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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소설 속 로빈-212화 (212/303)

212화

안 갈 거면 몰라도 움직이기로 마음먹자 여행 준비는 빠르게 마무리되었다. 이미 호위대는 배로 출발해 황도에 도착한 지 오래였고, 로빈과 다이앤만 워프 게이트를 타고 넘어가면 되기 때문이다.

“주인, 나도 가면 안 될까? 호위 자격으로 따라갈 수도 있는 거잖아?”

“따라와도 즉위식에는 참석 못 해. 거긴 호위도 못 데리고 들어가거든.”

굳이 따라오고 싶어 하는 린을 설득하고.

“영주님, 한눈팔지 말고 바로 다녀오세요. 더 이상 첩실이 느는 건 사양하고 싶어요.”

“한눈은 무슨. 나도 첩실은 사양이다, 이 녀석아.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말고 집이나 잘 지키고 있어. 금방 올 거니까.”

엉뚱한 소리를 늘어놓는 실비아에게는 꿀밤을 선물했다.

하지만 같이 출발하는 다이앤조차 뭔가 뚱한 얼굴이었다. 남은 두 여자라면 몰라도 같이 가는 다이앤까지 저러는 건 조금 이상한 일이었다.

그래서 슬쩍 그 이유를 물었는데.

“음… 황도라. 로빈은 그곳에 들르겠죠?”

“어디?”

“푸시 캣츠에요. 마담 로즈가 꼭 들러달라고 신신당부를 하고 갔잖아요?”

“아, 거기? 굳이 갈 생각 없는데.”

신전 바로 앞에 푸시 캣츠의 분점이 세워지자 마담 로즈는 황도로 돌아갔다. 다이앤의 말처럼 황도 본점에 오면 꼭 들르라고 인사를 남기고 말이다.

내 입장에선 당연히 으레 하는 인사말이라고 생각했는데 다이앤은 그렇게 받아들이지 않았나 보다.

“의외네요. 마담 로즈 정도면 로빈이 좋아하는 타입이잖아요?”

“응? 뭐야? 질투라도 하는 거야?”

“마담 로즈가 너무 예뻐서 은근히 신경 쓰여요. 떠나면서도 그렇게 막 눈웃음을……. 로빈의 이상형이 성숙하면서도 맛깔나 보이는 스타일이고요.”

혹시 그런 걸 걱정하고 있는 건가? 내가 보기에 마담 로즈의 눈웃음은 그냥 직업병이나 습관 같은 건데 앤은 그것도 신경 쓰였나 보다.

그래도 마담 로즈를 신경 쓸 필요는 없을 텐데. 솔직히 나도 좀 생겼지만 그래도 황태자만큼은 아니잖아? 무엇보다 그 많은 여자 중에 굳이 그 인간 걸 건드리는 건 정말 바보짓이지.

물론 다이앤은 로즈가 황태자의 애첩인 걸 모르니까 저러는 거겠지만.

“아닌데. 내 이상형은 맛깔나 보이고 실제로도 맛있는 앤 같은 여자인데. 더 이상 여자는 안 늘리니까 걱정하지 않아도 돼. 솔직히 셋도 후달리더라.”

하지만 다이앤을 안심시켜 주기 위해 웃으며 볼을 어루만져주었다. 아무 의미 없는 견제를 저렇게 심각하게 하고 있으니 은근히 귀엽기도 했고.

그래도 자신이 내 이상형이라는 말은 기분이 좋았는지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다.

“핏, 과장은. 맨날 우리가 먼저 나가떨어지잖아요. 하지만 로빈이 그러니까 믿을게요.”

“흠흠, 사랑싸움은 나중에 하시고 어서 게이트에 오르시죠.”

짧은 대화였지만 제법 시간을 끌었는지 배웅 나온 지온이 헛기침을 하며 둘을 재촉했다. 옆을 보니 마법 공학자도 난감한 표정을 짓고 있었고.

“지온, 부탁해요. 즉위식만 마치면 바로 올 거니까 시간이 많이 걸리진 않을 거예요.”

“네, 영주님. 다녀오십시오.”

무안한 로빈은 그렇게 지온에게 마지막 당부를 남기고 서둘러 앤과 함께 게이트에 올라섰다.

“영주님, 어서 오십시오.”

황도로 넘어오니 게이트 앞에 기사들이 대기하고 있었다.

호위대를 책임지는 제필과 듀발……. 응? 듀발은 분명 명단에 없었던 거 같은데 왜 여기…….

아~ 저 녀석, 결국 도망쳤군.

내가 쉬는 동안 세이라가 계속 듀발을 괴롭혔다고 들었다. 끊임없는 대련 요청에 저 녀석이 결국 도주를 결심한 모양이다.

하긴, 쉴 틈도 없이 계속 세이라가 달려드니 저 녀석도 제법 힘들었을 거다. 하여간 세이라 녀석도 어지간하다니까.

요 며칠간 계속 투덜대더니 저래서 그런 거군.

“영주님, 리아넨 공작가 쪽에서 계속 연통을 보내 영주님을 청했습니다. 오늘도 몇 번이나 연락을 보냈고요.”

“아, 그래요?”

리아넨 공작이 계속 연락했다는 말에 로빈은 차라리 오늘 만나고 해결하는 게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늘 해결해야 내일 즉위식을 마치자마자 바로 돌아갈 수 있었으니 말이다.

물론 시답잖은 이야기겠지만 그래도 그릭스를 무시할 순 없었다.

“앤은 먼저 가있을래? 리아넨 공작님을 만나고 가는 게 나을 거 같아서.”

“그래요?”

“저, 마님께도 초대장이 계속…….”

“누가요? 절 초대할 만한 사람은 없을 텐데요.”

“크레톤 공작 영애께서 꼭 찾아와달라고…….”

“아, 그래요? 로빈, 그럼 전 공작 영애를 만나고 들어갈게요.”

“그럴래?”

어차피 저도 저택을 비우게 됐으니 앤도 공작 영애를 만나는 게 나을 거 같았다. 혼자 있어봤자 딱히 할 일도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영지보다 번잡한 황도였기 때문에 안전에 더 신경 쓸 필요가 있었다.

“듀발은 날 따르고, 제필 경이 앤을 호위해 주세요.”

“네, 영주님.”

“걱정 마세요, 로빈. 저도 그거 입고 왔어요.”

영지에서 암살 사건이 벌어지자 놀란 히센은 미스릴의 분석과 가공에 더 열을 올렸다.

그렇게 한 달 동안 집중해 만든 결과물이 지금 앤이 입고 있는 미스릴 내의. 얇고 가볍지만, 충격 흡수가 뛰어나 웬만한 공격은 다 방어할 수 있는 귀물이었다.

예전에 수거한 미스릴 갑주의 수가 워낙 많아 방어 능력이 없는 로빈의 식구들은 물론 상황 전하 내외분에게까지 분배된 상황이었다.

“그래, 알았어. 그래도 조심하고, 이따가 집에서 보자.”

“네, 로빈. 이상한 곳에는 가지 마세요.”

“풋. 걱정하지 마, 푸시 캣츠에는 절대 안 가니까.”

다이앤을 먼저 보낸 로빈은 바로 리아넨 공작가 쪽으로 발길을 옮겼다. 대체 왜 저를 그리 애타게 찾았는지 의아해하면서 말이다.

* * *

“오, 그레이츠 후작. 왜 이렇게 얼굴 보기가 힘드나? 세상에, 즉위식 하루 전에 황도에 도착한 귀족은 아마 자네뿐일 거야.”

“빨리 와봤자 할 것도 없잖아요? 쓸데없는 소모전은 질색이거든요.”

“하하. 그건 그렇지. 아, 우선 보내준 선물은 잘 받았네. 자네가 선물을 보내주자마자 황태자 전하께서 마수 가죽을 밀어붙이는 바람에 꽤 놀랐지 뭔가.”

“그거야 원래 리아넨 쪽이 가져가야 할 물건이었죠. 이제라도 제 주인을 찾아가서 다행입니다.”

“그리 생각해 주니 고맙군.”

생각보다 더 로빈을 반겨주는 신임 리아넨 공작, 그릭스 리아넨.

선물에 대한 고마움을 전하며 대화를 시작했지만, 분위기를 보니 마수 가죽 때문에 저를 찾은 거 같았다.

다른 귀족가라면 몰라도 대수림에서 뜨거운 맛을 봤던 리아넨 공작가는 굳이 마수를 잡으러 대수림에 다시 들어가고 싶진 않을 것이다. 물론 상황이 많이 변해 중급 마수를 잡는 거뿐이라지만 별로 좋은 기억은 아니었으니 말이다.

“사실 마수 가죽 때문에 청했네. 물론 자네도 알고 있겠지만 올해 안에 병력의 반 이상을 마수 갑옷으로 무장하라는 칙령이 떨어질 거네. 덕분에 지금 아주 난리가 났어.”

“물론 그렇겠지만 리아넨 공작가는 걱정할 이유가 없지 않나요? 상급 마수를 잡겠다고 무리하는 것만 아니면 무난할 텐데요.”

“그렇긴 한데… 뭔가 껄끄러워서 말이야. 예전 기억 때문인지 대수림이란 말만 들어도 한쪽 팔이 욱신거리는구만.”

“그러신가요?”

하긴 한쪽 팔이 날아갔으니 트라우마가 생길 만도 하지. 꺼림칙한 기분도 이해가 가고.

그러니까 결국 우리 영지에서 마수 가죽을 구입하고 싶다?

“가죽을 드리면 제작은 하실 수 있나요? 물론 리아넨의 능력을 무시하는 건 아니지만 이게 경험이 없으면 또 불량이 많이 난다고 해서요.”

“아아, 걱정 말게. 운이 좋았는지 예전에 모은 마법 공학자 중에 마수학을 전공한 녀석이 있지 뭔가. 자네가 보내준 상급 마수 갑옷을 맡겼더니 그걸 분석해, 지금은 중급 마수 정도는 충분히 소화할 수 있다는군.”

“오, 그래요? 반가운 소식이네요.”

갑옷이 아니라 가죽만 보내는 거면 확실히 처리하기 수월했다.

문제는 역시 황태자인가? 아직도 황태자에게 보내기로 약속한 양이 제법 남아 황태자의 허락 없이 리아넨 쪽에 물건을 공급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황태자 전하께 보낼 물건이 아직 좀 남았거든요. 올해까지라면 좀 힘들지 않을까 싶어요.”

분명 1천 명의 치안대가 대수림에 들어가 상당히 많은 마수를 잡았지만 기사급이 아니다 보니 하급 마수가 대부분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적어도 올가을이나 겨울쯤 따로 토벌에 들어가야 그 양을 채울 수 있을 거 같았다.

물론 리아넨 공작가 한 가문이 쓰기에는 충분한 양이었지만 말이다.

“그건 걱정하지 말게. 이미 황태자 전하랑 말을 끝냈으니. 황실에 납부할 물량을 나한테 넘기면 되는 거야.”

그 양반이 웬일로 이런 양보를? 물론 저번에 가져간 양이 워낙 많긴 하지만 그래도 이런 건 다다익선일 텐데? 무슨 물밑 거래라도 있는 건가?

의아해하는 기색이 얼굴에 다 드러났는지 웃음을 터트린 리아넨 공작은 은근한 어조로 사정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심지어 무슨 음모라도 꾸미는 듯 음흉한 표정까지 짓고 있었다.

“후후. 예전에 남부 연합국에 트집 잡은 거 말이야. 그게 황태자 전하의 부탁이었단 말이지.”

한마디만 듣고 딱 무슨 말인지 눈치챘다. 어쩐지 국내 판매량으로 허덕이는 리아넨 공작가가 왜 그런 쓸데없는 짓을 했나 했더니 그 양반이 뒤에서 부추긴 거였다. 그리고 그 대가로 마수 가죽을 양도받기로 한 것이다.

만약 권세가 강하고 부유한 리아넨 공작가에게 황실이 직접 가죽을 나눠 주면 형평성에 어긋나 문제가 생길 수 있으니 나를 통해 전달하기로 한 거 같았다.

“물론 그렇게 되면 후작을 심부름꾼으로 이용하는 꼴이니 그냥 물건만 받아갈 순 없지. 황태자 전하께서 미리 계산하셨지만, 그것과 상관없이 우리도 값을 따로 치르도록 하지.”

오호, 이 통 큰 호구 양반이 또? 하지만 이렇게 이유 없이 베풀기만 할 양반은 아닌데.

“하하, 그런데 말이야. 이번에 개발한 약이 그렇게 효과가 좋다면서? 아직 남쪽으로만 판매된다고 해서 한 번도 못 써봤지 뭔가. 하하. 중부에서도 팔면 좋을 거 같고 말이야.”

아하, 그러니까 자신의 유통망으로 중부에서 약을 팔고 싶다?

황태자가 황도에 공장을 세워서 황도 쪽 판매는 포기한 지 오래였다. 그래서 북부와 라이언을 통해 남부 쪽에 판매할 생각이었다.

그런데 중부라.

내 쪽에서 북부와 남부를 담당한다면 황태자가 황도를 포함한 서부와 그의 처가인 동부 쪽에 물건을 뿌리면서 아마 중부도 담당할 가능성이 컸다. 황도 생산 시설에서 생산되는 양이 영지에서 생산하는 양보다 월등히 많았기 때문에 그게 당연하기도 하고.

그런데 만약 내가 중부에 먼저 물건을 뿌리면…….

리아넨 공작가를 이용해 중부 쪽으로도 물건을 뿌려볼까 생각하던 로빈은 거칠게 고개를 저으며 마음을 진정시켰다. 지금으로선 북부와 중부, 그리고 남부까지 감당할 만큼 많은 물건을 생산할 수 없기 때문이다.

만약 내가 중부를 차지하면 생산량 부족으로 결국 남부는 황태자가 차지하게 될 테고, 폭리를 취할 수 있는 밀매를 포기해야 한다. 이는 실로 소탐대실이 아닐 수 없었다.

“하하, 그러세요? 아마 황태자 전하께서 황도에 물건을 판매하기 시작하실 거예요. 전 북부와 남부 쪽에 집중할 생각이거든요. 만약 중부 쪽에 판매할 물건을 중계하고 싶으시면 황태자 전하와 이야기하는 게 빠를 겁니다.”

“그렇게 되나? 하긴, 남부에는 라이언이 있지?”

중부 쪽은 황태자가 맡게 된다는 말에 애석한 표정을 짓는 그릭스. 아마 황태자랑 거래하는 건 제법 피곤한 일이라 그런 거 같았다.

하지만 어쩌겠나, 물건이 없어서 중부까지 맡는 건 무리인데. 아무쪼록 황태자랑 좋은 이야기 나누고 무사히 이권을 가져갔으면 하는 바람뿐이었다.

【격변기】

리아넨 공작과의 대담이 생각보다 길어져 제법 늦은 시간이 되어서야 저택으로 돌아왔다. 그나마 밖에서 한잔 걸치자는 걸 내일 있을 즉위식을 핑계로 만류하는 게 고작이었으니까.

그럭저럭 알고 지낼 만한 사람인 건 분명하지만 은근히 말이 많은 양반이라 어울리다 보면 한도 끝도 없었다. 물론 어렸을 때 황도 뒷골목을 누비던 모험담은 그런대로 흥미로웠지만 사실 시답잖은 이야기에 불과했다.

“로빈, 왔어요?”

늦은 시간이었지만 앤은 자지 않고 기다리고 있었다.

“피곤할 텐데 먼저 쉬지 그랬어?”

“어떻게 그래요? 로빈이 안 돌아왔는데요.”

“공작 저에서 가볍게 한잔했지만 다른 데로 새진 않았어. 약속을 어기는 그런 남자는 아니라고.”

“에이, 그런 건 상관없어요. 그냥 걱정돼서 그런 거예요.”

말은 저렇게 하지만 은근히 신경 쓰고 있지 않았을까?

앤이 이 시간까지 기다릴 줄은 몰랐지만, 밖으로 나가자는 리아넨 공작의 청을 뿌리치길 잘한 거 같았다. 분명 밖으로 나갔으면 그 인간이 푸시 캣츠로 데려갔을 테니 말이다.

(다음 화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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