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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소설 속 로빈-240화 (240/303)

240화

“끙, 녀석답네. 진작에 좀 그러지.”

평소에도 노력하고 있었겠지만, 지금은 아마 사력을 다하고 있을 것이다. 계속 이어지는 독수공방은 그녀에게도 큰 위기일 테니 말이다.

다른 두 여자보다 압도적으로 요망한 실비아의 성향을 생각했을 때 이미 여러 번 그 맛을 본 그녀가 버틸 수 있는 시간은 그리 길지 않을 것이다.

* * *

영지가 파란색 큐브 공략 인원 선발에 집중하고 있을 때 유나 공주가 영지를 방문했다. 북국 아우레우스의 병사들이 훈련을 마치고 돌아갈 시간이 된 것이다.

유나 공주는 몇 달 사이 몰라보게 달라진 병사들의 기세에 크게 만족하며 로빈의 공을 치하했다. 물론 미리 약과 가죽을 보내줘서 남부 연합국이 빠르게 안정된 것 역시 로빈에게 감사하는 이유 중 하나였다.

“이렇게까지 달라지다니. 게다가 병사들이 하나도 상하지 않았다는 건 정말 놀라울 뿐이구나.”

치안대가 훈련받을 때처럼 사제들이 붙어서 밀착 관리했으니 죽지 않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기도 했다.

그것도 하다 보니 익숙해진다고, 영지병과 함께 움직이는 종군 사제들의 치료 스킬도 날로 발전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이제는 삽입 없이 바로 병사들을 보내며(?) 치료하는 방법까지 완벽하게 터득한 상황이었다.

물론 극심한 상처를 입는 경우에는 당연히 정상적인 치료가 뒤따를 수밖에 없었지만 단순한 자상이나 골절 정도는 몇 명이라도 바로 회복시킬 수 있을 정도로 치료 속도가 빨라진 것이다.

“믿고 맡겨주셨으니 최선을 다한 거뿐입니다, 공주님.”

“그리고 덕분에 서국과의 사이가 다시 돈독해져, 그들의 지원까지 받을 수 있었도다. 내, 이 은혜를 영원히 잊지 않을 것이다.”

말뿐인 게 아니라 이번에 북국 아우레우스에서 실어온 아르마늄의 양은 기대 이상이었다. 이제 마나석만 꾸준히 모으면 또 다른 사업을 진행할 수 있을 정도.

앞으로도 꾸준히 아르마늄을 얻을 수 있을 테니 유나 공주에게 신경을 쓴 건 그 이상으로 보답받은 셈이었다.

“결혼 생활은 어떠신가요? 이번에 본국으로 돌아가시면 바로 돌아오시는 건가요?”

“결혼 생활은 지극히 만족스럽도다. 시아버님인 크라우 백작님도 본녀에게 자상하시고, 상공 역시 전형적인 낮져밤이. 어찌 만족스럽지 않을까? 그 튼실하고 굵직한……. 후훗. 어쨌든 대단했도다. 시녀들이 제국 남자들에 대하여 호들갑 떨던 이유를 알 거 같더구나.”

“음……. 그래요?”

이건가? 황제가 투덜대던 이유가? 둘이 아주 찰떡궁합인가 보네.

얼굴이 발개지며 조단 크라우를 끝없이 칭찬하는 유나 공주의 모습을 보니 뭔가 좀 배알이 꼬이긴 한다. 물론 내가 소개해 준 거지만 너무 좋아하니 저것도 참…….

역시 사람 마음은 알다가도 모르는 거라니까.

유나 공주는 한참 동안 조단 크라우의 위용(?)에 대하여 찬양하고는 병사들과 돌아갈 채비를 했다.

내려가는 길에 크라우 백작령에 들러 조단 크라우까지 싣고 왕궁으로 들어가 인사한 후, 다시 크라우 백작령으로 돌아간다니 조금 바쁜 일정이었다.

그리고 떠나기 전, 지금까지 묵묵히 병사들만 관리하던 제아란 맥라스, 아버지의 큰형 되는 맥라스 남작이 영주 저택을 찾아왔다. 마지막으로 아버지를 만나기 위해서였다.

침묵이 감도는 거실에 맥라스 남작과 아버지, 그리고 내가 찻잔을 기울이고 있었다.

뭔가 어색한 분위기라 나도 딱히 말을 붙이기 애매했고, 그저 지켜보기만 했는데 그렇게 한동안 찻잔만 만지던 맥라스 남작이 드디어 입을 열었다. 마음이 별로 편하지 않은 듯 제법 무거운 목소리였다.

“잘 지내고 있는 거 같아 다행이구나.”

“예, 형님.”

“…나중에 한 번쯤은 본가에 들르거라. 웬만하면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에. 그래도 가문의 일원인데 아버지께 작별 인사라도 드려야 하지 않겠느냐?”

“네? 그런……. 분명 가문에서 제외하겠다고 하셨는데…….”

“말이 그렇지. 어떻게 그렇게 쉽게 그럴 수 있겠니.”

“허, 한 번도 행동보다 말이 앞서신 적이 없는 분이시거늘…….”

그러니까 집을 나가면 가문에서 내보내겠다던 할아버지가 차마 그렇게까지 하시진 못한 모양이다. 아버지는 할아버지의 성격을 알고 있어서 당연히 그리 처리된 줄 알고 확인해 보지도 않았고.

하니, 확인이고 뭐고 제국으로 자리를 옮겼으니 알려고 해도 알 방법이 거의 없었을 거다. 굳이 알아볼 생각도 하지 않았겠지만.

이러면 내 생각과는 조금 다른 상황인데.

역시 사람 일은 양쪽의 이야기를 모두 들어봐야 알 수 있는 모양이다. 특히 감정적인 부분은 더욱 그렇고 말이다.

“형제들에게는 별로 좋은 마음을 가지고 있진 않겠지만, 그래도 아버지는 조금 다르지 않으냐? 너에게 기사가 되길 강요한 것도 어느 정도는 너를 위한 거였고. 물론 방법은 조금 거칠었지만, 아버지의 생각이 완전히 잘못되었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그거야… 그렇죠.”

어느 시대나 예술가는 배가 고픈 법. 자식들이 기사가 되길 바라는 게 그리 잘못된 건 아니었다.

물론 별로 재능이 없는 아버지에게까지 가문을 강조하면서 그걸 강요하고 압박한 건 잘못이지만, 생각하기에 따라서는 감정 표현이 어색한 무뚝뚝한 아버지의 일면이라고 여길 수도 있는 일이었다.

“이제 와서 하는 말이지만, 형제들이 너무 어렸지. 나도 그랬고. 그렇게 모진 말을……. 늦었지만 사과하고 싶구나.”

“…형님.”

“물론 뭘, 어떻게 하려는 건 아니야. 변명할 생각도 없고. 용서해 달란 것도 아니란다. 난 그저……. 그냥 미안하다고 말하고 싶었다.”

“…….”

“어쩌면 남보다 못한 사이지만……. 행복해 보여서 다행이다. 아버지는 그래도 널 그리워하니 한번 생각해 봤으면 좋겠구나. 이 말 하려고 찾아왔단다.”

여기까지 말을 마친 맥라스 남작은 로빈에게 묵례로 인사하고 저택을 떠났다. 처음부터 끝까지 담백한 태도가 아닐 수 없었다.

* * *

맥라스 남작의 작별 인사를 끝으로 영지에서 훈련하던 북국 아우레우스의 병사들은 자신들의 나라로 돌아갔다. 유나 공주 역시 훗날을 기약한 채 감사해하며 영지를 떠났고.

병사들로 북적이던 훈련장에 적막이 감돌자 로빈의 마음도 왠지 감상적이 됐다. 물론 후반부는 대수림에서 박박 구르며 이곳에서 훈련한 날은 많지 않았지만 로빈의 머릿속에는 그들이, 그리고 예전 치안대가 이곳에서 훈련하던 기억만 남아있었으니 말이다.

“그래도 병사들이 뛰어다닐 때가 활력 넘치고 괜찮았던 거 같은데요. 이 훈련장도 이제 당분간은 쓸 일이 없겠죠?”

“그래? 음……. 그럼 치안대 2기, 아니 이번엔 자경단을 모집해 볼까? 어차피 하급 큐브의 클리어는 민간으로 돌린다면서? 그 녀석들도 훈련해야 하지 않겠어?”

“주민들을 다 병사로 쓸 생각이에요?”

자경단을 따로 모아 훈련시키자는 말에는 로빈도 할 말이 없었다. 이러다가 2기, 3기… 끝없이 영지 남자들을 훈련시킬 기세였으니까.

이 양반이 병사들을 몇 번 훈련하더니 아주 재미가 들렸나 보다. 물론 그게 쏠쏠하게 재미있긴 하지만 이렇게까지 사심으로…….

하지만 시국이 시국이라 훈련이라도 받아놓으면 나쁘지 않을 거 같아 지원자가 있으면 해보라고 허락했다.

“에이, 따로 봉록을 주는 치안대도 아닌데 사람들이 모이겠어?”

물론 지원자가 별로 없을 거로 생각해 가벼운 마음으로 허락한 것이다.

아버지는 맥라스 남작이 떠난 후 한결 표정이 가벼워지셨다. 예전에 가문에서 어떤 일이 있었는지 정확히 알 수 없지만 맥라스 남작의 태도만은 진심이었고, 진심 어린 사과가 아버지의 어두운 기억을 어느 정도 희석한 거 같았다.

원래 아버지가 그렇게 남을 원망하는 성격은 아니었고, 그렇게까지 응어리가 깊진 않았나 보다. 이 정도라면 더 시간이 지났을 때, 어쩌면 친가 쪽을 직접 방문할 일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이게 300인의 명단인가요? 어디 보자…….”

그리고 며칠 뒤, 백랑이 파란색 큐브에 투입할 인원의 명단을 정리해 왔다.

“그런데 딱 보니… 전사들뿐이네요? 이건 누구 생각인가요?”

“지휘 계통도 있고, 호흡 문제도 있고. 오크 잡는 덴 기사들보다 역시 전사들이지. 적이 오크라는 말에 기사들이 전사들한테 자리를 양보했어. 기사들은 영지나 지키겠대.”

“음, 그래요? 나쁘지 않은 생각이긴 한데……. 이거 완전 모야족의 출정이 되어버렸네요. 전사 300에 궁수 150이 다 모야족이잖아요?”

“그렇긴 한데, 어차피 마을을 지킬 인원은 충분하니까. 지금 같은 계절이면 솔직히 100명이면 충분하잖아?”

“그렇죠. 그리고 어차피 며칠 걸리지도 않을 거예요. 어디 멀리 가는 것도 아니고요.”

훗날 밝혀질 일이지만 큐브 내부와 외부는 시간의 흐름이 조금 달랐다. 큐브의 규모, 그러니까 출입 가능 인원수에 따라 차등이 있었으니까.

아마 500인이 들어가는 초대형 큐브의 경우에는 그 비율이 제법 차이 날 것이다.

어쨌든 투입 인원이 모야족으로 가득 찬다고 무슨 문제가 있는 건 아니었다. 사실 양민 학살(?)은 역시 모야족이 전문이었고, 개별 전투, 개싸움, 막싸움 이런 것 역시 모야족이 가장 믿을 만했으니 말이다.

“아, 그래. 이렇게 된 거 전사 놈들을 데려다가 훈련장에서 훈련하고 있으면 되겠네. 호흡도 맞추고. 그 후에 자경단을 받으면 아마 훈련장이 빌 일은 없을 거야.”

“…맨날 같이 싸우는 전사들인데 새삼스럽게 호흡을 맞춘다고요?”

저건, 그러니까……. 전사들을 족치겠다는 거군. 예전부터 백랑에게 반기를 들던 그 반백랑 세력을 일소하겠다는 건가?

아무래도 이번 훈련 때 전사들의 곡소리가 훈련장을 가득 메울 거 같았다. 물론 출정까지 불과 열흘 남짓밖에 남지 않았지만, 그들에게는 하루하루가 정말 길게 느껴질 것이다.

* * *

다시 며칠 후, 황실에서 사자가 도착했다.

무려 보석으로 만든 작은 통신기 열 개를 가지고 영지를 방문한 것이다.

로빈은 황제의 놀라운 추진력에 감탄을 터트릴 수밖에 없었다. 이걸 며칠 만에 만들어내다니, 원리가 간단하다지만 마법 공학자들을 어지간히 갈아댄 거 같았다.

“하, 공돌이는 이곳에서도 갈리는 건가? 정말 안타까운 일이군.”

“예?”

“아, 아니에요. 황제 폐하께서 이걸 저한테 전해주라고 하셨다고요?”

“예, 후작님. 그리고 물건과 함께 이걸 드리라고…….”

“응? 서신이네요. 통신으로 하면 되는데 굳이 서신을…….”

[후작. 후작이 말한 통신기를 만들었네. 받고 대가는 미스릴 갑주로 보내주면 되겠군. 내 기다리겠네.]

…이 날강도 같은 양반이 기어이 이런 양아치 짓을?

일전에 황실에 바친 미스릴 갑주가 열 벌 정도였던 거 같은데 거기서 더 달라는 황제의 행태에 울분을 느낀 로빈은 깊게 숨을 들이마시며 마음을 진정시킨 후, 전령에게 물건을 되돌려줬다.

“황제 폐하한테 물건 안 받겠다고 전해주세요. 그냥 그렇게 전하면 아실 거예요.”

“예? 아……. 그럼 이걸…….”

“응? 이건 뭐예요?”

“후작님이 물건을 반환하려고 하면 이걸 드리라고 하셨습니다.”

[딱 봐도 열 받아서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을 거 같군. 내 인심 써서 이번에는 공짜로 넘겨주지. 그러니 큐브나 열심히 클리어하게나.]

이 양반, 진짜.

그럼 또 제가 넙죽 받아야죠. 잘 쓰겠습니다, 황제 폐하.

“황제 폐하께 감사하다고 전해주세요.”

“예, 후작님.”

웃으며 전령을 배웅한 로빈은 물건을 들고 바로 히센을 찾았다. 히센 역시 로빈이 그랬듯 물건을 보고 놀라며 감탄을 터트렸다.

“허, 미쳤군. 벌써 만들다니. 몇 명은 앓아누웠겠어.”

히센도 이쪽 관련자라 이 정도 물건을 며칠 사이에 만들려면 만드는 사람이 실신 지경까지 몰렸을 것을 어렵지 않게 눈치채고 이름 모를 누군가의 명복을 빌어줬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공학자의 피가 끓어올랐는지 물건을 유심히 관찰하는데.

“어때요, 히센 님? 성능은 어느 정도인가요? 이걸 보고 같은 걸 만들 수 있겠어요?”

“음……. 보자, 성능은 대충 1킬로미터 정도? 원래 100미터 정도를 생각했는데 꽤 수준급이군 그래. 큐브제 보석이 생각보다 마나석과의 궁합이 좋은 모양이야.”

“아무래도 둘 다 큐브에서도 나오는 것들이니까요.”

“수식이……. 그래, 이렇게 했군. 이 정도면 금방 만들 수 있겠어. 역시 통신 수정구를 바탕으로 만든 거라 원리 자체는 간단하군.”

“오, 그래요? 그거 다행이네요. 우리 날강도 같은 황제 폐하께서 이 물건의 대가로 미스릴을 달라고 하셨거든요.”

“뭐? 그랬나? 그건 곤란하지.”

“그럼요. 곤란하죠.”

(다음 화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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