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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소설 속 로빈-214화 (214/303)

214화

다만 내부에서 놈을 상대할 때와 외부로 나온 놈을 상대하는 건 본질적으로 다른 문제였고, 그렇게 되면 적어도 50%에서 많게는 200% 이상 더 강해진 놈을 상대해야 하므로 무조건 내부에서 처리하는 게 좋았다. 이곳은 전생에서와 달리 대량 살상 병기가 없었으니 말이다.

그 밖에도 내부에 들어간 인원이 전멸하면 큐브가 폭발한다든지, 하루에 한 번만 들어갈 수 있다든지, 내부에 들어간 인원이 전투를 시작하면 제한 인원이 다 들어가지 않아도 큐브에 난입할 수 없다든지 하는 다양한 법칙이 존재했지만, 가장 기본적인 건 저 랭크에 맞춰 수준을 예상해 인원을 배분하고 기한이 촉박한 놈부터 처리하는 거였다.

“역시 친절하네. 이 정도까지 알려주는 레이드 소설도 없는데 말이야. 입장 여부도 자신이 결정할 수 있고…….”

색깔과 랭크로 수준을 알려주고, 제한 시간까지 친절하게 알려주는 포털.

솔직히 레이드 소설을 기준으로 보면 대단히 난이도가 낮았다. 최소한 언제 갑자기 폭발할지 모른다는 변수를 줄일 수 있기 때문이었다.

심지어 자신이 원하면 큐브에 들어가지 않을 수도 있으니 얼마나 친절한가?

예전에 로빈은 이 부분이 나왔을 때 대체 저런 친절한 포털이 어디 있냐고 봉구에게 따졌고, 봉구는 그게 그리 단순한 게 아니라고 항변했었다. 물론 그때는 말도 안 된다고 생각했지만, 막상 겪어보니 저 친절함이 고마울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저렇게 친절한 큐브라도 폭발하면 엄청난 피해를 보게 된다. 저 안에 들어있는 몬스터들은 기본적으로 사람을 상하게 할수록 더욱 강해지기 때문이다.

만약 저들이 마을을 뛰어다니며 민간인을 학살한다?

재수 없으면 영지가 통째로 날아가 버릴 수도 있다. 게다가 무슨 레벨업을 하는 건지 쳐들어온 인간을 해치울수록 점점 강해져 등급이나 색깔까지 바뀌기도 하니, 약한 놈들이라도 신중하게 처리해야 했다.

실제로 소설에서도 이와 관련해서 상당히 많은 문제가 발생한다. 요지는 저것들을 확실히 처리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는 거였다.

“바로 입장할 겁니다. 린, 듀발, 월연, 그리고 제필 경이 함께할 거고요. 다들 제가 들어가면 바로 이 큐브에 손을 얹고 안으로 들어가겠다고 생각하세요.”

“…굳이 영주님이 들어가실 필요는.”

“내부 상황을 정확히 파악하기 위해섭니다. 랭크 E라고 적혀있으니 그중에서도 가장 무난한 놈일 터. 제가 들어가 많은 걸 알아볼 생각입니다.”

소설에 서술된 것으로는 많은 걸 알 수 없었다. 그래서 직접 움직이기로 결심한 거고.

그리고 포털을 클리어해야 소소하게나마 스킬을 얻을 수 있었으니 자신뿐만 아니라 웬만한 사람들은 다 참여시킬 생각이었다. 어쨌든 이런 게 생겨나면 스킬 같은 게 곧 힘이요, 능력이었기 때문이다.

큐브에 손을 대고 입장하길 원하자 눈앞의 환경이 바뀌며 이상한 벌판 같은 곳에 혼자 떨어졌다. 바닥에는 은은하게 빛나는 하얀 원이 하나 그려져 있었고.

흔히 말하는 세이프티 존 같은 건가 보다.

“원 밖으로 나가면 전투라고 했던가? 원 내부에서 적이 뭔지 확인할 방법은 없나 본데. 하긴 소설에서도 이런 세세한 부분까지 설명하진 않았으니…….”

주변은 끝을 알 수 없을 정도로 넓은 벌판이었는데, 과연 저 멀리에는 무엇이 있을지 궁금할 정도였다.

하지만 이런 류의 큐브에서 정해진 경로를 이탈하는 건 불가능한 경우가 많았다.

“히야~ 뭐야. 완전 신기해.”

린을 시작으로 다른 기사들까지 모두 큐브 안으로 들어왔다.

그중 가장 인상적인 건 역시 활을 들고 있는 월연.

루터카우의 뿔로 만든 활과 일반적인 철시, 그리고 중급 마수의 뼈로 만든 뼈 화살로 무장하고 있었는데 예상대로 철시는 완전히 사라져버렸다.

월연을 굳이 첫 모험에 포함시킨 건 그녀가 활을 쓰기 때문이었다.

기본적으로 중급 마수 이상에게는 활이 그리 효과적이지 않았다. 그나마 영지에서 개발한 루터카우로 만든 활은 장력이 워낙 좋아 중급 마수에게도 어느 정도 피해를 줄 수 있었지만, 활은 기본적으로 인간을 상대하기 위한 무기인 것이다.

물론 그 와중에도 기사에게는 별로 효과적이지 않았지만 말이다.

하지만 유일한 장거리 무기임은 분명했고, 활이 유용하다면 상당한 이익을 볼 수 있었다. 그래서 그 위력이 어느 정도인지 확인해 보기 위해 월연을 특별히 추가한 것이다.

로빈의 명령에 따라 대열을 갖춘 일행은 듀발을 앞세워 원 밖으로 나갔다.

그러자 고블린, 그러니까 누가 봐도 고블린이라고밖에 할 수 없는 놈들이 대략 20미터 밖에서 나타나 이쪽으로 달려들기 시작했다.

“뭐야, 이 꼬맹이보다 더 작은 새끼들은?”

로빈이 뭐라고 지시 내리기도 전에 놈들에게 달려든 린은 일 검에 놈들을 도륙해 버렸다.

한 번에 한 마리, 혹은 두 마리씩.

일곱 마리의 고블린이 사라지는 데는 불과 몇 초도 걸리지 않았다.

어쩐지 황제도 바로 나오더라니. 아래 랭크의 놈들은 엄청 약했군.

하지만 뭔가 실험하려던 로빈으로서는 허망할 수밖에 없었다. 저 린나니 녀석이 아무런 생각 없이 행동해 하루를 날려버렸으니 말이다.

“야, 그렇게 혼자 뛰어가서 다 없애버리면 어떡하냐? 한번 혼나볼래?”

“하… 하지만. 약해 보이는 놈들이 그냥 달려오잖아. 저놈들이 너무 약해서 그런 거지 난 잘못 없어, 주인.”

이게 진짜…….

뭐든 하나라도 더 얻으려고 했지만 린이 설쳐대는 바람에 산통이 깨져버린 로빈은 린에게 뭐라고 더 말하려고 했지만, 사방이 빛나며 위에서 상자가 내려오는 바람에 말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보상인가? 상자라…….”

로빈은 상자를 열며 역시 과하게 친절하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대개 이런 게 생겨나는 건 무슨 징벌이나, 침입, 그런 부정적인 목적일 가능성이 큰데 이건 전혀 그런 느낌이 아니었으니 말이다.

이게 만약 우리의 방심을 유도하는 거라면 상당히 유효할 거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딱히 그런 거 같지도 않았다. 노란 포털의 높은 난이도만 해도 이런 것과는 상대도 안 될 정도로 강력한 놈들이 나왔으니 말이다.

상자에는 아주 작은 마나석 조각이 들어있었다.

이 정도 난이도에서 마나석이라. 이러니까 마나석 값이 똥값이 되지.

로빈은 앞으로 늘어날 마나석이 일으킬 연쇄 작용을 떠올리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그렇게 보상을 챙기자 다시 주변이 환해지며 큐브가 놓인 자리로 돌아왔다.

* * *

“괜찮으십니까?”

로빈과 일행이 나타나자 기다리던 기사들이 황급히 로빈부터 챙겼다.

자신이 무능력하긴 하지만 미스릴 내갑까지 갖춰 입고 들어갔는데 저렇게까지…….

헉, 미스릴 내갑.

로빈은 당황하며 자신의 가슴 부분을 더듬었다. 아무 생각 없이 습관처럼 내갑을 입고 들어갔기 때문이다.

이게 어떤 물건인데 그렇게 허무하게……. 어? 있네?

당연히 사라졌을 거라 생각했던 미스릴 내갑이 멀쩡히 그대로 있자 오히려 당황한 로빈은 복잡한 마음을 애써 가라앉히며 영지의 기사들과 전사들에게 지시를 내렸다.

“큐브가 지정한 숫자대로 조를 짜서 돌입하세요. 목표는 녹색 랭크 E부터 C까지입니다. 치안대는 랭크 E를, 전사들은 D부터 C까지 자유롭게 공략하세요.”

명령을 내리며 이것저것 시도해 볼 것을 세세하게 지시했다.

화살이 놈들에게 잘 먹히는지, 혹은 그곳의 넓이가 어느 정도인지 확인해 보고, 랭크 E짜리 큐브 하나는 따로 남겨두어 공략 시간이 넘으면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알아보기로 했다.

그렇게 기사들을 보내고 작게 한숨짓던 로빈은 자신의 퀘스트 창 한 부분이 빛나며 예전에 로딩 중이던 업그레이드가 완료되었음을 눈치챌 수 있었다. 아마 저 업그레이드가 이번 난리에 맞춰 완료되도록 그렇게 설정되어 있었나 보다.

“보상이……. 그러니까 상태창 업그레이드. 특별한 건 아니네. 뭐가 달라진 거지?”

로빈이 고개를 갸웃거리는데 조금 불편한 표정의 린이 다가와 로빈을 불렀다.

“주인, 손등에 이상한 게 생겼어?”

“응? 아, 나도 그러네.”

린의 말대로 손등 한쪽에 작은 동그라미와 그 안에 G-E라는 문자가 새겨져 있었다. 소설에서 설명한 대로 큐브를 클리어하면 자신이 클리어한 큐브 등급 중 가장 높은 것이 손등에 새겨지는 것이다.

그러니까 저건 그린, 녹색 큐브의 E랭크를 클리어했다는 표시였다.

“그리고 뭔가 좀 달라진 거 같아. 어?”

그리고 손등에 새겨진 문자를 문지르던 린은 뭔가를 읽는 것처럼 눈을 움직이더니 신기하다는 듯 탄성을 내질렀다.

“어쩐지……. 무슨 스킬 같은 게 생긴 모양이야. 그러니까… 패시브?”

“아, 그래?”

로빈은 무심코 린의 성향 창을 살피다 움찔했다.

이름: 린 그레이츠

성향: 호전적. 도전적. 호색

타이틀: 흉포한 검은 야수(S). 마나의 사랑을 받는 자(L). 붉은 학살자(L 비활성). 대검의 달인(R)

패시브: 검은 파괴 전차 (랭크 E)

액티브:

자신의 눈앞에 펼쳐진 상태창에도 버젓이 스킬이 기록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아마 상태창이 업그레이드되었다는 게 바로 저것인 모양이다.

그나저나 파괴 전차라니. 전차가 있지도 않은 세상에서 저런 걸 달아주면 저게 뭔지 어떻게 알아?

“전차? 이건 뭘까?”

린 역시 이해가 안 가는지 고개를 갸웃대고 있었는데 로빈도 설명하기 애매해 쓴웃음을 지으며 그냥 이렇게 말할 수밖에 없었다.

“뭔지 잘 모르겠지만 좀 강해 보이는데?”

“오, 그래? 주인이 그렇다면 그런 거겠지.”

“야, 그렇게 내 말을 잘 듣는 녀석이 아까는 그런 짓을 했단 말이야? 진짜, 내일 또 그러면 정말 화낸다. 알았지?”

“아… 알았어. 그냥 놈들이 달려드니까 본능적으로 그렇게 된 거야. 미안해, 주인.”

린의 단순함에 헛웃음이 났지만 좀 전에 녀석이 벌였던 만행이 떠올라 단단히 주의를 줬다. 지금이야 별로 상관없지만, 나중에 고난이도 큐브를 클리어할 때 저러면 정말 큰일 날 수도 있었다.

큐브 포털을 클리어하게 되면 오늘 린이 얻은 것처럼 스킬을 얻게 되는데, 이를 다섯 살 때 재능을 느끼는 각성에 비유해 2차 각성이라고 부르게 된다. 각성처럼 새로운 가능성을 개화한다는 의미일 것이다.

앞으로 시간이 지나면 많은 사람이 용병 업계에 뛰어들어 큐브 포털을 클리어하며 돈을 벌게 되는데 저 2차 각성이 그런 변화를 불러일으킬 중대한 요인 중 하나였다. 물론 가장 결정적인 것은 큐브를 클리어했을 때 얻을 수 있는 마나석 같은 재화였지만 말이다.

2차 각성으로 얻을 수 있는 스킬은 기본적으로 패시브와 액티브로 구분되는데 가장 큰 차이는 큐브 포털 내부에서만 액티브 스킬을 사용할 수 있다는 거였다.

그래서 일반적으로 액티브 스킬은 특별한 기예인 경우가 많고, 패시브 스킬은 전체적인 기량을 상승시키는 경우가 많았다.

린이 얻는 패시브 스킬, 검은 파괴 전차는 전투 시 모든 능력치를 향상하는 사기적인 스킬이었다.

소설 속 주인공이 스킬을 얻는 것도 지금까지 살아온 삶이나 성향과 밀접한 관계가 있을 거로 추측했는데 생각해 보면 딱 린에게 어울리는 스킬이긴 했다.

그나저나, 특별한 이름이 달린 스킬이라니. 린은 역시 대단하네.

이쪽 세계의 스킬은 기본적으로 양산형이 대부분이었다. 중급 검술이나 상급 체술처럼 딱 봐도 양산형임이 느껴지는 스킬이 주를 이룬다는 의미였다.

그리고 간혹 특별한 스킬이 등장하는데 지금 린이 얻은 것처럼 저런 식으로 다른 느낌을 주거나, 특정 인물의 이름이 스킬에 붙는 경우가 대부분 그러했다.

그러니까 린은 정말 대단한 스킬은 얻은 것이다. 이곳이 재능충만을 위한 더러운 세상이란 걸 이미 알고 있었기에 별로 놀랍지도 않았지만 말이다.

그리고 옆에 붙어있는 랭크는 스킬의 랭크가 아니라 정확히 말하면 숙련도였다. 모든 스킬에는 랭크가 따로 없고 저렇게 숙련도만 표시되는 것이다.

물론 비교하길 좋아하는 게 사람의 습성이다 보니 자기네들끼리 기준을 정해 스킬의 랭크를 붙이기도 하지만 그건 정말 훗날의 일이었다.

“그, 스킬 옆에 붙은 랭크가 정말 중요하거든? 그러니까… 아, 아니다. 너한테는 그런 걸 걱정할 필요가 없겠구나.”

숙련도가 중요하다고 말하려던 로빈은 항상 전투를 달고 사는 린에게 전투 시 발동하는 저 스킬의 숙련도를 걱정하는 건 무의미하다는 걸 깨닫고 그냥 입을 닫았다.

“응? 그런데 주인은 뭐 얻은 거 없어? 스킬 같은 거 말이야.”

“글쎄. 그게 그렇게 한 번에 얻을 수 있는 게…….”

자신의 재능을 알기 때문에 전혀 기대되지 않았지만 린이 옆에서 보채니 로빈은 문신을 한 번 쓰다듬으며 확인해 봤다.

“응?”

클리어 랭크: G-E

액티브 스킬: 로빈의 눈

패시브 스킬: 영혼의 파트너

뭐야? 한 번에 두 개? 이건 말도 안 되는데?

게다가 로빈의 눈이라니. 저 로빈이 이 로빈을 말하는 건가?

(다음 화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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