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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소설 속 로빈-300화 (300/303)

300화

“하, 그래요. 언니, 솔직히 걱정돼요. 무려 한 달이나 대수림에서 싸우다 오는 거잖아요? 그러니까, 이런 걸… 미운 정? 떡정? 애견 사랑? 뭐, 그런 거 아니겠어요? 어쨌든 그 멍청이한테는 비밀이에요.”

하여간 끝까지 솔직하지 못한 녀석이었다.

그런데 미운 정은 그렇다 치지만 떡정이랑 애견 사랑은 또 뭔지. 저 녀석의 머릿속에는 대체 뭐가 들어있는지 궁금할 지경이었다.

그리고 그때 로빈이 기다리던 통신이 도착했다. 요새 마을에 거의 도착했다는 백랑의 통신이었다.

[영주님! 하하. 이제 오늘 중에는 마을에 도착할 거 같아.]

“하, 백랑 님. 통신 좀 자주 하시지 그랬어요? 무슨 일이라도 있나 걱정했잖아요?”

[에이, 무슨 일 생기면 통신하기로 했잖아. 그럴 땐 무소식이 희소식이지. 너무 통신을 자주 하면 마음이 해이해진단 말이야.]

이번 출정은 백랑에게도 중요한 출정이었다.

항상 실없는 소리를 내뱉고 엉뚱한 일을 벌이는 그였지만 다른 사람의 힘을 빌려 영지를 지킨 건 그리 달가운 일이 아니었다. 비록 그게 예상치 못한 변고 때문에 벌어진 부득이한 상황이라도 말이다.

그냥 이대로라도 영지를 지키는 데 무리가 없는 병력을 한층 강하게 훈련하려 한 것도 그런 이유에서였다.

좋은 걸 구해오겠다고 실없는 소리를 하며 떠났지만, 그 의욕만은 대단했다는 뜻인데, 그런 의미에서 원정이 마무리될 때까지는 통신을 자제했었다.

로빈도 그런 백랑의 의사를 존중해 끝까지 참으며 기다렸던 거고.

그래도 백랑의 밝은 목소리를 들으니 성과가 제법 괜찮은 모양이다.

“어쨌든 수고 많으셨어요. 바로 마을에 알려서 준비하도록 할게요.”

[응, 영주님. 오늘은 진탕 마셔보자고.]

백랑과 통신을 마친 로빈은 바로 남쪽 요새 마을에 연락해 돌아오는 원정대를 맞이할 준비를 하라 일렀다.

“분위기가 괜찮네요. 피해는 거의 없는 모양이에요.”

“그러게. 다행이네. 우리도 어서 가자.”

“그래요, 로빈. 실비아도 같이 갈래? 린이 돌아온다니, 환영해 줘야지.”

“후후, 멍청이가 돌아온다니 제가 좋은 걸 준비해야겠네요. 아주 화끈한 거로요.”

“…적당히 하자. 린도 피곤할 텐데.”

“영주님은, 원래 피곤할 때 뜨겁게 움직여줘야 피곤이 확 풀리거든요. 오늘 하루만은 멍청이에게 봉사해 줄 생각이에요.”

“…그래, 우선 손에 든 그 그레이트 A랑 V는 좀 치우고. 다이앤도 그레이트 B는 놓고 가는 게 어때?”

“호호, 이게 또 언제 제 손에……. 알았어요, 로빈.”

풀어주려는 건지, 죽이려는 건지 알 수 없는 둘의 어이없는 태도에 헛웃음을 지은 로빈은 서둘러 남쪽 요새 마을로 출발했다. 되도록 병력이 돌아오기 전에 도착해 그들을 환영해 줄 생각이었으니 말이다.

* * *

“집이다!!”

“살았다!!”

“내, 앞으로 대수림 쪽으로는 오줌도 안 눌 거다!!”

“백랑 족장은 악마다!!”

“악마!!”

“욕구 불만 마녀 단장!! 으악!!”

로빈이 남쪽 요새 마을에 도착해 술과 음식을 준비하고 있자니 저 멀리에서 함성이 들려왔다.

아무래도 병력이 돌아오는 모양인데, 함성만 들어봐도 얼마나 원정이 처절했는지 쉽게 짐작할 수 있었다. 백랑이 병력들을 제법 거칠게 굴린데다 거기에 린마저 가세한 모양이니 말이다.

“모두 잘해주었다! 자랑스러운 그레이츠의 아들딸이여! 무사히 돌아온 걸 환영한다!”

“와!!”

“모두 해산하고 오늘은 마음껏 마시고 즐겨라!!”

병사들이 들어오는 시기에 맞춰 요새 위에 오른 로빈은 요새로 진입하는 병사들에게 환영 인사를 건넸다.

로빈의 환영 인사에 다시 큰 함성이 터져 나오고, 병사들은 마을로 들어와 준비한 음식과 술을 즐기며 그간의 모험담을 자랑했다.

떠들썩하고 모두가 즐거운 시간이었다.

로빈 역시 백랑과 린, 그 밖의 기사들과 즐거운 술자리를 가졌다.

“캬~ 역시 이 맛이지. 원정 기간에는 술도 한 잔 못 했다니까.”

“그렇겠죠. 병사들의 수가 많은 만큼 신경 쓸 일도 많았을 테니까요.”

“하, 두 번째 원정을 떠날 땐 월아라도 데려가야겠어. 내 전속 사제로 말이야. 물자 관리도 하고, 봉사도 하고. 적호랑 월아만 있으면 든든하지. 월아는 적호가 호위하면 되겠네.”

“…진심이에요?”

물자 관리 같은 번거로운 일이 귀찮아 원정에 부인을 데려가겠다는 백랑.

그런 위험한 곳에 부인을 대동하겠다는 어이없는 발상에 로빈은 아무런 대답도 할 수 없었다. 게다가 백랑의 표정을 보니 진심이었다.

“그렇지 않아도 엄마가 그러더라, 주인. 다음에는 무조건 따라가야겠다고. 오히려 기다리는 게 더 힘들대. 우리 엄마가 얌전해 보이지만 이럴 땐 또 보통은 아니거든. 그 왜, 예전에 마을 사람들 다 데리고도 대수림 뚫고 나온 게 엄마잖아.”

“그래, 그런 일이 있었지. 하지만…….”

“에이. 걱정하지 마, 영주님. 나도 생각이 있는 사람이라고. 원정이지만 베이스캠프를 꾸미고 거길 거점으로 활동한 거라서 안전해. 물론 베이스캠프를 벗어나면 지옥이지만 말이야.”

“아, 그래요? 하긴…….”

무려 한 달의 시간이었다. 편히 쉴 곳조차 없었으면 저 많은 병력을 무사히 복귀시키지도 못했을 거다. 월아를 끔찍이 아끼는 백랑이니 그녀를 걸고 무리한 판단을 할 사람도 아니었고.

“아, 맞다. 내가 좋은 거 구해온다고 했지? 야! 그거 가져와!”

로빈이 생각에 잠긴 사이 혼자 키득대던 백랑은 자신이 준비한 무언가를 가져오라 시켰다.

그리고 한 전사가 음흉하게 웃으며 큰 대접을 들고 오는데.

“…이건 뭡니까?”

“흐흐, 이게 진짜 좋은 거야. 우리 부족의 전통 보양식? 뭐, 그런 거지. 대수림 깊숙한 곳에서만 살아서 쉽게 구하지도 못하는 거라고.”

“이게 보양식이라고요?”

“응, 효과가 끝내주거든. 특히 새신랑에게 최고지. 물론 영주가 새신랑은 아니지만 부인이 무려 셋이잖아? 자자, 하나 먹어보라고.”

백랑이 준비한 건 무려 벌레 구이였다.

통통하게 살이 오른 검지만 한 애벌레를 구운 건데, 뭔가 굼벵이 같은 게 외견상으론 혐오스럽기 그지없었다.

그러고 보니 전생에서도 굼벵이가 나름 건강식품이었던가?

복귀한 지 얼마나 됐다고 벌써 이걸 구워 왔는지도 신기했지만 이런 걸 가지고 돌아왔다는 것도 어이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저런 혐오(?) 식품을 먹을 생각은 없었다.

“…전 됐어요, 백랑 님. 전 충분히 강하거든요? 차라리 백랑 님이나 드시는 게 어떨까요? 오늘 힘 좀 쓰셔야죠.”

“에이, 그래도 그건 아니지. 없어서 못 먹는 귀한 건데. 역시 귀한 건 영주님부터 아니겠어?”

말뜻은 참 고마운데 표정은 별로 고맙지 않았다. 딱 봐도 나를 놀리려는 느낌이었으니 말이다.

“주인, 이거 진짜 좋은 거야. 이거 다 내가 잡은 거거든. 한번 먹어봐.”

“병력 간수하기도 바쁜 내가 저걸 어떻게 잡았겠어? 다 린이 잡은 거야. 성의를 봐서라도 좀 먹어보는 게 어때?”

혐오스럽게 생겼다는 이유로 저쪽 세상에서 번데기조차 입에 대지 않았던 로빈이다. 하지만 그 먼 곳에서 린이 손수 잡았다는 말에는 당해낼 재간이 없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한 마리를 잡아 입에 넣었다.

딱히 나쁜 맛은 아니었다. 뭔가 물컹한 느낌이긴 했지만 그래도 노릇하게 잘 구워져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떨떠름한 건 어쩔 수 없었다. 제 표정을 보고 키득거리는 백랑의 태도 때문에 더 그런 거 같았다.

“…고마워, 린. 으득, 오늘은 내가 특별히 더 귀여워해줄게.”

“응? 진짜? 헤헤.”

남편의 힘(?)을 믿지 못하고 굳이 이런 거까지 준비한 걸 보니 린이 정말 죽고(?) 싶은 모양이었다. 그렇게 죽는 게 소원이라면 또 들어줘야 할 거 같았다.

다이앤과 실비아가 그레이트 세트를 챙기는 걸 말린 게 후회되는 순간이었다.

“원정은 어땠나요? 성과는요? 분위기를 보아하니 전사자는 없어 보이는데 사실인가요?”

은근슬쩍 애벌레를 치운 로빈은 백랑에게 원정의 성과부터 확인했다. 한숨 돌렸으니 빨리 썰이나 풀어보라는 의미였다. 물론 정식 보고는 내일 따로 받을 테지만 말이다.

“하하, 그거야 당연하지, 영주님. 우리가 영지를 지키기 위해 싸운 것도 아니고, 전력을 끌어올릴 목적으로 떠난 원정인데 사상자가 생겨서야 쓰나. 물론 다친 사람들은 제법 많아. 적어도 한두 달은 요양해야 하는 병사들이 대충 열일곱이던가? 그 정도도 전사들이랑 기사들이 죽을힘을 다해 노력한 결과지.”

“허, 아무리 사제들이 동행했다지만 진짜로 전사자가 제로라고요?”

어느 순간부터 신전은 영지의 숨은 치트키였다. 즉사자가 아니면 어떻게든 살려내니 어찌 치트키라 하지 않을까?

물론 치료 방법이 이상할 뿐 외상 치료에서만은 둘째가라면 서러운 교단이라는 것 정도는 알고 있었지만 사실 그 수준을 넘어선 지 이미 오래였다.

아마 그때부터였던 거 같다.

날뛰던 언데드를 잠재우고 남근상을 신전에 바쳐 성물의 효과가 업그레이드된 그때.

그때 이후 사제들의 치료 능력은 예전보다 몰라보게 발전했다. 그리고 그 뒤로는 모든 전투에 사제들이 합류해 영지의 피해를 최소화하곤 했다.

너무 뛰어난 치료 능력에 의아함을 느낀 로빈이 줄리에타 성녀에게 직접적으로 물어본 적도 있었다. 원래 사제들의 치료 능력이 이 정도냐고, 그랬으면 그런 봉사보다 치료를 통해 기부금을 받는 게 더 낫지 않았겠냐고 말이다.

하지만 줄리에타 성녀는 그저 고개를 저을 뿐이었다. 강화된 성물과 영지민들의 믿음, 그리고 사제들의 독실한 신앙심이 하나가 되어 그런 효과를 보인다는 설명이었다.

반례로 아직 교세를 제대로 확장하지 못한 다른 북부 영지들은 이런 강력한 치유 효과를 보지 못한다니 로빈도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그보다 더 놀라운 건 교단의 적극성이었다. 어떤 교단도 훈련이나 원정에까지 사제들을 파견하는 경우는 없었으니 말이다.

그러니까 이번 원정에 사제들이 수십이나 참여한 건 황제조차 쉽게 누릴 수 없는 호사라는 의미였다.

로빈을 교단의 은인이자 여신의 뜻을 받드는 신의 사자쯤으로 여기고 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실제로 로빈이 여신의 축복을 받은 상황이니 단순한 오해라고 치부할 순 없었지만 말이다.

하지만 그런 사제들의 노력이 밑받침되었다 하더라도 전사자가 없다는 건 놀라운 일이었다. 백랑의 말대로 전사들이나 기사들이 얼마나 신경 썼을지 쉬이 짐작할 수 있었다.

병사들을 훈련하기 위해 떠난 원정이지만 오히려 전사들이나 기사들이 더 많은 걸 얻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생각하니 또 백랑이 다시 보였다. 생각보다 이번 원정의 의미를 정확히 이해하지 않았는가.

“하하, 덕분에 나도 바빴단 말이지. 그래서 저걸 구할 새도 없었는데, 역시 누구 딸내미인지 마음 쓰는 게 참 예뻐. 많이 먹으라고, 영주님. 많이~ 많이~”

물론 저렇게 익살스럽게 웃으며 나를 놀릴 때면 그런 마음이 쑥 들어가 버리지만 말이다.

어쨌든 저 애벌레는 새신랑인 듀발에게 보내주기로 했다. 여신의 은총으로 막강한 나에 비해 듀발은 보통 남자였기에 저게 더 필요할 거라고 생각한 것이다.

징그러운 외형 때문에 억지로 떠넘긴 건 절대 아니었다.

* * *

원정의 성과는 기대했던 것 이상이었다. 마수들의 수를 줄이고 각종 마수 부산물을 수확해 온 것뿐만 아니라 병사들의 기세도 한껏 올랐으니 말이다.

특히 한동안 정체되어 있던 기사들의 실력 향상이 돋보였는데 로빈이 보기에도 분위기가 제법 달라졌다는 게 느껴질 정도였다.

2차 원정까지 다녀오면 얼마나 더 성장할 수 있을지.

정말 즐거운 기대감이었다.

하지만 예정된 2차 원정은 잠시 미룰 수밖에 없었다. 황실에서 급한 연락이 도착했기 때문이다.

[후작, 남쪽의 상황이 심상치 않군. 바로 황도로 들어오길 바라네. 병력을 출진해야 할 수도 있으니, 그것도 준비해 주고.]

황제의 목소리에서 다급함을 느낀 로빈은 모든 일정을 취소하고 황도로 출발했다. 대리 영주의 자리를 듀발에게, 병력의 정비는 백랑에게 맡기고 다이앤과 호위 기사 몇만 대동한 채 최대한 빨리 움직인 것이다.

남쪽 바다를 끼고 있는 작센과 크라우 쪽은 근래 계속된 곤란에 시달렸다. 해상 왕국 북쪽에 무슨 변고가 생겼는지 수많은 사람들이 바다를 넘어 도망쳐왔기 때문이다.

적국의 사람들이지만 비무장인 이들을 죽이기도, 쫓아내기도 애매한 상황.

남쪽의 두 영지는 그들을 따로 격리해 보호하며 사태를 지켜보고 있었다.

(다음 화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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