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종족 전용 남창이 되었다-11화 (11/523)

〈 11화 〉 릴리스 아슈타로테 (1)

* * *

굳이 내 얼굴을 보지 않아도 지금 내가 어떤 얼굴을 하고 있을지 상상하는 건 쉬운 일이었다.

아마 시퍼렇게 질려있겠지.

그만큼 뮤뮹뮤뭉의 말은 충격적인 것이었다.

강한 아이.

아이.

내 아이?

지금 생각해보니 릴리스도 그런 말을 한 적이 있었다.

자식을 원하는, 여성밖에 존재하지 않는 종족의 번식을 돕는 것 역시 디스펜서의 일이라고.

하지만 너무 이르지 않나?

이게 쾌락 없는 책임인가 뭔가하는 그건가? 아니, 쾌락이 있었긴 했는데. 아니, 있기만 한게 아니라 뮤뮹뮤뭉의 보지야 존나 기분 좋긴 했는데.

그런데, 아이라고?

어쩌면 좋은 거지?

정신이 나갈 것 같았다.

그리고 그런 나를 물끄러미 쳐다보던 뮤뮹뮤뭉이 입을 열었다.

“뭘 생각하는진 알겠지만, 네가 생각하는 그런 일은 없으니까 걱정하지 않아도 돼.”

“...제가 생각하는 그런 일이라니요?”

내가 묻는 말에 뮤뮹뮤뭉이 자신의 배를 어루만지는 것이 보였다.

“인간족은 수컷이 자신의 아이를 가진 암컷을 책임진다고 들었어. 암컷도, 그런 수컷에게 종속된다고. 아니야?”

뭔가 조금 다른 느낌이긴 한데, 결혼이라든지 그런 거라 생각하면 아주 틀린 말도 아니라서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맞죠.”

나처럼 아닌 경우도 있긴 했지만. 이건 굳이 말할 필요가 없는 일이겠지.

수컷, 그러니까 아버지가 책임을 지지 않아서.

암컷, 그러니까 어머니 역시 책임을 지지 않아서.

애미애비가 지들이 해처먹은 쾌락에는 일체 책임을 지지 않고, 그렇게 지들이 싸지른 쾌락의 산 증거를, 아이를 그대로 냅다 내팽개쳐버려서.

그래서 한겨울에 고아원 문 앞에 버려진 나 같은 경우가 그리 흔한 것은 아니었으니.

그러니 뮤뮹뮤뭉의 말대로 대다수의 인간족들은 그런 삶을 살아가고 있는 것은 사실이었다.

“그 말대로에요. 그래서...”

내가 어쩌면 좋은가, 그렇게 말하려는 내 말을 자르며 뮤뮹뮤뭉이 말을 이었다.

“하지만 슬라임에게는 그런 관습은 없어. 그런 관습이 있을 이유가 없으니까. 아이를 갖기 위해 남성의 정기가 필요한 건 맞지만... 어디까지나 정액에 깃들어있는 생명력이 필요한 거니까.”

“그 말은...?”

“네 정액 덕에 아이가 생긴 건 맞지만, 어디까지나 그뿐이야. 굳이 설명하자면... 나 스스로가 네 정액의 힘을 빌려서 아이를 만들었다는 느낌?”

......

뭐지?

막상 내 자식이 아니라고 하니까 안심되는 건 둘째치고 복잡미묘한 기분이었다.

“하지만...”

결국 나 때문에 생긴 아이라는 것 아닌가?

그런 아이에 대한 것을 마냥 뮤뮹뮤뭉의 말대로 아무런 책임도 지지 않고 넘어가기에는, 애미애비에게 버림받아서 고아로 살아왔던 나로서는 차마 받아들이기 어려운 일이었다.

설령 종족이 달라서, 당연히 다를 수밖에 없는 일이라고 하더라도 그러했다.

“...응, 넌 상냥하구나. 내 첫 아이가, 네 덕에 생긴 건 운이 좋았을지도.”

“첫 아이...?”

그건 좀 놀라웠다.

그런 내 시선을 받은 뮤뮹뮤뭉이 말했다.

“그래, 첫아이. 나도 이 세상에 슬슬 적응되기도 했고, 그래서 아이를 만들 준비를 하고 있었는데... 나는 좀 특별한 슬라임이라, 1년은 더 걸릴 거라고 생각했어. 그런데, 생각보다 빨랐네.”

운이 좋았어, 그렇게 말하는 뮤뮹뮤뭉을 그저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그녀가 하는 말들은, 여전히 평범하디 평범한 인간인 나로서는 잘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지만. 적어도 자신의 배를 어루만지고 있는 뮤뮹뮤뭉의 표정은 무척이나 기뻐 보여서.

그래서 그런 그녀의 아이로 태어날 아이가 나와 같이 고아원에 버려지거나 하는 일은 없을 거라는 사실만은 확실히 알 수 있어서.

그래서 나는 그런 그녀에게 이렇게 말할 수밖에 없었다.

“...그, 축하드립니다.”

“고마워. 그래, 그렇지... 정 신경 쓰인다면.”

뮤뮹뮤뭉의 물빛을 닮은 푸른 눈동자가 나를 들여다봤다.

“아이의 이름, 네가 지어줄래?”

나는 그런 그녀의 말을 거절할 수 없었다.

그래서 지어주기로 했다.

내 아이가 아닌, 그녀의 아이의 이름을.

“...뮤웅뮤융은 어때요?”

멍하니 길을 걸었다. 한참을 걸었던 것 같았다.

대체 내가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도 알 수 없을 만큼, 오랫동안 걷다가.

그러다가 짝, 하고 두 뺨을 손뼉으로 두드렸다.

다소 혼란스러운 건 여전했지만, 쓰라린 두 뺨 덕에 그래도 정신은 번쩍 드는 기분이었다.

그리고 그제야 내가 그저 같은 곳을 무작정 빙글빙글 돌며 방황하고 있던 사실을 떠올렸다.

“병신 새끼.”

벌써 늦은 밤이었는데, 주변에는 이런저런 종족들이 잔뜩 보였다. 당연한 일이었다.

종족마다 생태가 다르니, 밤이야말로 그들의 시간인 종족도 있기 마련이었다.

그래, 당연한 일이었다.

“...머저리 새끼.”

슬라임은 그렇다고 했다. 다름 아닌, 슬라임인 뮤뮹뮤뭉이 그렇다고 했다. 종족 간의 차이가 있는 것쯤이야 이제 와선 당연한 상식이었다. 그런 만큼, 종족 간의 다름을 서로 이해하는 것도 이제 와선 당연했다.

나는 인간이었고, 그녀는 슬라임이었다.

또, 뮤웅뮤융도 슬라임이고.

그걸로 끝이었다.

그녀가 내게 요구한 것은, 기껏해야 아이의 이름뿐이었다.

그래, 그것뿐이었다.

당연한 일이었다.

어디까지나 나는 그녀가 돈을 주고 산 정액을 제공해줬을 뿐인 디스펜서였다.

그걸로 끝.

그 이상은 단순한 오지랖일 뿐인, 그런 관계였다.

“집에 돌아가자.”

낡고 좁아터진, 내 집으로.

어차피 돈이 잔뜩 생긴 거 잔뜩 써보자는 심정으로 택시를 잡아서 탔을 때였다.

우웅, 하고 스마트폰이 진동했다.

­끝났냐?

릴리스 마망. 그렇게 저장해둔 번호로 날아온 문자에 나는 택시 기사에게 집 근처의 주소를 말해주고서는 문자를 보냈다.

­네, 끝났어요.

그렇게 문자를 보내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다시 우웅, 하고 문자가 날라왔다.

­고생했어. 그럼 이따 보자.

이따 보자고?

시간을 보니 벌써 시간이 꽤 늦어서, 조금 있으면 날이 바뀔 때쯤이었다.

“내일 보자고 한 건가?”

아마 그러려니 하고서, 나는 릴리스에게 문자를 보냈다.

­네, 이따 봐요.

띠로링, 하는 소리와 함께 열린 문을 넘어 집으로 들어간 나는 뭔가 이상함을 느낄 수 있었다.

우선 불이 켜져 있었다.

전기세 한 푼이 아까운 내가 불을 켜두고 나갔을 리는 없었다. 비록 내 자리를 꿰찬 마수 발전인지 뭔지로 전기세 자체가 엄청나게 싸지긴 했지만, 그 싼 전기세도 아껴야 했던 것이 어제까지의 나였으니까.

그리고 집안, 그러니까 내 방에서 무슨 소리가 들려왔다.

TV 소리였다.

내가 불을 켜고 나간 것도 이상한데, TV도 끄지 않고 나갔다고?

그럴 리가 없었다.

불현듯 떠오른 생각은, 도둑이었다.

이런 씨발.

벼룩의 간을 빼먹을 새끼들.

털어먹을 게 없어서 내 집을 털려고 해?

하지만 난 어디까지나 평범하디 평범한 인간. 같은 인간이라면 몰라도 도둑이 하다못해 오크만 되더라도 순식간에 줘팸 당할 자신이 있었다.

어떻게 하면 좋을까 생각하던 내 눈에 대충 바닥을 쓸 때 사용하던 빗자루와 철로 된 쓰레받기가 보였다.

조심스레 쓰레받기와 빗자루를 각각 한 손에 나눠 쥐자 용기가 샘솟았다.

이거라면 오크라도 순식간에 줘팸 당할 일은 없겠지.

늦은 밤인만큼 소란이 생기면 금방 이웃 사람도 알아차릴 것이다. 게다가 내 이웃 사람은 헬창 오크였다.

그냥 오크도 인간이랑 비교하면 헬창이었는데, 이 헬창 오크는 진또배기였다. 팔뚝 근육이 내 허리만 한 진짜 헬창 오크였다.

생긴 건 더럽게 무서웠지만 그래도 착한 오크였으니 소란을 들으면 곧장 찾아와볼 거다.

계획은 완벽했다.

일단 먼저 도둑놈을 확인하고, 충분히 감당할만하다 싶으면 빗자루랑 쓰레받기로 제압하고 무리라고 생각되면 존나게 비명 지르기로.

나는 신발을 신은 채로 빗자루와 쓰레받기를 앞세운 채로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조심스레, TV 소리가 들려오는 방문에 귀를 대봤다.

바삭, 바삭하고.

무언가를 씹는 소리와 TV 소리가 들려왔다.

이 씨발놈의 도둑 새끼가, 남의 집에서 멋대로 TV를 보는 것도 모자라서 과자라도 처먹고 있는 모양이었다.

원체 좁아터져서, TV를 보려면 자연스럽게 침대 위에서밖에는 자리가 없는데. 그런데 과자를 먹고 있다?

그 말은 침대 위에서 과자를 먹고 있다는 소리였다.

결코 용서할 수 없는 일이었다.

이 악마 같은 새끼.

침대 위에 떨어진 과자 부스러기를 치우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잘 알고 있는 악랄한 새끼가 분명했다.

들끓는 분노와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을 열 용기가 좀처럼 생기지 않는 와중에,

벌컥하고 문이 열렸다.

“들어왔으면 빨리 들어오지 좀도둑처럼 뭐...”

예상치 못했던 상황에 당황한 나는 냅다 들고 있던 쓰레받기를 휘둘렀다.

근데, 잠깐만.

릴리스?

깡­!

“...이 새끼가?”

청명한 소리와 함께, 쓰레받기에 머리를 얻어맞은 릴리스가 나를 싸늘하게 노려보는 것이 내 눈에 보였다.

잘못 본 게 아니었다.

릴리스.

날짜가 이미 지났으니, 바로 어제 내 어머니가 된 그 릴리스 본인이 맞았다.

“...마망이 거기서 왜 나와?”

나도 모르게 튀어나온 그 말에 릴리스가 자신을 후려갈긴 쓰레받기를 움켜쥐었다.

조잡하긴 해도, 그래도 철로 만들어진 쓰레받기가 릴리스의 손에 아그작하고 찌그러지는 것이 보였다.

“그러는 너는? 다짜고짜 날 쓰레받기로 후려갈긴 이유가 있어? 만약 있다면 지금 당장 말하는 게 좋을걸?”

꾸욱, 꾸욱하고 쓰레받기를 뭉쳐서 쇠구슬로 만들어버린 릴리스가 툭, 하고 바닥에 그 쇠구슬을 떨어뜨렸다.

“내가 너한테 효심이란 걸 대가리에 새겨주기 전에.”

당장 이빨을 털지 않으면 이 쓰레받기처럼 곱게 접어주겠다는 의지가 가득해 보이는 릴리스를 보며 나는 침을 꿀꺽 삼켰다.

그리고 솔직하게 말했다.

“...저야 도둑이 든 줄 알았죠.”

“이따가 보자고 내가 문자 보냈을 텐데? 너도 답장했잖아?”

그게 진짜 이따가, 그것도 내 집에서 보자는 건 줄은 난 몰랐지.

“...흥, 뭐 됐어. 하필이면 쓰레받기라서 기분은 좀 더럽지만...”

나를 한참이나 노려보던 릴리스가 그렇게 말하고선 침대에 걸터앉았다. 그리고선, 방금 막 꺼내온 것처럼 서리가 남아있는 맥주캔을 들어 올리며 말했다.

“됐으니까 빨리 들어와. 한잔하자”

* * *

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