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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소설 속 로빈-210화 (210/303)

210화

그때는 길들여지지 않는 야생마 같은 느낌이었다면 지금은 잘 길들여진 전투마처럼 시키는 대로 잘하니 말이다.

이런 게 진정한 베갯머리송사일까?

뭔가 좀 다르지만, 눈에 띄게 얌전해진 린을 보면 아주 틀린 말은 아닌 거 같았다.

“남부에서의 수익금이 생각 이상인 거 같아. 치안대를 꾸리고도 좀 남지 않을까?”

“어머, 그래요?”

“응. 그러면 슬슬 준비해도 될 거 같은데. 앤이 계획한 그 영지 극단 말이야. 릭스터한테 말해서 치안대 쪽 건물이 완공되면 바로 작업에 들어가자. 부지랑 이런 걸 미리 알아놔.”

“네, 로빈. 그럴게요. 고마워요.”

“고맙긴. 다 잘 살자고 하는 짓인데.”

일을 마무리하고 여성진을 해산한 로빈은 조용히 생각하는 시간을 가졌다.

극도로 혼란스러워진 해상 왕국의 사정이 제국과 자신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지 계산해 보기 위해서였다. 놈들이 아무런 이유도 없이 전염병을 풀었을 리는 없으니 말이다.

“진짜 웃기는 일인데, 이거.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짚이는 게 없어. 내가 보지 못한 부분에서 또 큰일이 일어나는 걸까? 근래 일어날 큰일이라 봤자 큐브 포털뿐인데 그건…….”

큐브 포털의 특성을 생각해 봐도 놈들의 의도를 짐작하기 힘들었다. 큐브 포털은 인류의 입장에서 재앙이나 멸망처럼 끔찍한 일만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야말로 양날의 검?

게다가 그건 생각보다 인류에게 친절한 면이 많아서 자신 쪽으로는 상당히 뭉뚝한 양날의 검이었다.

“상관관계도 모르겠고. 우선 지켜봐야 하나.”

어쨌든 추이를 더 살펴봐야 할 필요는 있어 보였다.

* * *

며칠 뒤, 주노 쪽을 통해 황도의 소식이 전해지고, 다시 일주일이 지난 후, 주노가 영지로 돌아왔다. 그것도 혼자가 아니라 대규모의 무리를 대동한 채였다.

그리고 로빈은 주노가 영주 성으로 안내한 그 무리의 수장과 잠시 면담하게 되었다. 껄끄럽다면 껄끄럽고 묘하다면 묘한 일로 말이다.

“영광입니다. 북부의 사자, 로빈 그레이츠 후작님을 뵙습니다. 브릴리언트 캣의 수장, 로즈라고 합니다.”

“그래요, 반가워요. 그레이츠 영주, 로빈입니다.”

눈앞의 화사한 느낌의 미녀가 바로 황도 환락가를 지배하고 있는 여걸, 로즈였다. 황태자의 네 번째 첩이기도 하고.

아, 아직 네 번째는 아니려나? 평민 출신이라 순위가 뒤로 밀린 거니 지금은 두 번째일 수도 있었다.

그녀는 붉은 머릿결이 매력적인 농염한 스타일의 매력적인 여성이었다.

정열적인 밝은 머리색은 사실 만화에서나 나오는 색인 줄 알았는데 현실에서도 저걸 저렇게 잘 소화하는 여성이 있을 줄을 몰랐다. 사실 세릴이나 세이라도 붉은 계통의 머리색을 자랑하지만, 저 정도로 서명한 선홍빛은 아니었으니 말이다.

거기다 단순히 농염하기만 한 게 아니라 몸 곳곳에는 탄력적인 근육이 숨어있었다. 저건 그냥 몸매를 가꾸기 위한 운동으로 다져진 근육이 아니었다.

마치 린처럼 전투를 위해 단련한 근육.

보기 좋게 자리 잡고 있었지만, 저 근육의 위력은 만만치 않을 것이다. 이쪽 세계로 넘어오며 놀랍도록 발달한 로빈의 안목에 의하면 저 로즈는 상당한 실력자임이 분명했다.

“그래, 황도를 지배하는 브릴리언트 캣의 주인께서 어찌 이런 벽지까지 오셨는지요?”

“어머, 지배라니요. 황도는 황실의 것이죠. 그렇게 말씀하시면 무섭답니다.”

“흠, 뭐 그렇다고 치고요.”

“후작님도 전해 들으셨겠지만 푸시 캣츠가 분점을 내고 있답니다. 이번에 새로 입안된 법령 때문에 요청도 많이 들어오고요.”

“네, 그렇다고 들었습니다. 황태자 전하가 용단을 내리셨다죠?”

밝은 곳과 어두운 곳 모두를 지배해 혼자 다 해먹겠다고 선언한 황태자.

이번 법령 개정의 의미는 결국 밤의 황제까지 자신이 다 해먹겠다고 선포한 것이다.

처음에 저 소식을 접했을 땐 어두운 곳을 완벽하게 지배하며 제국 전역의 정보를 얻을 수 있다면 나쁘지 않다고 생각하며 고개를 끄덕였었다. 그래야 그놈들의 정보를 조금이라도 더 빨리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맞아요. 그래서 이곳 그레이츠 영지에서도 분점을 내고 싶습니다. 부디 허락해 주시길.”

“음, 이곳은 사정이 좀 다른데요. 영주 측에서 환락가를 운영하지 않아서요.”

어차피 황태자의 명을 받은 게 뻔하니 그냥 허락해도 무방한 일이었지만 한번 떠봤다. 무슨 목적인지 정확히 알아보고 싶어서였다.

“그러게요. 저도 그렇게 알고 있지만……. 윗선에서 명령이 내려온 거라서요. 아시죠? 저희 윗선이 사람을 참 거칠게 다루잖아요? 부탁드립니다.”

그렇지. 아마 로즈는 다른 의미로 더 거칠게 다룰 테고.

그냥 대놓고 황태자의 명령이라고 말하며 협조를 구하는 건가?

법령까지 바꾸며 영주들의 환락가 진출을 막고 정보망을 펼치려는 황태자.

그에게 가장 껄끄러운 게 있다면 이 브릴리언트 캣과 그 자신의 내밀한 관계가 알려지는 거였다.

만약 그렇게 되면 영주들을 제치고 황태자가 모든 환락가를 집어삼키려 했다는 반발과 함께, 사적인 이유로 법령을 만졌다는 오명을 뒤집어쓸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사실, 그런 목적이 맞아서 저건 뭐라 반박하기도 힘들었다.

그래서 황실의 통신망이나 자신의 사람을 쓰지 않고, 로즈를 보내 자기 뜻을 내비치는 거 같았다. 표면적으로 로즈와 황태자의 관계는 세간에 전혀 알려지지 않았으니까.

그런 상황에서 저 로즈가 윗선이란 표현을 사용하는 걸 보면 이젠 자신도 확실히 황태자 진영으로 낙점되긴 한 모양이다.

“어디를 생각하고 계시는데요? 아무 계획 없이 오신 건 아니죠?”

“그럼요. 그럴 수야 있나요. 이곳에 봉사의 교단이 자리 잡았다는 소식을 들었어요. 제가 황도에서 가장 먼저 포섭하려고 한 곳인데 한발 늦어버린 거죠. 그들과 이웃으로 지내고 싶은데, 가능할까요?”

오호라, 교단 옆에 자리를 잡으시겠다.

목적이 상황 전하였단 말이지.

하긴 안전하다고 생각했던 영지가 뒤숭숭해졌으니 걱정이 되긴 했겠지. 북부에만 푸시 캣츠가 안 들어가면 이상하게 생각하는 귀족들도 있을 테고.

다만 초등학교에 가까운 교단 앞에 저런 유해 업소(?)가 자리 잡아도 괜찮을까 싶지만, 사실 그 초등학교 자체가 직업여성 전문 육성 교육원이나 섹스 스킬 전문 강습소 같은 일도 동시에 하고 있어 뭐라 거절하기도 웃겼다.

“그래요? 지금 이곳에서 일할 식구들도 다 같이 오신 건가요? 인원이 제법 된다고 들었거든요.”

“네, 모두 동행했습니다. 저희가 일할 곳이 완성될 때까지 신전에서 머물고 싶은데, 괜찮을까요? 거기가 진짜배기라고 들었거든요. 저희도 좀 배우고 싶어요.”

저 정도면 너무 노골적이라 다른 목적을 생각하기 어려울 정도였다.

“그러죠. 잠시 인원들을 확인할 수 있을까요? 인원만 확인하고 바로 신전으로 안내할게요.”

“어머~ 저희야 감사하죠. 저택 앞에서 대기 중이거든요.”

로즈의 말대로 대략 서른 정도의 여성이 저택 앞에서 대기 중이었다. 그 옆에서는 린이 그녀들을 유심히 살펴보고 있었고. 그리고 소식을 접했는지 다이앤과 실비아까지 저쪽에서 다가오고 있었다.

뭐야? 대체 왜 여기에 집합하는 거야?

“주인, 이게 뭐야? 설마 벌써 첩이야?”

“그러게요, 로빈. 이게 어떻게 된 일이에요? 첩이면 저랑 상의를…….”

“역시 영주님인가? 벌써부터 첩을 저렇게나 많이…….”

뭐래?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야? 미쳤다고 첩을 서른 명이나 들이겠냐?

“그런 게 아냐. 영지에서 일하실 분들이야.”

엉뚱한 소리를 하는 아내들에게 한마디로 일축하고 여성들을 살폈다.

“아직 많이 모자란 아이들입니다. 이 기회에 신전에서 많은 걸 배울 수 있으면 좋겠죠. 이름만 올리고 이 일을 처음 시작하는 아이들이거든요.”

탄력 넘치는 몸매의 소유자가 서른.

물론 미인들이었지만 색기보다는 묘한 예기부터 느껴지는 여자들이었다.

하. 린 이 녀석, 진짜.

다른 여자는 몰라도 넌 저것부터 느껴야 하지 않냐? 넌 고수잖아.

아무래도 지금은 린나니 녀석의 두뇌 회로가 엉뚱한 쪽으로만 굴러가고 있나 보다.

로즈가 말한 대로 성적 업무보다는 다른 업무에 특화된 여자들인 거 같았다.

저 여자들만 봐도 황태자의 의도가 대충 보였다. 저들을 신전에 출입시키며 상황 전하를 보호하겠다는 거겠지.

보는 눈이 있으니 업무를 거부하진 않겠지만 주목적은 호위랄까?

신전을 지키는 병사도 분명 따로 존재했지만, 저들이 있어서 나쁠 건 없어 보였다. 물론 저들이 대단한 전력이란 걸 수뇌부 쪽에는 따로 알려야겠지만 말이다.

“그러네요. 그쪽으로는 많이 배워야 할 분들이군요. 다른 쪽으로는 전문가 같지만요. 다행히 신전의 사제들은 정말 이쪽 방면의 전문가들입니다. 아마 꾸준히 배운다면 누구보다 대단한 여성들이 되실 수 있을 거예요.”

“말씀만 들어도 감사합니다, 영주님. 많이 부족한 아이들이지만 잘 부탁드릴게요.”

“그래요. 그럼 우선 신전으로 가죠. 저분들을 여기 이대로 세워 두는 것도 이상하네요.”

황태자의 의도가 분명한 만큼 굳이 사양하지 않고 받아들였다. 영지에 황태자가 몰라야 할 무언가가 있는 것도 아니니까.

다만 저들의 정체를 간파했다는 듯 미숙하다고 지적한 게 유일한 심술이었다. 당신들이 다른 방면의 전문가란 걸 알고 있으니 엉뚱한 짓은 하지 말라는 경고였으니까.

그리고 로즈를 보니 딱 알아들은 거 같았다. 마지막에 표정이 살짝 변했다 바로 돌아온 걸 보니 확실했다.

그렇게 푸시 캣츠 출신 암살자 서른이 영지에 합류했다. 저들이 암살 이외에 성적인 업무를 잘 소화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었지만 말이다.

로즈와 그 식구들을 신전까지 안내해 주고 돌아온 로빈은 주노를 따로 불러 황도 사정을 자세히 물었다. 남부 연합국과의 갈등도 그렇지만 해상 왕국의 기습 공격까지 있었으니 요즘 정국이 어떤 식으로 흘러가는지 궁금해서였다.

“황태자 전하가 강력하게 밀어붙여서 영주들이 환락가를 관리하는 걸 금지했고, 마수 갑옷으로 무장한 병사들을 50%까지 늘리게 되었습니다. 소소하게 따지면 그 외에도 몇 가지 더 있는데 가장 중요한 건 이거죠.”

“그래요? 반발이 제법 있었을 텐데 괜찮았나요?”

“반발이 있긴 했는데 황실에서도 적극적으로 지원한다고 약속하면서 무마된 거 같더군요. 약소한 영지의 영주들에게는 50%까지 구매 대금을 지원하기로 했으니까요.”

“힘깨나 쓰는 영주들은 남부 연합국과 해상 왕국을 징벌하지 않는 것만으로 가슴을 쓸어내렸겠고요.”

“네, 남쪽 전선이 해상 왕국의 선단을 하루 만에 붕괴시켜 버리니 그쪽 전력만으로도 남부 연합국을 징벌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겠죠. 어쨌든 황태자 전하로서는 호재였습니다.”

폭탄이 터지면서 주춤했던 황태자가 결국 해상 왕국의 도발을 무사히 처리한 남부 전선 덕분에 다시 힘을 얻을 거라는 예상은 정확히 적중했다. 귀족들의 눈에도 두 변경백이 연합한 전력이 강력하게 느껴졌을 테니 말이다.

“그 정도면 남부 연합국도 뭔가 액션이 있을 법한데요.”

“거긴 지금 해상 왕국에서 발발한 전염병 때문에 정신이 없는 모양입니다. 해안선을 봉쇄하고 철저히 방어하고 있다는데, 이쪽까지 신경 쓸 여유가 있겠습니까?”

“아, 남부 연합국 사람하고 해상 왕국 사람은 구별이 거의 불가능하죠? 진짜 몰래 숨어들어 오기라도 하면 엄청 피곤하겠네요.”

그거라면 확실히 그럴 만했다. 국가적으로 사활을 걸 만한 일이었으니 말이다.

“그리고 그렇게 마수 가죽 건을 확정 지은 황태자 전하께서 그 여세를 몰아서 바로 환락가 쪽 문제를 밀어붙였죠.”

“확실히 자신에게 힘이 있을 때 서둘러 처리해 버린 거군요.”

“네, 그래도 큰 사업장을 가진 영주들에게는 따로 마수 가죽을 지원하고, 몇 년간은 세금을 감면하기로 했답니다.”

“적당히 당근도 던져준 거군요. 나쁘지 않네요.”

“참, 마수 가죽에 대한 칙령은 즉위식 때 발표하겠다고 했지만 이미 알 사람들은 다 알아서 북부 영지를 방문하는 사람들이 급증했다는데, 영지는 괜찮은가요? 올해 안에 병사를 무장시키려면 그들도 마음이 급할 텐데요.”

“그래요? 여긴 조용한데요. 우리 영지 말고 다른 5대 방벽 쪽에서 넘어온 연락도 없고요. 멀어서 그런 게 아닐까요?”

“음, 다른 영지라면 몰라도 이곳은 배로 오면 금방이라 차라리 여기가 나을 텐데 이상하군요.”

“제가 은근히 귀족 사회에서는 따돌림받는 모양이죠, 뭐.”

“에이,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로빈은 웃으며 저렇게 말했지만 사실 귀족들이 이곳을 찾지 않는 건 따돌림 때문이라기보다는 껄끄럽기 때문이었다.

(다음 화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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