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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소설 속 로빈-290화 (290/303)

290화

“크아!!”

저렇게 수천이 마을에서 날뛰고 있어서 밖으로 나갈 수도 없었기 때문이다.

원래 이곳에 침투한 결사대의 목표는 큐브였다.

몬스터가 나타나 영지가 혼란스러워지면 그 틈에 큐브를 폭발시켜 혼란을 가중하는 것.

그야말로 목숨까지 바친 자살 테러였다.

하지만 목숨을 포기했다고 목표를 달성하기도 전에 죽고 싶은 건 아니었다. 지금 상황에서 밖에 나가는 건 그야말로 개죽음에 불과했으니 말이다.

“독을 쓰면 도망치는 것 정도는 가능하겠지만 그럴 바에는 차라리 더 큰 걸 노리는 게 낫지. 그나저나 이 집도 엄청 튼튼하군. 이래서야…….”

오우거만 돼도 최소 수천은 죽일 수 있을 거 같은데 하필이면 오크라 주민들을 살상하는 건 기대할 수 없을 거 같았다. 그나마 희망은 드라나 남작이 최대한 오래 버텨 황제의 지원군이 늦게 도착하는 건데…….

[영주님께서 드라나 남작령을 점령하셨습니다! 이제 곧 황제 폐하의 구원군이 도착합니다. 모두 침착하게 집 안에서 대기하십시오. 영주님이 우릴 구할 것입니다.]

마을을 관리하는 시청 쪽에서 마법 확성기를 통해 알린 소식은 정말 끔찍할 정도였다. 반나절이 채 지나기도 전에 드라나 남작령이 점령되었다는 소식이었으니 말이다.

물론 이 시기는 로빈이 아직 남작의 성을 공격하기도 전이었다.

“미친놈. 자신만만하더니 하루도 버티지 못한 거야? 뭐, 이런 병신이……. 딱히 믿은 건 아니지만 이건 정말 상상 이상으로 무능하군.”

튀어나온 건 오크요, 남작은 하루도 버티지 못한 상황.

이제 정말 믿을 건 자신밖에 없었다.

그렇게 얼마의 시간이 지났을까?

확성기가 다시 한 번 요란하게 울려 퍼졌다.

[영주님께서 마을에 도착하셨습니다. 대기 중이던 치안대는 바로 영주님께 합류하십시오! 다시 한 번 말씀드립니다. 치안대는 영주님께 합류하십시오!]

주민들만큼이나 검은 복면도 기다렸던 소식.

드디어 거지 같은 그레이츠 후작이 마을에 도착한 것이다.

검은 복면은 앞으로의 계획을 점검하며 천천히 모습을 바꾸었다.

* * *

“정말 머릿수가 깡패네. 그래도 이만하면 다행인가?”

수천의 오크 떼.

말이 수천이지 정확한 수를 헤아릴 방법도 없었다. 놈들은 쓰러지자마자 먼지가 되어 흔적도 없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큐브에서 튀어나온 몬스터를 상대할 때면 아무런 보상도 없이 고생만 하는 꼴이라 허무하기 그지없었다. 물론 오늘 같은 경우에는 시체를 처리할 필요도 없어 오히려 다행이었지만 말이다.

“부상자들은 바로 신전으로 옮기세요! 멀쩡한 전사들은 다시 모이시고요!”

전사들과 치안대가 각개 격파로 제법 많은 수의 오크들을 줄이고 시작했지만, 그 많은 오크를 상대하면서 피해가 없을 순 없었다.

그렇게 발생한 사상자가 무려 400여 명.

전사들도 100명은 넘게 다쳤고 일부는 목숨을 잃기도 했다.

하지만 더 큰 문제는 물적 피해였다. 건물 자체는 온전했지만, 그 외에 많은 것들이 파괴되었기 때문이다. 특히 상점가는 처참할 정도였는데 성급히 대피하느라 미처 챙기지 못한 물건은 대부분 못 쓰게 되었다.

“죽은 전사들은 누가 달래주냐고. 저건 또 누가 보상해 주고. 진짜 미치겠네.”

영지의 문제가 아니라 놈들이 외부에서 터트린 큐브 때문에 불필요한 손해를 입게 된 로빈은 울분을 다스리지 못하고 주먹을 꽉 움켜쥐었다.

어쨌든 오크들은 모두 처리되었고 주민들은 하나둘씩 밖으로 나와 로빈의 이름을 외치며 환호했다. 분통을 터트리던 로빈도 주민들에게 내색할 순 없어 애써 웃으며 손을 흔들며 그들의 환호에 보답했고.

그리고 주민들의 틈바구니에서 튀어나온 촌로 한 명이 로빈에게 달려왔다.

“아이고~ 영주님~”

“응?”

그리고 로빈은 촌로를 발견하자마자 두 손을 높이 들었는데.

슝~!

“컥!!”

촌로가 로빈의 이상한 행동에 의문을 채 느낄 틈도 없이 뒤쪽에서 날아온 화살 하나가 그의 등을 꿰뚫었다.

그리고 그걸 신호로 삼아 주민들로 위장해 숨어있던 치안대가 주민 몇을 기습해 처리하기에 이른다.

“어… 어떻게…….”

“그러게, 친구랑 친하게 지내지 그랬냐? 친구가 그레이츠에 함부로 들어가지 말라고 안 그러디? 예전에 네 친구가 그대로 당했는데.”

“쿠… 쿨럭! 크… 클라운.”

영지전이 결정되고 영지로 돌아온 로빈은 가장 먼저 우버 마을에 정착한 드라나 남작령 사람들을 살펴보았다. 예전에는 으레 있을 수 있는 일이라 별로 신경 쓰지 않았지만 일이 이렇게 되고 나니 부쩍 의심스러웠기 때문이다.

그렇게 몰래 찾아와 살피길 몇 차례.

성향과 타이틀이 의심스러운 사람 몇을 찾아낼 수 있었다.

하지만 로빈은 그들을 바로 체포하지 않았다. 만약 그림자가 영지에 숨어들 계획이라면 저들과 합류할 게 뻔했기 때문이다.

저들을 먼저 처리해 타초경사의 우를 범하느니 그림자까지 낚이길 기다린 것이다.

지온과 존에게 알려 놈들을 따로 감시하게 한 로빈은 따로 치안대를 마을 사람으로 위장시켜 놈들 근처에 대기하게 했다.

그리고 오늘.

며칠간의 기다림이 성과가 있어 드디어 놈의 덜미를 잡은 것이다.

“원래 이렇게 바로 죽일 생각은 없었는데, 넌 좀 위험하더라고.”

이름: 베놈

성향: 독선적. 이기적. 비틀린.

타이틀: 독을 품은 그림자(S). 독왕(L). 연금의 대가(SR). 의학의 달인(R)

패시브: 맹독 연성 (랭크 A)

액티브: 맹독 살포 (랭크 D)

뭔가 더 알아보고 싶어도 이렇게 주민들이 많이 모인 곳에서 독이라도 뿌렸다가는 감당하지 못할 거 같아 서둘러 놈을 처리했다.

놈에게 화살을 날린 건 바로 월연.

출산 후 일선에 복귀한 지는 얼마 안 되었지만 지금도 그녀보다 뛰어난 명사수는 없었고 로빈이 마을에 들어선 때부터 건물 위에서 그만 지켜보던 월연이 신호에 맞춰 접근하는 인물을 처리한 것이다.

모든 게 사전에 약속한 그대로였다. 다른 건 몰라도 놈들이 영지에서 일을 벌일 가능성이 농후한 상황이라 이에 대한 대비만은 철저했다.

로빈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꿈틀대는 놈에게 다가가 검을 꺼내 바로 목을 베어버렸다. 놈은 스스로 자부하던 독은 제대로 써보지도 못하고 허무하게 목숨을 잃게 된 것이다.

환호하던 사람들은 갑작스러운 난리에 모두 얼어붙어버렸다. 하지만 지금 상황에서는 딱히 어떻게 설명할 시간적 여유도 없었다.

묘한 침묵이 감도는 가운데 퀘스트 창만 로빈의 행동을 반겨주고 있었다.

세상의 파멸과 제국의 멸망을 바라는 그림자를 처단하라.

[진행 상황]

???

???

독을 품은 그림자 - 격살

암약하는 그림자 - 격살

익살스러운 그림자 - 조우

보상: ???

페널티: ???

기한: 세상의 멸망. 모든 그림자의 제거

이제 겨우 둘을 잡았을 뿐이니 앞으로도 갈 길이 멀었지만 말이다.

그렇게 우환까지 정리한 로빈은 비교적 멀쩡한 전사들 300명과 치안대 500여 명을 이끌고 에테 마을로 출발했다.

“체력은 괜찮겠어요?”

“후, 좀 힘들긴 하네. 그래도 어쩌겠어. 마을을 구할 때까지는 힘내봐야지. 우리 일을 남에게 맡기고 있을 수만은 없잖아?”

“그건 그런데…….”

말은 괜찮다고 하지만 온종일 전투를 치른 전사들이 멀쩡할 리는 없었다. 백랑이 저 정도면 다른 전사들은 더 힘든 상황일 테고.

괜히 무리하다 인명 피해만 내느니 진군을 늦추는 것도 생각해 봐야 할 거 같았다. 우버 마을과 에테 마을까지 정리하면 우선 급한 불은 끈 셈이었으니 말이다.

그리고 우버 마을에서 에테 마을과 남쪽 요새 마을로 갈라지는 교차로에 도착했을 때, 에테 마을 쪽에서 내려오는 거대한 인파와 마주칠 수 있었다.

에테 마을의 오크들을 처리하고 남쪽 요새 마을로 진군하는 황제의 무리였다.

“후작님!”

“다들 어떻게…….”

선두에는 황제를 필두로 한 귀족들이 자리 잡고 있었는데 다른 5대 방벽의 영주들은 물론 북부에서 로빈의 손을 탔던 영지의 영주들은 모두 모인 거 같았다.

어쩐지 황제의 기사들 외에도 800여 명이나 된다기에 좀 많다 싶었더니 이렇게 많은 영주가 모였으니 그럴 수밖에. 1년 넘게 이 영지, 저 영지 돌아다니며 그들을 도운 것이 그리 헛된 일만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지금까지 받은 게 한두 개도 아닌데 그냥 있을 수 있겠습니까? 드라나 남작, 그 거지 같은 놈이 영지전을 신청했다기에 뭔가 이상하다 싶었죠. 그래서 차라리 황도에 대기하는 게 낫겠다 싶더군요.”

“그래, 변경백. 그 거지 놈은 처리했나?”

“예,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서 바로 처단했습니다.”

“잘했군. 그런 놈은 차라리 없어져주는 게 세상을 위한 일이지.”

북부의 영주들은 드라나 남작의 실체를 어느 정도 알고 있었다. 같은 지역의 귀족들은 이래저래 서로 접점이 있을 수밖에 없는데 한 번만 겪어봐도 어떤 성품인지 바로 알 수 있을 정도로 단순한 인간이 드라나 남작이었기 때문이다.

남작을 처음 본 황도나 다른 지방의 귀족들은 그의 의기를 가상하게 여겼지만, 북부에서는 씨알도 안 먹힐 이야기였다.

5대 방벽의 영주들과 인사를 나눈 로빈은 다른 북부의 영주들과 눈인사한 후 황제에게 다가갔다.

“이거, 한 번만 더 이런 식으로 출정하다가는 황실 금고가 바닥나겠어. 내 후작만 아니면 배로 출발했을 텐데 말이야.”

황제의 소소한 공치사에 웃음 지은 로빈은 고개를 숙여 감사의 뜻을 표했다. 이 많은 병력이 게이트를 타고 왔으면 그 손실 역시 상당했을 테니 말이다.

“그래서 저도 폐하께 선물을 준비했습니다. 놈 중 하나를 제거했거든요. 아마 이번 일을 벌인 녀석일 겁니다.”

“오호, 그래? 그렇다면 말이 조금 달라지지. 그 이야기는 나중에 듣지. 아주 좋은 안줏거리가 되겠어.”

그렇게 황제의 병력과 합류한 로빈은 이번 전투의 종착지인 남쪽 요새 마을로 출발했다. 예상대로라면 이제 그곳만 정리하면 이번 난리는 얼추 마무리된다.

* * *

로빈과 황제 일행이 도착한 남쪽 요새 마을은 지금도 전투가 한창이었다.

“난장판이군. 후작은 어쩔 생각인가?”

황제의 말대로 성벽을 기어오르는 오크와 그걸 저지하는 모야족의 투쟁으로 전장은 난장판이었다. 하지만 아직도 성벽은 굳건했고 지키는 자들의 투지 역시 꺼질 줄을 몰랐다.

전사들이 예견한 대로 전시 체제에 들어간 모야족은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모두가 전투 병력이었다. 모두가 그렇게 합심해 적극적으로 싸우니 오크들이 아직 성벽을 함락하지 못한 것이다.

물론 이것도 단기전에서나 가능한 일이었다. 허약한 노약자는 이제 곧 지쳐 나가떨어질 테니 말이다.

“전 지친 병사들과 요새로 들어가겠습니다. 폐하께서는…….”

“그럼 이번 전장은 내가 정리해야겠군. 전장에서는 짐 덩이에 불과한 후작은 들어가서 영지민을 다독이게나.”

아니, 이 사람이…….

물론 틀린 말은 아니지만 그렇게 뼈를 때리면 곤란하지.

약이라도 빤다면 나도 나름 준수한 전력이지만 저런 장기전에서는 오히려 폐만 끼치게 될 거다. 그걸 잘 알고 있기에 얌전히 전장에서 물러나겠다고 청한 거고.

“백랑 님, 린과 함께 쌩쌩한 전사들로만 50을 추려 황제 폐하를 따르세요.”

“알았어, 영주님.”

“좋아! 주인, 걱정하지 마. 가장 맛있는 건 내가 먹을 테니까.”

“…너무 설치진 말고.”

스킬을 사용한 대가로 두 번의 전투에서 손가락만 빨았던 린은 이제 다시 쌩쌩해져 의욕을 다지고 있었다. 백랑도 지치긴 했지만 수많은 기사들이 함께할 전장에서 다칠 정도로 생각 없는 사람은 아니었고.

비열하게(?) 싸우는 거로는 이골이 난 백랑이니 알아서 몸을 사리며 전사들을 간수할 수 있을 거다.

“큭큭. 재미있군. 후작 부인한테 상수(가장 뛰어나서 상을 받는 사람. 상의 으뜸)를 빼앗기지 않으려면 내 기사들도 분발해야겠군 그래. 우선 뒤쪽으로 요새까지 접근한 후, 후작과 전사들이 성내로 진입하는 걸 돕고 바로 놈들을 처리한다. 모두 공격!!”

호기 넘치는 린의 태도가 마음에 드는지 웃음 짓던 황제는 기사들에게 요새까지 길을 뚫으라고 명령했다.

수천의 병력이 일거에 들이쳐 오크들을 몰아내는 건 그야말로 장관이었다.

그렇게 길이 뚫리자 지친 병사들을 이끌고 뒤쪽 문으로 요새에 들어선 로빈.

로빈과 황제가 병력을 이끌고 접근할 때부터 이미 요새는 축제 분위기였다.

“영주님이닷!!”

“지원군이 도착했다!!”

주민들의 환대에 손을 흔들며 답례한 로빈은 서둘러 지휘부가 자리 잡은 성벽 위로 발걸음을 옮겼다. 요새의 방어를 책임지던 흑웅과 적호는 그런 로빈을 반갑게 맞아주었다.

“영주님!”

(다음 화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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