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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소설 속 로빈-213화 (213/303)

213화

“크레톤 공작 영애를 만나러 갔는데 거기 레니아 공녀, 아니 황후 폐하도 오셨지 뭐예요.”

“오, 그랬어? 내일이 결혼식이라 바쁘실 텐데 좀 의외네.”

“왠지 내일 즉위식에 아버지가 참석하지 않으실까 신경 쓰이는 눈치더라고요. 그래서 정체를 드러내시진 않겠지만 멀리서 지켜보실 거라고 귀띔해 드렸어요.”

“잘했네. 괜히 또 이상한 오해하면 좀 그러니까.”

그레이츠 영지에서 생활하면서 여유가 생긴 룩센 대제였지만 아직 황태자에게 살갑게 대하는 건 무리인지 멀리서 몰래 대관식을 지켜보겠다며 영지를 떠나 은밀히 황도에 머물고 계셨다.

다만 상황인 자신은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빨리 잊히는 게 오히려 치세에 도움이 될 거라며 몰래 지켜보기만 하겠다니, 그런 면으로는 참 한결같은 분이랄까?

솔직히 로빈은 저 생각이 잘 이해되지 않았지만, 그 어른의 뜻이라 그냥 받아들였다. 물론 황태자는 이미 상황 전하가 영지를 떠났다는 연락을 받았겠지만 레니아 공녀는 아직 모르고 있는 모양이니 다이앤의 말을 듣고 그녀의 서운함 역시 많이 희석되었을 거다.

“그나저나, 장인어른께서는 어디 계시려나?”

“아마 레오니스 공작님을 찾아가지 않았을까요?”

“역시 그러시려나?”

확실히 정체를 숨긴 채 즉위식과 결혼식을 모두 지켜보려면 레오니스 공작이 가장 좋은 협력 상대이긴 했다. 그 둘 사이의 끈끈한 우정을 생각해도 그렇고, 결혼식을 마치고 따로 이야기를 나누기도 레오니스 공작 저가 가장 적합했으니 말이다.

* * *

날이 밝아 오고 즉위식이 시작되었다.

즉위식의 절차는 그리 복잡하지 않았다.

대표 신관에게 제국을 상징하는 엠페러 크라운을 받아든 신 황제가 자신이 황제가 되었음을 선포하고, 귀족들이 충성을 맹세하면 끝.

제 결혼식 때도 느꼈지만 이쪽 세계는 생각보다 허례허식이 없어 그런 점은 좋았다. 귀족과 황제가 있는 세상이라 온갖 복잡한 절차를 거쳐야 할 거 같은데 그런 건 또 아니라 참 신기했다.

즉위식 직전 로빈은 황태자를 잠깐 만날 수 있었다.

“…솔직히 즉위식 하루 전날 도착할 줄은 몰랐군. 역시 대단한 충성심일세.”

“그러게 말입니다. 즉위식과 결혼식을 동시에 치르시니 얼마나 바쁘셨을지 눈에 선하군요. 그럴 때는 그저 멀리서 마음속으로 축하하는 게 최고 아니겠습니까? 물론 전하를 직접 뵙고 감축 드리고 싶었지만 억지로 참았습니다.”

“…….”

입에 침도 바르지 않고 뻔뻔하게 대꾸하는 로빈에게 무슨 말을 덧붙이려던 황태자도 뒤에 서있는 귀족들을 발견하고는 그냥 입을 닫았다. 귀족들이 너무 많아 로빈만 오래 상대할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로빈은 그런 황태자에게 고개를 숙인 후 잽싸게 그 자리에서 도망쳐버렸다.

식이 시작할 시간이 되자 의장용 복장으로 갈아입은 황태자가 이곳, 빅토리아 홀에 들어섰다.

황궁에서 가장 큰 빅토리아 홀은 대관식이나, 논공행상, 신년 연회처럼 많은 귀족이 모이는 행사를 위해서만 개방하는 곳이었는데, 예전에 로빈이 승작했던 그 저주받은 곳이기도 했다.

로빈에게는 별로 좋지 못한 기억뿐인 이곳에는 지금 수많은 귀족이 모여 황태자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몸에는 의전용 전포 ‘황제의 품격’을 두르고, 허리에는 화려한 보석으로 치장된 ‘제국의 영광’을 차고 있는 황태자의 위용은 자못 대단했다.

원래 바탕도 상당한 양반이 저런 화려한 것들을 걸치고 있으니 더 빛나 보일 수밖에.

그리고 식순에 따라 사제 하나가 ‘엠페러 크라운’을 들고 황태자에게 다가왔다.

“음, 꿈과 희망의 교단인가? 저 교단이 아직도 전하랑 연계하고 있네.”

꿈과 희망의 교단.

예전 언데드 난리 때 황태자와 모의해 신탁을 사기 친 그 교단이었다. 분명 협박당해 신탁을 사기 쳤을 게 뻔해서 그 이후 관계가 소원해졌을 거로 생각했는데 저렇게 대표 신관으로 나선 걸 보면 어떻게든 관계를 개선하긴 한 모양이다.

“하긴, 신관과 사제가 중요하다는 걸 잘 알고 계신 분이니 당연히 교단과의 관계는 따로 개선했겠지.”

로빈이 중얼거리는 사이, 황태자 페리안이 엠페러 크라운을 받아 쓰고는 자신이 새로운 황제임을 선포했다.

그리고 그때.

갑자기 세상이 어둠에 휩싸여버려 빅토리아 홀은 혼란에 빠져들었다.

“모두 진정하라!”

황제의 일갈에 조금씩 혼란이 수습될 때쯤 다시 세상이 밝아졌고, 제국 곳곳에는 정체를 알 수 없는 기묘한 육면체 수정이 나타났다.

큐브 포털이 세상에 그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심지어 이곳 빅토리아 홀 안에도 버젓이 자리 잡고 있었다.

요요한 초록빛이 은은하게 새어 나오는 물체.

자로 재 깎은 듯한 육면체를 이루고 비스듬히 서있는 신비한 물체의 등장에 모두 당황한 가운데 새로 즉위한 황제 페리안이 앞으로 나섰다.

“…즉위식 선물 하나 끝장나는구만. 하필이면 오늘…….”

로빈도 눈앞에 나타난 큐브 포털과 반쯤 검게 물든 무언가가 하늘 위에 떠있는 걸 번갈아 바라보며 한숨을 쉬었다. 자신이 알고 있던 것보다 무려 1년 이상이나 빠른 출현이었다.

“짐이 직접 확인해 보겠다. 경들은 경거망동하지 말라.”

사실 로빈과 함께 가장 당황하고 있을 황태자, 아니 황제 페리안 1세였지만 의연하게 혼란을 잠재우고 직접 검을 든 채 빅토리아 홀 안에 나타난 큐브 포털로 다가갔다.

“폐하, 아니 되옵니다.”

“옥체를 보중하시옵소서!”

만류하는 귀족들을 뿌리치고 직접 큐브 포털에 다가간 페리안은 큐브에 손을 대고 잠시 그렇게 있더니 그 안으로 쏙 하고 사라져버렸다.

“허. 아니, 지가 저렇게 들어가 버리면 어떡해? 남은 귀족들은 어쩌라고? 녹색인 걸 보니 분명 쉬운 놈이긴 하지만 저렇게 되면…….”

황제가 눈앞에서 사라져버리자 동요하는 귀족들과 황제의 무책임한 돌진에 당황한 로빈이 생각을 정리하기도 전에 황제가 다시 나타났다. 그 짧은 시간에 포털을 클리어하고 돌아온 것이다.

다만 입고 있던 황제의 품격이나, 제국의 영광 따위는 다 사라지고 알몸으로 검 한 자루만 들고 있었다. 심지어 엠페러 크라운까지 사라져버렸으니 사람들이 경악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아마 기존의 옷가지 따위는 큐브 포털 안에서 무용지물이라는 걸 눈으로 확인시켜 주기 위해 그런 거 같았다.

“짐이 저 안에서 알게 된 것들을 설명하겠다.”

이어지는 황제의 설명은 당연히 로빈도 알고 있는 것들뿐이었다.

유일하게 사라지지 않은 자신의 검을 가리키며 마수 재질로 만든 건 저 안에서도 유효하다는 설명에 고개를 끄덕이는 귀족들을 보니 그들도 대충 이해한 것처럼 보였고.

지금도 저 황제가 계속 물건을 덜렁이며 설명하고 있는 건 좀 황당했지만, 누구도 그 점을 지적하진 못했다. 그만큼 모두 혼란에 빠져있었으니 말이다.

“바로 각 영지에 연락해 절대 저 물체에 접근하지 못하게 명하겠다. 그러니 귀족들은 돌아가 자신의 영지를 방어하는 데 최선을 다하길 바란다. 추가로 알게 된 사항들은 추후에 다시 알리도록 하겠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유지 기한이 짧은 녹색 물체부터, 등급이 낮은 것부터 차근차근 처리하길 명한다. 당분간은 절대 백성들이 그 물체에 접근하지 못하도록 막는 것 역시 잊지 말도록.”

황실에서 바로 영지에 연락을 넣겠다니 조금 안심이 되었다.

물론 로빈의 영지는 모든 병사가 철저하게 무장되어 있기 때문에 웬만한 곳에 들어간다 해도 알아서 잘 나올 거라는 믿음은 있었지만 사람 일에 절대란 건 없었으니 말이다.

* * *

“다른 건 몰라도 백성들의 통제를 가장 신경 써야 해야 할 겁니다, 폐하. 지금 저희의 적은 저 큐브만이 아니라는 걸 항상 기억하소서.”

“잊지 않았다, 후작. 후작도 조심하도록. 놈들에게 눈엣가시는 나 하나만은 아닌 거 같으니까 말이야.”

결혼식이고 뭐고 다들 자신의 영지로 돌아가기 바쁜 상황에서 황제에게 마지막 말을 남긴 로빈은 서둘러 짐을 챙겨 영지로 출발했다.

게이트 앞은 사용을 기다리는 귀족들로 가득 차있었지만 로빈 일행은 바로 게이트를 이용할 수 있었다. 변경백은 자신의 영역에 문제가 생겼을 때 다른 귀족보다 먼저 게이트를 이용할 수 있다는 특칙이 있었기 때문이다.

한 명의 정예 병력이라도 아쉬운 판이라 호위단까지 모두 게이트를 이용할 수밖에 없었는데, 앞으로 마나석 가격이 내린다고 생각해도 조금 뼈아픈 출혈이었다.

“황제 폐하 말이야. 실하더라.”

“네?”

“물건이 아주 실하더라고. 황후 폐하께서 왜 그렇게 폐하께 목을 매는지 알 거 같아.”

“풋, 그 상황에서 그걸 보고 있었어요?”

“아니, 앞에서 덜렁덜렁하는데 어떻게 안 보냐? 하긴 그 정도 자신감이니 그렇게 대놓고 드러낼 수 있는 거지만. 역시 물건도 임페리얼이라니까.”

“아이참, 로빈도…….”

“너무 긴장하지 마. 영지는 아무 일 없을 거고, 앞으로도 그럴 거니까.”

“예, 영주님.”

너무 갑작스럽게 벌어진 일이라 모두 너무 당황한 거 같아 일부러 말을 돌려 긴장을 풀었다.

다만 저 말은 다른 사람이 아니라 스스로에게 다짐하는 말이었다. 사실 이 중에 가장 긴장하고 있는 건 바로 로빈 자신이었으니 말이다.

영지에 도착한 로빈은 바로 관저로 달려 상황을 조율하고 있을 지온부터 찾았다. 영지의 상황, 병력의 움직임, 얼마나 많은 큐브가 생겨났는지, 그리고 주민들의 반응은 어떤지까지 궁금한 것이 한둘이 아니었다.

“영주님.”

“그래요, 지온. 상황부터 보고하세요.”

“황실의 연락을 받고 바로 각 영지와 마을에 다시 연락해 주의를 당부했습니다. 그리고 바로 숫자부터 파악했는데…….”

“네, 몇 개나 생겼던가요?”

“우선 사람이 사는 곳만 확인했습니다. 녹색이 121개, 노란색이 17개. 그리고 파란색과 빨간색이 한 개씩입니다.”

“빨간색이 있었나요? 그놈은 없길 바랐는데…….”

“네?”

“아, 아니에요. 우선 모든 병력은 대기시키세요. 주민들에게도 절대 접근하지 말라고 재차 강조하시고요. 북부의 다른 영지들도 오늘은 큐브에 접근하지 않기를 권고하세요. 저희가 먼저 알아보고 따로 알리겠다고요.”

“네, 영주님. 그런데 황무지 쪽은 어떻게…….”

“그쪽은 괜찮을 거예요. 저게 사람이 사는 곳 주변에만 나타나는 거 같거든요. 그래도 혹시 모르니 치안대를 몇 명 보내 주변을 확인하게 하세요.”

지온이 고개를 숙이고 밖으로 나서자 로빈은 크게 한숨을 쉬며 생각을 정리했다.

로빈이 아는 큐브 포털은 총 다섯 가지였다.

가장 일반적인 몬스터를 품고 있는 녹색과 노란색, 그리고 특수형인 파란색과 보스 몬스터를 품고 있는 빨간색.

마지막이 게임으로 따지면 월드 보스 격인 검은색이었다.

물론 그 외에 무슨 특별한 게 더 있을지도 모르지만, 일단 소설에서 본 것은 그 정도였다.

처음에 이 세계에 떨어졌을 때 로빈은 이 큐브에 대하여 많이 고민했다.

몇 년을 살아오면서 세계의 흐름이 자신이 아는 것보다 더 양호하게 흘러가자 조금 안심할 수 있었고. 황태자가 고급 큐브들을 적당히 조율할 수만 있으면 큰 피해 없이 버틸 거 같았으니 말이다.

소설에서도 언급된 내용이지만, 이 세계의 기사들, 혹은 기사급 강자들은 대단한 전력이라 조금만 보조해 줘도 노란색 큐브까지 수월하게 처리할 수 있었다.

그러니 각 영지에서 큐브에 대한 분석을 어느 정도 마친 후 황실에 도움을 요청하면 명분이 생기고, 그때 황제가 나서 그들이 처리할 수 없는 큐브를 제거하기만 하면 아무 문제가 없는 것이다.

아마 황제도 지금 그런 그림을 그리고 있을 게 분명했다.

만약 현대였으면 노란색만으로도 재앙에 가까운 피해를 볼 수 있지만, 이곳은 초인에 가까운 기사들이 즐비한 곳이라 그런 점에서 상당히 유리했다.

“문제는 그 거지 같은 놈들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냐인데……. 우선 직면한 문제부터 해결하자고.”

마음을 다지고 관저를 나선 로빈은 기사들과 치안대가 도열해 있는 저택 안으로 이동했다. 사람이 있는 곳이라면 장소를 전혀 가라지 않는 큐브 포털답게 영주 저택 정원에도 떡하니 자리 잡고 있었기 때문이다.

로빈이 가장 먼저 해결해야 할 놈은 바로 그놈이었다.

“어머, 저게 뭐니. 녹색으로 반짝이는 게 예쁘긴 하지만… 뭔가 꺼림칙하구나.”

“말세군. 저런 게 나타나다니.”

가족들 역시 큐브가 신기한지 조금 떨어진 곳에서 호기심 어린 눈으로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로빈은 기사들을 대동한 채 큐브에 손을 얹었다.

그러자 그가 익히 알고 있던 것과 비슷한 홀로그램이 눈앞에 나타났는데.

[큐브-G] [랭크 E] (U5)

기한: 6일 18시간

큐브에 입장하시겠습니까? (Y/N)

여기서 랭크는 이 큐브의 난이도, 그리고 U5는 인원 제한이 다섯 명임을 의미한다.

기한은 이 큐브가 폭발할 때까지 남은 시간을 의미했는데, 만약 그 시간을 초과하게 되면 당연히 내부에 있는 몬스터가 밖으로 나와 활동하게 된다.

(다음 화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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