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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소설 속 로빈-288화 (288/303)

288화

[영주님! 큰일입니다. 대수림 방면에서 오크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습니다. 수는 헤아릴 수 없을 정도입니다. 일부는 남쪽 요새로, 나머지는 사방으로 흩어지고 있답니다.]

“네? 오크요? 아니, 무슨 오크가 대수림에서……. 거긴 사람도 살지 않는데 그게 무슨 소리예요?”

[저도 모르겠습니다. 남쪽 요새에서 지급으로 알려왔습니다. 최소 수천에 만 단위가 넘을지도 모른답니다.]

로빈은 순간 이게 무슨 소리인가 싶었다. 그 정도 오크라면 수십 개의 큐브가 동시에 터졌든지 아니면 집단형 블루 큐브가 터졌다는 건데, 대체 어디서 터졌는지 이해할 수 없었으니까.

하지만 놈들이 노리는 게 이거라는 사실은 확실히 인지할 수 있었다. 어쩐지 오는 동안 아무런 견제도 없고 영주 성에 틀어박혀 있다 했더니 이럴 속셈이었나 보다.

당황스러운 순간이었지만 로빈의 머릿속은 빠르게 돌아갔다.

[상대의 수가 너무 많습니다. 바로 대피령을…….]

“아뇨, 지금은 이미 늦었어요. 놈들이 남쪽에서 출발했다 해도 에테 마을이나 우버 마을에서 영주 성으로 피난 가는 속도보다는 훨씬 빠를 거예요. 단순한 오크도 아니고 큐브 밖으로 나온 오크잖아요.”

[그럼 어떻게…….]

“바로 통신을 넣어서 주민들은 집 안으로 대피하라고 하세요. 최소한 며칠은 버틸 수 있을 겁니다. 그리고 바로 황실에 협조 요청하시고요. 황제 폐하께서 기다리고 계시니 아마 바로 병력을 출동시키실 거예요.”

[네? 그랬다가는 영지전이…….]

“영지전이고 뭐고, 비록 오크지만 수가 그 정도로 많으면 오래 버틸 수 없어요. 서둘러 놈들을 처리하고 주민들을 구해야 해요.”

[하지만…….]

지온의 걱정대로 만약 이대로 황실에 협조 요청을 보내 도움을 받으면 영지전에서는 패배하게 된다. 놈들은 몰라도 드라나 남작은 그걸 기대하고 있을 테고.

하지만 드라나 남작의 기대대로 그리 단순하게 결정될 일은 아니었다. 그레이츠 내부도 아닌 외부에서 터진 큐브가 영지를 덮친 이 변수를 어떻게 판단할지는 황실의 재량이었으니까.

드라나 남작은 욕심에 눈이 멀어 그런 사실조차 눈치채지 못하고 있을 것이다.

반면, 놈들은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었을 거다. 자신이 이대로 황실에 도움을 요청해 영지전이 흐지부지해지면 제국의 귀족들이 분열될 거란 사실을 말이다.

친그레이츠의 귀족들과 반그레이츠의 귀족들이 그레이츠를 두고 크게 갈등한다.

지금까지의 흐름을 봤을 때 상당히 똑똑한 녀석이 벌인 일이니 그 정도는 예상하고 일을 벌이지 않았을까?

로빈은 그런 쓸데없는 논쟁은 피하고 싶었다. 이런 쓸데없는 일로 갈등이 불거지면 별로 좋을 게 없었으니까.

하지만 자신이 이대로 영지로 물러나면 그런 갈등을 피할 수 없게 된다.

“지온, 황실에는 그레이츠가 영지전에서 승리했다고 하세요. 그럼 황제 폐하께서 알아서 하실 겁니다.”

[네?]

“뭘 그렇게 놀라요? 어차피 이길 전투고 드라나 남작은 살아남지 못할 겁니다. 영지를 지키는 데 황실의 협조만 받는 거예요.”

[하지만……. 드라나에도 판정관이 대기하고 있는데 그런 거짓 보고를……. 게다가 판정이 난 후 영지전이 종료된 상황에서 드라나 남작을 살해하면 그건 범죄가 됩니다.]

영지전이 벌어지면 당연히 승패를 판단하는 판정관이 있다. 그레이츠 쪽 판정관은 그레이츠 영주 성에서 대기 중이고.

당연히 드라나 쪽에도 판정관이 들어가 있었다.

하지만 지온이 모르는 게 있었다.

이번 영지전의 판정관은 모두 재무부에서 일하는 젝트의 수족들이라는 사실.

드라나 남작령으로 들어가기 전에 게이트를 타고 그레이츠를 들러 갔을 때 제법 융숭한 대접을 해준데다 젝트에게 들은 이야기도 있어 그레이츠 쪽에 불리한 증언을 할 이유는 없었다.

애당초 로빈과 젝트는 공정한 영지전을 치를 생각이 없었으니 말이다.

그리고 그건 황제 역시 마찬가지였다.

드라나 남작은 공과 사가 분명한 황제의 성품상 이번 일도 공평하게 처리할 거라 믿고 있겠지만 그는 크게 착각하고 있었다. 평소라면 황실의 명예를 위해 공정하게 판단했을 황제지만 드라나 남작이 놈들에게 협조한 이상 상황이 전혀 달라졌기 때문이다.

드라나 남작의 예상과 달리 때에 따라서는 협잡과 수작을 부릴 수 있는 인간이 바로 황제였다.

드라나 남작의 크나큰 실책은 자신이 손잡은 존재가 황제의 주적이라는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다는 거다.

“이견은 받지 않아요, 지온. 급하니 서두르세요. 황제 폐하께 승리했다고 보고하고, 지원 병력을 요청하세요. 영지민들에게는 자신의 집에서 대기하며 구원을 기다리라 하시고요. 각 마을의 치안대는 우선 대기, 영주 성의 치안대는 황제 폐하의 병력을 기다린 후 황제 폐하의 명을 따릅니다. 영주 성에서 대기 중이던 기사들도 마찬가지고요.”

[네, 영주님.]

“하, 미친놈들. 대체 무슨 수로 영지 밖에서 큐브를 터트린 거야? 그리고 이럴 때일수록 서두르지 말고 황제를 믿어야 해. 서두르다 전사들을 잃으면 결국 우리만 손해니까.”

로빈으로선 소수 정예인 놈들이 문제를 일으킨다면 큐브일 가능성이 가장 크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드라나 남작령이나 자신의 영지에서 문제를 일으킬 거라고만 생각했지 그게 대수림일 거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치안대를 모두 남겨 영지를 순찰하게 한 것도 놈들이 영지로 침투해 큐브를 터트릴까 걱정되었기 때문인데 그 노력이 무의미해지고 말았다.

“들으셨죠. 급해졌어요. 바로 이곳을 함락시켜야 합니다.”

“응, 영주님. 준비 다 됐어.”

로빈은 서둘러 전사들이 대기하고 있는 곳으로 향했다.

“지금 영지에서 오크들이 난동을 부리고 있어요. 무슨 방법인지 모르겠지만 놈들이 대수림으로 몬스터를 푼 거죠.”

“마을은 괜찮은 겁니까?”

“당연히 괜찮지! 왜 그런 쓸데없는 걸 물어?”

“요새 성벽이 얼마나 높은데, 그깟 오크 따위가…….”

“우리 마을이야말로 호굴이지. 계집애한테 칼을 들려줘도 오크 따위는 씹어 먹을걸?”

그렇게 어수선하게 웅성일 때 로빈이 손을 들어 전사들을 제지했다.

“자, 지금 이럴 시간이 없어요. 당장 저 돼지 놈을 처리하고 영지로 돌아가야 해요. 무슨 말인지 아시죠?”

“알겠습니다!!”

“누구든 드라나 남작의 목을 따오시는 분은 소원을 한 가지 들어 드립니다. 사로잡아 오시는 분은 두 번 들어 드리고요. 제가 들어 드릴 수 있는 건 뭐든지요.”

“오!!”

그렇게 소원을 미끼로 다시 전사들의 사기를 올린 로빈은 린을 선두로 내보냈다.

그리고 린과 전사 몇은 홀로 성문 근처 제법 가까운 곳까지 다가갔다. 어차피 궁수를 따로 운용하지 않는 드라나 영지라 딱히 막을 수 있는 방법도 없었다.

그런 그녀의 팔에는 익숙한 모양의 팔찌 하나가 떡하니 자리 잡고 있었다.

성문 앞 멀찍이 자리 잡은 린은 호흡을 가다듬으며 로빈의 명령을 떠올렸다.

“성벽을 타고 올라가 싸우는 건 너무 불리해. 가장 빠른 방법은 저 성문을 날려버리는 거지. 지금이라면 쓸 수 있겠지?”

“응? 슈~웅 뻥? 그걸 쓰라고? 하지만…….”

“이 팔찌를 끼면 쓸 수 있을 거야. 물론 쓰고 나면 전장에서는 아웃이지만 너의 공이 가장 으뜸이고.”

“그걸 쓰고 전장에서 빠지면 그 돼지 놈을 족치지 못하잖아?”

“네가 성문만 처리하면 돼지 놈을 처리한 것보다 더 높게 쳐줄게. 당연히 소원권도 한 장 주고.”

“뭐? 주인, 정말이야?”

“그래, 시간이 급하니 서둘러줘.”

거기까지 생각한 린은 황도에서 놈이 벌인 작태와 지금도 오크와 싸우고 있을 부족원을 떠올리며 분노를 끌어모았다.

“으…아……. 이 돼지 새끼야!!”

십수 초 동안 분노를 끌어모은 린은 괴성과 함께 붉은빛이 넘실거리는 린지애를 성문으로 투척했다.

그렇게 유성처럼 쏘아진 린지애는.

꽝―!!

천지를 울리는 굉음과 함께 성문 한쪽을 날려버렸는데.

“미… 미친! 저게 뭐야?”

“괴… 괴물.”

성벽 위에서 저게 대체 뭐 하는 짓인지 의아해하던 기사들은 무기를 던져 성문을 날려버린 린을 경악에 찬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와, 저게 되네.”

결과를 지켜보던 로빈 역시 감탄을 터트린 건 마찬가지였다.

린의 스킬 분노의 포격.

극도의 분노 상태에서만 사용할 수 있고, 시전 시간마저 십수 초나 걸려 사실상 사용하기 힘든 죽은 스킬이었다.

하지만 그 위력만은 굉장해 레드 큐브의 보스 몬스터를 폭발시킬 정도였기에 혹시나 해 사용하게 했는데 기대 이상의 성과를 만들어냈다.

성문에 위협적인 공격을 퍼부으며 상대를 위축시키고 사기를 떨어트리기만 하면 충분하다고 생각했는데 진짜로 성문을 날려버리다니.

덕분에 로빈이 공수표로 던진 소원권이 린의 품 안에 들어가고 말았다. 물론 팔찌로 스킬을 사용하면서 린은 전력에서 이탈하게 되었지만 옆에서 쉬면 영지로 돌아갈 때쯤에는 다시 쌩쌩해질 것이다.

“공격!!”

그리고 그 순간 로빈의 공격 명령과 함께 흉흉한 기세의 전사들이 일제히 성문을 향해 돌격했다.

“돼지의 목은 내 거다!!”

“거시기 열 개!! 아니, 백 개닷!! 여보, 기다렷!!”

“백랑 족장 퇴진!!”

“첫 임신은 린 아가씨다!! 부족의 번영을 위하여!!”

“레이카는 이제 내가 독점이다!!”

지극히 개인적인 소망부터, 부족의 번영을 위해 린부터 임신시켜야 한다는 엉뚱하고 위험한 발상까지.

마을에 대한 걱정도 잠시 내려놓고 욕심을 위해 드라나 남작을 노리는 전사들이 폭풍같이 성문 잔해를 제거하고 성으로 뛰어들었다.

“그 와중에 레이카 찾는 놈도 있네. 레이카가 물건은 물건이야.”

그리고 로빈 역시 천천히 성문을 향하여 발걸음을 옮겼다. 웬만하면 놈이 죽기 전에 몇 가지 물어보고 싶은 게 있어서였다.

* * *

그 시각, 황궁.

그레이츠에서 올라온 통신을 확인한 황제는 벌떡 일어나 대기하던 기사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그레이츠 쪽에서 큐브가 폭발했다. 적은 오크, 수는 만 단위. 정예보다 많은 수의 병력이 필요한 적이니 기사단과 근위병까지 출진한다. 모두 서둘러라!”

“하지만, 폐하. 그러면 영지전은 어떻게 되는 겁니까?”

“지금 그게 문제인가?”

“큐브가 영지에서 폭발했으면 당연히 그 책임은 그레이츠 쪽에 있습니다. 그러니 이 일이 영지전에 지장을 준다면, 영지전의 승자는 드라나 남작입니다.”

“그건 말도 안 됩니다. 만 단위의 오크라면 하급 큐브는 아닐 터, 그레이츠에는 상급 큐브가 남아있지 않았습니다. 이는 그레이츠와는 상관없는 큐브일 겁니다.”

큐브와 영지전의 연관성에 대하여 귀족들의 의견이 분분한 가운데 이 와중에 그런 걸 따지고 있는 귀족들의 생리에 혀를 찬 황제는 내정관에게 그레이츠가 이미 영지전에서 승리했다고 알렸다.

“영지전은 끝났다. 그레이츠가 드라나 남작령을 점령했으니까. 그러니 바로 병력을 출동시키도록!”

“네? 어떻게 벌써…….”

귀족들이 놀라는 가운데 내정관이 사실 확인을 위해 드라나 남작령에 나가있는 판정관을 호출했다.

[네, 판정관 데루트입니다.]

“데루트 재무관. 그레이츠 측에서 영지전 종결을 선언했네. 상황을 알려주시게.”

[네, 로빈 그레이츠 후작이 직접 병력을 이끌고 드라나 남작령을 공격, 영주 성이 함락되고 드라나 남작이 사망했습니다.]

“알겠네. 지금 그레이츠 쪽이 여의치 않으니 잠시 그곳에서 대기하다 궁으로 복귀하시게나.”

[네, 그렇게 하겠습니다.]

“이제 되었는가? 더 이상 군말 말고 병력부터 준비하도록!”

딸을 잃어 상심한 가운데 그레이츠라는 거목을 향해 거침없이 이빨을 드러낸 드라나 남작에게 좋은 감정을 가지고 있던 귀족들은 작게 한탄하며 황제의 뜻대로 병력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불과 반나절도 되지 않아 상대 영주 성을 점령했다는 그레이츠의 저력에 혀를 내두르면서 말이다.

그리고 황제가 모든 준비를 마친 시기에 맞춰 자신의 영지로 돌아가지 않고 대기하던 북부 영지의 영주들 역시 기사들을 대동해 황제의 대열에 합류했다.

드라나 남작이 영지전을 신청했다는 것에 의문을 느낀 북부 영주들이 만약의 사태에 대비해 복귀 시기를 늦추고 황도에서 대기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 시각 데루트 판정관은 꽝―! 하는 굉음과 함께 밖이 소란스러워지자 본격적인 전투가 시작됨을 눈치챌 수 있었다.

“뭐, 내가 거짓말한 건 아니지. 어차피 금방 끝날 분위기니까. 크레톤 공작님이 따로 부탁한 일을 허술하게 처리할 수도 없고……. 황제 폐하를 위해서라면 이 정도는 일도 아니지.”

그야말로 작정한 조작.

황제가 마음먹고 조작하니 이 정도는 일도 아니었다.

(다음 화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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