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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소설 속 로빈-246화 (246/303)

246화

* * *

집으로 돌아온 로빈은 부인들에게도 황도를 방문할 거란 사실을 밝혔다.

린은 자신이 당연히 호위로 따라가는 줄 알고 있다가 로빈이 남으라고 하자 강하게 반발했는데.

“안 돼! 주인. 호위인 난 무조건 따라가야지.”

“넌 그냥 집에서 쉬고 있어. 그렇게 싸웠으니 피로도 만만치 않을 테고, 얻은 것도 있을 텐데 그것도 수습해야지.”

“끙, 그거야 그렇지만…….”

“몸이 축나서 정작 중요할 때 못 싸우면 좀 곤란해. 가장 믿을 만한 녀석이 넌데, 최상의 컨디션을 유지해야지.”

“…알았어, 주인.”

그렇게 린을 달래고 있는데 다이앤이 동행하길 요청했다. 황도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 다이앤이 황도행을 자처하다니, 로빈이 생각하기에도 조금 의아한 일이었다.

“아무래도 알아봐야 할 게 있어서요. 주노 님이 알아보고는 계시는데 결과가 영 신통치 않네요.”

“무슨 일인데?”

“로빈도 알다시피 이번에 작은 극장을 짓고 극을 준비하고 있잖아요? 다들 재능은 충만하지만 이끌어줄 사람이 없어서 좀 곤란해요. 그래서 사람을 찾고 있는데, 마땅한 사람이 없어서요. 로빈이 황도에 가면 같이 가서 직접 알아보려고요.”

“아, 그게 있었지.”

다이앤이 책임지고 있는 영지 문화 산업.

그 시작은 소극장에서 공연하는 것이고, 그 극단의 인원까지 다이앤이 관리하고 있었다. 그런데 주노가 황도에서 적당한 사람을 구하지 못해서 일정이 자꾸 밀리는 모양이었다.

제대로 된 극을 선보이려면 제법 시간이 걸릴 텐데 일이 지연되니 다이앤도 꽤 난감할 거다. 물론 일이 늦어진다고 뭐라고 할 사람은 없었지만, 내가 처음 맡긴 일이니만큼 제대로 하고 싶을 텐데 그게 마음대로 안 되고 있었으니 말이다.

“겸사겸사 크레톤 공작 영애도 좀 보고요. 황후 폐하께도 인사를 드려야겠죠?”

“음. 그래, 그럼. 앤이랑 같이 가면 되겠네.”

“영주님, 황도에 가시면 촉매 좀 몇 가지 구해다주시겠어요? 몇 가지 재료가 필요한데 상인이 구하기는 좀 그런가 봐요. 웬만한 재료는 다 황실에서 관리하고 있어서요.”

“음……. 그래? 한번 알아보긴 할게. 그런데 주노가 못 구하는 건 나도 못 구할 텐데.”

“에이, 그럴 리가요. 주노 님이 그레이츠 영지 상단의 상단주이긴 하지만 귀족이 직접 움직이는 거랑은 좀 다르죠. 정 안 되면 황제 폐하 쪽에 직통으로 찔러 넣어도 되고요. 영주님은 권력이 있잖아요~”

황도에 간다고 하자 실비아는 몇 가지 재료를 구해달라고 요청했다. 권력은 이럴 때 쓰라고 있는 거라는 말 역시 인상적이었고.

어쨌든 따라가려는 린과는 전혀 다른 반응이었다.

그냥 너도 같이 가는 게 어떠냐고 물었더니 번잡한 황도에 가서 시간 낭비하느니, 영지에서 멋진 걸 만들어내 상을 받는 게 더 낫다나?

저번에 만든 전투용 포션의 대가로 제법 잘해줬더니 그게 꽤나 마음에 든 모양이다.

저번 성과에 대한 보상으로 실비아에게 상을 줄 때 제 발 저린 다이앤과 린 모두 실비아에게 정말 잘해줬다.

사실 그때 그 일 덕분에 상을 받을 때는 우대받는다는 새로운 전통(?)이 생겨났고, 이번에 린이 상을 받을 때도 그만큼 대우받을 수 있었던 거다.

물론 린의 재능에 질투가 난 내가 그녀를 괴롭히기 시작하면서 하루를 넘기지 못했지만 어쨌든 그런 분위기가 조성된 것만은 사실이었다.

그러니 저 상 집착녀 실비아가 다시 연구에 집중하는 거였다.

“좋아, 어쨌든 이번 황도행은 앤과 함께할 거니까, 린과 실비아는 얌전히 영지에서 기다려.”

“응, 주인.”

“알았어요, 영주님.”

* * *

호위로 기사 열을 거느리고 로빈은 다이앤과 함께 황도로 출발했다. 시간을 지체하다가 황제가 다른 영지로 떠나버리면 조금 곤란해서 더 서두른 것이다.

로빈이 알고 있는 바에 따르면 이제 며칠만 있으면 황제가 제국 순회를 시작하기 때문에 더 미룰 수도 없었다.

“흠, 역시 아직은 좀 가라앉아 있네.”

“그러네요. 따지고 보면 황도에선 한 번도 큐브가 폭발하지 않았는데 왜 그럴까요?”

“그건 그렇지만, 불안감이 없을 순 없지. 점점 나아지긴 하겠지만 지금은 어쩔 수 없는 거니까. 폐하께서 힘내고 계시지만, 그만큼 뒤숭숭한 소문도 많으니…….”

“그렇군요.”

“게다가 재수 없게 즉위식 날 큐브가 생겨났다는 것도 무시할 수 없겠지. 민심이란 게 그런 거잖아? 그나마 누가 선동질하는 거 같진 않지만 마음속에 꺼림칙함이 없진 않겠지.”

“그냥 우연에 불과한 일인데 그런가요?”

“누가 봐도 우연이지만 사람 마음이 어디 그런가? 뭔가 큰일이 생기면 원망할 곳부터 찾는 게 사람인데. 물론 모두가 그런 건 아니지만 안 그런 사람보다 그런 사람이 더 많을걸?”

황도의 분위기가 위축되어 있다는 건 로빈도 어느 정도 체감하고 있었다.

가장 직접적으로 체감할 수 있었던 건 그레이트 A의 매출 감소.

혼 래빗 가죽, 혼 래빗 거시기, 그리고 그레이트 V는 그 타깃이 귀족들이라 큰 영향이 없지만, 귀족과 부유한 상인, 그리고 평민들에게까지 잘 팔리던 그레이트 A는 그 판매량이 제법 줄었다.

지금까지 단 한 번도 판매량이 하락한 적이 없었던 만큼 두드러지는 변화가 아닐 수 없었다.

멀리 떨어져 있는 로빈이 그걸 느낄 정도라면 황도에서 사는 주민들은 그런 소비 위축을 누구보다 크게 실감하고 있을 것이 분명했다. 그러면 자연적으로 경기가 안 좋아지고, 민심 역시 뒤숭숭할 수밖에 없었다.

“폐하께서 큐브 클리어 소식을 널리 알리는 것도 그런 이유겠지.”

“그렇군요. 로빈은 바로 황궁으로 가시나요?”

“응? 아아, 아니. 우선 알현 요청부터 하고. 황태자 시절이야 그냥 바로 찾아가거나 그랬지만, 지금이야 그럴 수 있나.”

“그래요. 그럼 우선 저택으로 가요.”

그렇게 황실에 알현을 요청하고 로빈은 다이앤과 함께 저택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다이앤과 같이 하루 지낸 후 황실에서 연락하길 기다리려고 했는데, 황실보다 리아넨 공작이 더 먼저 로빈을 찾았다. 도착하자마자 어떻게 알고 찾아왔는지 신기할 정도였다.

예전에도 그렇고, 어떻게 이렇게 빨리 알아내는 거야? 첩자를 심어놓은 것도 아닌데, 참 대단하네.

아마 다른 영지라면 첩자를 의심해 볼 수 있을 만한 상황이었지만 황도에 깔린 리아넨 공작가의 정보망이 생각보다 더 대단하다는 것 정도로 정리하고 로빈은 리아넨 공작을 맞이했다. 자신의 영지에 첩자가 숨어있는 건 상상하기 힘든 일이었으니 말이다.

리아넨 공작이 굳이 그럴 이유도 없었고.

“그레이츠 후작, 정말 오랜만이군 그래.”

“그렇네요, 공작님. 잘 지내셨나요?”

오랜만에 만난 리아넨 공작은 분위기가 많이 달라졌다. 예전의 가벼운 분위기가 많이 무거워졌달까?

상당한 무게감이 느껴지는 게 큐브 때문에 이런저런 일을 겪으며 많이 단단해진 모양이다. 어쨌든 고생하면 철이 드는 게 당연한 순리였으니 말이다.

“말로라도 잘 지냈다고 하진 못하겠군. 알다시피 중부 쪽도 난리가 아니었으니까.”

“그랬군요. 중부 쪽에 터진 일을 공작 각하께서 책임지고 계시니 그럴 만도 하네요. 그래도 요즘은 조금 나아졌죠?”

“그래, 그나마 다행이야. 가장 큰 피해를 보는 게 영주 본인이라 알아서 조심하게 되더군. 신중하게 판단하니 실수가 줄어들 수밖에.”

“큐브를 계속 클리어하면서 기사들의 수준도 높아지고 있을 테고요.”

“맞아. 리아넨의 기사들도 이제 예전 같지 않단 말이지. 예전에 대수림에서 빌빌대던 그 기사들이 아니야.”

“하하, 그래요? 그건 다행이네요.”

“그레이츠 쪽에서 넘어온 마수 가죽, 정확히는 황실이지만 그것도 그레이츠 쪽에서 넘긴 거니 후작에게 받은 거나 마찬가지지. 어쨌든 마수 가죽 덕을 좀 봤네. 늦었지만 고맙다고 말하고 싶군.”

“거래인데요, 뭘. 정당한 거래였으니 그렇게 생각하시지 않아도 돼요.”

“그래도 그럴 수 있나. 상급 마수의 가죽을 넘겨준 건 명백한 호의였으니 말이야. 덕분에 기사단장이 목숨을 건졌지 뭔가.”

“그래요? 천만다행이네요.”

리아넨 공작이 빅 테일 가죽으로 만든 갑옷을 자신이 입지 않고 현장에서 활약하는 기사단장에게 넘겨준 모양이다. 그리고 가죽의 방어력 덕분에 그가 위기를 넘길 수 있었고.

그런 상황이면 나에게 고마워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어쨌든 그냥 넘어가도 되는 걸 굳이 챙겨준 것이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저 리아넨 공작이 단순히 고맙다는 이유로 나를 찾진 않았을 거다.

“그런데 무슨 일로 찾아오신 거예요? 단순히 감사 인사를 하러 직접 행차하신 거 같진 않은데요.”

“하긴, 우리 사이에 쓸데없이 간을 볼 필요는 없겠지. 후작도 인사치레를 따지는 인물은 아니니까.”

“그래요, 공작님. 그냥 속 시원히 말씀해 보시죠.”

로빈이 판을 깔자 고민하던 리아넨 공작이 입을 열기 시작했다. 물론 로빈으로서는 조금 의아한 말이었지만 말이다.

“그레이츠 쪽에서 파란 놈을 처리했다고 하더군. 참 대단해. 제국에서 두 번째 아닌가?”

“와, 그거 벌써 들으셨어요? 어젯밤에 보고가 들어갔을 텐데 그걸 벌써 아시다니. 새삼스레 리아넨의 저력을 확인하게 되네요.”

내가 도착하자마자 바로 찾아온 것도 그렇고, 확실히 저력 있는 가문이었다. 오랫동안 권력의 중추에 있던 가문인 만큼 그 뿌리가 제법 깊은 모양이다.

“하하, 대귀족치고 큐브 소식에 귀 기울이지 않는 작자는 없을 거네. 리아넨이야 황도에서 잔뼈가 굵은 가문이다 보니 듣는 귀가 많은 거뿐이고.”

“그런가요? 그런데…….”

“아아, 그래. 사실 우리 영지 근처에도 하나 있다네. 그 파란 놈 말이야. 그래서 말인데, 그놈을 처리하는 데 한 손 보태줄 순 없나?”

“음…….”

황제가 나서서 처리할 것을 굳이 나에게 부탁하는 리아넨 공작.

몇 가지 짚이는 바가 있었지만, 굳이 그럴 필요가 있을까 싶다. 황제가 혼자 모든 걸 독점하려 한다면 몰라도 각 영지에도 경험을 쌓을 기회를 줄 계획이었으니 말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나는 다른 영지를 신경 쓸 여유가 없었다. 황제가 최초로 파란색 큐브를 공략했다면, 나는 빨간색 큐브를 최초로 클리어해야 하는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큐브 대기 시간이 하필이면 한겨울까지라 번거로운 일을 피하려면 황제보다 먼저 움직여야 했고, 지금은 모든 역량을 그것에 집중해야 하는 시기였다.

“글쎄요. 굳이 그럴 필요가 있을까요? 황제 폐하께서 따로 말씀하시지 않던가요?”

“그거야 그렇다만…….”

“아무래도 황제 폐하께 너무 의존하는 상황을 피하고 싶으신가 보네요. 제가 황제파이긴 하지만 그래도 귀족이고, 황실과는 좀 다르니까요.”

“…솔직히 말하자면 그래. 지금 황실의 힘은 어느 시기보다 강력하지. 현 황제 폐하가 어떤 인물인지는 나도 알고 있지만, 힘의 균형이 너무 무너지니 고민될 수밖에 없더군.”

어쨌든 귀족파의 거두라는 건가?

지금은 상황이 좀 이상해졌지만 원래 리아넨 공작가는 귀족파의 거두였다. 황실의 힘이 너무 강해지는 걸 견제하고, 신권과 황권의 균형을 찾는 것이 리아넨 공작가의 존재 의의였고.

황실이 사사건건 걸고넘어지는 리아넨 공작가를 그냥 둔 건 황실 역시 절대적인 권력이 어떤 식으로 변질하는지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큐브라는 이상한 놈이 나타나 그 저울추를 완전히 망가트려버렸으니 고민되는 거였다.

게다가 황권이 강해진 이유가 군사적인 이유라는 사실 역시 큰 문제였다. 정치적인 역량이 아니라 군사적인 이유로 강해진 황권은 어떤 귀족도 대항할 엄두를 내지 못하기 때문이다. 턱밑에 검을 겨누고 있는 상대에게 입바른 소리를 할 수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으니 말이다.

사실 황실의 세력이 공고하다고 평가받던 룩센 대제 치세 때도 황제의 군대가 귀족들을 압살할 정도는 아니었다.

“마음은 이해하지만, 의미 없는 일이에요. 파란 놈을 귀족들이 알아서 해결한다고 그게 대세에 영향을 줄까요? 클리어 시 나오는 보상을 생각하고 있나 본데, 사실 그게 별거 없거든요. 황실에서 클리어한 그 큐브가 이상한 거예요. 지금은 그저 황제 폐하를 따라 경험을 쌓는 게 더 나은 시기죠. 솔직히 저도 황제 폐하만큼 잘 클리어할 자신은 없거든요.”

“음…….”

“들으셨는지 모르겠지만 황제 폐하는 귀족의 병력에 자신만 추가해 큐브를 클리어하실 생각이세요. 그러니까, 그 경험은 고스란히 귀족들의 것이라는 거죠. 사실 그건 황제 폐하만 할 수 있는 일이거든요.”

“후~ 이거 참…….”

“그리고요, 공작님. 황제 폐하는 저 힘을 혼자만의 것으로 둘 생각이 아니세요. 절대 권력 같은 건 별로 관심도 없으시다고요. 아마 시간이 지나면 다시 예전처럼 황권과 신권이 균형을 맞추게 될 거예요.”

“그게 무슨 말이지?”

(다음 화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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