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종족 전용 남창이 되었다-5화 (5/523)

〈 5화 〉 디스펜서 (4)

* * *

요점은 이랬다.

스물둘의 영웅들. 대부분 은거하거나 뒷선으로 물러나 버린 스물둘의 영웅들처럼 자기도 존나 아무것도 안하면서 꿀 빨고 싶어서, 그래서 나한테 투자하는 거라고.

그렇게 나한테 투자한 이유는, 그냥 단순히 내가 마음에 들어서였고.

“...믿으라고요, 이걸? 저보고?”

“하지만, 솔직하게 말해달래서 솔직하게 말해줬는데 믿지 않으면...”

“...않으면요?”

“네가 어쩔 건데? 내가 믿으라면 믿어야지 별수 있어?”

이 망할 어머니가?

하지만 팩트라서 아무 말도 못 하는 나를 보며 릴리스가 어깨를 으쓱이고는 말했다.

“하지만 정말로 사실인걸? 너도 생각해봐, 너랑 동기인 녀석들은 죄다 은퇴했는데, 너만 일하고 있다고 생각하면... 기분이 어떨 것 같아?”

“그러길래 정년퇴직이 최대한 긴 직장이나 알아보라니까 꼴좋다?”

내 대답에 릴리스의 표정이 와락 구겨졌다.

하지만 정말로 그렇게 생각할 거였다. 니네들이 자식들 눈치보며 집구석에 처박혀있을 때 나는 내 할 일 하고 돈 벌어서 떵떵거릴 거다, 그런 생각을 할 게 분명했다.

자고로 자식들의 효심은 돈에서 나오고, 노후의 윤택함도 돈에서 나오는 법이니까.

그런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릴리스가 큼, 하고 헛기침을 하고는 표정을 고쳤다. 그리고 다시 내게 말했다.

“...좋아, 그 새끼들이 만약 정부에서 다달이 찔러주는 어마어마한 연금을 받으면서 잘 지내고 있다면?”

“이런 씨발 도둑놈 새끼들. 나라에 도둑이 많아서 이 꼬라지가 났지.”

그제야 만족스럽다는 표정을 지은 릴리스가 말했다.

“봐, 너도 그럴 거잖아. 그러니 나도 꿀 좀 빨아보겠다 이거야. 솔직히 내가 그 정도는 해도 되지 않아?”

“...그러긴 한데요. 그러고 싶으면 그러면 되지 왜 일하고 있어요?”

단순하게 재료비만 따져도 15억이 넘는다고 한 엘릭서를 무슨 요구르트 주듯이 주는 양반이 뭐가 부족해서 이러고 있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다른 스물둘의 영웅처럼 당장 관둬버리고 연금이나 타 먹으면서 살면 그만인 일이니까.

그리고 그런 내 말에 릴리스가 혀를 차는 것이 보였다.

“그 새끼들은 죄다 후임자를 찾았는데, 난 그러지 못했거든. 너도 봤지? 네가 오자마자 눈에 불꽃이 튀던 그 발정난 년들.”

“......”

릴리스의 말에 날 선명하게 핥듯이 쳐다보던 수많은 이종족 여자들을 떠올렸다.

디스펜서라는 직업의 정체를 알고 나니 알 수 있었다. 그 여자들이 거기에 있었던 이유는 뻔했다.

그리고 내 예상은 적중했다.

“그 년들이 왜 거기 있는 줄 알아? 그 미친년들이 사시사철 발정난 암캐 같은 년들이라서 그런 거야. 내가 조금만 늦게 왔어도 넌 쪽 빨려서 미라가 됐을걸?”

“...정말로?”

“아니, 사실 그 정도는 아니야. 그땐 넌 아직 디스펜서가 아니었으니까. 하지만 지금은 다를걸? 궁금하면 내려가 보던가 죽을 것 같아 보이면 구해줄 테니. 아무튼, 그 년들은 진짜거든. 일주일 내내, 하루종일 거기서 죽돌이하고 있는 진짜 중의 진짜. 그러다가 뭣도 모르는 신입 디스펜서가 보이기라도 하면 그대로 쪼옥하고 빨아버리는 거지.”

네가 마셔버린 엘릭서처럼 말이야, 하고 말하는 릴리스를 보면서 나는 한 방울이라도 남길까 아까워서 바닥까지 전부 빨아 마신 엘릭서를 바라보다가, 꿀꺽하고 침을 삼켰다.

그런 나를 보며 릴리스가 말을 이었다.

“그래도 그나마 그 년들이 정줄을 붙들어 잡고 있던 건 내가 있어서야. 사고 쳤다간 나한테 붙잡혀서 보지가 허벌이 되도록 찢어질 테니까. 그럼 그렇게 좋아 죽는 섹스도 한동안은 못 하게 될 테고. 그러긴 싫으니까 자중하는 거지. 그런데... 내가 없으면 어떻게 될 것 같아?”

존나 무서운 소리를 아무렇지도 않게 하는 릴리스를 보며 식은땀을 흘렸다.

하지만 물을 건 물어봐야 했다.

“그래서, 그게 저랑 어머니랑 은퇴하는 게 무슨 상관인데요?”

“말했잖아? 내가 없으면 이 기관이 제대로 굴러가지 않는다고. 그렇다고 내 후임자를 구하기가 쉬운 것도 아니고 말이야. 밑에 있는 죽돌이들을 포함해서, 생각보다 강한 년들이 많거든. 내가 아니면 그 년들을 제어할 수 있는 건... 지금은 은퇴해서 꿀 항아리를 옆구리에 끼고 사는 새끼들뿐인데 걔네들은 지들이 빠는 꿀이 너무 달달한지 연락도 안 되지 뭐야? 된다고 쳐도 그 새끼들 성격상 이런 일은 한다고 하지도 않겠지만.”

그래서, 당장 본인도 서큐버스이기에 이쪽의 사정도 빠삭하게 이해하고 있고. 눈깔이 돌아가 버린 미친년들을 제어할 힘도 있는 자신이 은퇴도 하지 못하게 되어버렸다는 이야기를 하는 릴리스의 넋두리를 한참을 들어주어야 했다.

쌓인 게 많은지, 정말로 한참이나.

“그래서 생각한 거야. 이대로라면 평생을 일해야 할 판이라고. 내가 은퇴하기 위해선, 내가 하는 일들을 모두 떠넘길 수 있는 녀석을 구해야 한다고. 근데 하나같이 마음에 드는 새끼들이 없으니, 이렇게 된 거 차라리 내가 내 후임자를 만들자고 생각했지. 그리고 만난 게...”

“저라고요?”

“그래, 이해가 빠르네.”

대충 사정은 이해했다.

하지만, 이해했다고 해도 납득했다는 건 아니었다.

“...그래서, 왜 전데요?”

그런 나를 보며, 릴리스가 키득거렸다.

“몇 번이나 말하게 하지 말아줄래? 마음에 들었다고 했잖아”

“그런 식으로 애매하게 넘어가지 말고. 진짜 이유 좀 말해봐요.”

그래서 내가 어느 차원의 황태자라도 되는 거냐고.

하지만 그런 기대는 무참하게 깨져버렸다.

어깨를 으쓱이며 다리를 반대 방향으로 꼬며 다시 한번 보지 노출 쇼를 해보인 변태 어머니, 릴리스가 말했다.

“굳이 말하자면, 눈이야. 계기는 착각이었지만, 결과적으로 틀린 선택은 아니었으니까 이 정도면 만족한다고 해야 하나. 성격도 뻔뻔해서, 곧장 어머니, 어머니하는 것도 마음에 들었고.”

“...눈이요? 제 눈이 뭘 어쨌는데요?”

“자신의 삶에 한없이 진심인 눈. 그러면서도 곧 죽어도 자존심은 버리지 못하는 눈. 까딱하면 뒈질 상황에서도, 그렇게나 살고 싶으면서도 날 노려봤던 그 눈.”

릴리스가 환하게 미소 지었다.

“그런 눈을 한 새끼들은 둘 중 하나지. 그렇게 살려고 발버둥 치다가 결국 객사하거나, 끝까지 살아남아서 원하던 바를 이루거나.”

릴리스가 내게 발을 뻗는다.

쭈욱, 내게 뻗어진 릴리스의 발끝이 내 턱에 닿았다.

“자, 너는 어느 쪽일까?”

당연하게도, 그 덕분에 내 눈에 릴리스의 보지가 훤히 들여다보였다. 하지만 아무래도 좋다는 듯이. 아니, 오히려 유혹하듯이, 생글거리며 나를 바라보는 릴리스를 보면서 내가 입을 열었다.

“원하는 바를 이룬다... 그게 뭐든지라도?”

“그래, 대부분은 객사하는 쪽이었지만. 살아남은 녀석들은 그랬었지.”

“제가 만약 어머니의 말대로 된다면, 그래서 어머니가 은퇴하게 된다면... 저한테 전 재산을 달라고 해도요?”

“생각보다 소소한걸. 뭐, 좋아. 어차피 매달 받는 연금은 주체할 수 없을 만큼 많으니. 그런데 그걸로 되겠어?”

입술을 핥으며 릴리스가 말했다.

“뭐든지라고 말했잖아?”

“...아무리 그래도 제 어머니인데?”

“피가 이어진 것도 아니잖아?”

그건 맞지.

근데...

“...아무리 그래도 비처녀는 좀.”

릴리스의 말대로, 내가 그녀의 전재산을 이어받게 된다면 디스펜서인지 뭔지하는 남창 짓도 관두고, 나만을 사랑하는 예쁜 처녀랑 결혼해서 처녀였던 것으로 만들어가면서 알콩달콩 살고 싶지 성격도 괴팍한 양어머니에게 불꽃 효도를 하는 신세가 되고 싶진 않았다.

하물며 그게 음마들의 여제라는 이명으로도 불리는, 서큐버스 중의 서큐버스라면 더더욱.

“......”

내 말에 멈칫했던 릴리스가 딱딱하게 굳은 얼굴로 나를 바라봤다.

“...화나셨어요?”

그치만 그게 팩트인걸.

딱히 비처녀가 싫다는 건 아닌데, 기왕이면 처녀가 좋다고 생각하는 건 남자들의 본능이었다.

“...야.”

나지막하게 중얼거리는 릴리스의 목소리가 너무 작아서 잘 들리지 않았다.

“네?”

“나 처녀라고 이 씨발놈아.”

그렇게 말하며, 릴리스가 내 얼굴을 걷어찼다.

“아니.”

그대로 뻥 걷어차인 내가 얼떨떨하게 릴리스를 바라봤다.

아직도 화가 덜 풀렸는지 표정이 굳어있는 릴리스였지만, 억울해서 이건 말해야겠다.

“어머니, 서큐버스라면서요?”

“그래, 그런데?”

“그리고, 존나 세잖아요?”

“그래, 그래서?”

논리적으로 아무런 흠결이 없다는 것을 릴리스의 입으로 다시 확인한 내가 말했다.

“그런데 어떻게 처녀에요?”

“안 했으니까 처녀지 이 씨발놈아.”

다시 걷어차였다.

첫 번째도, 두 번째인 지금도 진심으로 릴리스가 날 걷어찼다면 그대로 내 목과 몸통이 분리됐겠지만, 처음도 그렇고 두 번째도 그렇고 아프긴 한데 목과 몸통이 분리돼서 죽을 듯이 아프진 않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세 번이나 걷어차이고 싶지는 않았다.

“...그럼 처녀라고 치고.”

꿈틀하고 그런 내 말에 릴리스의 눈썹이 치켜 들렸다. 그래도 여기까진 허용범위인 모양이었다. 나는 안심하고서 말을 이었다.

“말이 안되잖아요. 어떻게 처녀버스. 아니, 처녀인 서큐버스가 있다고.”

자세한 건 나도 모르지만 적어도 내가 아는 한은, 서큐버스는 하면 할수록 강해지는 종족이었다. 서큐버스의 종족 특성이라고 해야 할까, 아무튼 타고나는 능력 중의 하나가 레벨 드레인이었기 때문이었다.

어딘가의 게임처럼 레벨을 통째로 빼앗는다는 느낌은 아니었지만, 자신과 관계를 맺은 이로부터 아주 조금이지만 힘을 빼앗아오는 것이 가능한 종족이 서큐버스였다.

그런데 눈앞에 있는 릴리스는 그 서큐버스 중에서도, 스물둘의 영웅 중 하나로 알려진 독보적인 강함을 지닌 서큐버스였다.

근데 어떻게 처녀?

릴리스가 얼마나 강한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그 정도의 강함을 얻으려면 수백이 넘는 경험은 있어야 정상이 아닐까 싶었다.

횟수가 아니라 경험한 사람의 숫자로 수백.

그게 어떻게 처녀?

릴리스처럼 강한 서큐버스가 처녀라는 소리는, 섹스는 했는데 처녀라는 소리랑 다를 바가 없었다.

의심과 의문이 잔뜩 담긴 시선으로 릴리스를 바라보자, 릴리스는 한숨을 내쉬었다.

“그건 사정이 좀 복잡한데... 아무튼, 나 처녀거든? 또 헛소리하면 다음은 봐주지 않을 거니까 알아서 처신 잘해.”

나한테 알려줄 생각은 없나 보다. 하지만 그렇다는데 내가 별수 있나. 다음은 봐주지 않는다니 알아서 굽혀야 했다.

“그럼 그건 넘어가고...”

나는 살짝 얼얼한 뺨을 어루만지며 말했다.

“디스펜서인지 뭔지 하는 건 좋은데. 이대로라면 어머니가 투자한 15억이 6개월 안에 죄다 쥐어짜이게 생겼는데 대책은 있어요?”

어찌 됐건 나는 평범한 인간족인 건 변하지 않았다.

엘릭서를 3병이나 마셨다고 해도, 궁극적으로 그건 변하지 않는 일이었다.

“어떻게 안 해주면 은퇴고 자시고, 그냥 아들 초상이나 치를 텐데요.”

“그런 대책도 없었으면 여기가 굴러갔을 것 같아? 당연히 있지.”

그렇게 말하며 릴리스가 손가락을 튕겼다.

스르륵, 하고 내 팔에 웬 팔찌가 생기는 것이 보였다.

“우선 그것만 있으면, 죽기 전까지 쥐어짜일지언정 죽지는 않을 테니 걱정하지 마.”

“...이게 끝?”

“아니, 더 있지. 이건 다른 디스펜서들도 모두 받는 거니까.”

역시, 이래서 빽을 잘 두어야 하는 법이었다.

까딱까딱하고 내게 손짓하는 릴리스에게 다가가자, 그런 그녀가 내 배 위에 손을 얹었다.

“살짝 아플 테니까 참아.”

뭘 하려고요? 그렇게 물으려다가 창자를 꼬아대는 고통에 숨을 들이켰다.

이게 살짝이라고?

애미, 씹...

이를 악물면서 어떻게든 고통을 견뎌내자, 그런 내 배 위에 화려하게 생긴 문양이 생겨나는 것이 보였다.

그리고 그런 문양이 생겨나자 방금까지의 고통은 거짓말이었던 것처럼 싹 가셨다.

하지만 문양이 생겨났을 뿐이었다.

단지 그뿐, 몸에는 이렇다 할 변화는 느껴지지 않았다.

“...뭘 한 거예요?”

결국, 궁금증을 참지 못한 내가 그렇게 묻자 릴리스가 생글거리며 웃었다.

“궁금해?”

마치 자기가 한 장난을 자랑하는 듯한 꼬맹이 같은 표정을 지으면서 릴리스가 손을 뻗어서 내 배 위에 새겨진 문양을 더듬으며 말했다.

“원래는 서큐버스만이 사용할 수 있는 능력인데, 그걸 내가 좀 바꿔봤지.”

“서큐버스만이 사용할 수 있는 능력?”

“그래, 너도 잘 알고 있는 거.”

나도 잘 알고 있는, 서큐버스만이 사용하는 있는 능력..

“...레벨 드레인이요?”

내 대답에 릴리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거기에 이것저것 추가하긴 했지만. 본질은 그거 맞아.”

레벨 드레인.

톡 까놓고 말해서, 섹스하면 할수록 강해지는 능력. 그게 나한테 생겼다고?

“할만하겠네요, 그럼.”

문양이 다소 너무 화려한 게 옥의 티지만, 그 대가로 레벨 드레인이라는 능력을 얻게 된 거라면 싸게 먹히는 거였다.

“근데, 이 팔찌는 그래서 뭐에요?”

“아, 그거. 이걸 뭐라고 해야할까... 궁금하면 직접 사용해보는 게 알기 편할걸?”

사용하라고?

생긴 건 그냥 팔찌인데, 무슨 아티펙트같은 거라도 되는 건가?

“어떻게 쓰는 건데요?”

그런 생각을 하는 나를 보며 릴리스가 웃으며 말했다.

“자, 내 아들아. 따라 해보렴.”

마치 처음으로 말을 배우기 시작하는 아이에게 발음을 가르치는 것처럼, 릴리스는 또박또박 이렇게 말했다.

“좆.태.창.”

* * *

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