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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족 전용 남창이 되었다-1화 (프롤로그) (1/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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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화 〉 프롤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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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름지기 세상이란 언제 어떻게 될지 아무도 모르는 법이다.

예를 들어, 어느 날 갑자기 여러 차원의 지구가 갑자기 겹쳐지게 된다든지.

그 결과 각각의 차원에서 살아가고 있던 종족들이 서로 아이컨텍을 하게 되는 날이 오게 된다든지.

그런 좆된 상황에서 어떻게든 벗어나서 극적으로 화합을 이루게 되고, 어찌저찌 세상이 좆망하지 않고 굴러가게 된다든지.

그러한 일이 생길 수도 있다는 게 세상이란 거다.

그리고 그러한 과정에서, 도태된 사람이 있었다.

“...씨발.”

그리고 그게 나란 사실이 세상 좆같았다.

평생 재수라곤 없었는데.

아등바등 노력해서 조금 빛을 보나 싶었는데 한순간에 나락으로 떨어져 버렸다.

전기 요금 많이 나간다고 지랄해대는 원장한테서 구박받아가면서 쌍코피 터지도록 공부하고, 나름 좋은 성적으로, 나름 좋은 기업에 입사해서 어찌저찌 나도 사회의 톱니바퀴 중 하나가 되어 굴러가나 싶었더니 그 사회가 좆망한 탓에 규격에 맞지 않는 톱니바퀴가 되어버린 수많은 사람 중의 하나.

그게 바로 나였기 때문이었다.

갑작스레 바뀌어버린 세상. 그로 인해 갑작스레 사라져버린 일자리. 어떻게든 되지 않을까 싶었지만 어떻게든 되지 않은 좆같은 인생.

어떤 새끼가 전기 쪽으로 가면 평생 굶을 일은 없다고 했냐?

덕분에 굶어 뒈지게 생겼다.

“진짜 씨발.”

역사적으로 갑작스런 기술의 발전이라든지 뭔지로 기존의 직업이 사라지거나 하는 일은 종종 있었지만, 내가 그 당사자가 될 줄은 몰랐다.

심지어 마법이니 뭐니 하는 판타지에서나 볼법한 것들 때문에 그렇게 될 줄은 더더욱.

마력발전인지 뭔지로 전력을 충당한다니 그게 뭔 개소린지 전혀 모르겠다. 내가 아는 전력발전이라곤 수력, 원자력, 지열, 태양열, 뭐 그딴 건데 마력발전은 진짜 뭔데.

심지어 이 좆망한 세상에는 마수발전이란 것도 있었다.

전기를 발생시키는 쥐새끼 같은 생물을 대량으로 길러서 전력을 뽑는다나.

한 마리에 대충 한 가정의 전력을 충당할 정도로 파워도 짱짱한 데다가 번식도 빠르고, 무엇보다도 전기 생산 비용이 이 쥐새끼 사료 비용 정도에 불과했다.

시발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 이 세상에서 벌어지고 있는 거였다.

쥐새끼로 전기를 만드는 건 그런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에서도 그나마 약과인 축에 속하니까.

어쨌거나 중요한 건, 더는 뒤가 없다는 사실이었다.

그렇게 세상이 좆되고나서 2년.

그동안 이리저리 풍파에 치이고 다니다가 결국, 아끼고 아꼈음에도 불구하고 가지고 있던 저금을 전부 까먹었으니까.

사실 나도 그동안 아무것도 안 한 건 아니었다.

점점 줄어들기만 하는 통장의 잔고를 보면서 위기감을 느끼지 않으면 그게 병신이니까.

나도 어떻게든 여러모로 노력은 해봤다. 하지만 한창 혼란스러운 와중에는 전쟁이니 뭐니하면서 일할 만한 게 없었고, 그런 혼란이 가라앉을 무렵에는 다른 이유로 일자리를 구할 수 없었다.

예전엔 흔하다면 흔했던 노가다 하나도 아무 능력도 없는 평범한 인간족 따위보다 훨씬 힘 쎈 이종족들이 득실득실하게 된 지금. 뭐 하나 이렇다 할 재능이 없는 인간족이 제대로 된 일자리를 구하는 건 하늘의 별 따기나 마찬가지였으니까.

솔직히 나라도 같은 가격으로 보통의 인간이 하는 일에 서너 배를 해치우는 이종족이 있다면, 이종족을 쓰지 인간을 쓰진 않을 거다.

현실이란 냉혹한 법이니까.

그래도 이건 너무한 거 아니냐고.

존나게 냉혹해서 얼어 뒈질 거 같잖아.

물론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는 알고 있다. 나 같은 새끼가 한둘이 아닌 것도 아니라서 그런 거지.

세상에, 대체 어느 누가 차원이 겹쳐져서 세상이 이따위가 될 줄이야 알 수 있었을까?

그 누구도 몰랐던 만큼.

그만큼 하루아침에 무너져내린 사람은 수두룩했다.

워낙에 커다란 변화였기에, 그만큼 도태된 톱니바퀴가 한 둘이 아니었다는 거다. 한창 혼란할 때는 한강에 투신한 사람의 체온으로 수온이 높아졌다니 뭐니 하는 별로 웃기지 않은 농담도 있을 정도였으니.

근데 그럴 만도 했다.

나 같아도 당장 뛰쳐나가서 인생 리세마라하고 싶은 심정이니까.

하지만 그러기엔 아직 한강 온도가 너무 낮은 것 같았다. 한여름에도 온수가 아니면 목욕하기도 힘들어하던 나에게는 너무나도 낮은 온도였다.

“하아아...”

깊은 한숨을 내쉰 나는 몸을 일으켰다.

이대로 백날 인간족을 뽑아주는 아르바이트 같은 거나 뒤져보고 있어봤자 자리를 구할 수 있을 턱도 없고, 당장 내일 먹을 식재료를 살 돈도 아껴야 하는 시점에선 더더욱 돈이 필요했다.

그래, 뭐든 해서라도 돈을 구해야만 했다.

“뭐든... 그래, 뭐든 해서라도...”

다짐하듯 중얼거린 나는 대충 옷을 걸쳐 입고 밖을 나섰다.

쥐뿔도 없는 인생이었지만, 그렇다고 쥐뿔도 없는 채로 그런 인생을 끝내고 싶진 않았다.

그렇다면, 내게도 방법이 하나 남아있었다.

세상의 나락으로 떨어진 인간족이 할 수 있는 일자리가 아직 하나 남아있었으니까.

번호표를 뽑고 기다리기를 몇십 분. 마침내 내 차례가 와서 창구로 다가가자 안내원으로 보이는 공무원 아가씨가 말을 걸어왔다.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정말로 이것뿐일까?

여기까지와서도, 그런 생각이 들지 않은 건 아니었지만 아주 잠깐의 망설임일 뿐이었다. 이게 아니면, 그럼 뭐 어쩌려고? 고개를 휙휙 저은 내가 입을 열었다.

“...여기 오면 일자리를 구할 수 있다고 들었는데요. 그, 디스펜서라고 하는 일자리요.”

“아...”

그 말 한마디로 모든 것을 이해했다는 표정이 된 아가씨가 날 불쌍하다는 듯이 쳐다보는 것이 느껴졌다.

동정을 산다는 것.

무척이나 좆같은 기분이였지만 지금 내 처지를 생각하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그나저나 존나게 부러웠다. 세상이 좆된 상황에서도, 그나마 덜 좆된 직종이 있다면 눈앞에 있는 공무원이였으니까.

오히려 일이 존나게 늘어나서 빡세졌다고는 했지만 그래도 나보단 나을 거다. 아니, 세상이 이따위가 됐는데도 일자리가 사라지지 않은 걸 보면, 이미 눈앞에 있는 저 아가씨는 나 따위랑 비교도 안될 위치에 있는 존재나 마찬가지였다.

씨발...

존나게 부럽다.

아무튼 상대도 공무원이다보니 금세 표정을 고친 아가씨가 몇 장의 서류를 떼어주며 말했다.

“규정상으론, 해당 일을 하기 위해서는 지정된 장소에서 검사를 받아야 합니다.”

“검사요?”

“네, 자세한 건 저도 잘 모르지만. 그런 규정이 있다고 해요.”

그렇구나...

하지만 듣고 보니 그것도 그렇다는 생각이 들었다.

생각해보면 인생의 나락으로 떨어진 인간이 나뿐만인 것도 아니었다. 몰리고 몰려서, 여기까지 온 사람만 수없이 많을 거다.

그리고 그 수많은 사람을 전부 뽑는다?

말이 안 되는 이야기였다.

자세한 건 나도 모르지만, 예산이라는 게 그렇게 펑펑 솟아날 리가 없을 테니까.

몰랐던 사실을 알게 됐지만, 덕분에 엄청 불안했다. 이래서야 큰맘 먹고 여기까지 왔는데 여기서조차도 아무것도 얻지 못할 가능성이 생긴 거나 다름없었다.

씨발, 여기서도 떨어지면 난 진짜 한강 온도나 재고 있어야 하는데.

어쩌지.

존나게 불안했다.

“그, 너무 걱정하지는 마세요. 아무래도 인간족이 선호되는 일인 모양인지, 대부분 지원한 인간족들은 모두 통과되는 모양이라고 하더라고요.”

“그런가요...”

내 표정이 어두워진 것을 보고서 위로라도 해주려는 모양이었지만 별로 도움이 되는 조언은 아니었다.

선호니 뭐니하는 것도 딱히 위로가 되는 말도 아니고. 말이 선호지 나 같은 인간족이 한 둘도 아니고 그 인간족 전부를 뽑을 리도 없으니까.

올해는 작년보다 2명이나 더 뽑으니까 걱정하지 말라고 조언해줬던 직업 훈련소의 직원 말이나 다름없는, 쓰잘데기도 없는 위로였다.

씨발, 그때도 그 작년보다 2명이나 더 뽑는다는 사실 하나에 지원자가 수백 명이 몰렸는데. 여기도 그때랑 비슷한 상황이 일어났으면 일어났지 그보다 못할 리는 없었다.

어쩌지.

덕분에 더 불안해졌다.

다리를 덜덜 떠는 거로는 해결이 안 돼서 손톱마저 깨물고 있자니 그런 나를 못볼 것을 봤다는 듯이 쳐다보던 공무원 아가씨가 말했다.

“그럼, 일단 확인차 묻는 말씀입니다만. 해당 일에 직접 자원하신 것이 맞지요?”

“네? 네, 뭐...”

“그럼 이쪽의 동의서를 작성해주시고...”

동의서를 작성하자, 우웅하고 빛을 뿜어내는 서류가 보였다. 놀란 눈을 깜빡거렸지만, 공무원 아가씨는 아무렇지도 않게 서류를 봉투에 담아서 내게 건네주며 말했다.

“마법이에요. 처음 보시나요?”

“아... 마법.”

처음 봤다.

아니, 보기야 꽤 자주, 여러 번 접하기는 했지만 직접 두 눈으로 보는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마법이었구나.

무슨 동의서를 작성하는데 마법까지 쓰는 건가 싶었지만, 나랑 별 상관없는 일이었다.

마법이고 지랄이고, 나는 일자리를 얻고, 돈을 벌 수만 있으면 그만이었으니까.

“끝인가요?”

“이곳에서 처리할 수 있는 일은요.”

그렇게 말하는 공무원 아가씨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고서 몸을 일으키자 그런 그녀가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그럼, 몸조심하세요.”

“네, 그쪽도 몸조심하세요.”

마지막에 가서도, 끝까지 나를 무슨 세상에서 버려진 것을 보듯 불쌍하다는 표정으로 그렇게 말하는 공무원 아가씨의 말에 쓴웃음을 지으며 서류 봉투를 챙기고서 센터를 나왔다.

“몸조심이라... 그야 당연히 조심해야지.”

이 지랄도 먹고 살려고 하는 건데 당연히 조심해야지.

뭐, 아무리 조심해도 어쩔 수 없는 일도 있는 거지만.

지금의 세상은 대충 그런 세상이었다.

여러 차원이 합쳐진다는 것도 얼탱이가 없는데, 웬걸 그 차원마다 살아가고 있던 여러 종족이 갑자기 함께 살게 된 것이다.

합쳐진 건 차원만이 아니라 땅이라던가, 산소라던가 이러저러한 것들도 있어서 망정이지 그냥 홀랑 차원만 합쳐지는 거였다면 함께 살게 된 이종족들에게 깔려 죽었을 거다.

끽해야 오천만이 될까 말까 하던 자그마한 이 땅의 인구만 해도 1억을 가뿐히 넘겨버렸으니.

그만큼 수많은 사람.

수많은 종족이 이 땅에서 살고 있었다.

서로 제각각 다른 문화, 다른 역사, 다른 사상을 가지고 있던 종족들이. 어찌 된 영문인지도 모르게 함께 살게 된 거다.

서로 간의 대화조차 불가능했던 당시와 달리 지금은 세계 정부라는 거창한 이름의 기관까지 세워지는 둥, 나름 안정화된 것 같아보였지만어디까지나 겉으로만 그래보일 뿐이란 것쯤은 모두가 알고 있는 사실일 것이다.

힘이라던지, 자원이라던지, 기술이라던지.

여러 가지의 이해관계가 얽히고설켜서, 진짜 살얼음으로 이루어진 평화 위에서 서로 눈치를 보고 있는 상황이란 것쯤은 머리가 있다면 누구나 눈치챌 수 있는 일이었으니까.

하지만 그렇게 서로가 조심조심하는 상황이라도 어쩔 수 없는 일은 있는 법이다.

당장 하루에 일어나는 사건 사고 뉴스만 해도 예전의 세계를 생각하면... 참 블록버스터 영화를 보는 기분이니까.

예를 들어, 거인족이 한 재채기에 날아간 침방울을 맞고 머리가 날아간다는 그런 졸라 불쌍한 인간족은 이제 뉴스에도 나오지 않는 사소한 일이 돼버린 게 작금의 현실이었다.

적어도 만취한 거인족이 싸갈긴 오줌에 마을 하나가 침몰하거나 하는 일은 있어야지 뉴스로 나올 일이지.

이렇다 할 능력도 뭣도 없는 그냥 평범한 인간족인 나에게는 언제 뒈져도 이상할 것 없는 참 살벌하기 그지없는 세계.

세계 정부에서는 모든 종족은 평등하며 똑같은 권리가 있니 뭐니 했다지만 막상 그 권리를 누리려면 뭐라도 있어야 하는 건 이전 세계에서도 똑같았으니 이해하기 편한 일이었다.

그 권리가 목숨이랑 직결될 수도 있는 건 좀 달랐지만.

“그래도 먹고 살려면 이거라도 해야지.”

받았던 서류를 움켜쥐며 중얼거리고 있을 때였다.

쿠오오오오오오오ㅡ

무슨 태풍이 지나가는 듯한 소리와 함께 하늘 위로 드래곤이 날아가고 있는 것이 보였다.

“허미, 씨버어얼.”

존나게 큰 드래곤이 빌딩 위로 날아가는 장면은 몇 번을 봐도 적응이 안 된다.

세상에 그런 일은 여태 없었지만, 저 드래곤이 날던 도중에 뭐라도 싸는 날엔 도시 하나가 날아갈 거다.

그리고 그날 대문짝만하게 드래곤의 똥이나 오줌으로 붕괴된 도시라는 기사가 실리겠지.

거인 오줌으로 침몰하는 것보다는 핫한 토픽이 되지 않을까 싶었다. 그리고 드래곤들에게 비행 금지 법령 같은 게 만들어지지 않을까?

그래도 씨발 존나 쫄릴 것 같긴 한데.

저만한 게 도시를 걸어 다닌다고 해도 밟히지 않을까 걱정해야 할 것이다.

그만큼 거대한 생물이 머리 위로 날아가는 광경은, 인간으로서 아득하기 그지없는 공포 그 자체였다.

그렇지만.

“좆 같아도 살아야 하니까.”

세상이 뒤바뀌더라도, 살려면 돈을 벌어야 하니까.

하늘에서 언제 드래곤 똥이 떨어져서 뒈질지 몰라도. 살려면 돈이 있어야 하는 법이였다.

꾸우욱.

들고 있던 서류가 담긴 종이 봉투가 구겨졌다.

그래, 씨발.

어떻게 될진 몰라도 이대로 한강 온도나 걱정해야 하는 것보단 나은 건 사실이니까.

재차 각오를 다지고서, 겸사겸사 기합을 담아 외쳤다.

“가즈아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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