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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소설 속 로빈-258화 (258/303)

258화

“허, 저 녀석. 실한데? 저렇게 약점을 대놓고 노출하다니. 대단한 용기군.”

“응? 그건 또 무슨……. 아아, 음…….”

백랑의 말에 나도 모르게 시선이 아래로 내려갔다. 그리고 그곳에는 그의 말처럼 실한 무언가가 용틀임하듯 자리 잡고 있었다.

저게 약점이라고 단언할 수는 없지만, 놈이 수컷인 이상 다른 부위보다는 저곳이 약하다는 것만은 분명했다.

“…그런데 저렇게 대놓고 기둥을 드러내고 있다니, 이런 건 또 처음이네요.”

지금까지 많은 몬스터를 만나 상대해 왔다.

하지만 다른 몬스터는 기본적으로 아래쪽에 뭔가를 걸치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오크 전사처럼 갑옷을 입고 있거나, 그게 아니면 하다못해 누더기 같은 거로 아래를 가려놨기 때문에 놈들의 성별을 눈치채기는 쉽지 않았다.

그런데 놈은 보란 듯이 자신의 상징을 자랑하고 있었으니 이상할 수밖에.

“뭐, 자랑할 만큼 우람하긴 하네.”

“은근히 짜증 나네. 주인, 저걸 그냥 터트려버리자. 지가 수컷인데 불알이 터지면 버텨내겠어?”

“…음.”

너무 대놓고 벗고 있어 좀 황당하긴 했지만 단순한 게 최고라고, 어쩌면 저걸 집중 공격하는 게 최선일지도 모르겠다. 무엇보다 딴에는 용종이라고, 몸의 다른 부위는 두꺼운 비늘로 무장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일행이 모두 모였지만 전투가 시작되지 않았다. 적어도 작전 회의 후, 놈을 공격할 수 있게 대기 시간이 주어지는 모양이었다.

이건 또 무슨 인심인지 모르겠지만, 용종이라고 해놓고 저런 놈이 기다리는 상황이라 짜증이 올라와 그리 고맙진 않았다.

“우선, 계획대로 갑니다. 상황이 좀 이상한데, 어쨌든 듀발이 시선을 끌고 놈을 포위 공격할 거예요. 그리고 월연 님은 굳이 활을 꺼내지 않아도 되겠네요.”

“네, 날개가 없으니.”

“레아 님은 바로 축복 준비해 주시고, 축복 후에는 자유롭게 행동하세요. 우선 간을 볼 거니 듀발 위주로 전투를 시작할게요. 형제는 우선 대기, 혹시 모르니 사슬은 언제나 날릴 수 있게 준비해 주세요.”

“모두 준비됐죠?”

“응!”

“네, 영주님.”

“좋아요. 가요!”

하지만 역시 놈은 로빈의 예상대로 움직여주지 않았다. 일행이 세이프티 존을 벗어나자마자.

“영주님!! 윽!”

“제… 제필 경!”

놈이 순간 이동한 것처럼 로빈의 눈앞으로 튀어나와 기습적으로 창을 밀어 넣은 것이다. 그나마 로빈 옆에 있던 제필이 그를 밀쳐내지 않았으면 시작하자마자 목숨을 잃을 뻔했다.

“키키키~”

모두 얼어붙은 가운데 일행을 비웃듯 기괴한 소리를 내며 창을 다시 뽑아든 드라쿠나스.

그 순간 반응한 건 역시 영지의 마지막 자존심, 린이었다.

“이 XX XXX XX 새끼가!!”

알아듣기 힘들 정도로 거친 욕설을 내뱉은 린.

그녀는 마구잡이로 대검을 휘둘러 놈을 뒤로 물러서게 했고, 바로 추격해 전투에 돌입했다.

쓰러진 제필을 부축하며 황망한 표정이던 로빈은 애써 마음을 진정시키고 레아에게 눈짓해 바로 축복부터 시작하자는 신호를 보냈다.

“여신이시여~!”

레아의 기도가 마무리되고 축복이 발동되었다. 그리고 로빈은 쓰러진 제필을 바로 레아에게 넘겼다.

“부탁합니다.”

“예.”

두말할 것도 없었다. 레아의 임무는 그녀 스스로가 가장 잘 알고 있을 테니.

그리고 로빈은 바로 전황부터 확인했다.

놈과 어울려 대검을 휘두르는 린.

놈의 뒤를 호시탐탐 노리는 백랑과 월연.

그리고 조금 떨어진 곳에서 사슬을 들고 노려보는 두 형제와 어떻게든 둘 사이에 끼어들기 위해 타이밍을 노리는 듀발과 지크.

일행은 이런 식으로 진형을 갖추고 놈을 상대하고 있었다.

“이러면 그래도 가능성이 있나?”

뭐 하나 계획대로 흘러가지 않는 난장판.

그래도 린이 놈과 접전을 벌여 기회만 만들어준다면 승산이 있을 거로 생각했다.

하지만 상황을 살펴보니 전혀 그렇지 않았다. 놈이 린의 공격을 모조리 피해내고 있었기 때문이다.

“제길, 애초에 방심하고 아무 생각 없이 들어간 거 자체가 문제였어. 그리고… 분명 피할 수 있었는데.”

우리가 놈을 살펴보며 파악하는 사이, 놈도 우릴 관찰하고 있었다. 단지 세이프티 존이 서로를 가로막고 있었을 뿐.

놈은 우리의 모습에서 내가 이 무리의 리더라는 걸 파악한 것이다.

그리고 세이프티 존이 사라지자마자 바로 기습 공격.

순간 이동하듯 갑자기 나타나 찔러 넣은 창이었지만 나는 분명 피할 수 있었다. 놈은 순간 이동으로 갑자기 나타난 게 아니라 저 끝에서 가속해 내게로 달려온 것에 불과했으니 말이다.

다른 사람들은 보지 못했을지 몰라도 나는 분명 그 모습을 확인했다. 하지만 너무나 빠른 공격이라 알고 있었음에도 대처하지 못했을 뿐.

그 몸놀림이 너무 매끄럽고 빨라 마치 헛것을 본 것처럼 위기감조차 느껴지지 않았던 게 가장 큰 문제였다.

“이씨! 이 날파리 같은 새끼가!”

그렇다. 놈은 징그럽게 빠른 놈이었다. 그나마 놈에게 접근해 전투를 벌일 수 있는 존재는 린 정도.

하지만 린도 억지로 따라잡아 대치하고 있을 뿐, 놈에게 유효타를 날리지 못했다.

지금 린은 놈의 움직임을 본능적으로 피해내고 있었다. 정말 감탄이 절로 튀어나올 정도로 말도 안 되는 감각과 반사 신경이었다.

그러나 그것도 한계가 있는지 놈의 공격에 조금씩 상처가 늘어가고 있었다.

사실 이럴 때를 대비해 내가 큐브에 동행한 거였다. 그래도 내 눈에는 놈의 움직임이 조금씩 보였으니까.

“린, 놈에게 떨어지면 안 돼. 놈이 다시 대시해 들어오면 아까처럼 누군가가 크게 다칠 수밖에 없어.”

“좀 맞아라! 이 거지 같은 놈아!”

놈의 첫 공격에서 로빈이 느낀 것.

그건 대시 거리가 멀어질수록 가속도가 급격히 올라간다는 거였다. 그리고 그 속도를 등에 업으면 당연히 더욱 강한 공격이 가능해진다.

지금 린의 몸에 새겨지는 상처와 한껏 가속해 제필에게 들어간 공격은 그 깊이가 너무 달랐다. 그건 스피드에 모든 능력이 집중된 반면, 파괴력은 낮다는 의미였다.

즉, 가속하지 못하면 치명적인 공격을 날릴 수 없다는 거다.

놈이 가속하기 위해선 조금이라도 틈이 필요하다. 신체 구조가 인류와 비슷한지 가속을 위해 무릎을 조금 굽히던 걸 보면 확실했다.

그러니 지금처럼 린이 놈을 붙잡고 있으면 놈은 섣불리 가속할 수 없고, 우리로선 치명적인 공격을 날릴 수도 없다.

“아씨, 진짜. 뭐라도 해주고 싶은데. 지금은 그러지도 못하겠네.”

놈의 화려한 움직임을 잡아내지 못하고 휘둘리기만 하는 린을 바라보며 로빈은 조바심을 느꼈다.

하지만 뭐라고 간섭하기도 힘든 게, 그가 직접 상대한다면 몰라도 말로 전달한다면 그걸 듣고, 다시 린이 행동하기까지 그 과정이 너무 길어 그때는 이미 늦게 된다. 그래서는 린에게 혼란만 가중시킬 뿐이었다.

결국 놈이 너무 빨라 리자드맨을 상대할 때와는 상황이 전혀 다른 것이다.

그래도 로빈은 일행을 믿었다. 월연과 백랑이 놈의 뒤를 노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린이 놈에게 파고들어 주의를 끌었을 때, 백랑이 번개같이 달려들어 놈의 뒤를 잡았다.

“옳지!”

“챙!”

“크아!”

갑작스러운 기습에 등을 내준 놈은 아무런 타격도 입지 않았고, 화가 나는지 그저 괴성만 질러댈 뿐이었다. 피륙을 가르는 소리가 아니라 금속음이 들려온 걸 보면, 아무래도 놈의 비늘이 생각보다 더 단단한 거 같았다.

“장난해? 저렇게 빠른 놈이 방어력까지…….”

로빈은 사기적이기까지 한 놈의 능력에 이를 바득 갈았다.

하지만 진정한 개사기는 이제 시작이었다. 한 번 등을 공격당한 놈이 괴성을 질러대자, 땅속에서 놈과 비슷하게 생긴 진흙 인형들이 일어났기 때문이다.

“하, 소환까지……. 이런 미친 똥망 밸런스. 다들 우선 흙덩이부터 해결해요!”

로빈의 명령이 떨어지자마자 린을 제외한 일행은 일제히 놈들에게 달려갔다.

로빈과 부상자 제필, 그리고 제필을 돌보고 있는 레아. 그리고 혹시나 모를 기습에 대비해 로빈을 막아선 듀발이 빠진 상태로 말이다.

“이 새끼들…….”

하지만 저 진흙 인형은 경악스럽게도 일회용이 아니었다.

한 마리가 쓰러지면 다시 한 마리가 일어서는 그런 타입의 소환물.

그리고 이런 경우 소환을 멈추기 위해서는 소환의 주체인 드라쿠나스를 쓰러트리는 것뿐이었다.

“하, 진짜 가지가지 하네. 이젠 정말 다른 방법이 없네. 후…….”

린조차 놈을 정확히 공격하지 못하고 상처만 늘어나는 상황.

그리고 놈이 소환물을 불러낸 시점부터 로빈은 비장의 무기를 사용할 수밖에 없다고 판단했다. 우선 그 자신이 무능력한 이상 제필과 레아를 지켜줘야 할 듀발이 이곳에 묶여있을 수밖에 없었고, 린은 다른 전사들의 보조 없이 놈과 단독으로 상대해야 했기 때문이다.

만약 저러다가 린이 리타이어되는 순간, 우리는 전멸하고 영지도 멸망할 것이다.

“X발. 물론 좋은 건 알지만 페널티도 거지 같고, 더럽게 비싼 거라 최대한 아끼고 싶었는데.”

[흉내 내기 물약] [랭크: S]

특정 대상을 흉내 낼 수 있다.

물약을 사용한 후, 일정 시간 이내 삽입, 사정하지 못하면 사망한다.

(Hidden)

특정 인물의 타이틀, 패시브 스킬, 액티브 스킬 중 세 가지를 빌려올 수 있다.

각자 다른 대상에게서 빌려오는 것도 가능하다.

실비아가 만들어준 물약.

실비아가 확인한 부분은 일상적인 문구뿐이고, 저 숨겨진 능력은 실행 당사자인 내 눈에만 보이는 거였다. 그렇기에 물약을 제조한 실비아조차 이 물약의 효용을 정확히 판단하지 못한 것이다.

그리고 이 물약은 나에게 그 어떤 물건보다 유용한 보물이었다. 비록 등골 오싹한 페널티가 숨어 기다리고 있었지만 말이다.

이제 이 물약을 먹으면 최대한 빠르게 마무리 지어야 했다. 만약 그러지 못하면, 나는 결국 목숨을 잃게 될 테니까.

“이제 이판사판이야.”

[선택하십시오.]

“이런 식이군.”

바로 물약을 삼키자 머릿속에서 기묘한 음성이 들려왔고, 로빈은 예전에 계산했던 대로 능력을 골랐다.

“페리안 엡솔루트 트와이드. 타이틀, 검제와 아수라장의 파괴자. 린 그레이츠. 타이틀, 흉포한 검은 야수.”

고민은 제법 길었었다.

가장 고민했던 조합은 바로 린의 붉은 학살자와 붉은 파괴 전차 콤비.

하지만 냉정함을 유지할 수 없다는 이유로 제외했다.

내가 가진 무기인 냉철한 분석과 시야에 악영향을 미친다면 나는 그저 린의 아류밖에 되지 못할 테고, 그래서는 전장에 나서는 의미가 없었다. 그리고 애당초 숙련도가 필요한 스킬을 멋대로 빌려봤자 그 효용을 보장할 수 없을 거 같았다.

그래서 선택한 것이 바로 황제의 타이틀 두 가지와 신체 능력을 올려주는 린의 타이틀이었다.

“후……. 이런 감각이구나. 우리 양아치 황제께서 느끼는 세상이…….”

로빈은 당당하게 허리춤에 걸려있는 검을 꺼내들었다.

아무런 마법도 걸려있지 않은 미스릴 장검.

오히려 미스릴 장검이라 손에 느껴지는 묵직한 무게감이 더 반가웠다. 만약 마법이 걸려있어 더 가벼운 검이었으면, 이 감각을 확실히 느끼지 못했으리라.

검과 자신이 하나가 된 듯한 그런 느낌 말이다.

신검합일의 최종판, 검제.

다수 대 다수의 전투에서 신체 능력과 시야, 판단력이 상승하는 아수라장의 파괴자.

모든 신체 능력을 비약적으로 상승시켜 주는 흉포한 검은 야수.

거기에 여신님의 축복까지.

내 고유의 능력인 판단력과 시야, 그리고 미래 예지에 가까운 분석력에 저런 것들이 더해진 이상, 어떤 적도 상대할 수 있을 거 같았다.

단언컨대,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는 상태였다.

“듀발, 제필과 레아를 호위. 나머지는 진흙 인형 처리. 그리고 린은… 잠시 뒤로!”

“주… 주인?”

모든 인원에게 명령한 로빈이 땅을 박차고 순식간에 놈의 코앞까지 도달했다.

뜬금없이 나타난 로빈이 린을 향해 파고들던 자신의 창대를 따라 검을 밀어 넣자, 놈이 대경하며 창을 회수해 로빈의 검을 튕겨냈다.

그리고 그 움직임 덕분에 수세에 몰린 린이 몸을 빼낼 틈을 얻었다. 우선 상처 입은 린을 뒤로 빼는 게 목표였으니 그대로 목적을 달성한 것이다.

“말도 안 돼. 주인이…….”

아는 만큼 보인다고, 상대의 창대를 파고들며 검을 밀어 넣는 게 얼마나 고절한 수법인지 린이 몰라볼 리 없었다.

그렇게 감탄하는 린을 뒤로하고 로빈은 바로 몸을 날려 다시 놈에게 달려들었다.

“핫!”

“키아!!”

서로 베고 피하는 공방전.

둘은 한 치의 빈틈없이 공격과 회피를 주고받았다. 그리고 로빈의 검은 몇 번이나 놈의 복부나 허리를 베어버렸다.

린이 놈을 상대하던 것과 오히려 반대가 된 상황.

놀랍게도 로빈은 지금까지 단 한 번의 타격도 허용하지 않았다.

(다음 화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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