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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소설 속 로빈-254화 (254/303)

254화

“저 녀석, 일부러 가슴 쪽으로 머리를 밀어 넣는 거 같은데. 내가 잘못 본 거겠지?”

“히힛, 특히 가슴이 풍만한 하녀일수록 칸이 더 적극적으로 따르죠. 지금 저 아이처럼요.”

“…….”

“주인처럼 가슴을 특히 밝히는 녀석이랄까요?”

“…내가 언제 가슴을…….”

바로 부정하려다가 걸리는 게 너무 많아서 적극적으로 부정하지 못하고 말을 흐릴 수밖에 없었다.

“흠흠, 계속 따라가 보자고.”

“네~ 로빈.”

그렇게 하녀 몇을 만나 먹을 것을 얻어먹고 재롱떨기를 몇 차례.

이내 정원 한쪽에 위치한 테이블에 도착한 칸은 그곳에 앉아 뭔가를 읽고 있는 마리아나의 폼으로 뛰어들었다.

“왔니~ 요 귀여운 녀석~ 오늘도 뭘 많이 얻어먹었구나.”

부드럽게 어루만지며 칸의 입가에 붙은 과자 부스러기를 떼어주던 마리아나는 이내 녀석을 아예 무릎 위에 앉히고 쓰다듬으며 책을 읽기 시작했다.

녀석은 갸르릉대며 아예 배를 드러내고 누워 쓰다듬는 마리아나의 손길에 몸을 맡긴 채 낮잠을 즐기고 있었는데.

“…저 녀석, 고양이냐? 늑대가 대체 왜 갸르릉대는 거야? 그리고 갯과는 대체로 활동적이라고 알고 있는데……. 저렇게 낮잠을 잔다고?”

“어머님 옆에서만 그렇더라고요. 특히 어머님을 잘 따르거든요.”

“음, 물론 나쁘진 않은데. 뭐랄까, 참…….”

“그래도 칸이 어머님을 저렇게 잘 따라서 다행인 줄 아세요. 덕분에 아이 압박이 좀 줄어들었거든요?”

“아니, 결혼한 지 얼마나 됐다고 벌써 아이를……. 그렇지, 우리 결혼한 지가 대충 반년이던가? 가풍을 생각하면 분명…….”

“네, 그레이츠 쪽은 결혼하자마자 무조건 첫해에 아이를 가진다면서요? 처음에는 저도 많이 놀랐어요?”

“흠흠, 좀 그렇지. 빨리 낳아야 빨리 키워서 영주 직을 떠넘길 수 있으니. 물론 난 좀 늦출 생각이지만. 분명 예전에 어머니께 말씀드렸던 거 같은데.”

“그래도 사람 마음이 어디 그런가요? 어쨌든 칸이 저렇게 애교를 부리고 안겨드니까 요즘은 조금 뜸해진 거 같아요. 사실, 어머님이 좀…….”

결혼하자마자 아이 타령이라니.

하지만 어머니 마리아나라면 충분히 있을 법한 일이다. 사실 본인도 결혼하자마자 한 방에 임신부터 했고, 가문 내력이 그렇다 보니 어머니가 관심을 가지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물론 자신은 최소 몇 년은 그럴 생각이 없었지만 말이다.

“손자 대신 애완동물인가. 흠.”

“비슷하죠. 그런데 로빈은 왜 갑자기 칸을 관찰하고 계신 거예요?”

“저 녀석이 저래 봬도 정령이란 말이지. 그런데 아무런 능력도 없잖아. 그게 이상해서. 물론 귀여운 것도 능력이라면 능력인데, 큐브와 연관된 녀석이 저러고 있으니…….”

“설마 귀요미 칸을 데리고 큐브에 들어갈 생각은 아니겠죠?”

“응?”

“난 로빈이 그렇게 야만적인 사람은 아닐 거라고 믿어요. 그렇죠? 아무리 로빈이라도 그러면…….”

“어, 그건……. 음.”

요 녀석이 자신의 귀여움을 무기로 집안 여자들의 사랑을 독차지하는가 싶더니 결국 다이앤까지 매료시킨 모양이다.

이런 요물 같으니라고.

그렇게 다이앤의 핍박에 애써 말을 돌리고 있자니 저쪽에서 익숙한 인물, 마에스트로 드올이 등장하더니 마리아나 쪽으로 다가갔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옆에 놓인 의자에 자리 잡고는 진지하게 대화를 나누는 게 아닌가.

“드올 님이네.”

“아무래도 원작자가 어머님이라서요. 수정 방향에 대하여 논의하고 계신가 봐요. 마에스트로의 의욕이 대단해서 오시자마자 어머님부터 찾으셨거든요.”

“아, 그렇지. 그런데 어째 분위기가…….”

어떤 이유에서든지 자신이 공들여 만든 대본을 수정하겠다고 하면 갈등이 생길 수밖에 없다.

하지만 저쪽은 얼마나 화기애애한지 다이앤의 설명을 듣지 않았으면 드올이 대본 수정을 위해 찾아왔다는 걸 눈치채지도 못했을 정도였다.

“어! 녀석이…….”

하지만 고민할 틈도 없이 마리아나의 무릎 위에서 단잠에 빠져있던 칸이 일어나 아래로 내려오더니 다시 종종걸음으로 떠나는 게 아닌가.

로빈은 다시 서둘러 녀석을 뒤따랐다. 그리고 다이앤도 덩달아 로빈을 따라 칸을 뒤쫓았는데.

“저 녀석……. 항상 저렇게 지내는 거야?”

마리아나와 느긋하게 낮잠을 즐긴 칸의 다음 일과는 간단했다.

저택을 돌아다니며 자신에게 환호하는 하녀들에게 재롱을 부리고 맛있는 걸 얻어먹은 후, 양지바른 곳에서 늘어지게 낮잠.

그리고 다시 하녀들을 찾아 저택을 서성거리는 거로 끝이었다.

로빈은 자신이 꿈에서나 그리던 드림 라이프를 즐기고 있는 칸을 바라보며 알 수 없는 박탈감에 말을 쉽게 잇지 못했다.

“지금 보니 칸이 은근히 로빈과 좀 닮았달까요? 은근히 좀 게으른데다가 가슴에 집착하고, 게다가 하녀들에게만 애교를 떠는 걸 보니…….”

“…난 저러지 않았다고. 내가 얼마나 바쁘게 사는지 알면서 그래?”

“에이, 그래도 쉴 건 다 쉬면서 하잖아요? 솔직히 영지에서 로빈이 가장 한가할걸요? 이번에도 큐브만 공략하면 쉴 생각이죠?”

“음, 그거야 그렇지. 이번에는 좀 오래? 잘하면 최소 몇 달은 쉴 수 있을 거 같은데. 아~ 겨울 때문에 안 되려나? 망했네. 꼼짝없이 내년 봄까지 계속 일해야 하잖아?”

사실 로빈이 영지에서 가장 한가한 축에 속하는 건 맞는 말이었다. 웬만한 일들은 지온과 관리들이 알아서 처리하는데다가, 군사적인 문제는 백랑과 르보른, 그리고 루이가 착착 해결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다이앤 앞에서는 체면이 있기 때문에 인정하지 않았다.

“그러고 보니 외모도 좀 비슷한 느낌?”

“뭐야? 난 저렇지 않다고. 내가 얼마나 늠름한데 저 녀석이랑 비교해?”

“에이, 우리 X지 님만 늠름하시죠. 로빈과 늠름은 좀 안 어울려요.”

이 여자 보소.

감히 그렇게 나오시겠다?

“그게 제일 중요한 거 아냐? 그것만 늠름하면 되잖아? 인정할 건 인정해야지. 풍채가 늠름한 것과 X지가 늠름한 것, 둘 중 하나만 고른다면 다이앤은 뭘 고를 건데?”

“…X지요.”

“이것 봐, 이거이거. 이래도 내 말이 틀렸어? 앤이 자꾸 그러면 우리 늠름이가 쪼그라들 수도 있는데……. 괜찮으려나?”

“힉……. 죄송해요, 로빈. 제가 착각한 거 같아요. 헤헤, 앉아있는 모습도 얼마나 늠름하신지~”

다이앤에게 억지로 인정을 받고 낮잠을 즐기는 칸을 잠시 지켜보던 로빈은 우선 저 녀석을 데리고 큐브에 들어가 봐야겠다고 다짐했다. 어떻게 스킬이라도 생기면 좀 달라질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완벽한 드림 라이프를 즐기는 칸의 모습이 배 아파서는 절대 아니었다.

패시브 스킬로 날아다니는 다른 멤버들처럼 로빈 역시 최선을 다하고 싶은 마음이었으니까.

당연히 녀석에게 완전히 매료되어 버린 다이앤에게는 비밀로 할 생각이었다.

* * *

다음 날, 로빈은 계획대로 칸과 함께 훈련장을 찾았다.

“어머, 칸이네요.”

“오~ 저 녀석이…….”

로빈이 칸을 잠시 잊고 있던 사이, 녀석은 이미 영지의 유명 인사가 되어버렸는지 모든 일행이 칸을 알아보았다. 특히 여성인 월연과 레아의 반응은 뜨거울 정도였는데 역시 여성에게 녀석의 매력이 더 잘 먹히는 거 같았다.

하긴, 그러니 저택의 하녀들이 사족을 못 쓰고…….

하지만 정말 의외인 건 전혀 안 그럴 거 같은 타네, 투네 형제가 칸을 몽롱한 눈으로 바라보고 있는 거였다. 말은 없지만 누가 말리지 않으면 계속 바라보고만 있을 분위기였다.

투박하게 생긴 사람이 오히려 귀여운 걸 좋아할 가능성이 크다더니, 저 형제가 딱 그런 모양이다.

그런 로빈의 눈빛을 읽었는지 애써 변명하는 타네.

“…어렸을 때 강아지를 키워 보고 싶었는데 절 보면 다 도망치는 바람에…….”

“저희가 어렸을 때도 이런 얼굴이다 보니…….”

그리고 투네의 말까지 들어보니 좀 딱하긴 했다.

어렸을 때부터 저랬다니, 타고난 노안이었나 본데 강아지가 도망칠 정도였다면 어린 마음에 상당히 상처 입었을 거 같았다.

“자자, 오늘은 칸과 함께 큐브를 클리어할 생각입니다. 녀석이 제 패시브 스킬이거든요. 뭐든지 도움이 될 만하면 이용해야죠.”

“…주인. 그런데 이거, 언니도 알아?”

“…몰라. 조용히 해, 알았지?”

린의 표정이 심상치 않아 로빈은 자기도 모르게 엄지를 옆으로 눕히고는 목을 그었다.

그러니까 이건 발설하면 가만두지 않겠다는 냉혹한 협박.

하지만 린은 오히려 좋아하며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아뿔싸, 저 녀석에게는 이런 게 안 통하잖아? 내가 혼내줘 봤자, 씨알도 안 먹히고.

아무래도 오늘 밤 다이앤에게 변명할 말을 미리 생각해 놔야 할 거 같았다.

어쨌든 그렇게 큐브에 들어섰는데 칸 역시 아무 문제없이 큐브에 출입할 수 있었다.

10인 큐브에 10인 1수가 입장한 것이다.

“음……. 머릿수를 합법적으로 늘릴 수는 있군. 하지만 이 녀석에게 공격 능력이 있을까? 그게 없으면 아무런 의미도 없는 건데.”

오늘도 어제처럼 오우거 세 마리를 상대했다.

처음 두 마리는 순식간에 처리하고, 듀발이 오우거를 잡고 있는 사이 다른 인원이 서둘러 장비를 해제하고 미리 준비한 하급 마수 뼈 몽둥이를 들었다.

“좋아! 칸, 놈을 공격해!”

오우거 놈이 듀발에게 집중하는 사이, 우선 칸을 놈에게 보내 공격하게 했다.

그리고 우리 칸은 용맹하게 놈에게 달려들어서는.

“컹컹! 컹컹!!”

촐랑촐랑 뛰어다니며 놈에게 짖어대기 시작했다.

“크아!”

하지만 놈은 칸에게는 전혀 신경도 쓰지 않고 듀발에게 몽둥이를 휘두를 뿐이었다.

그렇게 칸이 놈의 주변을 정신 사납게 서성대며 왔다 갔다 하길 여러 번.

이내 지쳤는지 헉헉대며 돌아온 칸은 으쓱해하며 로빈에게 안겨들었다. 마치 자신은 자신이 할 수 있는 걸 모두 했다는 듯 보무도 당당한 걸음걸이였다.

“헥헥헥~”

“…음, 그래. 수고했다.”

“주인? 우리 공격해도 되는 거지?”

“영주님, 들어간다~”

로빈이 머쓱해하는 사이 준비를 마친 멤버들이 그의 지시를 기다리고 있었다. 칸의 놀라운 활약에 웃음 지으며 로빈을 낯 뜨겁게 만든 건 당연한 수순이었고.

그리고 오우거를 공격하기 시작한 멤버들.

어제와는 달리 충격이 심하지 않은지 전투 시간이 제법 길어졌다.

“사슬! 좋아요. 다시 풀고, 이번에는 제필과 린이 연계해 보세요. 네, 그렇게요.”

“핫!!”

“듀발 빠지고, 지크가 회피로. 오케이! 아~ 아니에요. 지크는 듀발이 빠지는 걸 놓치면 안 돼요. 이번에는 조금 늦었어요.”

“컹컹!!”

그리고 지시하는 로빈의 바로 옆에 떡하니 자리 잡은 칸은 소리 높여 일행을 응원하고 있었다.

영혼의 파트너라더니, 어째 이런 것까지…….

로빈은 신나게 응원하듯 짖어대는 칸의 모습에 혀를 차며 고개를 저을 뿐이었다.

오늘은 제법 전투가 길어지며 몇 가지 부분을 조율할 수 있었다.

세 공격수 간의 호흡이나, 듀발과 지크의 스위치 탱킹.

그리고 움직이는 적에게 정확히 사슬을 적중시키는 연습 같은 것 말이다.

또 월연이 무기를 들고 상대를 공격하다 바로 활로 교체하는 테크닉도 살펴봤는데 그녀의 말대로 생각보다 움직임이 빨라 실전에서 사용할 수 있을 거 같았다.

“자! 이제 마무리 짓죠.”

그렇게 한참 연습하고 무기를 바꿔 든 후 오우거를 정리했다.

제법 오랜 시간 괴롭힘당하다 결국 처리당한 녀석이 왠지 짠하기도 했지만, 어차피 놈들은 적일 뿐이니 그런 걸 신경 쓸 필요는 없었다.

그리고 그렇게 클리어한 후 칸의 변화를 기대했는데.

“음, 스킬이 안 생기네. 이런 방법은 아닌 건가? 하…….”

놀라울 정도로 아무 변화가 없어 로빈을 허탈하게 했다.

역시 녀석도 나처럼 실전에서는 아무 가치가 없는 녀석인가 보다.

아무리 영혼의 파트너라도 이런 건 안 닮았으면 좋았을 텐데 참 애석한 일이었다.

결국 칸에게는 뭔가를 기대할 수 없다고 결론지었다. 인간과 같은 방법으로 스킬을 각성시킬 수 있을 거로 생각했는데 전혀 그렇지 않았으니까.

계속 궁리한다면 나중에라도 수확을 얻을 수 있겠지만 지금은 거기에 매달리는 것보다 연습을 통해 전력을 가다듬는 게 더 바람직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로빈, 어떻게 그럴 수가 있어요? 정말 실망이에요!”

다이앤의 품에 안겨서 핵핵거리는 녀석의 모습을 보니 그녀의 말대로 내가 무슨 짓을 한 건지 어이없기도 했다.

원래 정령이란 존재는 죽어도 죽는 게 아니라 소환 해제된다는 정도는 상식으로 알고 있었지만, 이곳도 내가 알고 있는 상식이 그대로 통용된다고 장담할 수 없으니 위험한 행동을 했다는 건 사실이었다.

(다음 화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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