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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족 전용 남창이 되었다-19화 (19/523)

〈 19화 〉 천호 (4)

* * *

“아니, 그게.”

알고 있다니까요.

그렇게 말하고 싶은데, 어째 그렇게 말할 분위기가 아니었다. 그도 그럴 것이 허명이 많아 부끄럽다고 해놓고서 저렇게까지 자신을 소개한 호아란에게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 있을까.

그런 나를 호아란은 결정하기를 망설인다고 생각했는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음, 확실히 인생을 좌지우지할 수 있는 일이니 네가 섣불리 걱정할 수 없는 것은 안다. 허나, 아이야. 본녀가 조언하마, 기회가 왔을 때 그 기회를 붙잡는 것은 무척이나 중요함을 명심하거라.”

딱히 그것 때문에 이런건 아니었지만, 호아란의 말이 틀린 것도 아니었다.

확실히 그 말대로긴 했다.

기회가 왔을 때 잡는 거야 당연히 중요하지.

근데 난 불과 어제 릴리스를 새어머니로 들인 상황이었다. 그야 아직 서류를 제출하지도 않았고 어디까지나 구두로 된 약속이었지만, 아무튼 그렇다는 거다. 근데 여기서 내가 또 호아란의 제자로 들어간다고?

거기에 호아란을 어미로 여겨도 좋다고?

릴리스도 마망이고, 호아란도 마망이라니.

마망이 복사가 된다니.

두렵기 그지없는 일이 아닐 수가 없었다.

“그보다, 일단 이곳은 너무 어수선하니 다른 곳으로 장소를 옮기는 것은 어떻겠느냐?”

“아.”

그 말대로, 주변은 갑작스런 호아란의 등장과 그 호아란이 사티로스 년을 때려눕혔던 것에 이어서, 하물며 호아란이 날 제자로 삼겠느니 어미로 여겨도 좋다느니하는 이야기에 웅성이고 있는 것이 보였다.

이대로라면 좋지 않다.

나야 아무래도 좋지만, 호아란에게 썩 좋은 일은 아닐 것이 분명했다.

아무튼 내 은인이기도 한데, 나는 은인에게 엿을 먹이는 취미는 없었다.

“네, 일단 그렇게 해요.”

“음, 그럼 본녀의 손을 잡거라.”

그렇게 말하며 내게 손을 내미는 호아란. 가느다랗고 흰 손가락을 보며, 정말 이걸 잡아도 되나 하고 살짝 주저했다가 이미 몸을 일으킬 때 잡았단 사실을 떠올리고 호아란의 손을 붙잡았다.

“손이 참 크구나.”

“네? 아, 네... 뭐...”

그야 덩치가 있으니 손도 당연히 크긴 했다. 아무런 능력도 없는 좆간인 나머지 나보다 훨씬 작은 년한테도 줘터지지만.

그런 내 손을 만지작거리며 호아란이 말했다.

“손이 크다는 것은 좋은 일이다. 예로부터 손이 크다함은 복을 거머쥐는 것에 능하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하였으니. 손이 크다는 것은 덩치가 크다는 것이며 그만큼 일을 많이 할 수 있다는 의미에서 그러한 말이 생긴 것이지만, 주술적으로도 손이 큰 것이 유리한 법이니 좋은 일이로구나.”

쫑긋쫑긋, 머리 위의 여우 귀가 움직이는 것이 보였다.

말을 하는 것을 좋아하시는구나. 이런 걸 뭐라고 부르더라? 그런 생각을 하면서 호아란을 보고 있자니 말을 잇던 호아란이 나를 보고는 아, 하고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선 멋쩍은 미소와 함께 입을 열었다.

“미, 미안하구나. 본녀가 너무 딴소리를 하였구나...”

“아뇨, 그건 괜찮은데...”

나는 흘끔, 축 늘어진 여우 귀를 보고서 말했다.

“그런 건 나중에라도 좋으니 일단 어서 옮기는 게 좋을 것 같은데요?”

“그, 그렇지...! 조금 어지러울 수도 있으니 주의... 응?”

내 손을 잡고서는 말을 잇던 호아란이 코를 킁킁, 울리더니 말했다.

“그나저나, 아이야. 네게서 익숙한 향기가 나는구나.”

“네?”

향기라니.

냄새라면 몰라도 내 몸에서 향기라고 부를만한 게 날 리가 없는데.

그렇게 생각했을 때, 호아란이 내게 얼굴을 가까이했다.

“이상하구나, 어째서...?”

요리조리, 내 얼굴을 보며 살피던 호아란이 그렇게 중얼거리며 고개를 갸우뚱하는 것이 보였다.

그러고선 깜빡깜빡, 내 얼굴을 뚫어져라 바라보는 호아란 덕분에 부담감이 장난이 아니었다.

그야 호아란의 얼굴을 마주보기엔 지나치게 아름다워서 차마 보기 힘들었고, 그렇다고 시선을 돌리면 예의가 아니었다.

그래서 차라리 시선을 조금 밑으로 내리면, 호아란의 커다란 가슴이 떡하니 있었다. 릴리스처럼 옷의 노출도가 엄청난 건 아니었지만, 그래도 윗가슴이 전부 드러나고 있어서 눈을 둘 곳이 없었다.

즉, 나로서는 이도 저도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설상가상으로 내게 다가온 호아란에게서 무척이나 좋은 향기가 났다.

사티로스 그 썅년처럼 뇌수에 직접 미약을 들이 붓는듯한 몽롱한 향기가 아니었다.

내 얼굴을 감쌌던 꼬리털과 같은, 포근하면서도 따듯한... 햇살과도 같은 향기가 호아란에게서 났다.

모든 것을 평등하게 내리비추는 햇살과도 같은 향기가.

사람에게서 대체 어떻게 이런 향기가 날 수 있는 걸까? 무심코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때, 호아란이 고개를 모로 꺾더니 말했다.

“이상하구나, 정말로 이상한 일이로다. 희미하지만, 분명히 그 녀석의 향기가 나는구나.”

그러고선, 그 자리에서 주저앉았다.

“분명 이쯤에서...”

그렇게 말하던 호아란이 차마 말을 잇지 못하는 것이 보였다.

그런 호아란의 시선이 사티로스 년 때의 일 때문인지 아니면 죽을 뻔한 것의 생존본능 때문인지 아직까지도 바지 밑으로 풀발기중인 자지로 향해있는 것이 보였다.

“어, 음...”

쭈뼛쭈뼛하고, 순식간에 치솟은 호아란의 꼬리들과 얼굴을 붉히는 호아란을 보고서 나는 양손으로 얼굴을 덮었다.

씨발.

갑자기 그냥 그때 불타 뒈질 걸 그랬다는 생각이 몰려들었다.

그런 내게 호아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 미안하구나. 정말로 미안하구나... 하지만 걱정 말거라, 이, 이게 네 의지가 아니란 걸 알고 있으니. 사티로스의 향은 사람을 홀리는 주술이 깃들어있음을 본녀도 알고 있음이다. 그러니 네가 부끄러워할 일이 아니라, 그... 오, 오히려 자랑해도 될 만큼 커다란 하물이구나...!”

호아란도 당황했는지 횡설수설하고 말을 이었지만, 하나하나가 내 심장을 쑤셔대는 듯한 말들이었다.

“언뜻 보기에도 족히 한 자(?)는 되는 크기이니 실로 인간의 아이 중에서는 대물이라 할 수 있는...”

“그만... 그만해주세요...”

당황한 것은 이해하지만 그 이상으로 딜을 넣지 말아줬으면 좋겠다.

솔직히 릴리스가 내 자지를 보고서 존나 크니 왕자지니하면서 낄낄거리는 거야 아무렇지도 않았다.

근데 호아란처럼 딱 봐도 뭐라고 해야 할까, 이런 쪽으로는 무척이나 까마득해 보이는 사람이 얼굴을 붉혀가며 그렇게 말하면, 부끄러움도 부끄러움이지만 죄책감이 장난이 아니었다.

“아, 그, 그게... 음... 저, 정말로 미안하구나... 본녀의 본의가 아니었음을 알아주거라...”

쭈욱, 하고 마른 세수를 하고서 손을 내린 나는 잔뜩 풀이 죽은 듯이 늘어진 호아란의 여우 귀를 보며 말했다.

“...일단 얼굴 좀 떼주세요.”

“아...”

내 말에 자리에서 일어난 호아란의 얼굴은 여전히 붉어서,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그런 내 한숨 소리에 쭈뼛거리는 호아란을 보면서 입을 열었다.

“아무튼... 향기가 나니 뭐니, 그게 무슨 소리입니까?”

“그, 그것 말이더냐? 그, 음... 이상하게도 네게서 본녀가 아는 자의 향기가 나더구나...?”

호아란이 아는 자의 향기라고?

...아.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이었는데, 미처 깜빡하고 있었다. 호아란도 릴리스와 마찬가지인 스물둘의 영웅이고, 당장 호아란만해도 친우를 찾아 이곳에 왔다고 말하지 않았던가.

호아란이 릴리스를 찾아온 것일 가능성도 있다는 소리였다.

그리고, 그런 내 예상대로 나를 보면서 호아란이 큼, 헛기침하더니 말했다.

“아이야. 어째서 네게서 릴리스, 그 녀석의 향기가 나는 것인지 알려줄 수 있겠느냐?”

“...그건 여기서 하긴 좀 그러니까 자리부터 빨리 옮겨주세요.”

“이런. 깜빡했구나. 자, 다시 손을 내보거라.”

그렇게 말하며 다시금 내게 손을 내미는 호아란. 이번에는 망설이지 않고 냉큼 그런 호아란의 손을 잡았다.

조금 전, 호아란이 내 앞에서 쪼그려 앉았던 이후부터 웅성웅성하는 소리가 엄청나게 커져서, 빨리 여기서 벗어나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럼...”

그리고서 호아란이 입술을 열며 뭐라고 중얼거리는 것이 보였다.

저게 주문이라는 걸까.

내가 살아가던 차원에서는 볼 수도 없었던 초상 능력 중의 하나. 마법과 비슷하면서도 다른 능력이라는 소리를 어디서 듣긴 했는데.

호아란의 제자가 된다면, 나도 저런 걸 쓸 수 있는건가?

그 망할 사티로스 년을 순식간에 뻗게만들 정도의 힘을 나도 가질 수 있게 되는 건가?

“자, 되었구나.”

“네?”

뭔가 중얼거리듯이 말하는 것을 지켜보고 있었는데 그렇게 말하는 호아란을 보며 의아해하고 있자니 나를 보며 쿡쿡, 웃어 보이던 호아란이 말했다.

“주위를 보거라.”

그 말대로 주변을 둘러보자, 숲이 보였다.

“...뎃?”

조금 전까지만 해도, 조금 외진 곳이긴 했지만 그래도 도심의 한복판이었는데 그런건 온데간데도 없이 온통 나무로만 가득한 숲이었다.

눈을 비비고 다시 한 번 주변을 둘러봤지만 변하지 않았다. 나무가 무성한 숲. 그렇게밖에는 보이지 않았다.

“여긴...”

“여우의 숲이라고 이름을 붙인 곳이니라. 본녀가 평소에 지내는 곳이지.”

어떠하느냐, 하고 어깨를 으쓱이며 나를 보는 호아란. 그 덕에 커다란 가슴이 출렁거린 것을 본인은 알고 있을까 모르겠다.

“...좋네.”

“음? 뭐라 했느냐?”

“좋다고요. 음, 몸이 건강해질 것 같은 기분이 드는 장소인 건 확실해요.”

숨을 쉬기만 해도, 몸 안에 치톤 뭐시기하는 것이 가득 쌓일 것만 같았다. 그런 내 말에 기분이 좋다는 듯 여우 귀를 쫑긋거리던 호아란이 자랑스런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그 말대로이니라. 이곳만큼 기가 충만한 곳은 따로 없으니. 숨을 쉬는 것만으로도 몸에 기가 쌓이기에 이곳만큼이나 축기를 비롯하여, 술법을 익히기에 좋은 곳은 드물 것이니라.”

“술법을 익히기에도 좋다고요?”

그 말은 여기서 내가 그, 술법이란 걸 배우면 나도 호아란처럼 뿅하고 어디든 가는 술법인지 뭐시기를 쓸 수 있게 된다는 소리인가?

뭔가 엄청 혹하려고 하는데, 그런 내게 호아란이 말했다.

“제아무리 범재라도 이곳에서 수양을 쌓으면 150년 안으로 반선의 경지에 이를 수 있으니 말해 뭐할까.”

150년...?

“...그렇군요.”

순식간에 사그라들어버린 술법의 꿈. 뭔가 줬던 사탕을 도로 뺏긴 기분이라서 엄청나게 억울했다.

덕분에 어릴 적에 고아원에서 봉사하러온 아저씨나 누나들에게 받았던 선물 따위를, 도로 되팔겠다며 수거해갔던 고아원장이 떠올랐다.

“아이야, 왜 그러느냐? 갑자기 표정이 좋지 않아졌구나...?”

“아뇨, 아무것도 아니에요.”

존나 아무것도 없는 좆간 탈출은 이룰 수 없는 일이었나보다.

뭐 어차피 큰 기대를 하지 않았던 만큼 충격도 적었다.

“그러하느냐...? 크흠. 그, 그럼...”

주변에 있는 거라곤, 온통 나무뿐인데도. 정작 이곳으로 오게한 호아란이 주변을 둘러보더니 나를 바라봤다.

“여, 여기라면 주위의 듣는 귀도 없으니, 어디 한번 말해 보아라. 어찌하여 네게서 릴리스, 그 녀석의 향기가 나는지. 거, 거기에...”

우물쭈물, 호아란이 얼굴을 붉히더니 이내 푹 고개를 숙였다.

“그, 향기가 나는 곳이. 어찌하여, 그곳인지... 말해 보아라, 아이야.”

푹, 숙인 호아란의 눈동자가 흘끔하고 내 거기로 향하는 것이 보였다.

아.

음.

뭔가 단단히 오해한 거 같은데.

그 녀석이 남자를 만들었다는 소리는 듣지 못했거늘, 그런 식으로 중얼거리고 있는 호아란을 보면 확실히 나랑 릴리스의 사이를 오해하고 있는 것이 맞았다.

이걸 어쩐다...

나는 머리를 긁적였다.

그리고, 아무리 생각해도 내게서 릴리스의 향기가 나는 이유로밖에는 생각할 수 없는, 내 주머니 속에 잠들어있는 릴리스의 팬티를 떠올렸다.

진짜 이걸 어쩌지.

이대로라면 내가 릴리스의 남자, 뭐 그런 식으로 오해할 판인데 딱히 그런 건 아니니.

그렇다고 릴리스의 팬티 때문이라고 말하면, 호아란에게 변태 새끼로 찍힐 것이 분명했다.

릴리스와 한 계약대로라면, 언젠가는 그렇게 될 수도 있는 일이니 아주 틀린 말도 아니고, 내가 변태 새끼인 것도 딱히 오해라고 할 일도 아니긴 한데.

그렇다고 어느 쪽도 당당하게 말할 거리도 아닌 것은 사실이었다.

내가 릴리스의 양아들이 된 것은, 어디까지나 나와 릴리스만의 비밀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런 계약을 하긴 했지만. 막말로 내가 진짜로 릴리스의 뒤를 잇는다고 치자.

그럼, 말이 많을 것이 당연한 일이었으니까.

권력의 세습이니 뭐니 졸라 말이 많을 게 분명했다.

눈 가리고 아웅이나 마찬가지지만, 덕분에 나는 내가 릴리스의 자리를 잇고 나서야, 그 뒤에 정식으로 릴리스의 호적에 들어갈 예정이었다.

후계자라는 의미로, 그런 식으로 한다나.

이 경우도 말이야 있겠지만, 처음부터 릴리스가 내 아들이니 뭐니하면서 후원했다는 사실이 밝혀지는 것보단 나으니까.

그렇다고 릴리스의 팬티가 내 주머니에 있는 것을 설명하자면... 이건 내가 돚거질했다는 사실을 밝히는 셈이나 마찬가지였다.

하물며 릴리스와 친분이 있는 호아란에게 알려버리면, 당연하게도 릴리스의 귀에도 들어갈 것이 분명했다.

전자는 릴리스가 곤란해질 일이고 후자는 내 생명이 곤란해지는 일이었다.

...그러므로, 내 선택은 이거였다.

나는 솔직하게 내가 릴리스의 양아들이란 사실을 호아란에게 말하기로 했다.

어차피 릴리스랑도 친해 보이고, 호아란에게 알려준다고 그걸 어디다가 소문낼 것 같지도 않았으니.

“사실 릴리스가 제...”

“음?!”

호아란에게 사실을 밝히려던 찰나, 퍼뜩 고개를 쳐든 호아란이 꼬리로 나를 감쌌다.

“감히...! 본녀의 허락도 없이 이곳으로 들어오려 하느냐!”

그리고 으르렁거리면서 허공에다가 수많은 부적을 흩뿌렸다. 호아란의 소매에서 쏟아지는 부적들이 허공에 붙듯이 멈춰서더니 이내 빛무리가 되어 사방으로 뻗어나갔다.

이윽고, 그 빛들이 서로 이어지면서 어떤 한 곳을 가두듯이 둘러싸는 것이 보였다.

뭔데.

무슨 일인데?

그리고 그 과정을, 폭신폭신한 꼬리에 감싸인채 지켜본 내가 어리둥절하고 있을 때.

쩌적, 하고 빛무리들로 가둬진 허공이 갈라지는 것이 보였다.

처음으로 갈라진 공간으로 넘어온 것은 길게 자라난 손톱이었다.

까드득, 까드득하고 좌우로 붙잡은 공간을, 빛무리로 견고하게 이어진 공간을 찢어발기듯이 그 손톱 주위로 공간에 금이 가는 것이 보였다.

“하, 무례한 침입자 주제에 제법이로구나, 그럼 이건 어떠... 응?”

쫑긋, 하고 호아란의 귀가 갸우뚱하고 꺾이는 것이 내 눈에 보였다.

그사이에 넓어진 공간 사이로. 다리가 넘어왔다.

쭉 뻗은 새하얀 다리가.

콱, 하고 땅을 밟는 순간에 파파팡, 하고 부적들이 터져나가는 것이 보였다.

“하, 결계 좀 치는 걸. 좋아, 이래야지. 이 정도는 돼야지 내걸 빼앗아 들려고 하지.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고작 하루만인데, 잊을 수가 없게 되어버린 목소리.

죽기 직전에도 떠올랐던 릴리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콰득, 이윽고 완전히 무너져버린 공간을 넘어온 릴리스가 말했다.

“근데 겨우 이 정도로 나한테 까불어? 어떤 썅년인지는 몰라도 씨발, 몸을 반으로 접어서 보지에 대가리를 박아주...”

분노로 잔뜩 일그러뜨린 얼굴로, 릴리스가 고개를 들었다가 나와 호아란과 시선이 마주쳤다.

“......”

호아란의 꼬리에 둘러싸인 나와 그런 나를 보호하듯이 앞에 서있다가, 왜 네가 거기서 나오느냐는 듯한 얼굴로 자신을 쳐다보는 호아란을 본 릴리스의 얼굴이 다른 의미로 와락 일그러지는 것이 보였다.

호아란과 나, 우리 둘을 번갈아 쳐다보던 릴리스의 시선이 나에게 향했다.

스윽, 나를 훑어보던 릴리스의 표정에 안도의 감정이 비쳐 보였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이 씨발놈아, 너 거기서 뭐하냐?”

이유는 모르겠는데 대뜸 내게 화를 내기 시작하는 릴리스를 보고서 호아란의 꼬리를 꼭 움켜쥐었다.

“앗, 잠깐... 아이야, 거긴 예민하니 그렇게 쥐지 말거라... 그, 정 만지고 싶으면 살살...”

“아, 죄송합니다. 몰랐어요.”

호아란은 꼬리가 예민하다, 머릿속에 메모해두자. 아무튼호아란의 말대로 살살 꼬리를 쥐고서 릴리스를 쳐다봤다.

“...진짜, 뭐하는 건데?”

그런 나를 차마 뭐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얼굴로 쳐다보는 릴리스.

갑자기 화를 내는가 싶더니, 맥이 빠진 듯한 릴리스를 보고서 안도하며 호아란에게 사실을 밝히려고 했을 때였다.

척, 하고 호아란이 앞으로 나오며 말했다.

“릴리스, 오랜만의 해후구나. 하지만초대하지도 않았거늘 본녀의 영역에 침범한 것은 물론이거니와, 내 제자이자 아이가 될 아이를 겁먹게 하는 것은 두고 볼 수 없구나.”

“...제자? 아이? 뭐, 이 씨발?”

좆됐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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