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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소설 속 로빈-234화 (234/303)

234화

이 녀석이라면 정말 자신의 체질에 맞는 풍유환 같은 걸 만들지 않았을까? 작다는 거에 그렇게 민감하니 어쩌면…….

그리고 다이앤은 이상할 정도로 성적인 칭찬, 그것도 노골적이고 자세한 칭찬을 좋아했다.

한번은 과거 황실에서 살 때 지겹게 들어온 성적인 칭찬이 대체 왜 좋으냐고 물은 적이 있었는데, 그녀의 대답이 좀 의외였다.

그때 그 인간들이 별 의미 없이 지껄이는 것과 내가 하는 건 질적으로 다르다나? 내가 그런 칭찬이나 농담을 할 때는 뭔가 짜르르한 게 있다는데, 솔직히 그 이유는 모르겠다.

그래도 좋은 게 좋은 거라고, 다이앤과 정을 나눌 때는 특별히 귓가에 노골적인 이야기들을 들려주며 서로 즐기는 편이었다.

달아올랐을 때 다이앤이 보여주는 귀여운 얼굴은 정말…….

다만 이 여자는 실비아나 린 이외의 여성에 대하여 언급하는 걸 대단히 싫어했다. 둘까지는 용납하지만 더 이상은 참지 않겠다는 의도가 노골적으로 보일 정도였으니 말이다.

가끔은 너무 견제해서 움찔하기도 하지만 진작에 내정됐던 둘과는 사이좋게 지내고 있으니 그 정도는 내가 감내해야 할 문제였다.

잠시 세 부인의 특이(?) 취향과 눈앞에서 헤롱헤롱하는 린을 보며 흐뭇해하고 있던 로빈은 방금 전 린에게 전차를 설명한 부분을 떠올리고는 묘한 위화감을 느꼈다.

린의 이해를 돕고자 대충 설명한 것도 전생에서의 중세나 고전 시대의 전차와 다를 바 없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달은 것이다. 그리고 이 시대를 생각했을 때, 저가 상상한 탱크보다 그 전차가 더 정확한 전차일 가능성이 컸다.

“하하, 미치겠네. 중세에는 원래 그런 게 전차잖아? 대체 왜 탱크만 전차라고 생각했지?”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었다.

전생에서 로빈이 죽기 직전까지 간간이 즐겼던 게임이 탱크를 조종해 적과 싸우는 게임이었고, 심지어 인생이 이상하게 꼬여 안 가도 됐던 군대에 갔는데, 그게 기계화 부대라 전차는 곧 탱크라는 인식이 머릿속 깊숙이 박혀버린 점.

그리고 로빈 개인적으로도 탱크를 좋아했다는 지극히 사적인 이유까지.

그런 미묘한 이유로 전차는 그냥 탱크라고만 생각해 버린 모양이다.

일이 이렇게 되니 어쨌든 린에게 전차라는 게 뭔지는 정확히 설명해 준 거 같았다. 물론 탱크를 떠올리다 보니 전차 위에 생뚱맞게 발리스타 같은 걸 달아놨다는 이상한 묘사가 추가되긴 했지만, 그 정도야 뭐, 알아서 새겨들을 거라 믿는다.

로빈은 애써 자신의 실수를 잊은 척 덮어놓고 다시 린을 불렀다. 요 녀석이 늠름하다는 단어에 현혹되어 본래의 목적을 잊은 듯 보여서였다.

“야, 전차는 전차고, 너 원래 나한테 무슨 할 말이 있었던 거 아니었어?”

“아! 맞아, 주인. 갑자기 주인이 꼴리는 말을 해서 깜박했어.”

아니, 늠름하다는 말에 꼴린다면 난 대체 무슨 말을 해야 하냐? 내가 무슨 야한 소리를 한 것도 아닌데.

“…그래, 뭐. 내가 잘못했다고 치자. 그래서 무슨 일인데?”

“흠흠, 그러니까……. 저번에 그 일은 전적으로 내 잘못인 거 같아. 그러니 날 벌주고, 그때 그 기사들은 다시 복귀시키면 안 될까?”

“음…….”

린의 입에서 튀어나온 말은 전혀 예상하지 못한 이야기였다.

그때 그 일이 있고 나서 다들 의식적으로 그 주제에 대해서는 언급을 피하곤 했다. 당시 내가 워낙 강경하게 나가서 이견이 있을 수 없다고 생각해서일 것이다.

유일하게 나에게 찾아와 그들의 복권을 요청했던 건 르보른 부단장.

하지만 난 그 요청을 단호하게 거절했고, 그 이후에는 르보른 부단장도 그 주제를 다시는 꺼내지 않았다. 영주의 권위에 관련된 일이라 그쪽도 조심스러웠던 것이다.

그때 그 일을 두고 기사들의 반응은 조금씩 달랐다.

그 당시 북쪽 관문에 나가있던 원로 기사들은 그 정도로는 처벌이 너무 가벼우니, 그들을 참형으로 다스려야 한다는 강경한 반응이었다.

반면 영주 성에 남아있던 젊은 기사들은 안타깝긴 하지만 어쩔 수 없다는 반응이었는데, 처벌 수위 자체에는 동의하면서도 심정적으로는 안타깝다고 그들을 동정하는 쪽이었다.

솔직히 나도 개인적으로는 멀쩡한 기사를 퇴출했다는 점에서 조금 아깝게 생각했다. 물론 다시 그 같은 일이 벌어진다면 같은 판단을 했겠지만 아까운 건 아까운 거였으니 말이다.

그런데 한 달이 훌쩍 넘게 지난 상황에서 린이 그 이야기를 다시 꺼낸 것이다.

로빈은 당황스러우면서 저 단순한 녀석이 그런 이야기를 꺼낸 것에는 무슨 곡절이 있을 거란 생각에 그 이유부터 물었다.

“왜 갑자기 그런 말을 하는 거야?”

“큐브를 클리어하고 오다가 다렌을 만났어. 요즘 뭐 하냐고 물었더니 애니와 같이 저택에서 일꾼으로 일한다더라고. 다른 녀석들도 대충 비슷한 상황이라는데, 그 말을 들으니 뭔가 짠해서…….”

“응? 녀석들이……. 아직도 영지에 남아있어? 대체 왜?”

별다른 제재 없이 기사 직만 박탈한 것.

그건 로빈 나름대로 그들을 배려해 준 것이다.

그레이츠령에서 기사에 임명될 정도면 솔직히 근처 다른 영지로 옮겨도 충분히 기사로 재직할 수 있었다. 물론 기를 쓰고 막으려 들면 막을 수 있겠지만 굳이 그렇게 할 이유도 없었고, 그들이 따로 다른 영지에 가서 기사로 임관하려 한다면 쉽게 알 수 있는 일이었다.

솔직히 우리 영지가 기사들에게 높은 월봉을 주는 것도 아니고, 지금처럼 기사들을 원하는 곳이 많을 때는 적당히 자리만 잡아도 충분히 제 몫을 하면서 잘 살 수 있었다.

그래서 조만간 그들이 영지를 떠나 다른 곳에 둥지를 틀 거로 생각했는데 너무 가볍게 생각했나 보다.

“왜긴. 그레이츠 토박이가 가긴 어딜 가? 가족들도 다 여기 있는데. 여기보다 살기 좋은 곳이 따로 있는 것도 아니고.”

“없긴 왜 없어. 황도만 가도 떵떵거릴 텐데. 요즘은 실력만 있으면 어딜 가나 대우받는 세상이야. 특히 기사 같은 경우는 더하지. 실력을 보이면 알아서 모시려고 할걸?”

“…주인, 그건 아니야. 가끔 주인은 아주 간단한 건 모른다니까.”

내가 모른다고? 그럴 리가 있나.

기사는 주군에게 충성하는 게 기본이지만, 서임을 박탈당하고 주군과의 신뢰 관계가 무너지면 당연히 다른 주군을 찾을 권리가 있었다.

물론 그 기사가 다른 곳에 임관할 때는 예전 주군에게 미리 문의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단순히 서임을 박탈할 정도의 작은 잘못을 저지른 기사의 앞길을 막는 속 좁은 주군은 거의 없었다.

앞길을 막고 싶을 정도의 큰 잘못을 저지르면 아예 참형에 다스리거나, 다시는 검을 잡을 수 없게 철저히 망가트리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애당초 서임 박탈은 본보기는 필요한데 큰 처벌을 내리고 싶지 않을 때 선택하는 정치적 쇼에 가까웠다. 물론 전생에서라면 그 와중에도 남의 앞길을 막는 그런 일이 비일비재하겠지만 여긴 그런 옹졸한 동네는 아니니 말이다

그리고 그런 생리를 가장 잘 아는 자들이 바로 기사들이었다.

굳이 서임을 박탈당한 기사들을 참형에 처해야 한다고 방방 뛰는 노기사들, 그리고 영지를 떠나서 다른 곳에 자리를 잡아야 하는 동료들을 안타까워하는 젊은 기사들 모두 이 사실에 기인해 그런 주장을 늘어놓는 거였다.

그러니 다렌을 비롯한 그 기사들이 그걸 모를 리가 없었다.

그러니까 뭔가 모르는 건 결국 영주인 로빈이 아니라 오히려 린인 것이다.

사실 로빈은 지금까지 그들이 영지에 남아있으리라 생각하지 않았다. 다른 곳으로 떠나라고 서임을 박탈한 건데 아직까지 남아있다니.

개인적으로도 애석하고 속상한 일이라 그쪽으로는 일부러 신경을 끄고 있었는데 생각보다 일이 이상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좋아, 우선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기사로의 복권은 절대 있을 수 없어.”

“끙, 역시 안 되는 거야?”

“그렇지. 그렇게까지 영주의 권위를 깎을 순 없어. 본보기로 처벌한 건데 그걸 번복하다니. 아무리 내가 가벼운 영주지만 그럴 수는 없지.”

“하…….”

“하지만 그 녀석을 만나볼 필요는 있겠네. 내가 한번 만나는 볼게. 무슨 생각을 하는 건지 궁금하긴 하니까.”

“응. 알았어, 주인. 하지만 주인도 만나보면 내 마음을 이해할 수 있을 거야.”

뭔가 미묘한 말을 남기고 돌아선 린의 처진 어깨를 바라보며 잠시 생각을 정리한 로빈은 바로 신전 뒤쪽에 있는 장인어른의 거처를 향해 출발했다. 바로 다렌부터 만나보기 위해서였다.

린의 말대로 우선 그를 만나봐야 뭔가를 결정할 수 있을 거 같았으니 말이다.

* * *

“허…헉! 여… 영주님.”

“어떻게 지냈어요, 다렌?”

“저… 저야, 뭐…….”

다렌.

경박한 성품에 엉덩이가 가벼운 것이 단점이지만, 사교성이 좋고 위트가 넘쳐 동료 기사들에게 인기 있는 스타일.

첫 만남부터 인상적이었던 이 녀석은 실제로 나와 이러저러하게 많이 얽혀있었다.

그러다가 결국 다이앤의 시녀로 있던 애니와 눈이 맞아 아직까지 진지한 관계를 이어 나가고 있는 모양인데, 녀석의 가벼운 엉덩이를 생각하면 지금까지 애니와 만나고 있는 건 조금 의외였다. 정말 애니한테 완전히 정착할 생각인 거 같았으니까.

게다가 오랜만에 만난 녀석은 분위기부터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 갑작스레 저를 찾아온 나를 보고 당황했는지 말을 조금 더듬고 있지만, 예전에 느껴졌던 그 깨방정이 전혀 느껴지지 않고 오히려 진중하고 무겁기까지 했다.

짧은 시간에 마음고생이 심했는지 참 많이도 변했다.

로빈은 우선 다렌이 머물고 있다는 하인들의 별채에 자리를 잡고 애니가 대접하는 차를 한 잔 마시면서 다렌의 근황에 대하여 전해 들었다.

“뭐, 별것이 있겠습니까? 그냥…….”

다렌이나 다른 기사들이나 다들 각자 자신의 집에서 소일거리로 시간을 보내고 있단다. 물론 꾸준히 몸을 관리하고 검술 훈련도 잊지 않고 있지만, 전체적으로는 백수라고 할까?

대충 그런 모양이다.

대체 그 능력을 가지고 왜 그러고 있는지 의문이라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는데 그의 대답이 정말 걸작이었다.

“그런 생각을 안 해본 건 아니지만 죽은 동료의 가족들이 영지에 남아있습니다. 그들도 틈틈이 돌봐줘야 하고, 혹시 저 같은 녀석이 같은 실수를 해 영지에 난리가 나면 누군가가 또 그걸 막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물론 기사들이 알아서 막겠지만……. 그날이 오면 목숨 바쳐 목숨 빚을 갚을 생각입니다.”

…이 녀석이 또 할 말 없게 만드네. 그런 생각을 하고 있다고?

죽은 기사는 어쨌든 순직 처리되었고, 영지에서 적당한 보상금을 지속적으로 지급하게 되어있다. 지금까지 전투에서 죽은 병사들 역시 모두 그런 대우를 받고 있었고.

일종의 연금 같은 건데 팔자를 고칠 정도는 아니지만, 생활에는 큰 도움이 되는 제법 괜찮은 제도였다. 물론 다른 영지에는 없는 그레이츠 고유의 주민 복지였다.

하지만 그렇다고 돈이 죽은 가족을 대신해 주진 않는다. 영지에서 정서적인 부분까지 책임져주긴 힘들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금 다렌과 동료들이 그 점을 대신해 주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계속 그렇게 있겠다고요?”

“예. 물론입니다, 영주님.”

“흠…….”

이걸 뭘, 어떻게 해야 하나 싶어 다시 차를 한 모금 머금고는 씁쓸한 웃음을 지었다.

그리고 그런 상황에서 다렌이 조심스럽고 차분하게 말을 이었다.

“죄송합니다, 영주님. 감히 찾아뵙지는 못했지만, 꼭 사죄드리고 싶었습니다.”

“…….”

“제가 너무 가볍게 생각했습니다. 그 때문에 소중한 동료를 잃고 신전에 누워 괴로운 시간을 보냈죠. 그런 저를 위로해 준 사람들이 죽은 동료의 가족이었습니다. 그런 분들을 두고 어떻게 영지를 떠날 수 있겠습니까?”

“…다른 기사들도 다 같은 생각인가요?”

“네, 다들 마찬가집니다. 어차피 가족이 있는 녀석들은 떠날 생각도 없었겠지만요.”

가족이라.

당연히 가족들과 함께 이주하면 간단하다고 생각했는데, 너무 가볍게 생각한 모양이다. 그리고 죽은 기사의 가족을 같이 돌보고 있다는 말에는 솔직히 마음이 숙연해질 지경이었고.

린이 그렇게 말한 이유를 대충 이해할 수 있었다.

이 인간들을 어쩐다. 몰랐다면 모르되 이미 알게 된 이상 그냥 그렇게 넘어가기도 조금 힘들었다.

저 꼴을 보니 또 뭔가 도와주고 싶달까? 원체 변덕이 심한 성격이라 그런지, 저런 걸 보면 또 가만히 있질 못한다.

“후……. 다렌, 다렌도 알고 있겠지만 기사로 복권시키는 건 절대로 있을 수 없는 일이에요.”

“네? 아, 네. 당연히 말도 안 되죠. 그때 그 일을 생각하면 처형을 당해도 할 말이 없는데 어찌 감히…….”

“하지만 다른 일은 할 수 있겠죠. 다렌 같은 사람이 나오지 않게 관리하는 일인데, 한번 해보겠어요?”

“네?”

이제 곧 영지에 따로 큐브 관리 기관을 만들어야 한다.

(다음 화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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