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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소설 속 로빈-227화 (227/303)

227화

“그냥 영주 성에 숙소를 마련하면 되지 않겠습니까? 아니면 대수림 안에서 베이스캠프를 꾸리든지요. 솔직히 그 사람들에게 준다고 생각하니 가죽이 아깝군요.”

“그게 될까요? 영주 성에 머물면 대수림까지 왕복으로 다섯 시간이 넘으니 왔다 갔다 하다가 일 다 볼 테고, 외지인이 대수림에서 합숙을 하는 건 정말 미친 짓이잖아요? 리아넨 공작가를 안내한 것처럼 우리가 따로 신경 써줄 의리가 있는 것도 아니고요. 솔직히 그런 여력도 없죠. 전사들도 다들 마수 사냥과 큐브에 집중하고 있으니…….”

“그렇죠. 그런데 영주님이 너무 신경 쓰시니 드리는 말씀입니다. 굳이 우리가 그런 편의를 봐줄 필요는 없잖습니까? 우리 혼 래빗 가죽으로 그레이트 A나 만들어 파는 족속들인데요. 물론 황제 폐하께서 말씀하시긴 했지만 그게 꼭 그들이 원하는 대로 해달라는 뜻은 아니었고요.”

그게 그렇게 되나?

저야 솔직히 그레이트 A에 대해서는 별생각 없었는데 지온은 그게 상당히 마음에 안 들었나 보다. 황제가 뒤에서 따로 전언을 보냈는데도 저런 반응이라니.

하지만 남쪽 요새에 숙소를 만드는 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니 지온의 말처럼 영주 성에 머물 곳을 준비한 후에 그들과 상의해 봐야 할 거 같았다.

시간이 흘러 남부 연합국에서 출발한 마수 원정대(?)가 도착할 시기가 되었다.

로빈은 지온의 의견대로 그들의 편의보다 영지가 관리하기 편한 쪽으로 영주 성에 그들이 머물 장소를 마련하고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저 멀리에서 큰 배가 들어온다는 소식이 전해졌을 때, 그들을 만나볼 생각으로 로빈이 직접 항구까지 마중 나갔다.

“와, 미쳤네. 저건 단순히 마수나 몇 잡겠다고 온 게 아닌데?”

“예상보다 더 대단한 규모군요. 대체 무슨 생각인지…….”

저들의 배는 영지의 자랑인 그레이츠 호보다 큰 것으로만 무려 아홉 척.

전투 병력 600명 전원이 이쪽으로 들어온다고 쳐도 너무 거창한 행렬이었다.

“전투 병력 600과 그에 걸맞은 병참을 준비하면 대충 규모가 얼마나 될까요?”

“아무리 계산해도 저 배 두 척이면 충분할 거 같습니다.”

“그렇죠? 그럼 결국 다른 뜻이 있다는 거네요.”

“네, 우선 만나봐야 무슨 생각인지 알 수 있겠지만…….”

그렇게 지온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데 가장 먼저 도착한 기함에서 일단의 무리가 내리는 모습이 보였다. 고급스러운 갑옷을 입은 젊은 여성과 그녀의 부관으로 보이는 중년의 남성, 그리고 시종, 시녀로 보이는 남녀 열 명 남짓이었다.

그들도 로빈 일행을 발견했는지 그중 중년의 남성이 로빈 쪽으로 먼저 다가와 인사를 건넸다.

“남부 연합국 북국, 아우레우스의 맥라스 남작입니다. 그레이츠 영지 분입니까?”

“전 그레이츠 후작령의 행정관 지온 루페시, 이쪽은 저희 영주님 그레이츠 후작님입니다.”

“아, 이분이… 그러고 보니…….”

“로빈 그레이츠예요. 저 일행의 대표 분이신가요?”

“아, 아닙니다. 후작님이 직접 나오실 줄은 몰라서……. 그럼 바로 저희 공주님을 모시고 오겠습니다.”

어쨌든 큰아버지 격인 맥라스 남작이 저를 보고 놀라며 물러가는 사이, 로빈은 맥라스 남작의 모습과 그가 남긴 한마디 때문에 혼란에 빠져버렸다.

“허, 공주님이라고? 저 모습만 봐도 지체 높은 여성이란 건 대충 알겠는데 그게 공주인 줄은 몰랐네요. 지온, 저쪽 공주에 대하여 뭔가 아는 게 있나요?”

“북국 아우레우스라면……. 공주가 둘이군요. 첫째 공주는 이미 결혼해 가정을 이뤘으니 아닐 테고, 아마 둘째 공주일 겁니다. 유나 아우레우스. 꽃보다 검을 사랑해서 공주기사라고 불린다는군요.”

“공주기사라……. 딱 어떤 인물인지 알 거 같네요. 그런데 왜 공주를 여기까지 보냈을까요?”

“저도 그거까지는…….”

“하, 이런 건 또 예상 밖이네. 그런데 남부 연합국 사람들은 제국인이랑 많이 다르네요. 남부 연합국 사람과 해상 왕국 사람이 섞이면 구별하기 힘들다고 했으니 해상 왕국 쪽도 저런 식이겠죠?”

“네, 그렇다고 알고 있습니다.”

남부 연합국 사람들은 동양인과 비슷한 느낌이었다. 제국민이 서양인과 거의 비슷하게 생겼으니 서로 확연히 다른 느낌이랄까?

저 정도 차이면 가문에서 아버지의 근본을 의심하는 것도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었다. 외탁도 정도껏이지, 동양인 아버지 밑에서 서양인이 튀어나왔으니 만약 자신이 그 입장이라도 당황하긴 했을 것이다.

그 뒤에 이어진 그들의 행동을 옹호하는 건 아니지만 출신을 의심하는 거 자체는 어쩔 수 없는 일인 거 같았다.

* * *

“그레이츠 후작. 본인은 북국 아우레우스의 두 번째 꽃, 유나 아우레우스라고 한다. 만나서 반갑구나.”

“예, 로빈 그레이츠입니다. 우선 안으로 드시죠.”

“좋다. 안내하라.”

당당하게 자신을 소개한 유나 공주를 대동해 도착한 곳은 존이 운영하는 고급 여관.

오늘을 대비해 객실을 완전히 비워 놓은 후였다.

우선 여기에서 1차 대담을 마치고, 후에 어떻게 할지 결정할 생각이라 굳이 영주 성으로 안내하지 않았다. 물론 평범한 관리나 장군이 아니라 공주가 올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지만 말이다.

넓은 식당 안에 따로 마련된 테이블에 로빈과 지온, 그리고 유나 공주와 그녀의 부관인 맥라스 남작이 동석했다.

잠시 이어진 침묵.

하지만 도대체 무슨 말을, 어떻게 시작하나 고민하는 로빈에게 유나 공주가 단도직입적으로 자신들의 목적을 밝혔다. 이리저리 계산하고 재는 귀족들의 대화 방법과는 전혀 다른 화끈한 스타일의 화법이었다.

“우리 북국 아우레우스는 이곳 그레이츠 영지와 연수하고 싶도다. 이곳에 자리 잡고 주기적으로 마수 가죽을 공급받아 북국의 안정을 꾀할 생각이다.”

북국 아우레우스의 주장은 간단했다.

단순히 단발적인 거래에 그치지 않고, 주기적으로 마수 가죽을 얻고 싶다는 것.

하지만 황실과의 관계가 그리 좋지 못하니 황실을 통해 수입하는 것보다 자신들이 직접 잡아 가죽을 얻을 생각이란다.

그리고 그 대가는…….

“물론 공짜는 아니다. 연수와 우호의 대가로 나 유나 아우레우스를 그레이츠에 바치겠도다.”

응? 뭐야? 설마 정략결혼?

그러니까, 뜬금없이 나랑 결혼하자고?

눈앞의 공주기사, 유나 아우레우스.

단아한 인상의 동양풍 미인인데다 건강한 몸매를 자랑하는 매력적인 여인이었다.

거기다 공주인 동시에 기사라는 것도 대단한 플러스 포인트였다. 야겜이나, 야설, 야애니에 왜 공주기사라는 소재가 자주 등장하는지 알 수 있을 정도였으니까.

하지만…….

“거절하겠습니다, 공주님. 그냥 얌전히 마수를 사냥하고 돌아가시죠.”

저렇게 대놓고 빨대를 꽂는다는데, 누가 반가워할까.

그리고 그런 걸 떠나서도 저렇게 늠름하고 건강한 아내는 린 하나로 충분했다. 고귀한 신분의 아내는 다이앤이 있었고.

어쨌든 로빈은 더 이상 아내를 늘릴 생각이 없었다.

“이럴 수가……. 나를 거절하다니. 분명 제국의 남성들은 남부 연합국 미녀에게 헤롱헤롱한다고 들었거늘…….”

“아니, 그런 문제가 아니라…….”

서양 남성에게 동양 미녀에 대한 묘한 판타지가 있다는 건 익히 알고 있었지만, 이곳 역시도 그런 경향이 있나 보다.

물론 동양인 마인드인 로빈 역시 친근한 느낌의 유나 공주가 다른 의미에서 마음에 들긴 했다. 솔직히 아직 아내가 없었다면 조금 혹할 정도의 미녀였으니 말이다.

어쨌든 그렇게 유나 공주가 절망하고 있을 때, 맥라스 남작이 말을 이어받았다.

“저희가 많은 걸 바라는 게 아닙니다. 그저 저희가 마수를 잡을 수 있게 자리를 만들어달라는 것뿐이죠. 사냥은 전적으로 저희가 할 테니 그레이츠 쪽에서는 크게 손해날 것도 없습니다.”

“그거야 그렇겠죠. 그런데…….”

그냥 받아들이고 그들에게 사냥터를 제공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었다. 이곳에 상주해서 계속 사냥하겠다는 건 그만큼 영지가 마수의 위협에서 안전해진다는 의미도 있었으니 말이다. 물론 공주를 받는 건 꺼림칙하니 적당히 다른 대가를 받으면 그건 그거대로 괜찮았고.

하지만 딱 보니 저들이 여기에 자리 잡으면 왠지 엄청 피곤할 거 같았다.

우선, 제국의 영주는 황실을 통하지 않고 남부 연합국과 직접 거래할 수 없었다. 물론 지금이야 여러 가지 사정이 겹쳐서 황실에서 허가한 것이지만 단발성으로 그치지 않고 장기화되면 훗날 특혜 논란이 터질 수밖에 없다.

그리고 황제가 로빈을 옹호하든 말든, 귀족 회의에 이 안건이 들어가면 어쩔 수 없이 황도에 들락날락해야 한다.

그건 정말 귀찮은 일이었는데 무슨 큰 이익이 있다고 굳이 그런 짓을 자초하겠는가?

남부 연합국은 동국, 서국, 남국, 북국. 이렇게 네 개의 나라가 연합국을 이룬다.

말은 나라라고 하지만 사실 각 나라가 제국의 후작령이나 공작령 정도의 크기였고, 어쨌든 그렇게 네 나라가 힘을 합쳐 해상 왕국이나 제국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저들의 무역 규정을 보면 네 개의 국가가 한 몸이고, 한 곳과 거래를 한다는 건 결국 다른 세 나라와도 같은 조건으로 거래한다는 의미였다.

한데 저들은 남부 연합국을 대표해 이곳에 온 게 아니라 북국 아우레우스를 대표해 이곳에 왔다. 처음 만났을 때부터 북국 아우레우스에서 왔다는 걸 몇 번이나 강조하는 걸 보면 분명했다.

그러니까 그 말은 이곳에서 사냥해 가는 마수 가죽은 전부 아우레우스가 가져가게 된다는 의미였다.

저들이 자신들이 얻은 가죽을 다른 세 나라에 판매한다면 큰 문제가 없겠지만, 저들이 마수를 사냥해 자신들이 쓰기도 빠듯한 상황이라면, 그리고 그 가죽의 효용이 다른 나라에도 알려진다면 다른 나라 역시 로빈의 영지에 자리 잡으려 할 가능성이 컸다.

물론 막으려면 막을 수 있는 일이었지만 그들을 상대하는 것 자체만 해도 대단히 귀찮은 일인 건 마찬가지였다.

그럼 북국의 입장에서는 어떨까?

무역 규정이 그런 상황에서 북국이 이곳과 거래하며 다른 나라의 접근을 막으려면 다른 세 국가를 설득할 수 있는 명확한 근거가 필요했다. 다른 나라도 인정할 수밖에 없는 확실한 이유가 필요하다는 뜻이다.

아마 북국 쪽에서 공주를 로빈과 결혼시키려고 하는 건 그런 이유를 만들려고 그러는 모양인데 로빈은 그럴 생각이 전혀 없었다.

그 외에도 가뜩이나 외지인 때문에 신경 쓰이는데 많은 외지인이 영지에 상주하는 것도 걸리고, 마수를 사냥하겠다고 따라온 저 병사들도 그리 믿음직하지 않았다.

그러니 기껏해야 돈이나 좀 벌고, 온갖 귀찮은 사건이 뒤따를 이 일을 받아들일 이유가 없는 것이다.

“북국 아우레우스가 이곳에 와서 마수 사냥을 한다는 걸 다른 세 국가에서는 알고 있나요?”

“알고는 있습니다. 그들은 굳이 그럴 필요가 없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저희 쪽 병력만 끌고 온 겁니다.”

“그래요? 그럼 혹시 마수 가죽을 다른 국가에 넘겨주거나 팔 생각이 있으신가요?”

“당장 저희 쪽에서 사용할 양도 부족한데 그럴 여유는 없을 거 같습니다. 물론 시간이 지나면 또 모르겠지만요.”

역시 그랬다. 혹시나 해서 물었는데 역시 북국은 다른 나라에 마수 가죽을 판매할 생각이 전혀 없었다. 공주까지 동원했길래 왜 저러나 싶었는데 역시 저 공주는 북국이 다른 나라에 세울 명분이었다. 자신들이 독자적으로 그레이츠 영지와 거래할 수 있는 그런 명문 말이다.

“우선, 종전의 제안은 거절합니다. 그리고 생각을 정리한 후 내일 다시 이야기하죠. 공주님께서 저희가 거절할 거란 생각은 전혀 못 하셔서 당황하신 거 같은데 저희도 생각을 정리해야 하니 내일 제가 다시 찾아올게요.”

“…알겠습니다, 후작님. 하지만 저희의 제안도 다시 생각해 주시길 바랍니다.”

“네, 생각은 해볼게요.”

물론 절대 받아들일 생각은 없지만.

공주 일행을 그곳에 남겨두고 지온과 함께 밖으로 나온 로빈은 영주 성으로 돌아가는 마차 안에서 오늘 있었던 회담에 대하여 이야기를 나누었다.

“남부 연합국 내에서 묘한 갈등이 있는 모양입니다. 그게 아니라면 저 북국에서 저렇게까지 나올 이유는 없겠죠.”

“그렇죠? 저도 그렇게 생각했거든요. 굳이 저 공주로 자신들이 이곳과 거래할 명분까지 따로 만들려고 한 걸 보면 다른 세 국가가 마수 가죽을 가져가지 않길 바라는 거 같았어요.”

“당연히 영주님은 받아들이실 생각이 없으시겠군요.”

“네, 당연하죠. 딱 봐도 뭔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요. 귀찮음 센서가 발동한다고 할까요? 귀찮은 일이 막 몰려오는 느낌이라…….”

“만약 단발성으로 사냥해 가겠다면 어쩌시겠습니까?”

“그건 허락해야죠. 원래 그 정도는 하게 해주려고 했으니까요. 부디 그 정도로만 만족했으면 좋겠는데 말이죠.”

“그럴 거 같지 않으니 문제군요.”

“음…….”

“왜 그러십니까?”

(다음 화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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