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2화
“2차 각성이요? 스킬을 얻게 하자는 거죠?”
“지금처럼 하급 큐브가 많을 때 되도록 많은 인원을 각성시키는 게 나을 거 같습니다. 정식 클리너는 거기서 전투 스킬을 각성한 사람 중에 선별하면 되지 않을까요? 미리 뽑아놓고 훈련까지 다 시켰는데, 얻은 게 전투 스킬이 아니면 좀 곤란할 거 같더군요. 지금까지야 그런 일이 거의 없었지만…….”
“치안대 중에 전투 스킬이 아닌 걸 각성한 사람이 있는 것도 아닌데 굳이 그런 걱정을……. 아, 아니지. 상황이 좀 다르구나.”
치안대에 지원한 천 명은 그야말로 지금까지 싸움박질만 하고 돌아다닌 마을의 왈패들이나, 전사가 되기 위해 백랑에게 두들겨 맞던 모야족 청년들이었다.
그러니 전투 스킬을 각성할 가능성 높았던 건 너무나 당연한 일.
하지만 이번에 모집하는 인원들은 그게 아닐 가능성도 있었다.
또한 지온의 말대로 되도록 많은 인원을 각성하게 하는 것도 의미가 있는 일이었다. 그만큼 큐브에 대한 일종의 인프라를 넓힐 수 있는 일이었으니 말이다. 다양한 사람이 큐브에서 각성하면 큐브 재료를 다룰 수 있는 일종의 생산직이 늘어나게 되기 때문이다.
“그래요. 확실히 그렇네요. 제가 신경 쓰지 못한 부분이에요. 그럼 빨리 우선 각성부터 시키고 봐요. 혹시 괜찮은 걸 각성하는 사람이 나오면 그건 그거대로 좋고요. 하지만 라이선스 발급 인원은 500 정도로 생각하고 있어요. 각성 후 스킬을 보고 따로 뽑은 후, 백랑 님에게 훈련을 맡기는 쪽으로 하죠.”
물론 투잡 같은 걸 용납하진 않을 생각이지만 우선 각성부터 시키자는 의견은 확실히 나쁘지 않았다.
고블린 같은 놈이 많이 나오는 U25급 큐브에 기사를 서넛 정도 넣고 방어구를 입힌 일반인을 넣는 방식으로 각성시키면 큐브가 새로 생겨나는 속도를 생각했을 때 이번 달이 다 지나기 전에 대부분 큐브 스킬을 얻을 수 있을 거 같았다.
“그럼 그렇게 처리하죠. 그리고 장인들은 따로 모아서 각성시키는 거로 하구요. 이런 일은 한꺼번에 처리하는 게 오히려 편할 거예요.”
“예, 영주님, 그럼 그렇게 처리하겠습니다.”
* * *
구름같이 모여든 인원들은 그렇게 처리하기로 하고, 로빈은 자신을 기다리는 정예 10인 팀을 만나기 위해 연무장을 찾았다.
그리고 그곳에서는 이번에 합류하게 된 지크가 린과 검격을 교환하고 있었는데.
경력도 길지 않고 치안대에서만 활동한 지크와 대련하는 건 린도 이번이 처음이었다.
“오호~ 제법인데. 찌질이라더니, 그건 아닌 모양이야~”
“윽, 찌질거리는 건 레아한테 뿐입니다. 다시 가겠습니다.”
“좋지!”
이름: 지크
성향: 순정. 중도적. 합리적
타이틀: 리더십(U). 탁월한 임기응변(SR). 체술의 달인(R)
패시브: 초월적인 몸놀림 (랭크 C)
액티브: 일점 타격 (랭크 C)
이름: 레아
성향: 청순 요염. 신실. 음란.
타이틀: 대사제(SR). 체술의 달인(R)
패시브: 로디시의 전투 사제 (랭크 C)
액티브: 여신의 축복 (랭크 C)
오, 제법인데. 저 정도면 확실히…….
아직 무기를 다룬 지 오래되지 않아서 무기에 대한 타이틀은 없었지만, 임기응변이 뛰어나고 체술에도 능한 전천후 재원이었다.
만약 저기에 도검과 방패 쪽 타이틀만 추가된다면 뛰어난 리더 겸 보조 탱커로 이름 날릴 수 있을 거 같았으니까. 특히 임기응변이 뛰어난 건 변수가 많은 큐브 공략에서 많은 도움이 될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순정이라니.
한때 린도 저 순정을 달고 있을 때가 있었다. 이내 곧 호색으로 변해버렸었지만.
어쨌든 저 녀석은 아직 순수한 녀석인가 보다.
대수림 캠프에서 무려 떡정으로 사제를 꼬신 주제에 아직 순정 상태란 건 어이없었지만 상대가 레아 ‘사제’인 이상 저 순정이 이제 곧 이상한 쪽으로 변할 거라고 장담할 수 있었다.
사제랑 커플인데 순정이라니, 어림도 없지.
레아 사제가 본색을 드러내는 순간 순정 따위는 바로 순삭되고 말리라.
그렇게 한참 검격을 나누는 둘을 지켜보다 다른 사람들을 살폈다.
백랑은 클리너들을 훈련하는 문제로 준비할 게 많아 아직 참석하지 않았고, 제필과 듀발 그리고 월연이야 향상 익숙한 인물이었으니 생소한 인물은 타네, 투네 형제뿐이었다.
이름: 타네
성향: 충직. 우직. 강직
타이틀: 사슬의 대가(SR). 탁월한 근력(U). 강인한 체력(R)
패시브: 탁월한 용력 (랭크 C)
액티브: 용력 발산 (랭크 D)
이름: 투네
성향: 충직. 우직. 강직
타이틀: 사슬의 대가(SR). 탁월한 근력(U). 강인한 체력(R)
패시브: 탁월한 용력 (랭크 C)
액티브: 용력 발산 (랭크 D)
…뭐야, 저건. 무슨 복붙이야?
성향이 무려 3직인 것만 봐도 어떤 인물인지 충분히 짐작할 만한 두 형제.
거기다 복사한 듯이 상태까지 비슷한 형제를 보니 그저 웃음만 터져 나왔다.
하지만 사슬의 대가라니, 확실히 사슬을 쓰는 것 하나만큼은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 모양이다.
“불러주셔서 감사합니다, 주군.”
“영광입니다, 주군.”
“네, 뭐. 편하게 하세요, 편하게.”
지금까지 대부분 자신을 영주님이라고 불렀는데 갑자기 주군이라니.
따지고 보면 저게 가장 정확한 호칭이지만 요즘 추세는 평범하게 영주님으로 부르는 게 정석이었다. 주군은 좀 고루한 호칭이라는 평이니까.
하지만 처음으로 주군이라고 부르는 기사를 만났더니 뭔가 좀 으쓱하긴 한다. 무슨 다른 목적이 있는 게 아니라 딱 봐도 그냥 평소에 그렇게 생각하고 있던 거 같아서 더 그랬고.
어쨌든 저 둘이 대단히 충성스러운 기사임은 분명했다.
한 번 그렇게 쓱 훑어보고 린 쪽으로 눈을 돌리자 이제 대련도 슬슬 마무리로 접어든 상황이었다. 제아무리 큐브 클리어의 에이스라지만 아직 우리 생체 병기 린나니에게 비비는 건 좀 무리인지 지크가 결국 검을 놓치고 말았으니까.
“좋아. 이 정도면 믿을 만하겠어. 환영한다, 찌질이.”
“…감사합니다, 단장님.”
지크는 조금 떨떠름한 얼굴이지만 어쨌든 저건 린 나름의 환영 인사였다. 검을 나눠 본 후 지크가 믿을 만하다고 느껴져 저러는 거니까.
그리고 린의 활약을 직접 확인한 레아 사제 역시 지크가 린에게 인정받았다는 사실에 뿌듯해하며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하긴 그때 그 오크 족장을 바로 날려버린 린의 모습을 직접 본 레아 사제였으니 고수에게 인정받은 자신의 남자 지크를 자랑스러워할 만도 했다.
“오늘은 우선 서로를 확인하고, 몇 가지 알려주기 위해 모이라고 했습니다. 당분간 중점적으로 준비할 사항도 따로 알려 드릴게요. 그보다 우선, 지크?”
“예, 영주님.”
“제가 가장 궁금한 건 레아 님의 축복이에요. 지크 님도 큐브에서 레아 님의 축복을 받은 적이 있었죠? 후폭풍이 엄청나던데, 괜찮았나요?”
“아… 네. 저희도 알고 있습니다만, 급박한 상황에서는 생각보다 큰 힘이 되더군요. 물론 전투가 마무리되면 좀… 하하, 아시다시피 참을 수 있는 게 아니라서요.”
“그렇죠, 그럼 마무리하고 바로?”
“예, 어쩔 수 없이……. 이건 다른 방법이 없더라고요.”
“흠, 역시 그런가요? 전투 중에 사용했을 때 다른 부작용은 없었나요? 냉정한 판단이 불가능해진다든지, 하는 그런 거요.”
“아아, 맞습니다. 저도 처음에는 끓어오르는 고양감? 그런 것 때문에 고생했는데 몇 번 겪어보니 그 부분은 어느 정도 제어할 수 있었습니다. 처음 몇 번만 그렇지 조금씩 익숙해집니다. 물론 고양감이나 자신감은 어쩔 수 없지만, 점점 그걸 감안해서 판단하게 되더군요.”
“적응이라. 역시 그 수밖에 없군요.”
아무래도 큐브에서 레아의 버프를 몇 번 더 받아야 어느 정도 적응할 수 있을 거 같았다.
“아, 그리고 타네 경, 투네 경. 두 분은 결혼하셨나요? 아니면 애인이라도?”
“…전 아직…….”
“네, 저도.”
둘 다 아직인가?
축복을 꾸준히 받으려면 짝이 있는 게 오히려 편한데.
저 둘의 덩치와 분위기, 그리고 힘을 생각하면 웬만한 여자들은 바로 떡실신할 거 같은데 괜찮은 짝이 있으려나.
“혹시 두 분, 따로 이상형이나 그런 건 있습니까?”
“예? 아… 그저 건강하고 예쁘기만 하면…….”
“…저도 그렇습니다.”
이건 또 좀 이상하네, 모야족 마을에 건강한 기사라면 외모 상관없이 사족을 못 쓰는 건강하고 예쁜 처녀들이 줄을 섰는데 왜 아직 짝을 못 만난 거지?
난 또 무슨 특별한 이상형이라도 있는 줄 알았더니.
“그 예쁘다는 게 그냥 몸매 쭉쭉 빠졌고, 농염 혹은 귀여운 그런 여성을 말하는 거죠?”
“네, 그런 분이면 과분하죠.”
“월연 님, 그렇다는데 모야족 처녀 분들 중에 괜찮은 분 있을까요? 건강한 건 또 그분들이 한 건강 하죠.”
“호호. 걱정 마세요, 영주님. 제가 딱 적당한 분들을 소개해 드릴게요. 투네, 타네 형제면 저희 마을에서도 유명한 분들이라…….”
“오호, 그래요? 다행이네요.”
딱딱한 얼굴에서 점점 홍조가 이는 두 형제의 모습에 웃음 짓던 로빈은 이제 다시 본제로 돌아와 둘에게 묻고 싶은 이야기를 꺼냈다.
“우선, 새로 제작된 마법 사슬은 받으셨죠?”
“예, 영주님. 생각보다 더 튼튼한 물건이라 감탄하고 있었습니다.”
“맞아요. 특히 연결 부위는 미스릴까지 동원해 최대한 튼튼하게 제작했거든요. 이 정도면 충분히 레드 큐브에서도 먹힐 거예요.”
“그렇군요.”
“하지만 아직 큐브에서 사슬을 사용해 본 적은 없으실 거예요. 아무래도 이번 공략전에서 저 사슬이 제법 중요하게 쓰일 것 같으니, 이 부분을 중점적으로 연습했으면 좋겠네요.”
레드 큐브에 등장하는 놈이 용종이었기 때문에 히센에게 마법 사슬의 제작부터 서둘러달라고 부탁했었다. 오우거나 트롤 같은 인간형보다 파충류 형태에 가까운 용종이라면 마법 사슬을 이용한 기사단의 대상급 마수 전술이 제법 유효할 거라 예상됐기 때문이다.
그리고 최근에 완성된 마법 사슬은 상급 마수의 뼈와 큐브 메탈, 그리고 미스릴까지 들어간 걸작이었다. 마법을 부여하는 몸체 부분은 상급 마수의 뼈지만, 가장 취약한 연결 부위를 미스릴로 만들어 내구성을 더욱 향상시킨 것이다.
물론 갑옷이 아닌 사슬에 미스릴을 사용하는 건 정말 아까웠지만, 첫 공략이니만큼 무조건 최선을 다할 생각이었다.
“자, 기본적인 공략은 간단합니다. 영지 기사단의 대상급 마수 전술을 토대로 방패를 든 듀발이 놈을 막고, 백랑과 제필이 놈을 물고 늘어지면, 린이 그 틈에 유효타를 날리는 겁니다. 그리고 상황을 봐 상급 마수를 제압하듯 타네, 투네 경이 사슬을 사용하는 거죠. 놈을 지치게 만들어 사슬로 얽어맬 수만 있다면, 린에게 치명타를 날릴 기회가 올 겁니다.”
“그렇군요. 그럼 전…….”
“우선 레아 사제님은 역시 축복을 넣어주시는 게 가장 큰 임무라고 할 수 있겠죠. 그리고 목숨이 위태로운 부상자가 생기면 바로 뒤쪽으로 빼서 치료까지 부탁드릴게요. 물론 껄끄러운 일이겠지만…….”
“걱정하지 마세요, 영주님. 그 정도 분별력은 있답니다.”
“네, 하지만 지혈제와 회복 포션까지 챙겨갈 거라 그럴 일은 거의 없을 거로 생각해요.”
“가벼운 부상은 그렇겠지만, 영지의 기사들이 심하게 다친 걸 그냥 넘어갈 생각은 없어요. 이건 긴급 상황이니까요. 그래도 깊은 접촉 없이 어느 정도는 치료할 수 있으니 안심하세요. 우리 지크도 그런 걸 이해 못 할 남자는 아니고요.”
“네, 만약 그렇게 되면 부탁드리겠습니다.”
“지크와 월연 님은 견제와 보조입니다. 특히 용종의 경우 비행 가능 개체일 가능성이 있어요. 혹시 날개를 펴면 월연 님이 스핀 애로우로 저지해 주셔야 해요. 날개에 피막? 그런 거에 정확히 적중시키면 쉽게 하늘로 올라가진 못할 거예요.”
“알겠어요, 영주님.”
“그리고 명사수 말인데요. 월연 님의 명사수 스킬은 적중률이 어느 정도죠? 전투 중에 주변 아군을 피해서 적에게 명중할 수 있을 정도인가요?”
“방어 중인 방패 전위는 움직임이 격하지 않아 충분히 가능하지만, 그 대상이 제필 경이나 백랑 족장이면 사실 무리예요. 저분들은 화살보다 빨리 움직이기도 하니까요.”
“음…….”
“검을 쓰다가 스핀 애로우를 바로 날릴 수 있게 연습을 하는 것이 차라리 나을 거 같아요, 영주님.”
로빈이 고민하자 다른 방향으로 의견을 제시하는 월연.
하지만 등에 각궁을 메고 다니다가 순간적으로 스킬을 넣는 건 너무 복잡한 동작이었다. 그러다가 놈이 하늘로 올라가버리면 그건 정말 낭패였기 때문이다.
(다음 화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