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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소설 속 로빈-224화 (224/303)

224화

상태창에 이름 부분이 ???인 걸 보니 자신이 지어줘야 하는 모양인데 갑자기 미네 영지 일이 터지면서 전혀 신경 쓰지 못했다. 돌아와서는 기사들의 일에 정신이 팔려 또다시 잊어버렸고.

다른 건 몰라도 이름조차 지어주지 않은 건 자신이 좀 무심했다.

“요 녀석이 얼마나 큰 공을 세웠는데요. 가족들이 아무런 이견 없이 큐브에 들어갔다 오신 것도 바로 요 귀염둥이 때문이라고요.”

“그건 또 무슨 소리야?”

“로빈이 스킬로 요 녀석을 소환했다는 정보에 그분들도 귀염둥이를 노리고 들어가셨거든요. 사실, 저도 좀 그랬고요. 결과는 물론 꽝이라서 서운했지만 말이에요.”

“아, 그랬어? 그런데 앤은 뭘 얻은 거야?”

“음… 다중 작업이라는 건데요. 무슨 멀티태스킹? 한꺼번에 두 가지 일을 처리하는 그런 건가 봐요. 왜 이런 게 생겼는지는 모르겠지만 덕분에 서류 보기는 편해진 거 있죠?”

“그러네, 왜 그런 게 생겼지?”

어려서부터 겉과 속이 다르게 살아온 시간이 길어서 그런 건가? 근데 그게 저거랑 연관이 있나?

“혹시 일하면서 다른 생각을 하거나 그런 적이 많아?”

“다른 생각이라면……. 아!”

“응? 있어?”

“아, 그게요. 히힛. 서류 작업하면서 일하는 로빈의 모습에 우아한 생각을 하거나 품격 있는 상상을 한 적은 제법 있어요. 일하는 모습이 좀 멋있달까? 설마 그것 때문일까요?”

“…우아한……. 뭐, 대충 어떤 건지 알 것도 같네.”

어쩐지 자꾸 누가 힐끔힐끔 쳐다보는 기분이 들더라니.

물론 자신 역시 일하는 다이앤의 모습을 바라보며 뭔가 몹쓸 상상을 하긴 했다. 빨리 스타킹을 개발해 저 오피스 룩에 추가하고 싶다든지, 아니면 지금 바로 봉사받으며 서류를 살펴보고 싶다는 그런 상상 말이다.

하지만 상대도 그랬다니 뭔가 좀 신기한 기분이었다. 일에 열중하는 거 같았는데 그사이에 그런 귀여운 생각을 했단 말이지?

“컹컹!”

“아, 말이 또 샜잖아요. 그래서 우리 귀염둥이 이름은요?”

우리가 또 자신들만의 세계에 빠져들려고 하자 주위를 환기하는 저 녀석.

계속 저 녀석이라고 부르는 건 너무 미안한 일이니 이름부터 지어줘야 할 거 같았다.

“앤은 어떻게 생각하는데? 무슨 생각이 있을 거 같은데.”

“음……. 제가 생각한 이름이 있긴 해요. 요 귀여운 녀석에게 딱 적당한 이름이요. 그러니까, 라이칸 드라우제라츠 밀라드리오스 3세?”

“…뭐야, 그건. 황제 폐하도 쓰지 않으실 거 같은 길고 거창한 이름인데?”

로빈이 짜게 식은 눈으로 타박하자 다이앤은 고개를 저으며 단호하게 반박했다.

“거창하다니요. 우리 귀염둥이의 위엄(?)에 딱 어울리는 이름이라고요!”

“저건 이름이라기보단 존성대명 같은 느낌이잖아? 너무 길어. 그러니까 음……. 그냥 칸이라고 하자. 의미도 나쁘지 않고 부르기도 편해서 이게 괜찮은 거 같아.”

“그건 너무 단순해요. 그러니까 우아하게 라이칸 드라우제라츠 밀라드리오스 3세로…….”

“강아지 이름 부르다가 숨넘어가겠다. 그리고 3세는 무슨……. 1세랑 2세는 어디 가고 바로 3세야?”

“1세는 제가 어릴 때 안고 자던 강아지 인형이고, 2세는 황실 정원에 있는 멍멍이 조각상이거든요. 그러니까 3세. 제가 로빈에게 대부분 양보하지만 이건 양보하기 힘든 일이에요.”

황당해하는 로빈에게 가슴을 쭉 펴고 설명하는 다이앤.

은근히 진지한 게 농담 같지 않았다. 게다가 강아지 인형과 강아지 조각상에 저런 이름까지 붙여놓은 걸 보면 강아지에 대한 애정이 상당히 깊은 모양이다.

정말 그렇게 붙일까?

앤이 저렇게까지 나오는데 굳이 다른 이름을 붙일 이유도 없긴 했다. 저렇게 이름 붙여도 애칭으로 칸으로 부르면 상관없기 때문이다.

“그래, 앤이 원한다니 그렇게 하자. 대신 평소에는 그냥 칸으로 부르기다? 솔직히 그 이름은 부르기 너무 불편해.”

“헤헤. 좋아요, 로빈.”

어쨌든 그렇게 강아지, 아니 늑대 정령의 이름은 라이칸 드라우제라츠 밀라드리오스 3세가 되었다. 평소에는 그냥 칸이라고 부르겠지만 말이다.

“그런데 이 녀석도 뭘 먹여야 하나?”

녀석의 재롱을 지켜보다가 문득 이 녀석은 뭘 먹고사나 궁금해졌다. 정령이라 음식을 먹지 않더라도 무슨 마나라도 먹여야 하지 않을까 싶어서였다.

로빈이 고개를 갸웃거리자 그런 그를 짜게 식은 눈으로 바라보는 다이앤. 지금까지 얼마나 관심이 없었으면 이제 와서 그런 걸 묻냐고 은근히 타박하는데 솔직히 할 말이 없었다.

“우리 칸은 뭐든지 다 잘 먹거든요. 밥 먹을 때 우리가 먹는 걸 적당히 덜어주면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며 좋아하는데 그게 또 얼마나 귀여운지…….”

“…그런 걸 먹여도 되는 거야?”

아니, 개한테 이상한 걸 먹이고 있는 주제에 나한테 그런 타박을……. 그런데 이쪽 세계에도 개 사료 같은 게 있나?

“그럼요. 원래 개들은 다 그렇게 먹어요.”

앤과 이런 이야기를 하고 있자니 자신의 상식과 너무 동떨어져 할 말이 없어졌다. 어차피 정령이고 진짜 개도 아닌데, 뭐 아무거나 먹이면 어떻냐는 생각이 들기도 했고.

어쨌든 저 녀석은 잡식성에 소화 능력도 상당한 모양이니 그냥 지켜보기로 했다.

“어제 어머님, 아버님이 황도에서 돌아오셨거든요? 며칠간 황후 폐하의 말벗이 되어 드렸나 봐요. 아무래도 황제 폐하께서 바깥일 때문에 바쁘시니…….”

“아? 그래?”

그러고 보니 대관식과 결혼식을 동시에 치르기로 했는데 대관식 중에 그 난리가 났으니 결혼식은 흐지부지되었고, 사고가 계속 터져 우리 새 신부 황후 폐하는 며칠째 독수공방하고 계셨을 거다.

어제쯤 중부의 일이 대충 마무리되어 황제 폐하가 환궁하셨지만, 썩 기분 좋은 일은 아니었을 거고.

상황 전하 내외분이 홀로 남은 황후를 위해 잠시 궁에 머물다 오신 모양이다.

“전 제가 제일 불운한 신부인 줄 알았거든요? 그런데 저보다 한술 더 뜨는 분이 계실 줄은 몰랐지 뭐예요.”

“…그게 그렇게 되나?”

결혼식 날 신랑이 가슴에 볼트를 얻어맞은 다이앤과 결혼식 날 큐브 포털이 열려 결혼식 자체가 흐지부지된 황후.

뭐가 더 불운한지 비교하는 건 무의미한 일이지만 다이앤이 저렇게 생각하며 정신 승리하고 있다면 그건 그거대로 나쁘지 않았다. 사실 그 규모를 봤을 때 황후의 결혼식이 더 스펙터클하기도 했고.

“황후 폐하가 씁쓸하긴 하겠네.”

전 레니아 공녀, 그러니까 황후 폐하의 기질이 굳센 편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전투 인원은 아니었다. 황제가 원정을 나가면 얌전히 황도에서 황실을 지켜야 하는 것이다.

사실 황제가 그렇게 자주 원정을 나갈 수 있는 것도 황후의 정치적 식견이 대단해 황제 없이도 적당히 국정을 운영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원정을 나가게 되면 황후보다 애첩이자 여기사인 아이리스가 더…….

“와, 아이리스 경. 황후한테 엄청나게 혼나겠는데?”

“응? 뭐가요?”

“아니, 나보다 더 자주 원정을 나갈 황제 폐하가 항상 대동하는 게 바로 아이리스 경이거든? 사실 황제 폐하의 첩이기도 하고. 어제 린이 갈굼(?)당한 걸 생각하면 아이리스 경은…….”

고작 며칠 독점했다고 다이앤과 실비아의 집중 견제를 받은 린의 모습을 떠올리면 다이앤보다 훨씬 조교 능력이 뛰어난 황후가 아이리스를 그냥 오냐오냐할 리가 없었다. 물론 그건 그쪽의 사정이지만 어제 린이 시달린 걸 떠올리니 뭔가 좀 짠하달까?

“후후, 달콤한 열매를 따먹었으면 그만큼 책임이 따르는 게 인생사랍니다, 로빈. 인생의 당연한 진리죠.”

“끙.”

그게 왜 그렇게 되는지 어이가 없었지만, 다이앤이 저렇게 단호하게 나오니 그냥 한발 물러나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다른 건 몰라도 독점은 절대 안 되는 모양이니까.

“영주님, 손님이 오셨는데요?”

“누구지? 일 좀 하려고 했더니 또 누가…….”

“그러니까 로아 마담이라고 푸시 캣츠의 지배인입니다.”

“응? 마담 로아? 그 사람이 왜…….”

그렇게 다이앤과 적당히 수다를 떨고 이제 일을 해보려는데 예상치 못한 손님이 찾아왔다.

물론 다이앤과 수다를 떨지 않았으면 이미 몇 가지 사안을 다 검토했을 시간이었지만 그런 것은 생각하지도 않고 갑자기 찾아온 손님에게 투덜거리던 로빈은 자신을 찾아온 사람이 푸시 캣츠의 마담 로아라는 사실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굳이 자신을 찾아올 이유가 없는 푸시 캣츠의 마담 로아가 왜 찾아왔는지 짐작할 수 없었으니 말이다.

사전에 예고도 없이 찾아온 방문.

이걸 만나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하는데 마담 로아가 로빈의 고민을 한 방에 날려주었다.

“윗선에서 전할 말이 있다는데 어떡할까요?”

“그래요? 들여보내세요.”

원래 이렇게 사전 연락도 없이 영주를 찾아와 바로 만나려 하는 건 상당한 무례였지만 딱 보니 자신의 의사가 아니라 황제가 보낸 모양이다.

어차피 사전에 약속된 것도 아니고 또 무슨 피곤한 일을 맡길 거 같아 그냥 돌려보내고 싶은 마음도 살짝 들었지만, 그래봤자 서로 얼굴만 붉힐 테니 우선 무슨 말을 하나 들어보기로 했다.

* * *

“갑자기 찾아와 무례를 범했습니다, 후작님. 부디 용서하시길.”

“괜찮아요. 그런데 무슨 일이죠?”

마담 로즈가 황도로 돌아가고 이쪽 지부는 저 마담 로아가 맡아 관리하고 있었다. 로즈보다는 훨씬 부드러워 보이는 저 여자 역시 상당한 실력자임이 분명했고.

사실상 저 여자가 상황 전하의 호위를 책임지는 현장 관리자인데 실력이 없으면 그게 더 웃긴 일이었다.

“다름이 아니라 윗선에서 따로 연락을 드리고 싶다고 이 통신 수정구를 전하라 명하셨습니다.”

“아, 그래요?”

할 말이 있으면 그냥 영주 성에 있는 통신 수정구로 넣으면 되는데 굳이 이렇게까지 하는 황제의 행동이 의아하면서도 그 이유가 궁금하기도 했다. 아마 이 수정구를 통해 황제와 연락하면 그 이유를 알 수 있으리라.

“로빈 그레이츠입니다.”

[아, 후작이군. 원래 그제 연락했을 때 전하려 했는데 좀 애매한 문제라 이렇게 따로 연락했네. 앞으로도 이런 일이 생기면 로아를 보낼 테니 그렇게 알고 있게나.]

아니, 굳이 뭘 그렇게까지. 애매한 문제는 그냥 연락하지 않으면 되지 않나?

하지만 그런 생각을 입 밖으로 꺼내지는 못하고 그냥 속으로만 삼켰다.

“네, 뭐. 그러죠. 그런데 무슨 일이신지…….”

[남부 연합국에서 상당한 규모의 선단이 출발했네. 목적은 마수 가죽이고. 이게 불행이라면 불행인데 남부 연합국은 마수 같은 게 없지 않나.]

“예, 그렇죠. 평소라면 행운이겠지만 지금 같은 상황에서는 불행이겠네요. 그런데요?”

[남부 연합국에서 가장 빠르게 마수 가죽을 가져갈 수 있는 곳이라고 해봤자 항구를 끼고 있는 자이트와 그레이츠뿐이네. 그래서 후작에게 그들을 부탁하고 싶군.]

“아… 그렇죠. 배를 타고 오면 그렇네요.”

[도착 예정은 대략 열흘 후. 남부 연합국과 제국의 관계가 그리 원활하지 못하니 처신은 후작이 알아서 해주게.]

남부 연합국에서 여기까지 배를 몰고 오는 시간을 생각했을 때 열흘이 남았다는 건 큐브가 나타나자마자 서둘러 준비해 바로 출발했다는 의미가 된다.

우리 쪽도 정신이 없어 마수 가죽과 큐브 포털의 연관성을 따로 알리지 못했을 텐데 대체 어떻게 알고 그렇게 서둘렀는지 의아할 뿐이었다.

그래서 그걸 물었더니 황제의 대답이 좀 재미있었다.

[처음에 들어간 기사의 갑옷이 사라졌는데 내피로 넣은 혼 래빗 가죽만 남았다더군. 그래서 그걸 알아챘다는 거야. 어쨌든 그것도 마수 가죽이니 그럴 수밖에.]

큐브에 입장하자마자 갑옷이 사라지고 내피만 남은 그 기사가 어떤 기분이었을지 생각하니 그냥 헛웃음만 났다. 그래도 그 기사가 그 사실을 위로 전한 걸 보니 녹색 큐브에 들어가 무사히 살아나오긴 한 모양이다.

“그런데 이 이야기를 굳이 비밀스럽게 전하실 이유가 있나요?”

[아아, 여기까지는 공식적인 황실의 입장이고, 이 뒤에 이어질 이야기가 문제네. 별일 아니지만 그래도 황실의 체면과 관련된 일이라서 말이야. 후작 개인적인 이야기도 들어가 있으니 겸사겸사 조심스럽더군.]

이 양반이 또 무슨 소리를 하려고 저러나?

황궁 통신실에는 당연히 관리관이 있고, 황제가 지방 영주에게 통신으로 지시를 내릴 때는 기록관까지 대동하는 게 관례였다.

그러니까 이제부터 전하는 이야기는 일종의 오프 더 레코드. 다른 사람들에게 별로 알리고 싶지 않은 이야기라는 의미였다.

[마수 갑옷을 좀 더 빠르게 정착시키기 위해 남부 연합국과의 갈등을 야기한 바 있었지. 그 때문에 황실은 이 일에 부정적인 태도를 견지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야.]

“그거야 그렇죠. 그쪽에서 특별히 무슨 태도를 취한 것도 아닌데 원하는 대로 해주면 그냥 실없는 사람이 될 뿐이니까요.”

(다음 화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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