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상한 소설 속 로빈-231화 (231/303)

231화

“잘 부탁하네, 후작. 황도로 가 황제 폐하를 알현하고 혼례까지 치르려면 이곳에 자주 들르지는 못할 거 같군.”

“그거야 당연하죠. 이쪽보다 시댁 되는 크라우 백작령을 더 신경 쓰셔야 하지 않겠어요? 대충 훈련을 마치면 제가 따로 황실에 연락할 테니 그때나 확인하러 오세요.”

“그래, 그럼 부탁하네.”

“그럼 다음에 뵙겠습니다, 후작님.”

그렇게 크라우 백작 자제와 유나 공주가 황도로 떠났고, 로빈은 한시름 놓았다는 듯 길게 한숨을 토해냈다.

이제 일은 실무자인 지온과 맥라스 남작, 그리고 병사들을 직접 훈련할 백랑의 몫이었으니 그가 할 일은 별로 없었다.

* * *

유나 공주가 떠나고 그때까지 배에서 머물고 있던 아우레우스의 예비 병사들은 바로 치안대 훈련소, 그러니까 예전에 1천 명의 치안대를 훈련하던 그 저주받은 훈련소에 입소했다.

치안대의 훈련은 이미 마무리되어 지금은 비어있는 곳인데 새로운 주인을 찾은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되니 연합국 병사를 위해 영주 성에 만들어놓은 숙소를 그대로 이용하면 되었다. 예상보다 인원이 늘어나 조금 협소하긴 하지만, 그래도 넉넉하게 만들어놓은 거라 병사 600이 머물기에 그리 부족하진 않았다.

“이 정도로 가족과 조국을 지킬 수 있겠습니까!!”

“으악!”

“네가 죽으면 큐브가 터져 가족들까지 모조리 죽는다! 무조건 버텨!”

“사… 사람 살려!!”

“저거, 저러다가 진짜 사람 잡는 거 아냐? 아니지, 그래도 확실한 결과물이 있으니…….”

본격적인 훈련이 시작되고 그 훈련을 잠시 지켜보던 로빈은 정말 저러다가 송장이나 치우는 게 아닌지 걱정스러웠지만, 그 결과물이 버젓이 영지에서 활약하고 있기 때문에 참견하지 않을 생각이었다.

백랑과 루이, 모야족 전사들이 합세해 탄생시킨 뉴(NEW) 치안대.

그들이 본격적으로 영지를 순찰하기 시작한 지는 조금 되었고, 든든한 치안대가 자주 모습을 보이니 주민들은 오히려 안정감을 느끼고 있었다. 큐브가 문제를 일으켜도 저들이 앞장서 자신들을 지켜줄 거라 믿는 것이다.

실제로도 새로운 치안대의 능력은 제법 준수했다.

한창 훈련에 집중할 때 큐브가 등장해 잠시 뒷전으로 밀리나 했지만 계속 모야족 마을에서 마수를 상대로 훈련하더니, 백랑이 리자드맨을 처리하러 자리를 비우고 돌아왔을 때는 자기네들끼리 힘을 모아 중급 마수를 상대할 수 있을 정로 성장했으니 말이다.

물론 큐브에서 2차 각성한 것도 그들의 성장에 많은 보탬이 되었지만, 짧은 기간의 훈련으로 기존의 치안대와 어깨를 나란히 할 정도로 급성장한 건 그들의 노력과 저렇게 강도 높은 훈련을 이어온 덕분이었다.

“하긴, 사실 웬만큼 다쳐서는 죽을 일도 없지. 또 사제들이 외상 치료랑 원기 회복은 끝장나잖아?”

잠시 그렇게 병사들이 훈련하는 걸 지켜본 로빈은 훈련이 마무리되자 백랑부터 찾았다. 치안대를 직접 훈련시킨 당사자로서, 저 병사들에게도 가능성이 있는지 확인하고 싶어서였다.

“개인적인 훈련을 하기도 바쁠 텐데 괜히 일을 만들어서 미안해요. 그래도 나름 중요한 일이라서요.”

“응? 괜찮아, 영주님. 이 정도야 뭘…….”

괜찮다고는 하지만 전혀 지장이 없는 건 아닐 것이다.

사실 저 백랑과 전사들 역시 리자드맨을 처리하고 돌아온 이후부터는 하루도 빠짐없이 일퀘 찍듯 노란색 큐브를 클리어하고, 각자 익힌 스킬을 연마하며 시간을 보내고 있으니 말이다.

그래서 벌써 저렇게 스킬의 등급이……. 오?

이름: 백랑

성향: 호방. 자유로움. 호색

타이틀: 마스터(S). 탁월한 전투 감각(U). 우두머리 늑대(SR)

액티브: 날카로운 송곳니 (랭크 C)

패시브: 은빛 늑대의 검무 (랭크 C)

스킬 레벨이 벌써 저렇게 오른 것도 대단한데 자신의 기량을 만개했다는 마스터에까지 도달한 백랑.

이 세계의 기사들이 전성기를 맞이하는 시기가 대략 30대고 지금 백랑이 서른 후반에 들어갔으니 적절한 시기에 그릇을 채웠다고 볼 수 있으리라.

아마 리자드맨 사냥과 큐브에서 많은 경험을 쌓은 것이 그 밑거름이 되었을 것이다. 역시 다른 건 몰라도 전투적인 부분에서만큼은 정말 믿음직한 가신이었다.

“그래도 번거로운 건 번거로운 거잖아요.”

“그래도 재미있는 건 재미있는 거라서 말이야. 나쁘지 않아. 요즘 훈련만 하다 보니 좀 찌뿌둥했는데 스트레스도 풀고 그래야지.”

“…그런 걸로 스트레스를 풀면 곤란한데요.”

자신의 말을 그대로 받아 장난스럽게 대꾸하는 건 원래 그런 스타일이니 그렇다 치지만, 스트레스를 풀겠다는 말은 조금 곤란했다. 저 병력이 우리의 병력도 아니고, 모야족처럼 지나치게 건강하고 굳센 사람들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에이, 말이 그렇다는 거지. 하지만 틀린 말도 아닌 게 적당히 막 굴리다 보면 어느새 스트레스가 확 풀려있다니까? 나중에 영주님도 한번 해봐.”

“음……. 너무 심하게만 하지 마세요.”

“걱정하지 마. 보아하니 우리 애들보다도 허약해 보여서 그렇게 심하게도 못 해. 대신 저 병력을 우리 애들 수준까지 끌어올리려면 손이 좀 많이 가긴 하겠네.”

“가능성은 있나요?”

“불가능은 없지. 다만……. 좀 많이 다칠 거 같은데 사제님들의 손을 빌려야 할까 봐.”

“저번처럼요? 저번에도 사제님들이랑 같이 대수림에서 합숙하다시피 하셨잖아요?”

“응. 역시 그게 최고라서. 요즘 사제님들도 실전에 관심이 많으셔. 우리랑 같이 리자드맨 원정에 따라나섰던 사제님의 이야기를 듣고 신전도 느낀 게 많은 모양이야. 요즘은 앞장서서 큐브에 동참하려 하신다니까.”

“그래요? 그래도 노란 큐브 정도에는 사제님이 크게 의미가… 없진 않네요. U25라면 사제님이 계신 거랑 안 계신 거랑은 천지 차이니까요. U10이면 사실 좀 애매하지만…….”

비전투 인원이 큐브에서 자신의 특기에 관련된 스킬을 얻는 것처럼 사제들도 큐브에서 다양한 스킬을 얻었다.

물론 지원자만 큐브에서 각성한 거라 모든 사제가 스킬은 얻은 것도 아니요, 모든 사제가 같은 걸 얻은 건 아니지만 대다수는 순간적으로 상처를 회복시킬 수 있는 스킬을 얻었는데, 이것만 해도 큐브에서 엄청난 도움이 된다.

특히 많은 인원이 필요한 U25나, 정말 드물게 등장하지만 그 이상의 큐브에서는 순간적인 위기를 넘기는 데 사제가 필수라고 할 정도였으니 황제가 신전과는 되도록 가까운 사이를 유지해야 한다고 생각한 것도 바로 이런 이유에서였다.

레이드의 꽃이 힐러라는 그 말이 전혀 틀린 소리는 아니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본격적으로 큐브에 몸담으시려면 그 정도로는 안 될 텐데요. 적어도 자신의 몸을 보호할 수단이 필요하지 않나요?”

마치 보호가 필요한 로빈처럼 사제들도 스스로를 보호하지 못하면 큐브 클리어에 참여하기 힘들어진다.

그래서 큐브 클리어에 가장 적합한 교단이 전쟁의 교단과 승리의 교단이다. 이 교단은 일종의 몽크처럼 스스로를 단련하면서 신성력을 키워 나가기 때문에 웬만한 기사 저리 가라 할 정도로 전투에도 능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제님들이 같이 훈련하고 싶어 하신단 말이야. 어떻게 할까, 영주님? 최소한 도망이라도 갈 수 있게 해달라는데.”

“음……. 참 난감한 말이네요. 사실 그분들을 전투 인원이라고 생각한 적은 없어서요. 도망이라도 갈 수 있으면 큐브에 참여하겠다라.”

사제들의 적극적인 참여는 감사한 일이지만 그게 될까 싶었다. 물론 아름다운 몸매를 위해 적당한 운동이 생활화되어 있는 사제들이지만, 그런 것과는 비교도 안 될 만큼 강도 높은 훈련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곳의 힐러, 그러니까 사제의 회복 스킬은 게임에서 힐을 때려 박는 것처럼 그렇게 즉발적이고, 강력한 효과를 발휘하는 건 아니었다.

정확히 말하면 즉발적이긴 하지만 서서히 상처가 아물고 기력이 차오르는 도트힐 같은 느낌이라, 로빈은 앞으로 조합식이 발견될 회복 물약과 영지에서 생산 중인 혼 래빗 지혈제로 그 자리를 대신할 생각이었다.

물론 그렇게 되면 실제로 사제들이 회복하는 것보다는 그 효과가 많이 떨어지지만, 여사제뿐인 봉사의 교단을 그런 일에 동원하는 건 무리라고 계산했기 때문이다.

그나마 다른 방법이 있다면 다른 신전을 영지에 초청하는 것인데, 외진 곳에 자리 잡은 영지의 위치는 둘째 치고라도 이미 봉사의 교단이 영지를 장악(?)한 상황에서 그렇게 하기도 조금 무리였으니 물약으로 급사를 막고, 사제님이 뒤처리하는 플랜을 세운 것이다.

하지만 저렇게 사제들이 직접 나서서 큐브 클리어를 돕겠다면 한번 생각해 볼 일이었다.

“전 한 번도 안 받아봤는데 사제님들의 회복 스킬이 효과가 좋던가요?”

“음, 글쎄. 좋다면 좋지. 그런데 조금 문제가 있긴 한가 봐. 나도 아직 안 받아봤는데 받은 놈이 글쎄, 전투 내내 불뚝 서서…….”

“…그래요? 신성력의 고유한 특징은 그대로인가 보네요. 원래 그런 교단이니 말이 안 되는 건 아닌데, 그래서야 제대로 전투를 치를 수나 있겠어요?”

“전투 마치고 바로 한 판 벌이더라고. 어쨌든 전투 끝날 때까지 버틸 정도는 되는 거 같으니 괜찮지 않을까? 그래도 은근히 전투력이 올라간다는 평도 있고…….”

“하, 우선 봉인하죠. 그리고 흑마법사 분들께 성욕을 억제할 수 있는 약이라도 만들어달라고 해야 할 거 같네요.”

정말 가지가지 한다 싶었다.

그런데 전투력이 올라간다는 평가는 또 뭐야? 뭔가를 강하게 갈구할 때 나오는 초인적인 힘?

아무래도 대책을 마련할 때까지는 수준 높은 큐브에 사제들을 대동할 수 없을 거 같았다. 순간 솔깃했는데 정말 좋다 말았다.

“어쨌든 원하시는 분에 한해서 사제님도 훈련에 참가시켜 보세요. 그러고 보니 월아 님도 이제 사제시잖아요? 그분도 회복 스킬인가요?”

“응? 아니. 월아는 아니야. 좀 이상하긴 한데 같이 잠자리를 하면 큐브 내에서 활력이 돋는 그런 계통인 거 같아. 전에 해골들이 튀어나왔을 때 사제들이 해줬던 그거 있지? 그런 거 말이야.”

“와, 그건… 완전 노 났네요.”

대큐브용 백랑 전용 버프로군. 역시 마누라 잘 만난 양반 같으니라고.

그때 사제들이 보여준 그 버프를 생각하니 생각보다 더 유용할 거 같았다. 백랑 한정이란 게 조금 안타깝지만, 백랑이 영지 에이스의 주축이기도 하니 그 정도면 나쁘지 않았고.

“하하, 그건 그렇지. 역시 우리 귀염둥이라니까. 하여튼, 영주님 말대로 사제님하고 같이 훈련해 볼게. 성과가 어떨지는 모르겠지만, 최소한 체력은 좋아지겠지.”

“그래요. 그럼 훈련은 맡길게요. 그런데 백랑 님이 계속 영주 성에 있어도 괜찮은가요? 적어도 한 달은 여기서 훈련하실 거잖아요?”

“그렇지 않아도 고민이야. 마을은 흑웅이랑 적호가 책임지고 있는데 이 여우 녀석이 이제 영주 성으로 들어올 거란 말이지. 그래서 아예 마을을 흑웅 쪽 애들한테 맡길까도 싶거든. 사실 이제 마을은 그냥 내버려둬도 알아서 잘 돌아가는데, 영주 성은 아직 신경 쓸 데가 많잖아?”

“그건 그렇네요. 흠…….”

지금까지 백랑 바라기 적호가 군말 없이 마을에 남아있는 것만 해도 신기한 일이니, 그녀가 백랑을 따라 이곳에 들어오는 건 정해진 수순이었다.

그리고 그렇게 되면 결국 마을의 일은 흑웅이 도맡아 처리하게 된다. 지금까지도 흑웅이 잘해왔으니 불안하거나 그런 건 아닌데 뭔가 생소하달까?

하지만 백랑의 말대로 그쪽 마을은 알아서 잘 돌아가니 정작 백랑과 그의 친위대를 필요로 하는 곳은 바로 이곳, 영주 성이었다.

병사들의 훈련은 물론이고, 이상하게 높은 등급의 큐브가 모두 이쪽으로 몰려나오는 추세라 클리어를 위해서도 백랑과 정예 전사들이 필요했으니 그가 자리를 비우기가 조금 난감했다.

물론 기사들도 점점 클리어 난이도를 올리고 있지만 Y-A급 큐브를 무리 없이 클리어할 수 있는 멤버는 백랑과 린이 포함된 정예 파티뿐이었기 때문이다.

아직까지는 다른 기사들에게 최초로 사상자를 낸 Y-A급 큐브나 그보다 더 높은 난이도의 Y-S급 큐브를 맡기는 건 조금 불안했다.

린이 기사들을 닦달해 강도 높은 훈련을 이어가고는 있지만, 언제쯤 저 백랑과 껄렁껄렁한 친위대보다 높은 수준에 도달할 수 있을지는 확실하지 않았다. 온갖 사선을 넘어온 정예 전사들의 경험이란 건 그리 단순한 게 아니었으니 말이다.

물론 제필을 위시한 정예 기사들도 숱한 아수라장을 건너왔지만, 마수 범람 때 대수림에서 며칠이나 들쑤시고 다닌 백랑의 친위대와는 경험의 밀도가 조금 달랐다.

게다가 혹시 모를 사태를 대비하기 위해서도 백랑이 필요했다. 상급 큐브가 영주 성 근처에서 주로 등장하기 때문에 폭발의 후폭풍 역시 이곳에서 가장 거세게 불어닥칠 게 뻔했으니 무조건 정예 병력이 이곳에 상주함이 옳았다.

(다음 화에서 계속)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