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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소설 속 로빈-238화 (238/303)

238화

“그렇습니까? 다시 용병 길드를 들쑤신다라. 클리너 길드와 황실을 분리하려고 하는 모양이네요. 그 후에 클리너 길드에 사람을 넣어서 뭔가 꾸미려고 하는 걸까요?”

[그나마 생각할 수 있는 건 그 정도인데…….]

“좀 더 철저하게 준비하셔야겠네요. 특히 창구를 관리할 제국 은행 쪽 인사나, 황도 지부를 관리할 클리너 길드 지부장이나 그 측근들까지요.”

[그래서 그렇게 하고 있지. 그런데 막상 잡은 꼬리를 타고 올라갔는데 아무것도 없었어. 그 위에 아무도 없고, 용병들의 권익을 위해 움직였다니. 이걸 믿어야 하는 건지…….]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용병들이 남의 권익을 위해 움직일 놈들은 아니죠. 그만큼 철저하게 소수로만 조직을 운영하는 거 같으니 조심하는 수밖에요.”

[그래서 계속 전 용병 길드 인원들을 감시하고 있네. 어쨌든 놈들의 1차적 목표는 알아냈으니 계속 파면 뭔가 더 나오겠지.]

그 뒤로 이어진 대화는 소소한 이야기들이었다.

황제도 정국이 좀 답답한지 귀족들의 행태를 이러저러하게 하소연하거나, 조단 크라우와 유나 공주가 너무 대놓고 애정 행각을 벌인다며 내로남불 식으로 불평하고, 자신도 푸시 캣츠에서 보고받고 있으면서 상황 전하께서 잘 지내는지 묻는 등 그야말로 의미 없는 이야기들이었다.

쌓인 스트레스를 수다로 푸는 느낌이랄까?

자신의 측근들에게 하지 못한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늘어놓는 걸 보니 저 자리도 참 우울하다 싶었다.

대체 나에게 어떤 유대감을 느끼길래 저러나 싶기도 하고, 이런 상황에서 황제의 자리에 앉아있는 게 조금 짠하기도 해 맞장구치며 듣고만 있었다.

[아, 통신기를 만들면 보석 값은 톡톡히 받아갈 테니, 알아서 준비해 놓게나. 그럼 좋은 소식 기다리지.]

이 인간 보소. 그걸 굳이 받겠다고? 그럼 아이디어에 대한 대가라도 따로 지불하든가.

황제가 짠하다는 건 아무래도 취소해야 할 거 같았다. 짠한 게 아니라 짠돌이 같은 양반이었으니 말이다.

황제와 통신을 마친 로빈은 집으로 돌아와 휴식을 취했다.

이제 내일부터는 파란색 큐브를 공략할 인원을 선발하고, 뒤이어 있을 붉은색 큐브를 공략할 것까지 고민해야 했으니 생각할 것이 많았다.

그리고 그날 밤 슬쩍 다가오는 두 강아지(웰시코기와 도베르만)와 고양이 한 마리의 볼기짝을 두들겨 멀리 쫓아버리고 혼자 잠들었다. 자신이 견딜 수 있는 시간(대략 4~5일로 추측된다)까지 어떻게든 버티다가 그 후에 다시 계획을 세울 생각이었으니 말이다.

* * *

그렇게 며칠 후.

큐브 공략을 위한 인원을 선발하기 위해 군의 수뇌부가 모두 모였다.

전사단의 백랑과 흑웅, 기사단의 린과 르보른.

치안대의 루이까지.

파란색 큐브 공략에 참여할 인원들과 차후 있을 붉은색 큐브에 참여할 인원까지 오늘 선발할 계획이라 논의할 것이 제법 많았다.

[큐브-B][랭크 C] (U500)

기한: 17일 15시간

등장: 오크

타입: 집단전

[큐브-R][랭크 B] (U10)

기한: 77일 15시간

등장: 드라쿠나스(용종)

타입: 보스전

현재 영지에 남은 골칫거리는 저 둘이었다.

그중 집단전 형식의 파란색 큐브는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등장하는 놈도 오크에 불과하고, 등급도 C로 낮은 축에 속하기 때문이다.

웬만한 규모의 영지라면 500인이나 되는 많은 수를 모두 수준급의 병력으로 채우기는 힘들겠지만, 상향 평준화되어 기사급에 달한 전력만 500 이상 뽑아낼 수 있는 그레이츠였기 때문에 양질의 병력을 운용하면 별다른 피해 없이 해결할 수 있을 거로 생각한 것이다.

역시 문제는 붉은색 큐브를 공략할 열 명을 선정하는 일. 특히 용종이라는 정보는 있지만 대체 어떤 놈인지 도통 알 수 없는 상황이라 신중에 신중을 기해야 했다.

오늘 군의 수뇌부를 모두 모은 것도 그들의 의견을 수렴해 최종적으로 멤버를 확정한 후 따로 훈련하기 위해서였다.

“바쁘신데 이렇게 모이느라 다들 수고 많으셨습니다. 무슨 특별한 문제는 없죠?”

“뭐, 그렇지. 병사들을 훈련하는 것도 이제 막바지야. 대충 3개월 정도 걸렸나? 기초 잡는 데 한 달이나 쓰는 바람에 생각보다 늦어버렸네.”

“정확히는 두 달 하고 3주 정도네요. 그 정도면 충분히 빨랐고요.”

“비가 그리 쏟아붓는데 굳이 대수림에 들어가 병사들을 훈련하다니, 전에도 그렇지만 정말 백랑 님은…….”

“이거 왜 이래? 그때 루이 경도 같이 있었으면서. 루이 경이 그렇게 말하면 꼭 내가 혼자 그런 짓을 한 거 같잖아? 우린 다 같은 동료라고, 동료.”

“흠흠, 그래도 백랑 님처럼 무자비하진 않았죠.”

처음 치안대를 훈련시킬 때를 생각하면 루이나 백랑이나 거기서 거기였다. 유격 조교 저리 가라 할 정도였으니 말 다했지. 그 악랄함이란 정말…….

그런데 이번에는 루이가 바빠서 결국 백랑과 모야족 전사들만 훈련에 참여했고, 루이는 마치 자신은 안 그랬다는 듯 모른 척하고 있었다. 어쨌든, 그때 자신이 심했다는 자각 정도는 있는 모양이다.

치안대를 훈련할 때 모야족 전사들하고 어울리더니 루이 역시 성격이 좀 유들유들해졌다. 기승전, 백랑 탓도 분명 전사들에게 배웠을 것이다.

저 루이를 저런 식으로 전염시키다니. 역시 모야족 전사들의 반백랑 주의는 정말 대단했다. 억울해하는 백랑의 얼굴 역시 오랫동안 기억하고 싶은 걸작이었고.

하지만 그런 걸 다 떠나서 그 병사들을 데리고 결국 대수림에 들어가서 마수를 사냥한 백랑도 참 대단했다.

백랑과 함께하는 대수림 체험기 50일이랄까? 당사자들은 치를 떨겠지만, 책으로 내도 제법 팔릴 만한 재미있는 에피소드가 꽤나 있을 것이다.

“그래요, 백랑 님. 수고 많았어요. 치안대는 어때요?”

“치안대 쪽은 문제없습니다. 우버 마을에 종종 들르는 외부인은 유심히 관찰하고 있고, 큐브 근처의 통제 역시 완벽합니다. 능력이 두드러지는 병사들은 짝을 이뤄 큐브를 클리어하고 있는데 그 수준도 양호하고요.”

“그래요? 반가운 일이군요.”

기존의 500에서 1,500으로 늘어난 치안대.

영지 내 큐브를 탐지 및 보고하고 주변을 통제하거나 외부인을 감시하는 일을 맡고 있는데, 시간이 날 때마다 큐브 클리어에까지 손을 보태고 있었다.

우선 늘리고 보자는 마음으로 급하게 늘린 건데 생각보다 쏠쏠하게 활동해 줘서 로빈의 마음이 푸근해질 정도였다. 물론 그 배경에는 악랄하다고 정평 난 백랑과 루이의 훈련이 있었고 말이다.

“치안대에 큐브 클리어 쪽으로는 기사들보다 더 대단한 놈들이 있다던데?”

“와~ 그래요? 그건 대단한데요. 루이 경, 정말인가요?”

백랑이 뭔가 들은 게 있는지 로빈에게 이야기를 꺼냈고, 로빈도 기사들보다 더 큐브 클리어에 능하다는 말에는 호기심이 생기지 않을 수 없었다. 난세에 영웅(?)이 난다고, 영지에도 큐브 시스템을 등에 업고 두각을 나타내는 인물이 있는 모양이니까.

“하, 그놈들을 치안대라고 하긴 좀 그렇죠. 실력은 웬만한 기사들보다 더 뛰어난 녀석들이니까요. 영주님도 기억하실 겁니다, 지크라고……. 저번 축제 때 무투 대회에서 우승했던 녀석인데. 두각을 나타내는 병사들을 따로 조사해 오라고 하셔서 여기 다 적어왔습니다.”

원래 치안대와 기사단은 수준 차이가 있기 때문에 치안대 쪽은 별로 기대하지 않았다. 그런데 루이와 백랑의 말을 들어보니 왠지 기대된달까?

로빈은 지체 없이 루이가 가져온 보고서부터 확인했다.

“그러니까… 찌질이 지크와 대머리 릭의 파티? 공식 명칭이 이래요? 어? 파티에 사제도 있네요? 게다가 레아 님이면…….”

“하하, 다들 그렇게 부르는데 지크 자신도 그냥 인정해서 그게 명칭으로 굳어졌습니다. 그러니까…….”

찌질이 지크.

왜 찌질이인가 했는데 내막을 들어보니 그냥 웃음만 났다.

예전 영지 축제 무투 대회에서 우승한 지크는 용감하게 사제님께 고백했다가 그대로 차여 로빈에게 웃음을 선물한 적이 있었다.

그리고 그렇게 차이고도 사제님에 대한 사랑을 포기할 순 없었는지 끝없이 대시했다고 한다.

문제의 발단은 치안대의 대수림 합숙.

그때 사제들이 훈련에 협조해 줬는데 그중에 공교롭게도 지크가 고백했던 사제, 레아가 포함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 사실을 알게 된 지크는…….

“다른 병사들이 절대 레아 사제한테 치료받지 못하게 미친 듯이 몸을 굴렸죠. 다치지 않고 돌아온 날을 손에 꼽을 정도였습니다.”

“나도 기억나네. 이건 또 웬 미친놈인가 했거든. 부족의 예비 전사보다 미쳐 날뛰는 놈은 이놈뿐이었어.”

차이긴 했지만 영지민 전체가 보는 앞에서 고백한 지크.

치안대 인원들은 껄끄러워서라도 레아 사제에게 치료받기를 거부했고, 결국 맨날 다쳐서 돌아온 지크는 그 기간 동안 레아 사제를 독점할 수 있었다.

“사제님도 대단하네. 지크의 치료를 거부할 수도 있었는데, 꿋꿋이 치료해 주신 거잖아요?”

“하지만 어차피 지크 말고는 치료할 사람도 없었습니다, 레아 사제는.”

“글쎄요. 그게 그럴까요?”

지크 말고 치료할 사람이 없는 상황이라지만 지크를 거부하고 그냥 마을로 돌아가도 되는 일이었다. 사제님의 협조는 말 그대로 협조지 강제할 수 있는 사안은 아니었으니 말이다.

지크를 불쌍하게 봤든지 아니면 사제로서의 사명감이 대단했든지, 어쨌든 레아 사제는 끝까지 지크를 치료했다고 한다.

“떡정 무섭지. 한 달도 넘게 독점했는데 정이 안 생기는 것도 웃기고.”

그렇게 한 달이나 빈사에 몰린 지크를 치료하다 결국 정이 들어버려 둘의 관계가 급진전되었다.

그리고 사경을 헤맬 정도로 격한 실전 경험을 계속 쌓은 지크의 실력 역시 일취월장.

실력이 가파르게 늘다 보니 다시 크게 다치기 위해선 더 위험하고 거칠게 싸울 수밖에 없었고, 그게 또 실력 향상으로 이어졌다.

이게 계속 반복되면서 대수림 합숙이 마무리될 때쯤에는 치안대의 수준을 훌쩍 뛰어넘는 능력을 보유하게 되었다는데.

실력 향상과 레아 사제라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은 지크의 성공담.

그렇게 결국 해피엔딩이었지만 동료들의 야유와 장난 섞인 질타가 없을 리가 없었다. 무려 사제를 떡정으로 사로잡은 놀라운 성공담이었으니 말이다.

“처음에는 그레이트 페니스 지크라는 말도 있었는데, 그건 너무 멋있다면서 그냥 찌질이로 하기로 했답니다. 차인 주제에 포기하지 못하고 찌질댔다고요. 뭐, 본인도 좋다고 인정하니 그게 별명이 됐고요.”

“대단하다면 대단하고 재미있다면 재미있는 일이네요.”

여기까지가 지크의 이야기였고, 다음으로 보고서에 기록된 지크 파티의 멤버 구성과 활약상을 살펴봤다.

방패와 장검을 다루는 지크와 큰 방패를 다루는 릭을 중심으로 뭉친 파티는 사제 레아와 모야족 여궁수 둘, 그리고 치안대에서도 손꼽힐 정도의 전사 다섯이 포함된 균형 잡힌 파티였다.

그리고 그중 가장 인상적인 건 역시 지크와 릭, 그리고 사제 레아였다.

“대머리 릭이라……. 왠지 릭스터가 생각나는 이름이네요.”

“성향은 완전 정반대야. 저 릭이란 놈도 물건이거든.”

“그러게요. 가장 부담스럽고 터프한 위치가 큰 방패를 든 전위니까요. 같은 대머리인데 이렇게 다를 수 있나요?”

영지의 건설 전문가 릭스터.

용병이고 기사급 실력자지만 전투를 별로 좋아하지 않아 이젠 아예 그쪽으로 자리를 잡았다. 예전에 만든 대부분의 건물과 이제 공사를 시작할 소극장까지 릭스터의 손을 거치지 않은 건물이 없을 정도였으니까.

“…대머리는 그냥 외형적인 특징일 뿐이니까요.”

“그거야, 물론 그렇죠. 이름까지 비슷한데 너무 다르니 신기해서 그래요. 여기 자료를 보니 방패를 쓰는 주제에 혼자서도 오크 두셋 정도는 상대할 정도의 실력자라고 쓰여있네요.”

“네, 그리고 역시 저 파티의 핵심은 사제인 레아 님이죠.”

“그러네요. 이 사제님은 대체 뭐죠? 무슨 사제가……. 그리고 이런 스킬을 얻으신 사제님이 계시면 바로 보고하셨어야죠.”

사제 레아의 액티브 스킬은 여신의 축복이라는 일종의 버프 스킬이었다.

이것만 해도 감탄이 터져 나올 정도로 대단한 인재였는데, 이 사제는 사제 주제에 무려 오크나 리자드맨을 상대할 수 있을 정도로 체술의 달인이었다. 호신 차원에서 신전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폴 경에게 수업을 들었는데 생각 이상으로 재능이 있어 금방 실력이 늘었다고 한다.

하긴, 이 정도 되니 대수림에 들어가는 봉사단에 자원하기도 하고 지크와 함께 큐브를 클리어하고 다니는 거겠지만 정말 대단한 사제임은 분명했다.

“이럴 수도 있구나.”

그리고 눈여겨볼 만한 건 이 파티의 놀라운 짜임새였다.

(다음 화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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