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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소설 속 로빈-242화 (242/303)

242화

* * *

황도의 정보까지 취합한 로빈은 다음 날 바로 큐브를 공략할 것임을 수뇌부에 알렸다.

기다리던 모야족 전사들이 쾌재를 부르며 번개 같은 속도로 준비를 마친 건 당연한 일이리라.

“자, 모두 돌입할 겁니다. 물자는 모두 챙기셨죠?”

“식량, 무기, 치료약 그리고 통신기까지 다 챙겼어, 영주님.”

“화살도 잘 챙기세요. 이거 꽤 비싼 놈이잖아요.”

“예, 영주님. 궁수대 쪽에도 확실하게 주지시켰습니다.”

이번 큐브 토벌에 참여한 수뇌부는 백랑과 흑웅, 그리고 월연과 적호를 포함한 모야족의 중요 인사들이었다. 물론 기사단은 없지만 린이 내 호위 격으로 함께했고 말이다.

흑웅은 남길까도 했지만, 전사들을 두 갈래로 나눠 운용하려면 흑웅도 참여할 필요가 있었다. 흑웅이 없는 시간 동안 모야족 마을은 흑웅의 직속인 검은 곰 기사단이 맡기로 했다.

“그런데 영주님, 육포까지 챙겨가는 건 좀 과한 거 같은데. 이런 걸 먹을 새나 있겠어?”

“일반적으로는 그렇지만……. 적이 엄청 많으면 생각보다 많은 시간이 필요할지도 몰라요. 적의 수장을 처리하는 거면 빨리 끝날 수도 있지만, 그게 아닐 수도 있잖아요? 백랑 님도 들으셨죠? 무슨 목적 같은 걸 달성해야 클리어할 수 있다는 걸요.”

“그거야 그렇지만…….”

“거기 들어갔는데 적은 사방에 우글우글하고, 그걸 다 죽이라고 하면 하루 만에 다 잡을 수 있겠어요? 만약 빨리 마치면 그냥 다시 가져 나오면 되는 거고요.”

“준비가 모자라면 몰라도 철저한 건 문제가 안 됩니다, 족장.”

“쩝, 그래.”

“손에 들고 있는 거나, 착용하고 있는 것만 남게 되니까 잘 들고 들어가라고 하세요.”

“알았어, 영주님.”

“자! 돌입합니다.”

로빈의 명령으로 대기하고 있던 모야족 전사들과 궁수대, 그리고 사제들까지 모두 로빈의 지시가 떨어지자 신속하게 큐브에 돌입하기 시작했다.

가장 먼저 로빈과 린이 앞장섰고, 뒤이어 큐브에 들어오기 시작한 것이다.

사람 수가 적지 않아 시간도 제법 많이 걸렸다.

[큐브 B-C 완료 조건] [오크 족장 크로낙 처치] (U500)

“이런 식인가?”

큐브에 들어서자 로빈의 손등 위에서 빛나던 Y-C 마크 정보 창에 큐브 목표가 뚜렷하게 떠올랐다. 개인 정보를 기록한 큐브 마크에서 저런 식으로 목표까지 알려주는 모양이다.

목표를 확인한 로빈은 바로 주변부터 살폈다.

강을 등진 넓은 공터는 두꺼운 나무가 빽빽한 숲으로 둘러싸여 있었다. 군데군데 무너진 돌벽이 감싸고 있는 걸 보면 아무래도 무슨 요새나 성벽이 있던 자리인 거 같았다.

이곳에서 적을 막으며, 가장 깊숙한 곳에 숨어있을 오크 족장을 처리하는 것이 이번 큐브의 목적인 게 분명했다.

“…적이 없네. 진짜 장기전인가?”

“그런가 봐요, 백랑 님. 그럼 이제 어떻게 해야 할지 아시겠죠?”

“응, 영주님. 바로 움직일게.”

“좋아요. 백랑 님은 정찰대를 꾸리시고요. 흑웅은 우선 목책부터 좀 손보죠. 상대가 얼마나 되는지 모르는데 무턱대고 놈들을 찾아다니는 건 좀 위험해 보이니 안전하게 가요.”

“예, 영주님.”

“월연 님은 당분간 이곳에서 사제님과 궁수들을 보호하세요. 검과 활을 모두 쓸 수 있는 여전사 분들은 모두 데리고 오셨죠?”

“예, 영주님. 그러겠습니다.”

로빈의 명령대로 모두 신속하게 움직였다.

그중 가장 두드러진 건 역시 스스로를 보호하며 벌목에 나선 전사들.

백랑이 가장 날랜 전사들만 40을 데리고 떠났기 때문에 주변을 경계하는 전사가 100명에, 나무를 구해오는 전사들이 160명이었는데 대수림에서 자주 벌목하며 적만큼 나무도 잘 써는 다용도 전사들답게 빠르게 나무를 구해와 군데군데 비어있는 성벽을 채워 넣었다.

“그나마 물이 바로 뒤에 있어서 다행이에요. 혹시 모르니까 물은 끓여서 먹고요. 사제님들에게 소소한 일들을 부탁드릴게요.”

“예, 영주님. 저희에게 맡겨주세요.”

역시 봉사의 사제답게 이런 일에도 전혀 빼는 게 없었다.

그렇게 꼬박 하루 동안 목책을 보강하고, 베이스캠프를 완성할 때쯤, 정찰 나갔던 백랑이 돌아왔다.

“이 숲 깊은 곳에 오크들이 우글우글해. 내가 눈으로 확인한 마을만 여섯 곳인데, 족장이 어디에 있는지는 확인하지 못했어.”

“그런가요? 아무래도 장기전으로 가야 할 거 같네요.”

“아무래도 그렇겠지? 사제님까지 있으니 이곳을 지킬 병력도 필요할 거야.”

사제를 동반하면서 행동의 제약이 생긴 셈이지만 로빈은 후회하지 않았다. 어차피 선택의 문제였고, 장기전이면 오히려 사제가 있는 게 훨씬 수월하다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었기 때문이다.

“적의 수준은요?”

“제법 무장한 오크 전사와 단순한 일꾼으로 보이는 오크들이 섞여있어. 진짜 오크 부락 같은 느낌? 시간을 많이 끌면 놈들이 더 늘어날 수도 있겠어. 암컷들도 있는 거 같았거든?”

“설마 그렇게까지 오래 끌겠어요? 아무리 오크라도 임신 기간이랑 어린 오크를 키우는 시간이 있는데요.”

장기전이긴 하지만 지구전으로 끌고 갈 순 없다는 말이었다.

물론 그럴 생각은 전혀 없었지만 어설픈 병력을 끌고 왔다가는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는다고 장담하기도 힘들었다.

그리고 그날 저녁, 챙겨온 혼 래빗 육포로 식사를 마치고, 수뇌부들이 모여 내일부터 어떤 식으로 작전을 전개할지 논의하기 시작했다.

사방에 오크 부락이 있는 상황에서 방어조와 공격조를 나누는 건 물론이요, 오크 족장을 금방 찾지 못한다는 전제하에 물자의 분배까지 계산해야 했다.

“우선 챙겨온 육포로는 3일 정도 더 먹을 수 있겠네요. 싸우러 왔는데 식량을 아낄 순 없는 일이니까요.”

장기전으로 들어간다는 전제하에 물자를 점검했는데 나름 챙겨온다고 챙겨왔는데도 그리 오래 먹을 순 없었다. 워낙 먹성이 좋은 전사들이기도 했고, 자신이 들고 있는 것만 가져올 수 있는 큐브의 특성상 따로 많은 짐을 챙길 순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식량을 아껴 체력을 소진시키는 건 악수 중의 악수였다. 무조건 잘 먹어야 잘 싸운다는 건 고금의 진리였으니 말이다.

“등 뒤쪽 강은 생각보다 수폭이 넓어 오크들이 넘어오기는 힘들어 보여요. 아니, 오히려 그쪽으로 오면 처리하기가 편하겠네요. 수영으로 헐떡이는 놈들을 바로 쏴 죽이거나 베어버리면 되니까요.”

“그리고 강 안쪽을 보니 물고기들이나 먹을 수 있는 수초들도 있는 거 같았어요. 이쪽의 생물들이 제국과 조금 다를 수도 있겠지만…….”

“독이 있는 것과 없는 것만 구별하면 편하겠네요. 이걸 어쩐다, 해독 포션은 몇 개나 있죠? 황도에서도 많이 생산된 게 아니라 그리 많진 않잖아요?”

“그러니까……. 열다섯 병이네요.”

“영주님, 어차피 오크가 독을 쓸 일은 거의 없으니 물고기나 수초를 먹고 상황을 보는 게 어떨까?”

“아무래도 그래야겠네요. 운이 좋으면 포션 없이 그냥 식량을 구할 수도 있으니 내일 바로 시작하죠.”

“그 일은 저희 궁수대 쪽에서 맡겠습니다. 전사들은 내일도 따로 진지를 꾸려야 하니, 저희가 하는 게 낫겠네요.”

“오호~ 좋은 구경하겠는데. 자맥질하는 모습이 쏠쏠하겠어~”

“…족장.”

철제가 아니라 가죽으로 만든 것이지만 물을 먹으면 무거워져 행동하기 불편한 건 마찬가지라 갑옷으로 무장을 한 채 물속에 들어가 물고기를 잡고, 수초를 따는 건 아무리 수영에 능한 모야족 여궁수들이라도 무리였다.

결국 갑옷을 벗은 채 한때 센세이션을 일으킨 그 얇은 가죽 속옷만 입고 들어가거나 성격에 따라서는 알몸으로 물에 들어가게 될 것이다.

지금 백랑이 말한 건 바로 그 이야기였다.

운동으로 단련된 모야족 여궁수들의 아찔한 모습.

틀린 이야기를 한 건 아니지만 월연이나 흑웅 모두 고개를 가로젓고 있었다. 이런 회의에 처음으로 참석한 사제들의 대표 레아 사제 역시 뭐 저런 인간이 있냐는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고.

“에이, 그냥 웃자고 하는 소리지. 설마 내가 그런 걸 기대하고 있을까? 우리 집에 가면 쌔끈 빵빵한 내 여자가 기다리고 있거든.”

“족장은 언제나 최고의 여자는 내 것이 아닌 여자라고 하지 않았던가요?”

“…그러긴 했지.”

와. 저 양반, 저거 안 되겠구만.

하지만 그것과 상관없이 백랑은 그 절경을 구경할 일이 없을 거다.

“그런데 어차피 백랑 님은 쫑이에요. 내일도 정찰 나가셔야죠. 내일은 전사들 40을 추가로 더 데리고 가서 작은 부락을 공격해 보세요. 반응을 보고 위험하면 바로 빠지시고요. 부상자들을 특히 잘 챙겨야 하는 거 아시죠?”

“벌써?”

“물론 준비는 하겠지만 어차피 오크인데 굳이 시간을 끌어야 할 이유가 있나 싶네요. 오늘 쌓은 목책으로 기본적인 방어는 될 거 같으니까 반응을 한번 보자고요. 흑웅, 오늘 쌓은 목책 위에서 궁수 100명이 지원한다면, 오크를 얼마나 막을 수 있겠어요?”

“족장이 80을 데리고 나가면 대략 220명인데……. 그 정도면 천 마리도 막을 수 있습니다.”

“근처 나무를 많이 베어놔서 시야도 좀 틔었으니 그렇겠죠? 궁수들이 두 발만 당겨도 200마리니까요.”

“네, 자신 있습니다.”

“좋아요. 백랑 님, 들으셨죠? 내일도 잘 부탁해요. 통신기 꼭 챙기시고요.”

“끙, 재미있는 걸 못 보게 생겼네. 알았어, 영주님.”

마을에 있을 때 풀장에서 실컷 봐놓고도 저러는 백랑.

역시 괜히 호색한이 아니었다. 물론 명기인 월아 때문에 더 이상 부인을 늘리지 못하기 때문에 시각적으로나마 만족하려 하는 거 같았지만 말이다.

하긴, 저런 나사 빠진 모습이 또 백랑의 매력이라면 매력이었으니.

사실 전투만 잘해주면 저 정도는 그냥 작은 장난에 불과했다.

그리고 다음 날.

백랑이 전사들을 이끌고 떠난 후, 본부는 어제 계획한 대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시야를 더 정리하며 목책을 단단히 하는 전사들과 식량을 구하기 위해 분주하게 움직이는 사제와 궁수들.

남은 궁수들은 목책에 몸을 숨기고 주변을 경계하고 있었다.

“아……. 사제들한테는 혼 래빗 내의를 보급하지 못했구나. 모야족 궁수들보다 저게 진짜…….”

사제들이 큐브나 출진에 투입된 건 그리 오래되지 않았고, 그래서 보급품이 완벽하지 못했다.

그러다 보니 직접적으로 방어력에 큰 영향이 없는 내의가 빠진 모양이다. 내의의 목적은 모야족이 여름에도 수월하게 움직일 수 있게 체온을 조절하는 건데, 사제들은 신성력 덕분에 계절이나 온도에 크게 구애받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덕분에 지금 저 강에는 잘빠진 알몸의 사제 50명이 부지런히 수초를 따고, 물고기를 잡거나 소라처럼 생긴 걸 주워 오고 있었다.

“…주인, 너무 그런 눈으로 보면 언니한테 다 말할 거야!”

“응? 아아. 그냥 관상용으로 보고 있는 거야. 보기 좋잖아? 물론 참 박음직스럽긴 하지만……. 그래도 먹는 건 너희들뿐이니까, 걱정하지 말고.”

옆에서 로빈을 호위하던 린이 묘한 눈으로 바라봤지만 뻔뻔하게 대답하는 로빈.

이제 로빈도 저 정도는 감상하듯 대놓고 바라볼 정도는 되었다. 어차피 지금은 다른 할 일도 없었고 말이다.

그런데 진짜 다이앤에게 다 이르는 건 아니겠지? 그러면 조금 피곤해질 수도 있는데.

에이, 설마. 아무리 린이지만 그 정도 눈치는 있을 거라고 믿었다.

잠시 후 궁수들과 사제들이 신경 써서 잡아온 물고기를 구워서 맛을 보았는데 독성이 있지는 않다는 결론이 났다.

하긴, 적어도 며칠은 걸리는 큐브에서 식량을 구할 방법도 없다면 이 큐브의 난이도가 겨우 C랭크일 리는 없었다.

그 정도 난이도라면 적어도 B나 A는 되지 않을까? 먹지도 못하고 싸우는 건 그야말로 극악의 난이도였으니 말이다.

“그래, 한국 군대도 거지 같지만 먹을 걸 주긴 하거든. 세상에 그것보다 더 거지 같은 게 존재하면 곤란하지.”

그렇게 식량 문제가 그럭저럭 해결되어 흐뭇해하는 사이, 공격조로 나선 백랑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쩝. 재미 좋은 거 같은데, 영주님?]

“아아, 이거 켜놓고 있었죠. 미안해요, 백랑 님.”

목 부분과 귀에 부착하는 미니 통신기.

히센은 원리가 쉽게 이해된다고 말한 단순한 물건이지만 로빈은 사실 이게 대체 어떤 원리인지 이해하기 힘들었다. 외부의 소음이 들어가지 않게 하기 위해 목 부분에 부착하는 거라는데 어떻게 소리가 정확히 전달되는 건지 알 수 없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어쨌든 물건은 잘 작동되었고, 아무 생각 없이 켜놓은 상태에서 린과 대화하는 게 백랑한테까지 전해진 모양이다.

잠깐, 그럼 지금 강가에 나가있는 사제나 전방에서 경계하고 있는 월연한테도 이 말이 전해졌단 거잖아? 완전 백랑이랑 동급으로 취급당하겠는데?

(다음 화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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