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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소설 속 로빈-220화 (220/303)

220화

오늘 목표는 노란색 큐브의 중간 등급.

밖으로 나온 리자드맨과 그 차이를 비교하기 위해 일부러 같은 등급을 선택했다.

“Y-C 좋아. 이거다. 응?”

몇 개의 큐브를 뒤지다 등급을 확인하고 입장하려는데 나타나는 정보가 뭔가 좀 달랐다.

[큐브-Y][랭크 C] (U5)

기한: 17일 11시간

등장: 오크 워리어

타입: 일반

큐브에 입장하시겠습니까? (Y/N)

등장과 타입이라.

이건 왜 추가된 거지? 그때와 달라진 거라곤… 스킬뿐인데.

설마 로빈의 눈이?

분명 액티브 스킬이라 외부에서는 발동되지 않는 게 정상일 텐데 역시 등급도 없는 놈답게 발동조차 뭔가 이상한 모양이다.

하지만 이건 예상했던 것보다 더 좋은 효과였다. 미리 상대를 알고 들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

“입장합니다.”

큐브 내부는 처음 들어갔던 녹색 것이랑 별로 다르지 않았다. 일반형이라고 정해진 큐브는 대충 다 이런 형태인 모양이다.

그렇게 다섯 명이 모두 입장한 후, 로빈이 가볍게 진행 상황을 브리핑했다.

“듀발이 선두에 서고, 놈이 나타나면 월연 님이 화살부터 한 발 날리고 시작하죠. 아마 한 놈은 아닐 테니 듀발이 못 잡는 놈은 린이랑 제필 경이 한 마리씩 상대해 주세요. 숫자가 다섯이 넘으면 최대한 수를 줄이는 것에 집중하셔야 하는데 아마 그 정도는 아닐 거예요.”

“네.”

“응, 주인.”

“듀발, 네 액티브 스킬이 도발 계통이라지?”

“예, 영주님. 방패 도발이라고 상대의 시선을 끈다는 데 이게 무슨 말인지…….”

“한번 써봐. 써보면 알겠지.”

영지 정상급 전력으로 이 큐브 정도는 그리 어렵지 않게 클리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니 이쪽 시스템에 얼마나 빨리 적응할 수 있느냐가 차라리 더 중요했다.

물론 무능력인 자신이 끼어있어서 수가 월등히 많으면 좀 불안하지만, 5인 이하 큐브에서 그런 일이 일어나진 않을 거 같았다.

나타난 적은 큐브에 설명된 대로 오크 전사 넷.

익히 알고 있던 돼지 머리 괴물이라기보다는 녹색 피부에 약간 험악한 인상, 그리고 송곳니가 인상적인 모 게임의 오크와 더 비슷한 느낌이었다.

그리고 전사라는 타이틀답게 제법 무장도 잘 갖추고 있었다.

거리는 예전처럼 20미터 남짓, 이미 시위를 당기고 준비하고 있던 월연이 놈들이 나타나자마자 화살을 날렸고, 100미터가 넘는 곳에서도 리자드맨의 머리를 꿰뚫었던 월연답게 가장 선두에 있던 녀석의 머리를 그대로 날려버렸다.

“크아!!”

옆에서 동료 하나가 허무하게 목숨을 잃자 거칠게 포효하며 놈들이 달려들었고, 선두에서 듀발이 큰 방패로 놈의 옆구리를 가격해 쓰러트렸다.

쓰러진 놈은 벌떡 일어나 더 거칠게 듀발만을 노리고 있었는데.

“도발이라더니, 타격으로 상대를 열 받게 하는 건가? 뭔가 좀…….”

한 놈이 죽고 남은 놈은 셋.

그중 하나를 듀발이 상대하니 둘이 남았다.

그리고 그 둘은 제필과 린이 하나씩 잡고 상대했다. 생각 같아서는 듀발에게 다른 놈까지 도발해 보라고 하고 싶은데 흐름을 보니 역시 게임처럼 멀티 탱킹이 가능하진 않은 거 같았다.

“일반적인 형태의 노란 큐브는 듀발 같은 방패 기사는 필요 없다는 거네. 수가 여럿이니 그냥 그 수에 맞춰 각자 솔로잉을 하는 방향으로 가는 게 맞겠고. 결국 중요한 건 그저 기사들의 개인 역량이려나? 그리고 이 로빈의 눈은…….”

“주인. 이놈들, 어제 그놈들보다는 많이 약한데?”

“영지의 기사라면 신입들도 대충 상대할 만한 거 같습니다.”

“그래요. 그럼 빨리 정리하죠. 대충 알아볼 건 다 알아본 거 같네요.”

“응!”

로빈의 명령이 떨어지자 제필과 린이 상대하던 오크 전사가 바로 유명을 달리했고, 월연이 검을 빼들고 듀발이 상대하던 놈의 뒤를 잡아 기습적으로 목을 쳤다. 확실히 영지의 최정예를 상대하기에는 큐브 안의 오크 전사로는 역부족인 것이다.

놈들을 모두 처리하자 빛줄기가 내려오며 예전처럼 보상 상자가 나타났다.

그리고 그 안에는.

“응? 무슨 종이 쪼가리가……. 게다가 이건 뭐라고 쓰여있는지 전혀 모르겠네.”

뭔가 다른 세계의 글인 양 내용을 전혀 알 수 없는 종이쪽지.

그래도 뭔가 있을 수도 있겠다 싶어 품 안에 넣었다.

“보상도 꽝 느낌인데. 주인, 우린 운이 없는 게 아닐까?”

“그렇다기에는 이제 겨우 두 번 아니냐?”

투덜대는 린과 잠시 투덕거린 로빈은 멤버들과 함께 다시 영주 성으로 향했다.

클리어는 어차피 하루에 한 번.

한 번 큐브를 경험한 이상 더 할 수 있는 것도 없었다.

“그런데 월연 님, 화살이 좀 이상하던데요? 뭔가 팽그르르 돌아가는 느낌? 머리를 꿰뚫는 건 그럴 수도 있겠다 싶지만, 아예 날려버렸잖아요?”

“네, 영주님. 스킬을 한번 사용해 봤어요. 액티브 스킬이 스핀 애로우라고, 화살이 회전하면서 날아가는 거라 길래 어떻게 되나 궁금해서 써본 건데…….”

“그래요? 위력이 굉장하네요.”

월연은 스킬 두 가지를 모두 궁술에 관련된 것으로 받았다.

패시브 스킬로 받은 명사수는 화살의 명중률을 올려주는 괜찮은 스킬이었고, 액티브는 아까 썼다시피 화살이 회전하며 파괴력이 올라가는 그 스핀 애로우였다.

제필의 경우, 상급 대검술과 강력한 일격.

그리고 듀발은 상급 방패술과 방패 도발.

딱 봐도 두 스킬이 지금까지 주로 사용해 온 무기와 일치했다.

다만 린을 제외한 모두가 두 가지 스킬을 얻었다는 게 조금 이상했다. 대체 저 녀석은 왜 한 가지밖에 얻지 못한 걸까?

“그러고 보니 랭크가 올랐네요. 손등에 있는 마크가 바뀐 것도 그렇지만 스핀 애로우의 숙련도도 올랐어요.”

“생각보다 빠르네요. 한 발밖에 안 쐈는데 바로 오르다니……. 아무리 낮은 랭크라지만 좀 신기한 일이군요.”

앞으로도 통계를 계속 내봐야 알겠지만, 본인의 랭크와 큐브의 수준 차이에 따라 얻는 포인트, 그러니까 획득하는 경험치 같은 게 차이가 있는 거 같았다. 이건 더 많은 표본이 있어야 확신할 수 있겠지만 말이다.

* * *

아침부터 부산하게 움직여 큐브 하나를 제거하고 돌아온 로빈은 표정이 그리 밝지 않았다.

Y-C급 큐브를 처리하며 큐브가 터지지만 않는다면 충분히 감당할 수 있다는 확신을 얻은 건 긍정적인 일이지만 문제는 바로 자신의 스킬이었다.

스킬의 효용성이 너무 떨어져서 그런 걸까?

그건 아니었다. 오히려 로빈의 근심은 그 스킬이 너무 대단하다는 것에서 시작되었다.

로빈의 스킬인 로빈의 눈.

이건 기대했던 것보다 더 대단한 스킬이었다.

큐브에 들어가기 전에 상대의 스타일과 종류를 미리 알 수 있다는 것만 해도 상당했는데 내부에 들어가니 그 효과가 더 탁월했으니 말이다.

다른 사람들에게 말하진 않았지만, 적들이 등장했을 때 로빈은 제법 놀랐다. 놈들의 약점과 움직임, 그리고 특성까지 모두 한눈에 들어왔기 때문이다.

놈들에게 치명적인 목과 오른쪽 가슴에는 붉은빛이 들어와 그곳이 약점임을 알려왔고, 전투를 오래 지속할수록 점점 강해진다는 오크 전사의 고유 특성인 전투 아드레날린까지 확연히 느껴졌으니 어찌 놀라지 않을까.

스킬 로빈의 눈은 그야말로 놈들을 상대하는 공략집이요, 치트키에 가까웠다.

비록 오크 전사처럼 그리 강하지 않은 적에게는 특별한 의미가 없지만 앞으로 상대할 보스급 몬스터를 생각해 보면 이런 정보의 유무는 파티의 생존을 좌우하게 될지도 몰랐다.

이렇게 좋은 걸 받은 주제에 로빈의 마음이 무거워진 이유는 바로 그의 미천한 전투 능력 때문이었다.

지금은 경험 삼아 파티와 함께 큐브를 클리어하고 있지만 정말 어려운 난이도의 큐브는 그가 들어가는 것 자체가 민폐였다.

전투 능력이 없는 그가 들어감으로써 정작 전력이 될 수 있는 파티원이 합류할 수 없는데다, 때에 따라서는 그를 호위하기 위해 전력을 오히려 따로 빼야 할 수도 있었다.

오늘만 해도 오크의 수가 다섯이었으면 듀발이 로빈을 보호하기 위해 내려오고, 린과 제필, 그리고 월연이 넷 모두를 상대해야 했을 거다.

“진짜 너무하네. 양자택일이라 이거지? 정보를 얻고 전투력을 낮추든지, 아니면 정보 없이 최상급의 전력으로 적을 상대하든지.”

솔직히 그냥 없다고 생각하는 방법도 있었다.

사실 이 정도로 직관적인 스킬을 얻을 거라고는 기대도 하지 않았으니 아무것도 못 얻었다고 생각하면 그리 억울할 것도 없었다.

하지만 사람 마음이란 게 늘 그렇듯, 기껏 좋은 걸 얻었는데 그냥 썩힌다고 생각하니 속이 뒤틀려왔다.

“전투력이라……. 결국 내 전투력이 문제라는 거지. 큐브처럼 뭔가를 공략할 때는 정보가 생각보다 더 중요해. 특히 전혀 생소한 무언가와 싸울 때는 더 그러겠지. 최소한 내가 1인분 이상의 가치가 있다면… 영지를 위해서라도 뭔가 하는 게 맞겠어.”

물론 지금 당장 로빈이 뭘, 어떻게 할 순 없었다. 스스로가 어떻게든 1인분 이상 할 수 있는 방법을 찾기 위해 앞으로 계속 고민하는 것 외에는 말이다.

답답한 마음을 진정시키기 위해 로빈이 린과 함께 거리로 나서려는데 저 앞에 백랑이 보였다.

“오! 영주님. 어디 가나?”

“답답해서 마을 좀 구경하게요. 백랑 님은요?”

“호, 그래? 나도 그렇지. 아침에 큐브 하나 해치우고 나니 이제 뭘 할까 고민스럽더라고. 우리 영지도 아니라서 뭔가 참견하기도 그렇잖아?”

“그렇긴 하네요. 그럼 같이 갈까요?”

“그거, 좋지.”

“…이렇게 데이트에 또 불청객이…….”

뭔가 불만이 있는 건 린뿐이었다.

아무래도 로빈과 단둘이 호젓한 시간을 가지려고 했던 모양이다.

로빈 역시 이런 상황에서는 그런 생각이 들 거 같았지만 오늘은 왠지 린보다 백랑과 대화하는 게 더 끌렸다.

“큭큭, 저 욕심쟁이 딸내미 봐. 어제 그렇게 비벼댔으면서도 만족을 못 하네. 철저히 독점으로 밤새 즐겼으면 됐지, 뭘 더 어쩌려는 거야?”

“어? 그게 들렸어요?”

“응. 여기 방음이 완전 꽝이더라고. 어떻게 욕실에서 떡 치는 소리가 내 방까지 들려? 우리 영주님이 아주 상남자야. 하하하. 우리 딸내미가 그런 소리를 낼 줄은 꿈에도 몰랐거든.”

“하하…….”

이 정도면 그냥 일상이지만 좀 머쓱하긴 했다.

장인어른에게 정력과 성적인 역량을 대놓고 칭찬받는 기분이란 참…….

하지만 말을 꺼낸 백랑은 진심으로 기분 좋아 보였다. 이쪽 세계의 분위기를 봤을 때 자신의 딸이 충분히 사랑받는다는 그런 흐뭇함이 아닐까 싶다.

“전사들은 다들 괜찮은가요? 부상자들은 대부분 전사들이었잖아요?”

“아. 그놈들이 호전적이라 뭐, 그렇지. 기사들은 그래도 공수가 균형 잡혀있는데 그놈들은 영……. 그래도 사제님들이 힘써주셔서 고비는 다 넘겼지. 하루 이틀이면 괜찮아지지 싶어.”

“다행이네요. 그럼 사제님들은 지금도 전사들을 돌보고 계시는가요?”

“아아, 지금은 영지의 다른 부상자들을 보살피고 있나 보던데. 여신님의 이름을 다시 알릴 좋은 기회라나? 몸이나 축나지 않을까 걱정스럽더라고.”

“하, 그래요?”

사제들의 말대로 여신님의 이름을 다시 알릴 좋은 기회이긴 한데, 백랑의 말처럼 몸이나 상하지 않으면 다행이었다. 얼핏 듣기로도 부상자가 제법 많았으니 말이다.

물론 이곳에서 일하는 치료사들도 있겠지만, 즉각적인 효과를 발휘하는 사제의 치료를 원하는 사람이 더욱더 많을 것은 분명했다.

“그러게요. 사제님의 치료와 봉사를 어떻게 막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좀 그렇네요. 물론 좋은 일이긴 한데…….”

하지만 로빈은 그녀들의 봉사를 막을 권리도, 생각도 없었다. 도의적으로나 전략적으로나 그녀들의 행동은 모두에게 도움만 되었기 때문이다.

“그럼 오늘 아침에는 어떤 큐브에 들어갔다 온 건가요?”

“어제 그놈들이 Y-C래서 그쪽으로 가봤는데 영 입맛만 버렸어. 무슨 오크? 그런 거 같았는데 잡고 나니 마나석 굵은 거 하나 나오더라고. 어쩔까 하다가 저쪽 병사들에게 던져주고 왔어. 영지 꼬락서니를 보니 그런 거라도 있어야 할 거 같아서 말이야.”

“그쪽도 그런가요?”

“아마 멀쩡한 전사 놈들은 다 비슷한 거에 들어갔을걸? 생각하는 게 다 거기서 거기라.”

인상적인 건 제법 귀중한 보석인 마나석을 그냥 던져주고 왔다는 백랑의 말이었다. 사실 로빈 역시 뭔가 나왔으면 적당히 미네 영지 쪽에 넘기려고 했으니 말이다. 물론 이상한 쪽지만 나와서 그럴 수 없었지만, 마음은 그랬다.

“영지가 많이 상했네요. 미네 남작이 고민스럽겠어요.”

“그러게. 우선 병력을 꾸리는 것부터가 문제겠지. 자금을 지원받아도 인력이 없잖아? 외지인을 끌어들이는 것도 쉽지 않고.”

“그래서 그 귀한 마나석을 던져주고 왔어요?”

“훗. 이제 이 백랑도 그 정도는 된다, 이거지. 우리 마을도 은근히 부자라고. 그리고 그 돌덩이야 우리 영지에서도 계속 튀어나올 거잖아?”

(다음 화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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