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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소설 속 로빈-209화 (209/303)

209화

기사단장에다가 영주의 부인. 솔직히 감투만 보면 루이가 뭐라고 제지하기 어려울 정도였다…….

“처음에는 영주님 올 때까지 구경만 한다더니, 갑자기 저러네. 애들이 훈련하는 걸 보니 많이 답답한가 봐.”

그거야 기사단을 훈련하다 생초짜인 예비 치안대가 훈련하는 걸 보면 당연히 답답하겠지만 저 녀석은 왠지 그것만이 아닌 거 같았다.

요즘 저 녀석이 짜증 날 만한 일이라고는…….

“왜 꼬맹이를 못 당하는 거야?! 왜!!”

린에게 다가가던 로빈은 은연중에 튀어나온 말 한마디로 그녀가 저렇게 짜증이 난 이유를 눈치챌 수 있었다.

그녀 자신이 침대 위에서 최약체라는 사실이 못내 짜증 나서 저러는 모양이다. 저 녀석은 힘만 세지 막상 힘을 쓰지 못하는 곳에서는 모지리에 불과했고 어제도 실비아의 현란한 혀 놀림과 거친 손길에 속절없이 무너져 굴욕을 당했으니 말이다.

“요것아, 그만해. 그리고 실비아는 내가 봐도 좀 이상한 녀석이거든. 적당히 하고 나와.”

“끙, 주인.”

어쨌든 열 받은 린을 끌어내야 백랑과 루이가 제대로 훈련할 수 있을 거 같아 녀석에게 알밤을 한 대 먹여주고 같이 관저로 돌아왔다. 훈련 성과에 따라 다르겠지만 웬만하면 빨리 치안대가 제 위치에 투입될 수 있기를 기대하면서 말이다.

부디 죽지만 말아다오, 제군들.

* * *

“씽, 언젠가는 그 망할 꼬맹이를 가만두지 않을 거야.”

관저로 돌아온 린은 아직도 투덜거리고 있었다.

하지만 이쪽으로는 영원히 실비아를 이기지 못할 거 같았다. 그 녀석은 보통 요망한 녀석이 아니었으니까.

“솔직히 다른 건 몰라도 그건 힘들 거 같아. 일대일로 실비를 이긴다니. 황도에도 저 정도로 능수능란한 테크니션은 없을 거 같거든? 사실 나도 실비가 그냥 접어주는 거지, 서열표 떼고 싸우면 자신 없어.”

…그런 말은 또 어디서 들은 거야? 서열표가 무슨 계급장 같은 건가?

하지만 린과 다이앤의 대화를 들으니 좀 웃기긴 했다. 다이앤에게는 그냥 져주는 실비가 이상하게 린에게는 꼭 이기려고 달려들었으니 말이다.

그러고 보니 어렸을 때는 린이 달리기로 실비를 많이 놀렸었다.

혹시 그거에 대한 복수인가? 무슨 군자의 복수도 아니고 10년이나 지난 일인데 저렇게까지…….

그런 린의 불퉁거림을 웃으며 바라보다 집무실에 앉았는데 저택에서 일하는 하녀 하나가 수정구를 들고 뛰어왔다. 아마 빈집을 정리하다 수정구가 번쩍이는 걸 발견하고 가져온 모양이었다.

“라이언 형님이 웬일이시지?”

[오, 매부. 잘 지내셨나? 그런데 왜 이렇게 통신을 안 받는 거야?]

“아, 죄송해요. 사적인 거라 영주 통신실에 맡기지 않고 집에 뒀었거든요. 집무실에 나오면서 깜빡했네요.”

[그래? 웬만하면 다 모아서 관리들에게 맡겨. 들고 다니기도 불편하고 자칫하면 중요한 통신을 놓칠 수도 있다고.]

“그러게요. 앞으로는 그래야겠어요. 그런데 무슨 일이세요?”

[아, 사실 그 약 때문에 말이야. 그 건으로 상담할 게 있는데 시간 좀 되나?]

“네, 마침 여유가 좀 있네요.”

로빈은 린에게 말해 실비아를 불러달라고 하고는 다시 통신에 집중했다. 아무래도 약에 대한 문제는 자신보다 실비아가 전문이었기 때문이다.

라이언의 목적은 간단했다.

효과는 탁월하지만, 물약이라 보관 및 운반이 어려우니 혹시 알약으로 제조할 수 없는지 물어보기 위해 연락했다는 것.

그리고 린을 따라 집무실에 들어선 실비아에게 물어보니 그리 어렵지 않은 일이라는 대답을 얻었다.

“알약으로 만들면 효과가 하루밖에 지속하지 않는다네요. 대신 그만큼 생산량을 늘릴 수 있다니 이게 더 나을 것도 같고요.”

[그래? 사실 한 번에 일주일은 너무 길다고 생각했거든. 하루면 오히려 더 나은 거 같은데.]

근데 실비 이 녀석은 대체 왜 취급하기 어려운 물약으로 만들었을까?

전염병 치료제라면 몰라도 섹스 보조제로는 7일이면 너무 길지 않나? 이런 약은 가능하면 알약으로 만들어 운반이나 보관을 편하게 하는 방법으로 선택하는 게 정상인데 참 종잡을 수 없는 녀석이다.

“실비, 이걸 굳이 물약으로 만든 건 무슨 이유야? 따로 이유가 있는 거야?”

“네? 그거야 폭풍 섹스를 시작하면 일주일은 기본이잖아요! 어떻게 맨날 약을 먹어요. 귀찮게시리.”

[…내 상식이 잘못된 건가? 인간이라면 그렇게 계속 오입질을 할 순 없을 텐데.]

그녀의 목소리가 통신구를 타고 넘어갔는지 내가 할 말을 대신해 주는 라이언.

그나마 우리 형님이 정상적인 인간이라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어서 반가웠다. 이상한 사람들이 워낙 많아야지.

잠깐, 그러고 보니 저번에 시험 사용했을 때 지속 시간이 더 길었으면 좋겠다는 의견이 많았는데, 영지 인간들에게는 일주일도 짧았단 말인가?

혼란스러운 마음을 추스르고 다시 실비아에게 생산 과정을 수정하는 게 어려운지 물어보았다.

“알약이 더 쉬워요. 하루면 감질만 날 거 같아서 기간을 억지로 늘리느라 과정이 더 복잡해졌거든요. 무슨 토끼도 아니고 겨우 하루라니. 혹시 영주님도 그렇게 생각하세요?”

너의 상식은 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된 거냐? 누가 생각해도 딱 즐길 때만 먹는 게 정상이잖아? 하루에 한 알이면 누가 봐도 완벽한 수준이거늘.

그리고……. 나야, 뭐.

솔직히 일주일은 무리라고 생각하지만 그래도 자존심상 센 척하며 으스댔다.

“나야 당연히 일주일도 가능하지. 그전에 너희들이 실신해서 참는 거야.”

“호! 역시, 우리 영주님.”

그렇게 사실을 확인한 후 라이언에게 가능하다고 언질을 줬다. 그리고 앞으로는 알약으로 만들어 생산량을 더 늘리겠다고 하니 그도 상당히 반가워했다.

[그래? 정말 잘됐네. 이게 생각보다 더 돈이 된단 말이야. 참, 제국인들에게는 지정된 가격에 팔면 되는 거지? 어디서 소문이 났는지 주변 영지에서도 팔라더라고. 물론 당장은 무리지만 해상 왕국의 병이 잠잠해지면 주변으로도 적당히 팔 수 있을까?]

북부에서는 내가, 황도와 중부, 동부는 황태자가, 남부는 라이언이 물건을 팔면 오히려 균형도 맞고 괜찮을 거 같았다. 지금은 치료제로만 사용하지만, 원래는 전혀 다른 용도의 물건이었으니 말이다.

“그래요? 나쁘지 않네요. 하지만 당분간은 영지를 보호하는 데 사용하세요. 밀매하는 건 어떻게 되었어요? 많이 사가던가요?”

[아, 이게 좀 이상하게 됐는데 말이야. 어쨌든 지금은 가격을 엄청 올려 팔고 있어. 그래도 잘 팔리긴 하는데 꼴만 우습게 됐지 뭐야.]

“왜요?”

[이 미친놈들이 그러니까…….]

라이언의 설명을 들어보니 기가 막히긴 했다.

처음에는 상대의 군비를 갉아먹겠다고 큰소리치던 라이언이었지만 백성들은 또 무슨 죄가 있겠냐는 생각이 들었는지 제법 합리적인 가격에 약을 팔았단다.

너무 비싸게 팔면 귀족들의 전유물로 전락해 버릴 게 뻔해서였는데 그런 마음 씀씀이는 아무런 의미가 없었단다. 해상 왕국 쪽 첩자들의 말을 들어보니 라이언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귀족들만 몰래 이 약을 먹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 상인들이…….”

[응. 그놈들이 폭리를 취했더라고. 물론 이윤을 추구하는 게 상인이란 작자들이긴 한데. 이런 건 좀 그렇잖아? 제대로 퍼졌으면 많이 좀 팔려고 했는데 글러 먹은 거지. 그래서 물건 값을 대폭 올렸어. 어차피 그놈들 뱃속에 들어가느니 내가 먹는 게 나아 보여서 말이야.]

여기까지는 그냥 그러려니 할 수 있는 일이었다. 하지만 이어지는 이야기는 솔직히 당황스러울 정도였다.

일부 귀족들만 밀매로 치료 약을 사먹는 상황.

하지만 세상에는 비밀이 없었다. 적어도 파는 놈은 버젓이 돌아다니고 있었으니 말이다.

밀매하던 상단 쪽인지 구매해 먹는 귀족 쪽인지 알 수 없지만, 말이 새 나오더니 빠른 속도로 퍼져 나가기 시작했다.

전염병으로 워낙 예민한 시기라 그런지 들풀처럼 퍼져 나가더니 민심이 극도로 안 좋아진 것이다.

그리고 극도로 악화한 민심을 수습하기 위해 해상 왕국에서 꺼낸 카드가 바로 전쟁이었다. 모든 잘못을 제국으로 돌리고 분노한 군중에게 칼을 들려 배에 태운 채 돌격한 것인데.

전염병조차 제국에서 일부러 퍼트린 거라는 억측은 솔직히 황당할 정도였다.

“예? 공격이요? 그래서요?”

[그래서는. 놈들이 사방으로 약탈이나 하고 도망가니까 문제인 거지, 정면 대결로 들어가면 상대도 안 돼. 대충 분위기가 급하게 돌아가는 건 알고 있어서 크라우랑 연계해 해상에서 다 쓸어버렸어. 문제는 그놈들이 정예들이 아니라 민병이었다는 거야. 그리고…….]

해상 왕국은 병사들이 탄 배가 제국으로 출동하자마자 제국에 사신을 보냈단다. 역도들이 왕국에서 반란을 일으킨 후 도망갔고, 자신들과 상관없는 일이라는 걸 알리기 위해서란다.

그러면서 뒤로는 각 부서 관료들을 꼬드겨 치료제를 직접 수입할 수 있는지를 알아보고 다녔다는데.

“뭔가… 혼란스럽네요. 원래 그런 식이었어요?”

[이번은 좀 심했지만, 종종 어처구니없는 짓을 벌이긴 하지. 내부로 들어가면 상당히 복잡한 사정이 있겠지만 어쨌든 섬나라고, 제국이 건재한 이상 외부로 뻗어 나갈 공간이 없어서 모든 게 부족할 수밖에 없는 국가야. 약탈하는 것도 대충 그런 이유겠지. 본성이 포악한 것도 있지만 그게 다는 아니니까.]

“음…….”

뭔가 익숙하다 했더니 하는 짓도 완전 왜구였다. 말도 안 되는 선동질부터 뒤에서 딴 궁리를 하는 것까지 완전히 판박이였으니 말이다.

물론 엄밀히 따지면, 저 전염병이 제국에서 발생한 것이 아니라고 할 순 없지만 일 처리를 그런 식으로 하는 건 정말 웃긴 일이었다.

특히 나중에 보냈다는 서한은 일말의 죄책감마저 사라지게 만드는 최악의 한 수였다. 처음부터 치료 약을 요청했으면 그래도 재고할 여지가 있었을 거다.

“그래서, 황실에서 따로 내려온 공문은 없고요?”

[상대가 먼저 공격한 상황에서 뭔가 하는 것도 웃기잖아? 사람을 바보로 아는 것도 아니고, 반란군은 무슨. 아마 실익이 있었으면 바로 공격 명령부터 내려왔을걸?]

“그건 그렇네요. 그 정도 블러핑에 반응할 전하가 아니긴 하죠. 조금의 피해라도 있으면 몰라도 그것도 아니었으니.”

상대의 발끈 러시(?)를 막고 정확히 역러시 타이밍이었지만 지금 상황에서 해상 왕국을 징치해 봤자 남는 것도 없었다. 제국 내부를 다스리는 데 더 집중해야 하는 상황이었으니 말이다.

“흠, 어쨌든 이번 승전으로 황태자 전하에게 힘이 좀 더 실리긴 하겠네요.”

[아마 그렇겠지?]

황도에서 폭탄이 터지면서 조금 주춤하고 있었는데 남부에서 저런 승전보가 올라갔으면 황태자의 지도력이 다시 탄력을 받게 될 것이다.

이번 전투를 주도한 게 크라우와 작센, 그리고 뒤에서 지원하는 리아누스였고, 셋 모두 황태자의 영향하에 있는 세력이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따지면 나쁘지 않은 일이지만 해상 왕국 쪽의 피해가 너무 크다는 게 왠지 껄끄러웠다.

소설에서 제국 내 전염병이 퍼졌을 때 상당히 많은 제국민이 피해를 봤지만 철저한 후속 조치로 2차 전염으로 확산하는 일은 어느 정도 막아낼 수 있었다.

그렇게 입은 피해가 대략 수십만 정도였던 걸로 기억하는데, 해상 왕국은 철저하게 관리하는 거 같지도 않고, 오히려 멀쩡한 백성들까지 선동해 전쟁터로 밀어 넣고 있었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제국이 입었던 것보다 훨씬 큰 피해를 볼 게 분명했다.

[어쨌든 그래. 지금도 약은 계속 팔려 나가고 있는데 이게 돈이 좀 되거든. 우선 이번에 판 걸 반분해서 보낼 테니 이걸 받고 약이나 좀 더 만들어달라고.]

“오, 그래요? 그럼 사양 않고 받겠습니다. 형님도 신경 써서 계속 해안가를 지켜주세요.”

[그게 내 일이니까 그래야겠지. 그럼.]

라이언과 통신을 마치고 주변을 둘러보니 세 여자 모두 자신만 바라보고 있었다.

“뭘 그렇게 보고 있어?”

“아뇨. 그냥요. 로빈도 일을 하긴 하네요.”

“일? 아, 이것도 일이긴 하지. 그런데 날 대체 어떻게 보고…….”

“은근히 빈둥대는 거 같았거든요~ 밤에는 완전 색마고~”

틀린 말은 아니었지만, 밤마다 앵앵대면서 저러면 좀 곤란했다.

“그렇다면 오늘부터 금욕을?”

“…죄송해요, 로빈.”

바로 꼬리 내릴 거면서 저런 장난이라니.

저건 오늘 밤에도 많이 혼나고 싶다는 뜻이겠지?

하지만 밤의 사정은 밤으로 미루고 낮에는 낮의 일을 처리하는 게 현명하리라.

“실비, 우선 설비부터 바꾸자. 알약 체제로.”

“예. 영주님. 바로 시작할게요.”

“린은 이제 기사단 쪽을 더 신경 써줘. 쓸데없이 애꿎은 치안대에 화풀이하지 말고. 안 그러면 진짜 혼난다?”

“으… 응, 주인. 알았어.”

결혼하고 확실히 좋아진 건 저 린나니가 내 말을 잘 들어준다는 거였다. 예전에는 좀 껄끄러웠달까?

(다음 화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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