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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족 전용 남창이 되었다-12화 (12/523)

〈 12화 〉 릴리스 아슈타로테 (2)

* * *

“...저 피곤한데요?”

“지랄 말고, 앉아.”

그렇게 말하는 릴리스를 보며 입맛을 다셨다.

그리고 대충 릴리스와 마주 보며, 비좁은 곳에 몸을 끼워 넣고 있자니 툭툭, 하고 자신의 옆자리를 두드리며 릴리스가 말했다.

“지랄하지 말라니까 왜 지랄이야? 거기서 궁상떨지 말고 여기 앉아.”

그렇게 말하고서 엉덩이를 옮기며 자리를 만들어주는 릴리스를 보고서 얌전히 침대에 걸터앉자, 맥주캔을 따서 내게 건넨 릴리스가 말했다.

“그래서, 일해본 소감은 어때?”

어떠냐라...

“나쁘진 않았어요. 기분도 좋고. 돈도 많이 벌고.”

“그래?”

내 말에 고개를 끄덕이고선 맥주를 들이켜는 릴리스가 보였다.

그렇게 한 캔을 전부 원샷을 때려버린 릴리스가 대충 캔을 옆에 세워두고선 나를 바라봤다.

핏빛처럼 붉은, 검은 머리카락과는 대조적인 릴리스의 눈동자에 내가 비쳐 보였다.

“근데 왜 그렇게 죽상이야? 기분도 좋고, 돈도 많이 벌었다면서. 네가 원했던 거 아니야?”

“그건... 뭐.”

“뭐, 대충은 알겠지만.”

말끝을 흐리는 나를 보고서, 릴리스는 대충 뜯어놓은 과자를 한 움큼 집어다가 입에 넣었다. 바삭, 바삭하고 과자를 씹는 릴리스.

과자 부스러기가 당연하다시피 침대 위로 흩어지는 것이 보여서 엄청나게 신경 쓰였다. 그렇게 한참, 침대 위로 흘려진 과자부스러기를 보고 있을 때, 릴리스가 입을 열었다.

“디스펜서가 관두는 이유 중 가장 많은 게 뭔지 알아?”

“...글쎄요? 이러다가 정말 뒈질 것 같다 싶어서?”

“그래, 그게 가장 많은 이유긴 하지. 워낙 감당하기 힘든 년들이 잔뜩이니까. 솔직히 지금도 수요를 공급이 따라가지 못하는 형편이긴 해. 그렇다고 아무나 붙잡고 너 디스펜서가 돼라, 이럴 수도 없어서 참 곤란하단 말이지...”

“그래요? 솔직히, 소문만 퍼지면 다들 하겠다고 몰려들 것 같은데.”

“그래, 그러기야 하겠지. 그 년들이 그래도, 생긴 건 봐줄 만하니까. 나만큼은 아니지만. 그래도 그건 안 돼. 어중이떠중이야 어차피 있어봤자 하루도 못버티거든. 지 주제도 모르고 나대다가 하루만에 삐쩍 곯아서 병원 신세를 질 테니까.”

흥, 하고 코웃음을 치는 릴리스. 확실히, 에일레야나 뮤뮹뮤뭉도 미녀인 건 맞았지만 릴리스랑 비교하면 손색이 있는 건 사실이었다.

그렇다고 그걸 자기 입으로 말하는 릴리스의 뻔뻔함에 감탄이 다 나올 지경이긴 했지만. 그나저나 디스펜서가 생각보다 엄격한 기준으로 뽑힌다는 새로운 사실을 알게되자 기분이 묘했다. 하긴, 하루는 커녕 한시간만에 10연속으로 쥐어짜여버렸던 내가 그 증거긴 했다. 어지간한 정력가가 아니라면 하루도 못버티긴 할 것 같았다.

“아무튼, 네 말대로 그게 첫 번째긴 한데, 그다음으론... 네가 오늘 겪은 일로 관둬버리는 녀석들이 가장 많아.”

내가 오늘 겪은 일.

...그러니까, 뮤뮹뮤뭉에 대한 일.

“...알고 있었어요?”

“그야 네 첫 상대가 뮤뮹뮤뭉, 그 슬라임년이였으니까 대충은? 슬라임이 그렇게나 미친 듯이 정액을 탐낼 때는 대부분이 아이 때문이거든. 슬슬 때가 됐다 싶은 상황에서 네가 뮤뮹뮤뭉에게 끌려갔다는 걸 들었을 때 이렇게 될지도 모르겠다고 생각은 했지.”

딸깍, 하고 재차 맥주캔을 따는 릴리스를 보면서, 나 역시 릴리스에게 받았던 캔을 따고서 들이켰다.

차가웠다.

그래서, 조금은 진정이 되는 기분이 들었다.

그런 나를, 릴리스가 가만히 바라보다가 말했다.

“뭐, 걔네 종족이 그렇다는데 어쩌겠어? 그게 현실인 거지. 정말로 네 새끼인 것도 아니고. 그건 들었어?”

“대충은요.”

내 말에 릴리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설명하기 편하겠네. 슬라임은 원래 그런 종족이란 모양이라더라. 아이를 가지려고 다른 종족의 수컷을 유혹하고, 정기를 뽑아내는 종족. 그렇다고 그렇게 정기를 뽑힌 수컷과 태어난 아이가 관련이 있냐 하면, 그건 또 아니고.”

그렇게 말하며 과자 봉지를 더듬던 릴리스가, 혀를 차고는 손가락을 튕기는 것이 보였다. 그러자 새 과자가 그런 릴리스의 옆에 툭하고 떨어졌다.

그런 과자 봉지를 집어다가 뜯은 릴리스가 말을 이었다.

“이렇게 까봐도 수컷 쪽이랑은 전혀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남이거든. 포장지랑 전혀 다른 과자가 들어있단 말이야. 하지만 착각할 수도 있지. 그래, 당연한 거야. 과자 봉지를 뜯으면 그 안에 과자가 있는 게 당연하듯이. 남자가 여자 보지에 질싸를 했는데 아이가 생기면 그게 제 자식인 것이 당연한 거니까. 대부분의 종족은 그러니까. 근데, 지들만 아니라잖아? 진짜로 아니기도 하고. 처음에 그런 말을 들었을 땐 정말 어이가 없었지. 하지만, 그렇다는데 뭘 어째? 별수 없다 이거야.”

푸하, 하고 재차 맥주를 들이켠 릴리스가 말했다.

“근데, 좆같은 게 하피라든가 인어는 그런 슬라임이랑은 또 다르거든. 걔넨 또 애비랑 똑닮은 애들이 태어난단 말이지. 결국은 애미랑 똑같은, 혼혈이나 뭣도 아닌 하피랑 인어로만 태어나는, 실상은 슬라임이나 다를 바 없으면서도 재수 없게 닮게 태어난단 말이야.”

그렇게 말하며 과자를 집던 릴리스가 문득 나를 쳐다보더니, 이내 손가락을 까딱였다.

“왜요?”

그런 릴리스에게 다가가자, 릴리스가 말했다.

“안주도 처먹으라고.”

다짜고짜 그렇게 내 입에 과자를 쑤셔 넣는 릴리스를 황당하다는 듯이 쳐다봤지만 그런 내 시선에도아랑곳하지 않고서 릴리스가 말했다.

“아무튼, 그래서 그런지 가끔 생겨버려. 태어난 아이를, 제 자식이랍시고 정을 줘버리는 경우가. 그야 아이가 지랑 똑같이 생겼고 지가 아이 애미랑 질펀하게 떡을 쳤으니 당연히 그렇게 생각할 만은 하지. 하지만 말이야. 종족이 아예 달라서 그런지 태생이 그런 년들이라 그런지 감성이 아예 다르단 말이야.”

그래서 괴리가 생겨버린다고, 릴리스는 말했다.

“어머니와 자식은 있을지언정, 아버지란 개념이 없는 종족들. 그런 종족에게 있어서 난데없이 찾아와서 아이에게 내가 네 아버지다, 그렇게 말한 디스펜서가 있었어. 걔가 어떻게 됐을 것 같아?”

잠깐 생각해봤다.

답은 금방 나왔다.

“...별로 좋은 꼴은 못 봤을 것 같은데요?”

“맞아. 그쪽 입장에선 돈 주고서 산, 그냥 씨를 제공했을 뿐인 수컷이 난데없이 자기 자식한테 다가와서 제 자식에게 권리를 주장하는 셈인 거지. 아버지란 것이 없어서 그런 건지, 그런 종족들은 대부분이 끔찍하게 모성애가 강하거든. 그런데, 자기 자식한테 생판 남이나 다를 바 없는 녀석이 다가간다?”

그래서 일이 터졌다. 그저 제 아이를 안아보기 위해 찾아갔던 디스펜서는, 아이의 어미였던 하피에게 공격을 당했다.

어제도, 오늘도, 어쩌면 내일도 있을.

흔하디흔한 사건 사고의 한 장면에 불과한 그런 이야기를 릴리스는 내게 들려줬다.

“몰랐겠지. 모르는 게 당연해. 알려준 적이 없으니까 모르는 거야. 알려고 하지 않았으니까 모르는 거야. 그게 싫어서, 어떻게든 말이 통하게 되면 바뀔까 했지만, 말이 통하게 됐어도 그런데도 안 되는 건 안 되더라. 어쩔 수 없는 건 어쩔 수가 없었어. ”

문화가 다르다.

역사가 다르다.

무엇보다도, 종족이 다르다.

그 괴리로 인해 생기는 일들을.

“결국, 전부 우리 잘못이긴 해. 그래도 나름 잘해보겠다고 열심히 하긴 했는데, 그래 봤자 조잡했겠지. 하긴, 그럴 수밖에 없는 구조긴 했어. 대가리라고 있던 녀석들, 스물둘의 영웅이라고 불리는 새끼들은 하나같이 힘만 센 병신들이었거든. 정치라곤 몰라, 저마다 종족도 달라. 우리가 스물둘의 영웅이랍시고 불리게 된 계기도, 혼란스러운 건 알겠는데, 그렇다고 다 같이 죽자고 전쟁이니 뭐니 지랄해재끼는 꼴이 보기 싫어서 나선 것들이 어쩌다가 마주쳐서, 그대로 힘을 합치게 된 것이었으니까. 그래도 힘은 있었지. 힘만큼은 강했지. 그래서, 어떻게든 되더라? 그래서 어떻게든 했는데. 그래도 잘 안된 거지.”

다들 힘만 센 멍청이들뿐이었으니까.

까딱까딱, 다리를 흔들며 릴리스가 말했다.

“화합, 평등, 아 정말이지 좋은 말이지. 좆같이 좋은 말이야. 평등할 리가 없는 걸 평등하다고 말하고, 섞일 리가 없는 걸 섞이라고 말하고. 저마다 다른 종족들이, 저마다 다르다고 하는 것을 서로 어떻게든 이해하라고 말하면서. 그게 말이 되냐고 말하는 것들은, 살짝 주물러주기까지 하면서 말이야. 하지만 그때는 그렇게 하면 될 줄 알았어. 힘만 넘쳐나는 바보들은, 그렇게만 하면 다들 행복하게 잘 지내게 됐답니다, 그렇게 될 줄 알았지. 멍청하게도.”

“...취하셨어요?”

“내가? 아니? 그럴 리가 없잖아?”

여전히 다리를 흔들며 피식하고 웃는 릴리스를 바라봤다.

아무리 봐도 취한 거 같은데.

“...아무튼, 그러니까 내 말은.”

머리를 긁적이며, 릴리스가 말했다.

“그런 거니까, 걔네 사정을 네가 신경써봤자 손해란 소리야. 뭐, 네 사정이야 아니까 왜 그러는지야 대충 이해는 되지만. 그래도, 아닌 건 아닌 거야.”

내 사정을 알고 있다는 릴리스의 말에 쓴웃음을 지었다. 그야 당연한 일이긴 했다. 네가 건넸던 서류엔 이것저것이 섞여 있었으니.

더군다나 내가 고아라는 걸 몰랐더라면 뜬금없이 자신의 아이가 되지 않겠냐는 말도 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그래서 이거 이야기해주려고 온 거예요? 저 위로해주려고?”

“아니, 그건 아닌데?”

뎃...?

위로해주려고 온 거 아니었어?

그런 생각을 하며 릴리스를 바라봤더니 내 시선에 릴리스가 키득거렸다. 맥주를 마셔서 그런 걸까, 발갛게 상기된 릴리스의 두 뺨 때문인지, 그런 릴리스가 무척이나 귀엽게만 보였다.

실상은 몇 살이나 먹었는지도 모르는, 음마의 여제라고 불리는 주제에 자기가 처녀라고 주장하는 정신이 나간 년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냥 귀엽게만 보였다.

“내가 온 이유가 뭐일 거 같아?”

장난기 많은, 릴리스의 외모와 마찬가지의, 그 또래의 여자와 같은 미소를 지으며 묻는 릴리스였으니까. 일단 외모만 보면 그러니까, 귀엽게 보일만도 한 것 같았다.

그런 릴리스를 보다가, 그녀의 물음에 잠깐 생각했다.

위로해주려고 온 게 아니라면... 그러면 대체 뭣 하러 이 좁아터진 곳에 와서 이러고 있는 걸까? 남의 침대 위에서 과자 부스러기나 잔뜩 흘리고. 지가 치우고 가긴 하는 걸까?

아무튼, 전혀 모르겠다.

그래서 말했다.

“...모르겠는데요?”

“정말로?”

스윽, 하고 내게 얼굴을 들이밀은 릴리스가 말했다.

“정말로, 정말로 모르겠어?”

“......”

갑자기 훅 들어온 릴리스를 얼떨떨하게 쳐다보고 있자니, 그런 나를 보며 릴리스가 낄낄거렸다.

“아무래도 취한 건 내가 아니라 너 같은걸. 너 지금 얼굴 장난 아니게 빨갛거든.”

“...됐으니까, 여기 온 이유나 빨리 말해봐요.”

내 말에 릴리스가 어깨를 으쓱였다.

“그야, 너 뮤뮹뮤뭉이랑 어쨌거나 잔뜩 떡쳤을 거 아냐? 그럼, 그만큼 빨아들인 게 있겠지. 그거 확인하러 온 거야.”

그러니까, 그 말은.

레벨 드레인, 좆태창이라고 부르라고 했던 그거 때문에 온거라고?

고작 그거 때문에?

“...뭐, 겸사겸사 네가 어떤지 보러 온 거긴 한데.”

그렇게 말하는 릴리스가 고개를 돌리고선 맥주를 들이켰다. 그런 릴리스의 귀 끝이 살짝 새빨갛게 변해있는 것이 보였다.

나 이거 알아.

이게 그 츤데레인지 뭔지 하는 그거 맞지?

역시 날 위로해주러 왔던 게 맞나 보다.

나도 모르게 그런 릴리스를 보며 웃음이 새어 나왔다. 어쩐지 가슴 한구석이 간질간질해서, 그래서 웃음이 나왔다.

“뭐야? 왜 웃어?”

“아니, 아무것도. 아무것도 아니에요.”

아무것도 아니다.

그저,

“어머니의 아들 하기로 한 거 잘한 거 같아서요. 돈도 많고, 상냥하기까지 하니 최고잖아요.”

“...뭐래?”

그런 내 말에 무안하다는 듯이 날 째릿하고 노려보며 다리를 흔드는 릴리스를 보면서 피식 웃은 내가 말했다.

“응애, 나 아기 강 한조. 릴리스 마망. 찌찌 줘.”

“뒤질래?”

진짜로 살기를 흘려대서 그만두기로 했다.

그렇게 몇 캔이나 됐을까, 릴리스가 가져온 걸로 보이는 맥주캔을 비우다가 문득 떠오른게 있어서 입을 열었다.

“...그런데 어머니. 묻고 싶은 게 있는데요.”

“뭔데? 또 이상한 소리 하면 진짜로 가만 안 둔다? 마망? 그거 진짜 소름 돋았거든?”

릴리스의 말에 잠깐 고민했다. 이게 과연 이상한 소리일까? 하지만 딱히 별 문제는 없을 것 같았다. 그래서 말했다.

“어머니, 춘추가 몇이나 되세요?”

생긴 것만 봐서는 20대 초반. 아니, 그보다 더 어려 보이지만아마 절대로 20대는 아닐 거다.그렇다고 하기엔 여러모로 연륜도 느껴지는 릴리스였다.

하지만 외형만큼은 20대에, 연륜이 느껴지는 말은 둘째치고 행동은 마냥 얄미운 애새끼 같아서 도대체 몇 살이나 먹은 것인지 도통 알 수 없었다. 적어도 나를 아들로 삼겠다고 한 걸 보면, 나보다는 나이가 많겠지만. 그래도 릴리스의 나이를 아무리 추측해봐도 알 수 없다는 건 사실이라서 궁금했다.

솔직히 아들이면 어머니 나이 정도는 알고 있어야 하지 않나 싶기도 하고.

“...그래, 진짜로 죽고 싶다 그거지?”

“뎃...?”

다시 한번 릴리스가 손가락을 튕기는 것이 보였다.

이번에는 과자 봉지가 덩그러니 떨어지는 게 아니라, 언뜻 봐도 족히 수십 캔은 넘어 보이는 맥주들이 등판했다.

“뒤지기 싫으면 그거 다 마셔라? 그럼 봐줄 테니까.”

웃으면서, 그렇게 말하는 릴리스의 말은 이제까지 중에서도 가장 무서웠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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