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화 〉 디스펜서(3)
* * *
“그나저나 어머니. 그래서 디스펜서가 대체 뭡니까?”
쪼옥, 하고 릴리스가 내게 건네준 음료에 빨대를 꽂아 마셨다. 이게 대체 뭔지는 모르겠는데 존나 맛있었다. 더군다나, 8연속 풀발기 사정을 해버린지라 온몸에 힘이 쭉 빠진 상태였는데도 빠르게 기력이 회복되고 있었다.
이게 그 포션이라하는 그건가?
요구르트만한 크기 한 병에 수십만 원을 가볍게 넘는 가격이라 본적도 없는 건데, 그걸 쪽쪽 빨아먹을 수 있게 된 지금.
나는 열심히 포션을 빨아 마시며 어머니에 대한 무한한 효심이 샘솟는 기분을 만끽하고 있었다.
“너 참 뻔뻔하구나? 상관없긴 한데... 아, 더 마실래?”
“네.”
보라, 한 병에 수십만 원은 할 포션을 내가 다 마셔서 아쉽다는 듯이 입맛을 다시고 있자 곧장 새로운 포션을 내게 건네줄 정도로 부가 흘러넘치는 어머니인데, 그 누가 효심이 샘솟지 않을까?
아무튼, 새로 받아든 포션을 다시 열심히 쪽쪽 빨고 있을 때. 그런 나를 보며 릴리스가 말했다.
“그나저나, 디스펜서가 뭐냐고 물었지?”
릴리스가 생글생글 웃으며 다리를 꼬았다.
덕분에 처음 봤던 때의 옷차림으로 다시 돌아간 릴리스의 보지 노출 쇼를 감상할 수 있었다.
안 그래도 짧디짧은 치마를 입고서 저렇게 큰 동작으로 다리를 꼬면 당연한 결과였다. 심히 어머니에게 노출벽같은 변태적인 성향이 있는 것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아무래도 좋은 일이었다.
노출벽? 그딴 게 뭐가 중요하다고. 중요한 건 내 엄마가 존나 부자에 존나 강하다는 것이었다.
“너, 내가 누구라고 생각하니?”
“그야 제가 존경하고 사랑하는 어머니죠.”
“...너, 진짜 뻔뻔하다? 분명 조금 전까진 이러지 않았던 것 같은데.”
그렇게 말하면서 피식하고 웃은 릴리스가 말했다.
“아무튼, 그것도 이제 맞는 말이기는 한데. 내가 원하던 정답은 아니야. 정답은...”
움찔, 하고 몸을 떨었다.
포션을 잔뜩 마셔서인지 아니면 방금 본 것 때문인지 다시 기운을 차리기 시작한 내 자지를 무언가가 건드리는 감촉이 느껴졌다.
하지만, 딱히 내 자지를 건드는 사람은 여기에 아무도 없었다.
단지, 톡톡하고 탁자를 손가락으로 두드리며 웃고 있는 릴리스만이 눈앞에 있을 뿐이었다.
“서큐버스, 남성의 정기를 필요로 하는 종족이란 거지.”
톡, 톡, 톡...
장난스레 탁자를 두드리는 릴리스가 보였다. 그럴 때마다, 나는 자지에 전해지는 쾌감에 움찔움찔하고 몸을 떨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손가락으로 탁자를 두들기던 것을 멈춘 릴리스가 말했다.
“그런데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누굴 덮쳐서 정기를 쪽 빨아먹거나 하는 일은 안되거든. 왜 그런지는 알고 있지?”
알고 있었다.
세계가 이 모양이 되어버리고, 한창 혼란스러운 와중에 세워진 세계 정부.
사실상 스물둘의 영웅이 일으켜 세운 세계 정부가 가장 먼저 한 것은, 서로 역사도 문화도 심지어 언어조차도 달라서 서로 통할 수가 없었던 모든 종족 사이의 가장 큰 장벽을 허무는 것이었다.
지구 전체를 아우르는 사상 마법.
‘바빌론’은 그렇게 모든 종족의 언어를 하나로 묶어놨다.
그 덕에, 불과 얼마 전만 해도 쌩판 다른 세계에서 살고 있었던 종족들이 서로 대화할 수도, 서로 통할 수 있었다.
하지만 아무리 말이 통한다고 해도.
온갖 종족들이 섞여버려서 씹창나버린 세상은 그걸로 전부 해결될 만큼 만만한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말이 통하기에 생겨나 버린 혼란도 있었다는 거였다.
아예 말이 통하지 않을 때는, 서로 어쩌면 좋을지 눈치만 보고 있었다면. 말이 통하게 되자 이거 잘만하면 우리들이 얘네들을 지배해서 부려먹을 수 있지 않을까하는 생각을 하게 된 이들도 있었다는 소리였다.
애당초 말이 통하던, 각자의 세계가 하나의 종족, 혹은 두세 종족으로만 이루어져 있었을 때도 서로가 차별하고, 반목하던 것이 당연했었다.
인간들만 북적이며 살았던, 내가 기억하는 세계도 허구한 날 테러니 종교 전쟁이니 뭐니, 서로가 가진 ‘다름’을 혐오하고, 물어뜯던 것이 당연했던 세계였다.
그런데 하물며, 종족까지도 달라?
참지 못하는 이들도 당연히 있을 수밖에 없는 법이었다.
그것이, 대부분이 자신들의 세계에선 그 지구의 지배자였었던 종족들이었다면 더더욱.
그렇기에, 세상의 모든 언어를 통일시켜버린 세계 정부가 그 다음으로 한 것은 바로 그 혼란 그 자체를 안정시키는 것이었다.
스물둘의 영웅이 가지고 있는, 압도적인 무력을 기반으로.
말이 통하게 됐음에도 불구하고, 소통하지 않았던 종족들을.
마법으로, 초상 능력으로, 혹은 타고난 신체 능력으로.
제각각, 자신들의 종족들이 타고난 능력으로 하여금, 다른 종족들을 지배하거나, 착취하려고 들었던 이들을.
세계 정부는 자신들이 내건 기치. 만인의 평등이란 이념으로 모두 솎아냈다.
마법에는 더욱 강한 마법으로.
초상 능력에는 더욱 강한 초상 능력으로.
신체 능력에는 더욱 강한 신체 능력으로.
압도적인 폭력.
힘에는 힘이라는 지극히 간단한 논리로 찍어 눌렀다.
평등이란 이름 아래에, 평등이란 이념의 틀에 맞아들어갈 때까지 두들겨 팼다고 해도 좋았다.
그렇게 두들겨 팬 결과, 맞을 때마다 오목하게 되어버린 끝에 평등 당해버리거나, 그것도 아니면 버티지 못해서 바스러져 버리거나. 둘 중 하나가 되어버리는 결과가 되어버렸지만.
그렇기에 미증유의 대혼란에 빠져있던 세상은 빠르게 안정되어갔다.
아무튼, 그런 세계였다.
필요에 의한 것이었다고는 해도, 극단적인 방법으로 혼란을 잠재워버린, 스물둘의 영웅이 세운 질서로 굴러가는 세계.
그리고 눈앞에 있는, 내 어머니가 되어버린 여자.
릴리스 아슈타로테는 그런 스물둘의 영웅 중의 하나였다.
그래, 영웅이다.
그리고 영웅의 또 다른 이름은 바로 학살자였다.
‘다름’을 인정하지 않기에, ‘다름’을 모조리 자신들의 손으로 조져버린 스물둘의 학살자.
릴리스 아슈타로테는 바로 그런 학살자 중의 하나였다.
“힘으로 억압했는데도 아슬아슬하게나마 질서가 유지되고 있는 이유는 다름 아니라 우리마저도 그 평등을 충실히 이행하고 있어서야. 스물둘의 영웅, 그렇게 불리고 있는 우리조차도. 서로의 종족이 무엇이든, 얼마나 강하든. 구분하지 않고 그저 사회의 한 구성원이 돌아갔기에 가능했던 일이지.”
그 말대로였다.
그들은 세계 정부를 세웠지만, 군림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일선에서 물러나서 은거해버리거나, 릴리스 아슈타로테처럼 가끔 얼굴을 비추는 정도에 불과했다.
그렇기에, 세계 정부는 진정으로 세계 정부로서의 인정을 받을 수가 있었다.
만인의 평등.
단지, 그 이념 아래에서 여러 종족이 있다 보니 온갖 법이 생겨나긴 했지만 말이다.
당연하게도, 그런 세계다 보니 아무리 크고 작은 범죄라도, 혼란을 일으키는 행위는 하나같이 극형이었다. 그렇게 극형이 처한다고 해도 세상이 이 꼬라지긴 했지만. 그래도 정말로 좆망하지 않은 건 그런 이유에서였다.
남성의 정기가 없으면 살아갈 수 없는 존재.
살기 위해서 다른 이를 착취해야만 하는 종족인 서큐버스가, 그런 세상을 만들었다.
“...설마, 디스펜서라는 게.”
불현듯 떠오른 생각에 설마하는 심정으로 그렇게 중얼거리는 나를 보며 릴리스가 미소 지었다.
“네가 생각하는 그거 맞아.”
“아니, 진짜로요?”
“그래, 기껏 안정시킨 세상이야. 그런데 서큐버스는 정기가 필요하다는 이유로 배가 고플 때마다 아무 남자나 붙잡고 정액을 쥐어짜 내도 되게 할 수는 없잖아? 내가 아무리 스물둘의 영웅이라고 불린다고 해도, 내가 하라고 하면 그런 법이 생긴다고 해도. 다른 누구도 아니고, 내가 내 종족을 편애해서는 우리가 내건 이념인 평등이 흐지부지하게 돼버리는 거지. 그럼 어떻게 될 것 같아?”
“...다시 씹창 나겠죠?”
억지로 때려 박아서 평등 당하게 만들어버렸지만, 그렇게 되어버린 것은 고작 2년밖에 지나지 않은 일이었다.
아주 사소한 계기만 있어도, 불이 붙어서 순식간에 타올라 버릴 것은 분명했다.
“맞아. 뭐, 딱히 서큐버스들만의 문제도 아니었지. 서큐버스랑 마찬가지로 정기를 필요로 하는 종족들이 꽤 있었거든. 생존에 있어서 반드시 필요로 하는 건 아닐지라도, 일정 주기로 섹스에 눈깔이 뒤집혀버리는 수인종이나 번식을 위해서 남자의 정액이 필요로 하는 여성뿐인 종족들도 있었고.”
그래서 만들었어.
그렇게 말하며 릴리스는 내 자지를 보며 입술을 핥았다.
“합법적으로 마음껏 쥐어짜도 되는 존재들. 발정기인 수인종이든, 귀여운 자식이 만들어지고 싶어진 슬라임이나 하피, 인어든. 그것도 아니면 배가 고픈 서큐버스든간에... 누구에게라도 평등하게. 쥐어짜는 대로 양질의 정액을 제공하는 맘마 디스펜서를.”
“애미, 그게 그런 뜻이었어요?”
말이 디스펜서지 사실상 남창이나 마찬가지였다.
그것도 이종족 전용의 남창.
디스펜서에 대한 충격적인 진실을 마주한 나는 정신이 아득해지는 기분이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어머니, 제가 기억하고 있는 게 틀리지 않는다면... 얼마 전에 서큐버스랑 인간 남자랑 결혼한 사례가 있었죠?”
“그래, 그랬었지.”
꽤나 화제가 됐던 이야기라 기억하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서큐버스였다.
눈앞에 있는 릴리스도 하는 짓만 빼고 보면 눈부시게 아름다웠고 서큐버스란 종족은 애당초 모두가 아름답기 그지없는 종족이었다.
그런 서큐버스랑 평범한 인간이 결혼하다니. 당연히 화제가 될 수밖에 없었다.
처음에는 모두가 부러워했다.
나도 그랬고.
근데.
“그 사람, 6개월 만에 죽지 않았어요? 말라 비틀어져서.”
평범한, 하지만 마냥 평범하다고 하기엔 지나치게 건강해 보였던, 3대 600은 거뜬하게 칠 수 있어 보이던 남자였다.
그랬던 남자가 6개월 만에 피골이 상접해진 몰골로 죽어버렸다.
“그래, 그랬지. 서로 너무 열렬하게 사랑해서, 사랑하던 이를 죽이게 되어버리다니. 비극적이라고 생각하지 않아?”
씨발, 비극적은 얼어 죽을.
비극적인 건 내 미래였다.
내 직업이 디스펜서라면, 그리고 디스펜서의 일이 그런 거라면. 6개월 만에 죄다 빨려 죽어버린 남자나 다를 바가 없었으니.
아니, 서큐버스만이 아니라 그 밖에도 여러 종족을 상대해야 하니 6개월보다 더 짧게 이승을 뜰 가능성도 컸다.
“저, 그만둬도 될까요?”
아주 짧은 고민 끝에, 생존에 저울이 기울어진 내가 그렇게 말했다.
물끄러미, 그런 나를 바라보는 릴리스가 보였다.
“그래. 목숨이 아깝다면야. 하지만, 그럼 그만한 대가를 치러야지.”
대가라니?
“제가 딱히 뭘 한 것도 아니고 아직 시작도 안 한 직업을 관두겠다는데 무슨 대가요?”
“네가 마신 그거. 기껏 널 생각해서 준 건데 쓸데가 없어졌잖아? 그 값은 치러야지 않겠어?”
나는 연신 쪽쪽 빨아 마신 포션을 가리키며 말하는 릴리스를 보고서 할 말을 잃었다.
한 병에 수십만 원을 호가하는 포션.
그걸 공짜라고 생각하고 마구 마신 것이 화근이 될 줄이야...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목숨보다 중요한 건 아니었다.
비록 남은 잔고가 텅텅 비어버리기는 하겠지만, 그래도 사는 게 우선이었다.
“...좋아요, 얼만데요?”
“그래? 그렇게 선뜻 말할 줄 몰랐는데. 어디 보자, 3병이나 마셨으니까 15억 정도만 내면 돼. 특별히 재료비만 쳐준 거니 고맙게 여겨도 좋아.”
“...15억이요?”
3병에 15억. 그러니까, 한 병에 5억이나 한다고?
“아니, 씨발 내가 먹은 게 무슨 엘릭서도 아니고 어떻게 한 병에 5억이나 합니까?”
“감이 좋은걸. 맞아, 엘릭서.”
릴리스의 말에 멈칫했다.
“...엘릭서가 맞다고요?”
“그래, 엘릭서. 한 병만 마셔도 무병장수하게 된다는 포션의 왕. 네가 3병이나 마신 그거, 엘릭서야.”
내가 도대체 뭘 마신 거지...
“...왜 저한테 그런 걸 먹인 겁니까?”
한 병에 5억이나 하는 건 둘째치고, 애당초 엘릭서는 없어서 팔고 싶어도 팔 수 없다고 알려진 것이었다.
말이 한 병만 마시면 무병장수지, 그 밖에도 여러 효과가 있었으니까 당연한 일이었다.
그런 걸 무려 3병이나 내가 마시도록 해버린 릴리스의 생각이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리고 그런 나를 보며, 릴리스는 웃으며 말했다.
“내 아이에게 주는 선물?”
그 선물이라는 걸, 퇴직하겠다고 하자마자 도로 뺏어가려고 하는 사람이 할 말은 아닌 것 같았다.
“어떻게 할래? 15억, 토해낼 거야?”
내 장기를 모조리 팔아도 15억은 할까 모르겠다.
“...할게요. 하면 되잖아요.”
“잘 생각했어. 뭐, 그렇게 절망한 표정 짓지 말고. 네가 생각하는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는 편이니까.”
릴리스가 웃으며 말했다.
“거기에 내가 그렇게 두지는 않을 거니 안심해도 좋아. 생각해보라고. 내가 너한테 투자한 것만 벌써 15억이잖아? 그런데 덜컥 죽게 내버려 둘 리가 있겠어?”
그렇게 말하는 릴리스의 말을 들으니 갑자기 존나게 안심되기 시작했다.
하긴, 15억이었다.
내가 죽어버리면 무려 15억이나 되는 돈이 허공으로 날아가는 거였다.
“...근데, 어머니. 궁금한 게 있는데요.”
“응? 뭐가?”
“대체 저한테 이러시는 이유가 뭡니까? 정말로 단순하게 마음에 들어서? 그래서 이런다는 게 존나 납득이 안되는데요.”
“솔직하게 말해줄까?”
스물둘의 영웅.
그중 하나인 릴리스가 낮게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하자, 나도 모르게 등골이 오싹해졌다.
혹시 들어선 안 되는 세계의 비밀을 알게 되는 것이 아닐까?
그것도 아니면 내 출생에 무슨 비밀이라도 있다든가?
사실 내가 어딘가의 차원의 황태자였다든가 하는 그런 거.
“...네, 솔직하게 말해주세요.”
“좋아.”
릴리스는 내게 말했다.
엄격하고, 진지한 표정을 지으면서.
“나도 슬슬 은퇴해서 꿀 빨면서 살고 싶거든.”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