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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소설 속 로빈-278화 (278/303)

278화

그레이츠가 강화 마법진으로 영지 전체를 도배한 후, 지금까지 총 세 번의 큐브 폭발이 있었다.

한 번은 처음으로 등장한 그 맹독 다트 고블린이고, 두 번째는 오크, 마지막은 놀이었는데, 처음의 그 맹독 다트 고블린을 제외하고는 큐브에 들어간 클리너들의 방심과 부주의가 그런 참사를 불렀을 거라 짐작하고 있었다.

그때 다렌이 울먹이면서 허탈한 한숨을 내쉬었던가?

원래 그런 일이 일어나는 걸 막기 위해 클리너 길드를 관리하는 게 다렌이었으니 그때 그가 느꼈을 상심은 나 역시 충분히 이해가 갔다. 축 늘어진 모습이 은근히 측은하기도 했고.

하지만 아무리 열심히 관리해도 그들과 함께 큐브에 들어가는 게 아닌 이상 완벽하게 제어할 방법은 없으니 어느 정도는 감수해야 할 일이었다.

어쨌든 그렇게 세 번의 사고가 있었지만 모두 합쳐 경상 16, 중상 3이라는 놀라운 성적으로 수습할 수 있었다.

나중에 알게 된 건데, 들리는 말에 의하면 그게 전국에서 가장 피해가 적은 케이스였단다. 다른 영지에서 강화 마법진을 새긴 대피소를 만들기 시작한 것도 그쯤이었고.

지금 황제와 젝트는 그 이야기를 하는 거였다.

“하여간 후작도 참 어지간하군. 나도 한번 해볼까, 그런 생각이 들긴 했는데…….”

“황도를 그렇게 꾸미면 최소 700만 골드, 관리비만 40만 골드가 소모됩니다, 폐하.”

“저러는 통에 시도할 수도 없었단 말이지. 이제 아이도 태어났으니, 적어도 황궁과 그 근처는 강화 마법진으로 발라야겠어.”

“그 정도는 괜찮을 거 같습니다, 폐하. 나쁘지 않은 생각이군요.”

그렇게 이어진 네 남자의 담화는 끝날 줄 몰랐다.

얼핏 보기에는 얼빠진 새신랑 둘에, 애처가 둘이지만 사실 이들은 일선에서 제국을 경영하는 자들이었고, 큐브에 관한 이야기부터 앞으로 어떤 정책을, 어떻게 입안할 것인가에 대한 이야기까지 정말 다채로운 주제로 대화가 이어졌으니 말이다.

그렇게 대화가 이어지다 슬슬 마무리 지을 무렵, 황제는 실실 웃으며 로빈을 바라보았다.

황제가 저런 표정을 지을 때마다 뭔가 껄끄러운 일이 일어났던 로빈은 살짝 표정을 구기며 시선을 피했지만, 그렇다고 황제의 입을 막을 방법은 없었다.

“내가 들은 말인데, 후작의 영지에서 후작을 주제로 한 연극이 만들어지고 있다지? 마에스트로 드올인가? 제법 저명한 연출가가 준비 중이라던데.”

“그런 거까지 알고 계셨습니까? 네, 그렇다고 하더군요. 제법 시간이 지났는데도 아직 완성되지는 않았지만요.”

들은 말은, 무슨. 우리 푸시 캣츠의 귀여운 스파이(?)들이 또 열일 하셨구만.

사실 푸시 캣츠가 전국적으로 분점을 차린 상황이라 그레이츠뿐만 아니라 웬만한 영지의 크고 작은 일들이 황제에게 전해지고 있을 것이다. 황제 역시 숨어있는 놈들을 찾아내는 데 혈안이라 정보를 가볍게 다룰 수는 없었으니까.

물론 그레이츠 영지의 정보는 전적으로 나를 골려 먹는 데 써먹기 위해 따로 전해 듣고 있겠지만 말이다.

그래도 드올에 대한 이야기는 황후에게 들었을 테니 진작 알고 있었으려나?

어쨌든 황제가 그 사실을 알고 있다는 건 제법 불안한 일이었다. 저 황제가…….

“어쨌든 재미있겠군. 나중에 황도에서도 상연했으면 하는 바람이야.”

저런 식으로 음흉하게 나올 수 있으니 말이다.

“그럴 일은 없을 겁니다. 절대로요.”

강경한 태도로 거절하는 건 당연한 일이지만 생각해 보니 드올이 영지에서 극을 준비한 시간이 벌써 1년이 훨씬 넘었다. 그사이 내 이야기인 「사자후 로빈」 빼고 다른 작품은 벌써 두 가지나 성공적으로 상연하기도 했고.

딱히 내용은 알고 싶지 않지만 그래도 너무 오래 작품이 나오지 않으니 어떻게 된 일인지 그 이유가 궁금하긴 했다. 무슨 대단한 블록버스터를 만드는 것도 아닌데 어떻게 2년 가까이 걸린단 말인가?

다이앤에게 마지막으로 소식을 전해 들었을 때가 극본을 일곱 번 수정했을 때인데 아직도 완성되지 않은 걸 보면 좀 더 시간이 더 걸릴 모양이다. 차라리 이대로 흐지부지되었으면 하는 바람도 있었고.

만약 그게 완성되면 우리 가족들은 분명 나까지 끌고 모두 함께 그걸 보겠다고 할 테니 말이다.

가족들과 모두 함께 그런 연극을 본다고 생각하니, 상상만으로도 손발이 잘려 나가는 기분이었다.

설마 저 양아치 황제 폐하께서 그게 완성되면 드올을 초청해 황도에서도 상연할 생각은 아니겠지? 딱 말하는 모양새가 그건데.

“폐하, 만약 그게 황도에서 상연된다면, 제가 무슨 짓을 저지를지 모르겠습니다.”

그래, 원래 신하의 반란은 이렇게 사소한 곳에서 시작되는 법이지.

“흠흠, 내 딱히 그렇게까지 할 생각은 없었네. 안심하게나.”

아니, 말하는 꼴을 보니 진짜 그럴 생각이었나 본데?

원래 황제라면 당연히 ‘감히 후작 따위를 위해 연극이라니 당치도 않다! 차라리 나를 주제로 만들란 말이다!’, 이러면서 역정도 내고 그래야 하는 거 아닌가? 원래 백성들 사이에서 신하의 인기가 올라가는 건 황제에게 좋은 게 아니잖아?

하지만 저 황제를 보니 그 연극을 보고 오로지 나를 놀려 먹을 생각으로 가득해 보였다.

그리고 드올과 어머니의 성향을 봤을 때 그 작품에는 황제가 나를 놀려 먹을 거리가 최소한 5만 가지는 있을 것이다.

아무래도 드올에게 단단히 주의를 줘 황도에서는 절대 상연하지 못하게 막아야겠다. 물론 그게 언제 완성될 지는 아직 불확실하지만 말이다.

그렇게 황제와의 담화를 마친 로빈은 자신의 방으로 돌아가 하루 머물고 바로 자신의 저택으로 돌아갔다. 황후의 융숭한 대접을 받는 장인어른과 장모님은 궁에 남겨두고 본인의 일행들만 이끌고 자리를 옮긴 것이다.

어쨌든 황제와 자주 마주치는 건 정신 건강에 그리 좋지 않았다.

“아후, 이제 좀 마음이 편하네. 아무래도 궁은 좀 불편하단 말이야.”

“그래요? 사실 저도 궁은 그리 편하지 않아요. 아버지와 어머니께서 함께 계시니 조금 낫긴 한데 그래도 내 집 같은 생각은 안 들어서요.”

“그래? 그렇지. 다이앤의 집은 그레이츠의 저택이지. 후후.”

“맞아요, 로빈.”

* * *

황궁을 떠나 집으로 돌아온 로빈은 먼저 세이라를 호위하는 듀발부터 찾았다.

세이라가 황도 아카데미에서 수학한 지가 어인 석 달째.

영지에서도 폭탄으로 취급받는 망나니 2호기 세이라가 황도에서는 얌전히 지내는지 궁금해서였다.

“영주님, 그건 평안하셨습니까?”

“응, 괜찮았어. 넌……. 왠지 안색이 안 좋은데. 무슨 큰일이라도 있어?”

“아닙니다. 그건 아닌데…….”

그리고 조금 초췌한 듀발의 안색이나 반응을 봤을 때 우리 망나니가 뭔가 사고를 쳤다는 사실은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었다.

그나마 영지로 알리지 않은 걸 보면 그리 큰일은 아닌 모양인데, 세이라 때문에 마음고생하고 있는 듀발만 불쌍할 지경이었다. 원래 이곳에 듀발을 파견한 이유는 그가 마음을 다잡아 먹을 시간을 주기 위해서인데 전혀 그렇지 않은 분위기였으니 말이다.

대체 이 망나니가 또 무슨 짓을 벌이고 다니는 건지.

우선 듀발의 이야기부터 들어봐야 알 수 있을 거 같았다.

“사실 별거 아니라면 아닌 건데……. 그래도 저희 아가씨가 상당히 아름답지 않습니까?”

“그렇지. 외모만은 대단하니까.”

“아름다우신데다 그레이츠의 영애이다 보니 귀족 영식들이 아가씨에게 관심을 자주 보이셨습니다.”

“음.”

외모도 외모지만 이제 우리 가문도 귀족 사회에서 제법 먹히는 가문이니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었다.

하지만 우리 집 망나니가 귀족 자제들에게 그렇게 인기였다고 하니 뭔가 묘한 기분이었다. 세이라의 결혼이 임박했다는 게 실감 나기도 했고, 그녀가 남자를 데려왔을 때 어떻게 반응해야 하나 고민스럽기도 했으니 말이다.

“귀족 자제 분들이 적극적으로 접근하자 아가씨께서 자신은 다른 영지로 시집갈 생각이 전혀 없다고 밝히셨고, 덕분에 웬만한 귀족 자제 분들은 다 떨어져 나갔는데 그 틈을 타 영세 귀족가의 차남이나 삼남들이 아가씨께 접근하기 시작했습니다.”

“아예 데릴사위 자리를 노리고 들어온 거네.”

“네, 그렇게 접근하는 귀족 자제들에게는 아가씨가 결투를 신청해…….”

“응? 결투? 내가 아는 그 결투?”

“네, 그 결투입니다. 자신을 데려가려면 최소한 자신을 때려눕힐 정도는 돼야 한다고 하시면서…….”

“그래서?”

“다 두드려 패버리셨습니다. 지금까지 19전 19승. 19 실신. 아무래도 영세한 가문의 자제들이 아가씨를 이기는 건 무리라…….”

“그… 그러냐?”

이 정도면 심각한 거 아냐?

세이라에게 두들겨 맞은 게 열아홉 명이라고?

제대로 교육받은 무가의 자제들이라도 우리 집 살쾡이를 잡는 게 쉽지 않을 텐데, 영세한 가문의 자제들이 세이라를 이길 가능성은 별로 없었다. 정말 천재적인 녀석이라면 몰라도 말이다.

하지만 그런 천재를 데릴사위로 보낼 가문은 없을 테니 데릴사위로 들어가겠다고 나선 녀석들은 대부분 쭉정이일 가능성이 컸다.

그중에 옥석을 가린다면 그나마 괜찮은 녀석이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세이라가 저런 식으로 행동하면 옥석을 가릴 수도 없었다.

“무슨 항의나 그런 건 없어?”

“네, 다행히.”

“그중에도 대리 영주를 맡길 만한 녀석 정도는 있었을 텐데, 역시 내 욕심대로는 안 되는 건가?”

상대가 항의하지 않은 건 그나마 다행이지만 로빈으로선 자신의 원대한 꿈이 무너지는 기분이라 한숨이 절로 나왔다.

저렇게 나오는데 누가 세이라에게 접근하겠는가?

하지만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혼인을 당사자도 아닌 자신의 마음대로 결정할 수는 없으니 그저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대리 영주고 뭐고, 녀석이 무사히 결혼할 수나 있을지 모르겠다.

“그래, 뭐. 좋아. 그런데 그 녀석, 아카데미에서 잘 지내고는 있어? 친구는?”

“아무래도 좀 그렇습니다. 아시다시피 아가씨가 보통의 귀족 영애들하고는 좀 많이 달라서…….”

“끙, 그건 그렇지. 그럼 혼자 지내는 거야?”

“다행히 마음에 맞아 같이 지내는 영애 한 분 정도는 있습니다. 드라나 남작 영애라고, 저희 영지 바로 옆에 위치한…….”

“아아. 알지, 드라나 남작. 그 돼지의 딸이 세이라랑 친하다고?”

듀발의 이야기에 로빈의 고개가 절로 갸웃거려졌다. 드라나 남작이라면 로빈이 가장 싫어하는 귀족 중 수위를 달리는 녀석이었으니 말이다.

이미 두 번인가 드라나 남작령을 구원하기 위해 영지군이 출동했는데, 그때마다 로빈은 쓰레기 같은 영주가 얼마나 영지를 망칠 수 있는지 두 눈으로 확인하고 돌아왔었다.

영지민이 불쌍하다고 생각해 황도에도 몇 번 보고했지만, 영지를 관리하는 건 영주의 재량이니 영지를 압수할 만한 치명적인 결격 사유가 있는지 조사해 보겠다는 애매한 답변만 날아왔으니 어쩔 수 없었다.

사실 영지 자체가 영주의 것이라 황실도 당장은 해결할 방법이 없었는데, 자신의 재산인 영지를 그 정도로 아끼지 않는 귀족도 사실 드물었으니 드라나 남작령에서 살아가는 백성들만 불쌍할 뿐이었다.

로빈이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그냥 암살해 버리는 게 낫겠다고 생각한 건 드라나 남작이 처음이었다. 하지만 그렇게 되면 또 일이 복잡해지거나 귀찮은 문제가 생길 수 있어 지금은 그냥 지켜보고만 있었다.

어쨌든 그동안의 내 보고로 황실 역시 드라나 남작가를 주시하며 여러 번 경고했고, 단순한 수탈 외에 중대한 결격 사유를 발견하면 철퇴를 내릴 테니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다 한 셈이었다.

어쨌든 그런 드라나 남작의 딸이 세이라랑 친하게 지낸다니 그건 또 의외였다. 친구 하나 없이 외롭게 지내는 것보다는 낫지만 그래도 뭔가 미묘하달까? 그런 아비 아래서 자란 딸이 정상적으로 잘 자랐을 거라 기대하긴 힘들었으니 말이다.

이 부분은 아무래도 녀석의 말을 따로 들어봐야 할 거 같았다.

“그래, 그런데 이 녀석은 또 어디 갔어?”

황태자의 탄생을 축하하는 기간이라 아카데미도 당연히 휴업.

하지만 집에는 듀발만 남아있고 세이라는 보이지 않았다.

의아한 생각이 들어 듀발에게 물었는데 지금 세이라가 큐브를 클리어하러 나갔다는 게 아닌가.

“뭐? 큐브? 그게 가능해?”

“네, 그러니까 황도 라이선스를 취득하셔서…….”

“황도 라이선스? 아, 그래. 제국 라이선스 말고 황도에서만 활동할 수 있는 라이선스도 있겠지. 그런데 그걸 그렇게 빨리 딸 수도 있는 거야? 최소한 한두 달은 훈련받아야 하잖아?”

“일반적으로는 그런데 특례가 있습니다.”

황도에서 큐브를 클리어할 수 있는 권리인 황도 라이선스.

취득하기 위해서는 당연히 두 달간의 강도 높은 훈련을 받아야 한다. 황제도 신경 쓰는 부분이라 그 훈련의 강도 역시 대단했고.

(다음 화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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