼아 그러시는 모양이에요. 저 같은 녀석을 하나 더 찾고 싶으시다는데, 가능하려나 모르겠어요.”

당연히 불가능이지 뭘 물어?

졸업이라. 그러고 보니 실비아 녀석, 연금술뿐만 아니라 의학 쪽으로도 졸업했다. 엄청난 속도라고 모두 놀라워했지.

그럼 알버스 원로님이랑 다른 흑마법사들은 뭘 하는 거지?

“의학 쪽도 마찬가지잖아? 그럼 그 어른들은 뭘 하시는데?”

“도리아 스승님이랑 마찬가지? 시간 날 때마다 신전에 나가시는 모양이던데요?”

결국 제2의 실비아를 찾으며 겸사겸사 영지의 아이들을 가르치는 모양이다.

저 녀석이 사람 여럿 버리는군.

하지만 아무리 찾아도 저 녀석 같은 아이는 없을 게 분명했다.

그런데 영지의 아이들을 가르치기에는 너무 고급 인력인 거 같았다. 알버스 원로에 도리아 여사, 거기다가 폴 경도 거기 있고, 이젠 상황 전하까지 합세했기 때문이다.

저 정도면 웬만한 아카데미 교수진보다 나은 거 아닌 가? 저러다가 정말 대단한 인재라도 하나 튀어나오는 게 아닌지 모르겠다.

“잠깐, 그럼 넌 지금 혼자 연구한다는 거야? 뭘 연구하고 있는데?”

“아, 저요? 전 마수 퇴치 향을 연구하고 있는데요. 북부 영지 간 물류 유통이 많아졌는데 물자 수송에 시간이 너무 많이 걸리잖아요? 그걸 어떻게 단축할 수 없나 연구 중이에요.”

“아, 그래?”

“이번에는 히센 님이랑 합작이랍니다. 마수 쪽은 또 그분이 최고라서요.”

그러니까, 이번에는 히센의 지식까지 쏙 뽑아 드시겠다?

하여간 저 녀석도 참 어지간하다.

하지만 만약 실비아의 뜻대로 그런 게 개발된다면 영지에 큰 보탬이 됨은 틀림없었다. 동쪽 영지에서 마수 가죽만 빠르게 옮겨와도 많은 시간을 절약할 수 있었으니 말이다.

“로빈~ 어차피 기다리기만 할 거 같은데 다시 할까요?”

“맞아, 주인. 주인이 뭘 할 수 있는 것도 아니잖아? 전사들이 이미 따라갔으니 뭔가 결과를 가지고 오겠지.”

“잡으면 대박이고, 놓쳐도 마음 편히 축제를 즐길 수 있으니 손해는 아니네요, 영주님.”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시간이 제법 흘렀다. 그녀들의 말처럼 걱정은 걱정이고, 자신이 이러고 있어봤자 별로 달라질 게 없기도 했고.

그럴 바에는 그냥 마음을 비우고 있는 게 더 현명하리라.

“그러네. 에휴, 그래. 우린… 우리의 밤을 불태우자. 어차피 내가 뭘, 어쩐다고 될 일도 아니니까.”

(다음 화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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