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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소설 속 로빈-215화 (215/303)

215화

상태창이 아니라 문신의 정보창으로 보게 된 것도 나름 신기했지만 역시 가장 당황스러운 건 자신이 한 번에 두 개의 스킬을 각성했다는 거였다.

보통의 경우라면 운이 좋았다고 생각하고 넘어가겠지만, 재능 꽝인 자신에게 이런 일이 일어났다는 건 무슨 특별한 이유가 있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아니면 저게 진짜 쓰잘데기 없는 것들이라든지.

로빈은 긴장된 표정으로 자신의 스킬들을 들여다봤다.

“그러니까… 로빈의 눈은……. 분석 쪽 스킬이네. 그리고 영혼의 파트너는 소환 쪽? 에휴, 하긴 나한테 전투 스킬이 떨어질 리가 없지.”

로빈의 눈은 상대를 분석하는 스킬이었다.

여기서 분석이 어느 정도까지 적용되는지는 실제로 사용해 봐야 알 수 있을 거 같았다. 지금까지 자신이 살아온 스타일을 생각해 보면 그리 이상한 스킬을 받은 건 아니었다.

문제는 영혼의 파트너.

패시브인데다 소환 쪽 스킬인데 설명으로는 어떤 방식으로 구현되는지 이해가 잘 되지 않았다. 자신의 성향과 가장 잘 어울리는 단짝을 소환한다고만 설명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거기다 최초 발동 시 필요한 마나의 양도 너무 많았다. 다른 건 몰라도 마나만은 제법 부지런히 모았던 자신도 엄두를 못 낼 정도의 엄청난 양이었으니 말이다.

그나마 다행인 건 외부의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거였다.

“하, 이건 뭔데 랭크도 안 매겨져 있냐?”

심지어 자신의 스킬들은 다른 것과 달리 랭크가 없었다. 따로 숙련하거나 그럴 필요조차 없는 모양이다.

로빈은 이게 좋은 건지, 나쁜 건지 도통 판단할 수 없었다.

“주인, 소환해 봐야지.”

“음, 나도 그러고 싶은데 방법이 없네. 외부의 도움이라… 마나석이라도 사용해 봐야 하나? 아니지, 마나가 가장 많은 놈은 마수 핵이지. 그걸 써볼까?”

감이 전혀 안 잡히긴 하지만 어차피 받은 스킬이니 소환을 해볼 필요는 있었다. 그래서 보관하던 마나 핵을 몇 개 꺼내 정신을 집중하고 소환을 시도했다.

“오!!”

로빈은 보유하고 있는 마나를 몽땅 끌어 소환을 시도하면서 부족한 마나량은 마수 핵으로 보충했다. 패시브 스킬로 각인된 것이라 요령을 금방 깨달을 수 있어 이 정도로 수월한 것이지 그게 아니었으면 엄두도 낼 수 없는 고난이도 작업이었다.

한 개, 두 개, 그렇게 세 개의 마수 핵이 로빈의 몸에 흡수되더니 번쩍이는 섬광과 함께 하늘에서 빛줄기가 떨어져 서서히 형태를 갖춰 가기 시작했다.

“응?”

그렇게 화려한 이펙트가 사라지자 그 자리에는 강아지 한 마리만 덩그러니 남아있었다.

시베리안 허스키 느낌의 조그마한 강아지.

엄청 귀여운 녀석이었다.

하얀색과 검은색이 섞인 복스럽고 부드러운 솜뭉치 같은 털에 초롱초롱한 눈망울로 헉헉대며 꼬리를 거칠게 돌리는 모습이 어찌나 귀여운지 작은 강아지가 나타나 실망한 로빈조차 웃음을 머금을 수밖에 없을 정도였다.

“와, 주인. 이게 뭐야? 엄청 예뻐.”

“그러네, 예쁘긴 한데…….”

로빈은 허탈하게 웃으며 귀여운 녀석을 번쩍 들었다.

“컹컹~ 끼잉~”

“그래도 개라고 컹컹, 하고 우는구나. 너마저 뀨우~ 하면 정말 어이없었을 거 같았는데.”

외형은 전체적으로 허스키와 비슷하나 털이 좀 더 복스럽고 다리가 짧아 귀여움이 더욱 두드러지는 녀석.

로빈은 녀석의 정체를 확인하기 위해 정신을 집중했다.

이름: ??? (영혼의 파트너)

종족: 늑대 정령 (성체)

특성: 귀여움

스킬:

음……. 텄네.

아무래도 이름은 내가 지어주라는 의미에서 비어있는 거 같았다.

종족을 보니 늑대 정령.

생긴 건 강아지 같았는데 개는 아니고 늑대인 모양이다. 그러고 보니 거시기도 없는 게 성별이 있는 생물은 아니었다.

일종의 마나 생명체?

다만 체온마저 따끈따끈한 게 세상의 귀여움을 모두 간직한 녀석이었는데 아무리 봐도 전투용은 아닌 것이다.

원래 이런 녀석들이 각성해 펜리르같이 위대한 소환수가 되는 경우도 있지만, 이 녀석은 어이없게도 저 모습이 성체였다. 다 자랐다는 건 더 이상 포텐을 기대할 수 없다는 뜻이니 그야말로 귀엽다는 것 말고는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이다.

로빈으로서는 서운할 수밖에 없는 결과였다.

“와. 미쳤다, 진짜. 이게 주인의 파트너라고? 하긴 우리 주인이 좀 귀엽긴 하지. 히힛.”

“세상에~ 저게 뭐니!!”

“어머, 어머!!”

특성이 귀여움이라더니 정말 미칠 정도로 귀여운 녀석이었다. 떨어지는 빛줄기에 놀라 달려 나온 가족들도 녀석을 보고는 두 눈을 동그랗게 뜬 채 감탄만 터트리고 있었으니까.

게다가 녀석은 자신의 큐트 포인트를 알고 있는지 낑낑대며 가족들 앞으로 걸어가 옆 구르기로 데굴데굴 구르며 재롱을 떨고 있었다.

“에휴~”

가족들에게 둘러싸여 재롱부리는 녀석을 그냥 내버려두고 로빈은 집무실로 향했다.

녀석이야 어차피 정령이고 패시브 스킬로 소환된 거라 계속 저렇게 있을 테니 가족들에게 그냥 넘긴 것이다. 딱 보니 쟤로 뭘 할 수 있을 거 같지도 않아 별로 신경 쓰이지도 않았다.

자신은 당장 영지를 위해 체계를 정립해야 했으니 말이다.

* * *

“지온 조사는 마쳤나요?”

“네, 영주님. 녹색 큐브의 대기 시간이 7일. 노란색은 20일. 파란색은 120일. 그리고 빨간색은 180일입니다.”

“그래요? 반년이라……. 등급은 어떻던가요?”

“R-B에 U10입니다.”

“그래도 최악은 아니네요.”

가장 위협이 되는 빨간 큐브의 타임 리미트는 6개월.

그 기간 안에 영지의 에이스들이 자신의 패시브 스킬을 마스터하면 빨간 놈이라도 충분히 상대할 만할 것이다.

E에서 S까지 나누어져 있는 등급 중에 B라면 수위권이지만 그래도 가장 높은 등급은 아니었다.

“아마 저런 큐브가 앞으로도 계속 생겨날 거 같거든요? 그래서 저걸 전담하는 팀이 있었으면 좋겠어요. 그러니까 처리 팀 말고 저것들의 생성과 소멸, 그리고 등급 등을 다 기록하고, 병사나 기사들에게 배정해 주는 관리 팀이요.”

“확실히 그렇군요. 앞으로도 계속 생긴다면 리미트에 혼동이 생겨날 수도 있으니……. 급한 일 같으니 서두르겠습니다.”

“네, 지온이 바쁘네요. 우선 관리 팀까지만 만들면 지온도 숨 쉴 만할 거예요.”

로빈과 지온이 관리 팀을 계획하는 동안 영지 각지에서 큐브를 클리어하고 기사들이 복귀했다.

녹색 큐브 정도는 기사들에게 위협도 안 되는데다 어차피 하루에 한 번밖에 클리어하지 못하기 때문에 시간이 오래 걸릴 일도 아니었다.

“G-C에서는 뼈 화살이 잘 먹혀 들어갔습니다. 개의 머리를 달고 돌아다니는 놈이었는데 한 방에 머리가 날아가더군요.”

“클리어했는데 이상한 천 조각이 나왔는데요?”

“난 가죽. 무슨 오크 가죽이라나? 이거 중급 마수 가죽보다도 구린 거 같은데 쓸 수나 있는 건가요?”

확실히 낮은 단계에서는 활도 유용하다는 정보를 얻었다.

자꾸 활에 미련을 버리지 못하는 건 파란색 큐브 중에 군단 전투가 끼어있는 경우도 있었기 때문이다.

아무리 기사들이 강해도 대규모 집단 간의 전투에서는 부상 위험도가 높을 수밖에 없는데 궁수를 적당히 섞으면 전투가 벌어지기 전에 상대의 기세를 누그러뜨리거나 사전에 제거할 수도 있었다.

실제로 소설에서도 황태자가 애써 키운 기사들이 저런 군단 전투에서 제법 많이 죽었다. 난전은 정말 변수의 연속이었고, 아무리 강한 기사라도 뒤에서 날아오는 칼날을 피하기는 쉽지 않았으니까.

그리고 전리품.

대부분 마나석 조각이었지만 종종 이상한 것들이 끼어있었다. 알 수 없는 종이 쪼가리, 천 쪼가리, 그리고 오크 가죽이라는 가죽 몇 장.

“역시 녹색 큐브라 그런지 별로 나오는 게 없네요. 오크 가죽이라, 저건 별로 필요 없을 거 같고요.”

다른 세계라면 몰라도 이쪽은 큐브에서도 유효한 마수가 있어 오크 가죽은 별 의미가 없었다. 큐브에서 나오는 저런 잡다한 것들의 가치는 저걸로 만든 무언가는 큐브에서도 사용할 수 있다는 건데, 무슨 이유인지 마수와 관련된 물건은 저 안에서도 쓸 수 있었으니 말이다.

심지어 거기다 미스릴까지 추가되었다.

“좋아요. 오늘은 수고가 많았어요. 처음 큐브를 클리어하고 스킬을 받으신 분들이 많을 거예요. 평소에는 그걸 단련하는 걸 게을리하지 마세요. 액티브는 힘들겠지만, 패시브 같은 건 평소에도 단련할 수 있어요. 스킬도 중요하지만 진짜 중요한 건 랭크니, 평소에도 신경 써주세요.”

“네! 영주님.”

“그리고 당장은 녹색을 꾸준히 제거하는 것에 초점을 맞출 생각입니다. 기사들은 자신을 단련하고, 이제 병사들이 그걸 처리할 차례죠.”

로빈은 기사들이 그 많은 큐브를 모두 클리어하게 하지는 않을 생각이었다. 특히 이렇게 초반부에는 되도록 많은 인원이 큐브를 접하는 게 유리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었다.

심지어 내일은 자신의 가족들이나, 비전투 인원들까지 전부 2차 각성시킬 생각이었으니 말이다.

“지온도 한 번 들어갔다 오세요. 혹시 재미있는 걸 얻을지 누가 알아요?”

“네, 영주님.”

“문제는 가족들이네. 이분들이 과연 순순히 들어가려고 할까?”

아무래도 가족들의 일이다 보니 조금 생각을 해봐야 할 거 같았다.

오늘 얻게 된 정보와 자신이 미리 알고 있던 정보를 적당히 버무려서 황실 및 주변 영지에 전파한 로빈은 절대 큐브가 터져 나오면 안 된다고 몇 번이나 강조하고 또 강조하며 통신을 마무리 지었다.

특히 자신이 관리하는 5대 방벽 쪽에는 조금 강압적인 태도까지 취하며 신중과 신속을 강조했다. 아무래도 방어구와 무기를 모두 갖추고, 실전 경험까지 풍부한 북부의 영지들이 큐브를 너무 가볍게 여길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서였다.

친절하기 그지없는 큐브 포털.

그냥 차근차근 처리하기만 하면 되는데 대체 왜 위기가 발생하는 걸까?

솔직히 로빈은 이해가 잘 안 되었다. 실제로 오늘 하루 포털 클리어를 진행해 봐도 전혀 문제 될 일이 없어 보였기 때문이다.

기한이 일주일인 녹색 큐브는 솔직히 기사들이 알몸으로 들어가도 충분히 처리할 수 있을 정도였다. 그나마 조금이라도 신경 쓰이는 건 20일 남은 노란 큐브.

하지만 20일이 지나기 전에 상당히 많은 갑옷이 전국에 보급될 것이다. 지금도 대수림 근처 영지에서는 용병들과 기사들까지 가세해 빠른 속도로 중급 마수를 잡고 있기 때문이다.

예전에는 그냥 돈이나 좀 만질 생각으로 뛰어들었던 마수 사냥을 지금은 목숨 걸고 적극적으로 달려들고 있었으니 말이다.

그건 모야족 마을도 마찬가지였다. 전사의 상당수와 예비 전사들까지 나서 대수림에 들어가 중급 마수를 사냥하고 있었다.

사실 올겨울에 대량으로 잡아 가공한 후 황태자에게 유통할 생각이었는데 예상보다 너무 이른 시간에 큐브가 나타나 계산이 꼬여버린 것이다. 하지만 마수 잡는 데는 도가 튼 사람들이니 금방 목표량을 채울 수 있을 거 같았다.

어쨌든 저렇게 마수 가죽이 늘어나면, 어느 정도 무장을 갖추게 될 테고, 노란 큐브도 안전하게 클리어할 수 있게 된다.

그렇게 경험을 쌓은 후 파란 큐브와 빨간 큐브를 도전하거나, 황제에게 도움을 요청하면 충분히 해결할 수 있었으니 소설 속 위기를 쉽게 이해할 수 없는 것이다.

그나마 떠오른 건 소설에서 큐브가 나타난 시기였다.

여름이 지난 후 전염병이 돌고, 룩센 대제가 사망하면서 황태자가 갑자기 황위를 이어받게 된다.

하지만 정쟁 끝에 황제가 된 황태자는 조셉 공작과 3황자를 완벽하게 제거하진 못했고, 조셉 공작과 리아넨 공작까지 신 황제와 대립하며 정국이 매우 어수선했다.

결국 큐브 포털이 나타났음에도 제국의 힘을 한곳에 모을 수 없었던 것이다.

게다가 소설 속 황태자는 큐브 포털의 존재를 전혀 몰라서 따로 대비하지도 못했고, 초기 대응이 어설퍼 피해가 누적될 수밖에 없었다.

“그래, 소설에서야 그렇지만 지금은 황제가 정국을 완전히 주도하고 있어. 그러니 소설하고는 완전 다를 거야. 사방에서 큐브가 터지면서 난리가 나지도 않을 거고.”

하지만 황제가 미리 경고하고, 정보를 공유하면서 정국을 주도해도 문제가 발생하지 않는 건 아니라는 걸 깨닫는 데에는 그리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 * *

바로 그날 밤.

황도에서 날아온 전문은 로빈의 정신을 번쩍 들게 했다. 중부의 영지 두 곳, 북부의 영지 한 곳이 큐브에서 튀어나온 몬스터 때문에 쑥대밭이 되었다는 소식이 전해진 것이다.

“하, 대체……. 어떻게 그럴 수가 있죠?”

긴급한 소식 때문에 모여든 수뇌부를 바라보며 로빈이 한탄하듯 물었다.

그냥 가만히 둬도 큐브 폭발까지 일주일이나 남았다. 노란 큐브 이상은 무려 20일이나 남았고.

(다음 화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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