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1화 〉 소제목은 내일의 내가 생각해주겠지 (1)
* * *
내가 릴리스의 응당한 징계에 머리통을 부여잡고 있는 동안에 릴리스와 호아란은 이런저런 이야기를 한 모양이었다.
호아란의 말대로 둘이 친우 사이기는 한 모양인지 내 눈에 방금까지 싸웠던 것이 무색하게도 사이좋게 이야기를 나누는 둘이 보였다.
하지만 난 대가리가 쪼개질 것 같아서 둘이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제대로 들을 수가 없었다.
분명 릴리스는 가볍게 손날로 내 정수리를 찍었을 뿐인데, 빠각하는 소리와 함께 엄청나게 아팠으니까. 너무 아파서 도저히 주변에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다만, 얼마 안있어서 릴리스가 다시 짜증을 내는 것만은 볼 수 있었다.
이윽고 벌떡 몸을 일으킨 릴리스가 내 손을 잡으며 말했다.
“진짜 말이 안 통하네. 야, 돌아갈 거니까 그런 줄 알아.”
짜증을 팍팍 내며 그렇게 말하는 릴리스를 보며, 나는 정수리를 문지르며 입을 열었다.
“또 뭔데 그래요?”
“저 미친년이... 아, 넌 몰라도 돼 이 팬티 도둑 새끼야.”
“거 바닥에 널브러진 거 좀 주웠다고 너무합니다, 어머니.”
“주운 게 아니라 훔친 거지 이 씹새야.”
치사하게 팩트로 반격하다니, 할 말이 없어지잖아.
“아무튼 우린 이만 가볼 거니까 또 이상한 헛소리할 거면 차라리 오지 마.”
뭔가 둘이서 이야기하던 중에 단단히 수틀리는 게 있었는지 호아란에게 그렇게 딱 잘라서 말하는 릴리스.
대체 무슨 일이길래 저러나 싶었는데.
그런 릴리스를 보며 호아란이 말했다.
“헛소리라니 말이 너무 심하구나, 릴리스. 그리고 이런 건 네 독단으로 결정할 일도 아니지 않느냐?”
그렇게 말하며 호아란이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렸다. 저 꼬리가 가진 마성의 감촉을 알고 있는 터라 홀린 듯이 흔들리는 호아란의 꼬리를 보고 있자니 그런 내 시선에 쿡쿡, 웃으면서 호아란이 말했다.
“듣자 하니 저 아이는 아직 네 호적에 들인 것도 아니지 않더냐? 더군다나 사실상 자식보다는 후계자에 가까운 형상이니, 본녀가 못 할 말을 한 것도 아니지 않느냐?”
“그게 씨발 말이 되는 소리라고 생각하는 네 머리를 한 번 쪼개서 보고 싶어지니까 좀 닥쳐줄래?”
아니, 그래서 대체 뭔 이야기인데? 멀뚱하니 릴리스와 호아란을 보고 있자니 그런 나와 시선이 마주친 호아란이 말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저 아이의 의사겠지. 아이야, 어떠하느냐? 너만 원한다면 이전에 말했던 대로 너를 본녀의 제자로 삼고 싶구나.”
물론, 하고 호아란이 미소를 지은 채로 말했다.
“본녀를 어미로 여겨도 좋다고 말한 것도 여전히 유효하니라.”
“네?”
대체 왜?
대체 내 어디가 호아란에게 그렇게 마음에 들었는지 알 수가 없었다. 호아란이 내게 저렇게까지 하는 이유가 뭐지?
역시 내 출신에 뭔가 비밀이 있는 걸까?
내가 사실 정말로 어떤 차원의 우주를 지배하고 있던 자의 후계자 비스무리한 존재였던 걸까? 그런데 모종의 이유로 이런 곳에 떨어져 버렸다던가?
정말로 그런 거라면 얼굴도 모르는 애미애비에 대한 호감도가 조금은 오를 것 같기도 했다.
그렇게 내가 망상이나 다름없는 것을 생각하고 있을 때, 호아란이 나를 보며 살짝 고개를 숙였다.
언뜻 붉어진 호아란의 두 뺨이 그런 내게 보였다.
“거, 거기에... 본녀의 아이가 된다면... 원한다면 언제든 내 꼬리를 만져도 좋으니라.”
“네? 그게 진...”
내가 뭐라 말을 다 끝맺기도 전에 릴리스가 손가락을 튕기는 것이 보였다.
그러자 순식간에 눈앞에 있던 눈앞에서 꼬리를 어루만지며 얼굴을 붉히고 있던 호아란이 사라지고 처음 릴리스와 마주했던 곳.
빌딩의 꼭대기에 있는 릴리스의 사무실이 보였다.
“후...”
털썩, 소파에 드러눕듯이 앉은 릴리스가 한숨을 내쉬는 것이 보였다.
나 역시 그런 릴리스의 눈치를 보며 맞은편의 소파에 조심스레 앉았다.
아무리 봐도 릴리스의 기분이 영 안 좋아 보였다.
더군다나 마지막에 내가 호아란의 말에 혹했던 것 때문에 더더욱 그렇게만 보였다.
이제까지의 릴리스라면 분명 그거 때문에 상당히 빈정이 상했을 것 같았으니까.
이걸 어쩐다...
그러다 문득 든 생각이 있었다.
“근데...”
“그렇게 꼬리가 좋냐?”
내 말을 자르며, 릴리스가 대뜸 그렇게 말했다.
“뎃...?”
“그렇게 꼬리가 좋았냐고, 이 씹새야.”
나를 보며 그렇게 말하는 릴리스.
뭐라고 말해야 할지 알 수 없어서 눈깔만 빙글빙글 돌리고 있는데, 그런 나를 보며 릴리스가 입술을 깨물었다.
“나, 나도 꼬리 정도는 있거든...?”
그런 말을 하는 릴리스의 엉덩이 뒤로 가느다란 꼬리가 빼꼼하게 튀어나오는 것이 보였다.
끝이 살짝 화살, 아니 하트모양의 꼬리가.
“그, 그렇게 꼬리가 좋으면... 내 꼬리, 만져도 좋으니까.”
그렇게 말하고서 내게서 시선을 피하는 릴리스를 보고서, 그리고 정말로 만져보라는 듯이 내 눈앞에서 흔들리는 꼬리를 보고서 무심코 생각하고 있던 것을 말해버렸다.
“아니, 그건 좀...”
그야 꼬리는 맞았다.
근데 아무리 봐도 매끈하게 잘 빠진 꼬리였지, 호아란의 그것처럼 폭신폭신해보이는 꼬리랑은 거리가 멀었다.
어디까지나 호아란의 꼬리가 엄청났던 거지 내가 딱히 꼬리 성애자인 것도 아니고, 굳이 릴리스의 꼬리를 만지고 싶은 생각은 들지 않았으니까.
하지만 그렇게 무심코 내뱉고서야 아차 싶었다.
릴리스의 나름의 호의였을 텐데, 딱 잘라서 거절해버린 셈이었다.
“너, 이 씹...!”
벌떡, 몸을 일으킨 릴리스가 나를 노려봤다. 한참을 노려보던 릴리스가 입술을 꾸욱 깨물더니 입을 열었다.
“그래, 좋아. 이 씨발 새끼야. 그렇게 호아란, 그 여우 년이 좋으면 그녀에게 처가던가! 아주 둘이서 물고 빨든, 네 마음대로 하라고!”
“아니, 제가 간다고 하지도 않았는데 왜 그러세요.”
그대로 나가버리려는 릴리스에게 내가 말하자, 멈칫하고 릴리스가 걸음을 멈췄다.
“일단 진정하고 저랑 좀 얘기해...”
그렇게 말하면서 멈춰 선 릴리스의 몸을 돌리려다가 멈칫했다.
“안 간다고...?”
“......”
몸을 돌려서 그렇게 묻는 릴리스를 보며, 나는 입을 다물 수 밖에 없었다.
릴리스의 눈가에 맺힌 눈물방울이 보였으니까.
이게 대체 뭐라고.
고작 이런 걸로 눈물을 보이는 릴리스는 TV로나 보았던 스물둘의 영웅과는 거리가 너무 멀었다.
언제나 당당하고 자신만만하게 험악한 말이나 마구 내뱉던, 내가 아는 릴리스와도 거리가 멀었다.
이래서야 그저 평범하디 평범한 소녀나 다를 바가 없지 않은가.
하지만 그런 말을 지금 내뱉을 만큼 눈치가 없는 새끼는 아니었다.
더군다나, 이미 알고 있지 않은가.
그녀가 생각보다 훨씬 더 여린 사람이란 것 정도는 이미 알고 있었다. 우리가 영웅이라고 부르는 이들 역시 우리와 그다지 다르지 않은 사람 중의 하나란 것쯤은 이미 알고 있었다.
고민하고, 그 고민 탓에 끙끙 앓고, 술에 취해서 계속해서 자신이 과거에 저지른 실수를 되뇌는며, 누구인지 모를 이들에게 사과하고.
좌절하고, 후회하고, 또 아파하는.
그런, 우리랑 크게 다를 바 없는 사람.
단지 이토록 가녀려 보이는 릴리스가 어색하게 느껴질 따름이었다.
그것이 나로 인한 것이란 사실이, 어색하게 느껴질 따름이었다.
“...어머니.”
다만 이유야 어쨌거나, 결국 나의 탓이란 사실은 변하지 않았다. 살짝 무릎을 굽혀서 릴리스와 시선을 마주한 내가 손을 조심스레 뻗어서 그녀의 눈가에 맺힌 눈물을 조심스레 훑었다.
내 손가락에 릴리스가 흘린 눈물이 흘러내렸다.
스륵, 떨어지는 릴리스의 눈물을 닦아내고서.
나는 눈물이 맺혔던 눈으로, 더없이 붉은 눈으로 나를 보는 릴리스에게 말했다.
“저, 어디 안 가요.”
그런 내 말에 릴리스가 입술을 깨무는 것이 보였다.
이윽고 눈을 내리깐 릴리스가 내 시선을 피하며 입을 열었다.
“...호아란, 그년도 나만큼 부자야. 더군다나, 나랑 달리 너한테 해줄 수 있는 것도 더 많을 텐데. 그, 내 마법은 너한테 가르쳐주긴 어려운 것들이니까.”
“그래도 안 가요.”
“...걔한테 가면 지금처럼 고생하지 않아도 떵떵거릴 수도 있을 텐데? 굳이 내 후계자니 뭐니 할 필요도 없이 말이야. 좀 어리벙벙해 보여도, 저년을 따르는 녀석들도 많으니까.”
“그래도요.”
“...거기에, 너 걔 꼬리 마음에 들어했잖아. 내... 꼬리보다 더.”
“그건 그런데, 그래도.”
꼬리를 제외하고선, 아니 릴리스도 호아란과 마찬가지로 꼬리도 제안하기는 했지만 어쨌든. 앞서 릴리스가 말한 것들은 하나같이 릴리스가 내게 약속했던 것들이었다.
돈과 권력.
돈이라곤 없이 살아서 그런지, 언제나 천대받던 고아 새끼라서 그런지, 나는 분명 그 둘이라면 사족을 못 쓰는 편이긴 했다.
그런 점에서 호아란의 말은 내게 무척이나 매력적인 제안이기는 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훌쩍, 눈물을 훔치는 릴리스에게 내가 말했다.
“그래도, 안 가요.”
그야, 어머니가 처음이니까요.
뒤를 이어 튀어나오려던 그 말은 삼켰다.
솔직히 조금 부끄러운 말이었으니까.
그 대신에 나는 멋쩍게 뺨을 긁적이며 나를 올려다보는 릴리스를 보며 말을 이었다.
“내가 무슨 애비만 셋이나 모셨던 새끼도 아니고, 그렇게 쉽게 쉽게 어머니를 바꿀 리가 없잖아요. 이래 봬도 의리는 있는 새끼라고요.”
“...의리는 지랄, 팬티 도둑 새끼 주제에.”
“아, 그건.”
거기에 팬티가 있었는데 나보고 어쩌란 말인가.
더욱이 그 팬티의 주인이 릴리스다. 남자라면 무심코 손이 가는 거야 당연한 일이었다.
애초에 거기에 팬티를 벗어 던진 릴리스가 잘못한 게 아닐까?
“...됐어.”
툭하고 내 손을 떼어내며 릴리스가 흥, 하고 코웃음을 쳤다. 훌쩍, 코를 들이마시면서 그러니까 조금 귀여웠지만, 그렇다고 티를 내면 또 잔뜩 화낼 테니 어떻게든 표정을 관리했다.
아무튼, 그러고 있자니 나를 보며 릴리스가 말했다.
“뭐, 어쩌겠어. 지 애미 팬티나 훔쳐 가서 딸치려는 불타는 효자 새끼를 자식으로 둔 내 잘못이지.”
“아니, 딸칠 생각은 안했는데요?”
“시끄러워, 이 변태 새끼야.”
퍽, 하고 내 가슴팍을 치는 릴리스.
하나도 아프지 않았다.
“아파요.”
“아프라고 때린 거야. 망할 새끼.”
하지만 그렇게 말했다.
내 엄살에 피식, 웃는 릴리스가 보고 싶었으니까.
다행이다.
다시 기운을 차린 듯한 릴리스를 보며 속으로 안도하고 있을 때, 그런 나를 보던 릴리스가 입을 열었다.
“...약속한 거다.”
“네?”
“약속한 거라고! 호아란, 그년한테 안 간다고...! 네가 그렇게 말했잖아!”
“아, 네. 뭐...”
적어도 그녀가 먼저 나를 배신하지 않는 이상은, 나 역시 그렇게 할 것이었다. 그리고 내가 아는 릴리스는 결코 나를 먼저 배신하지 않을 거다.
내가 납치됐다고 생각하고서 그렇게 다급하게 달려왔던 릴리스니까.
“그리고, 그... 어디 가서 내가 울었다는 소리 하지 말고.”
“해도 아무도 안 믿을 텐데요?”
“아무튼...!”
뭐, 그것도 어려울 건 없어서 고개를 끄덕이자, 풀썩 소파에 다시 드러눕다시피 앉은 릴리스가 한참을 있다가 입을 열었다.
“뭐해? 앉아.”
“네? 왜요.”
“왜긴 왜야, 너 나한테 뭐 말하려고 하지 않았어?”
아...
그러고 보니 그랬었다.
갑자기 릴리스가 꼬리를 만지게 해준다질 않나, 뛰어나가려고 하질 않나, 잠깐 사이에 여러 일이 있어서 깜빡했는데, 릴리스에게 묻고 싶은 게 있었다.
“그래서, 뭔데? 아까 말하려고 했던 거.”
스윽, 다리를 꼬며 나를 보는 릴리스. 방금까지 훌쩍이던 릴리스가 그러고 있으니까 조금 웃겼지만, 릴리스의 말대로 나 역시 다시 소파에 앉아서 입을 열었다.
“별 건 아니고요. 마망.”
“아이, 씨발. 내가 그렇게 부르지 말랬지?”
“아무튼, 묻고 싶은 게 있는데요.”
“...뭔데?”
얼굴을 찌푸리며 그렇게 묻는 릴리스에게 내가 말했다.
“그 씨발년, 어떻게 했어요?”
“아, 너한테 지랄했던 그년?”
순간 릴리스의 표정이 무척이나 싸늘해지는 것이 보였다.
“어쩌긴 뭘 어째? 일단 가둬뒀지. 그땐 그년을 어떻게 할 시간이 없었으니까.”
“가둬요?”
“그런 년들 처박아두는 곳이 여기에 있거든.”
툭툭, 하고 밑을 가리키듯 탁자를 두드리는 릴리스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그런 곳이 있어도 이상할 건 없었다.
“그럼 이젠 어쩌실 거예요?”
그런 내 말에 조금 전까지만 해도 볼 수 있었던, 마냥 어리게만 느껴졌던 모습은 온 데 간 데도 없이.
쿡 찔러봐도 피가 흐르지 않을 것만 같은 냉혹한 표정을 지으면서 릴리스가 말했다.
“내가 전에 말하지 않았어? 사고치는 년들은 죄다 보지를 찢어버린다고 했었던 것 같은데. 몰랐다고 한들, 감히 내 구역에서 그 지랄을 떨어? 아니, 오히려 그러니까 더 문제겠지. 지네 동네에선 항상 그랬다는 소리잖아? 그러니까 여기 와서도 그 지랄을 떨었겠지.”
호아란과 맞붙었을 때의 모습과는 달리, 마치 피비린내가 풍기는 듯한 분위기의 릴리스.
그런 릴리스를 보며 꿀꺽, 침을 삼켰다.
“보니까 ‘맘마통’도 너 때문에 지랄 났더라? 당분간은 이곳저곳에서 뭣도 모르고 와서 지랄할 년들도 많았을 텐데, 마침 잘됐지. 이번 기회에 본보기를 보여줘야겠어. 그년 보지를 존나 허벌이 되도록 찢어버리면, 다른 년들은 당분간은 얌전히 지내겠지.”
존나 살벌하네.
처음 릴리스에게 그런 이야기를 들었을 땐 반쯤 농담으로 하는 소리인 줄 알았는데 이제 보니 진심으로 한 소리였나보다.
사티로스 그년이 존나 싹퉁 바가지가 없긴 했는데 그렇게 된다고 생각하니 좀 안쓰럽진 않고 존나 통쾌했다.
어차피 튼튼하니 죽지도 않을 테고, 인간이랑은 하나같이 차원을 불허하는 회복력을 지닌 것이 이종족들이었다.
한두 달 요양하면 그마저도 다 나아버릴 테니 딱히 불쌍하거나 그렇지는 않았다.
그런데...
기분이 조금 그랬다.
“근데, 그년은 왜?”
그렇게 묻는 릴리스에게 내가 말했다.
“그 씨발년한테 벌주는 거, 제가 대신해도 돼요?”
“엉?”
대뜸 꺼낸 내 말에 릴리스가 의아스럽다는 듯이 쳐다봤다.
“네가 하겠다고? 그걸 왜?”
“어차피 나중가면 저도 그런 일 해야 하는 거 아니었어요?”
“......뭐, 나중에 네가 내 자리를 이은 뒤에는 그렇긴 하겠지. 하지만 그때도 넌 힘 딸려서 못할걸? 아마 애들 시켜서 하겠지. 그래, 뭐. 그땐 그렇다 한다고 쳐도. 근데, 지금 네가 나 대신 그년한테 벌을 주겠다고? 그게 말이 되냐?”
게슴츠레하게 뜬 눈으로 릴리스가 나를 바라봤다.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나를 보던 릴리스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설마 동정하는 건 아니지? 그렇게 안 보였는데, 사실 존나 호구 새끼였다던가, 뭐 그런 거야?”
그럴 리가.
지금도 그 사티로스 년이 나한테 한 짓을 생각하면 치가 떨리는데 그딴 일이 일어날 일은 추호도 없었다.
하지만 의심스럽다는 듯이 나를 보는 릴리스를 보고서 서둘러 말했다.
“그런 건 아니고요. 피해자는 전데 제가 직접 복수하고 싶어서 그랬죠.”
“...흐음, 하지만 그래도 안 되는 건 안 되는 거야. 그런 걸 허용해버리면 이쪽 체면도 말이 안 되니까. 이해하지?”
그것도 그런가.
확실히 그렇기도 했다.
그런 걸 허용해버리면 여러모로 말이 나올 것도 같고.
내 표정이 조금 썩어들어갔는지, 릴리스가 다소 미안한 표정을 지으면서 말했다.
“걱정하지 마, 그 씨발년은 내가 알아서 존나 후회하게 해줄 테니까.”
"
릴리스가 이렇게까지 말했으니 확실히 그 사티로스 년은 좆되기야 할 것 같았다.
그래도 그건 뭔가 아니었다.
“그럼 이렇게 하는 건요? 제가 합의보고 싶다고 하는 거예요.”
그런 내 말에 얼굴을 찌푸리는 릴리스가 보였다.
“합의? 합의는 지랄. 그 꼴을 당해놓고 합의해주고 싶어?”
“말만 그렇게 한다는 거죠.”
“말만?”
그렇게 되뇌던 릴리스가 아아, 하고 말했다.
“합의라고 해놓고, 네가 직접 복수하겠다 이거지. 어쨌든, 피해자랑 가해자가 서로 합의 보겠다는데 우리가 끼는 것도 뭣하니까.”
“뭐, 그런 거죠.”
“흐응...”
톡, 톡하고 릴리스가 손가락으로 탁자를 두드렸다.
톡...
이윽고, 멈칫하고 손가락으로 탁자를 두드리는 것을 멈춘 릴리스가 입을 열었다.
“어디 한 번 들어보기나 해보자. 그년한테 어떻게 복수하고 싶은데?”
“그야...”
그런 년들이 존나 싫어하는 일을 해주는 거지, 뭐.
대충 그 망할 사티로스 년을 어떻게 해줄지에 대한 것을 릴리스에게 이야기해줬다.
그렇게 내 이야기를 전부 들은 릴리스가 진지한 얼굴로 나를 바라보더니 입을 열었다.
“와, 씨발. 너 진짜 변태 새끼구나.”
“이 정도는 해야 하지 않겠어요? 나도 당한 게 있는데.”
“그래, 그 정도는 해야겠지. 하지만, 안 돼.”
역시 안되나...
뭐 별 수 없다. 아쉽지만 그냥 넘어가려고 했을 때, 릴리스가 말했다.
“그거론 부족하지. 복수란 건 말이야 당한 만큼 갚는 게 아니야.”
스윽, 릴리스의 꼬리가 내 뺨을 콕하고 찔렀다.
“열 배, 백 배로 갚아도 모자란 게 진짜 복수야. 명심해, 피는 다만 피로써 갚을지어다. 하지만, 피를 피로 갚기엔 어렵사리 지킨 이 세상이 평화롭길 바라니, 별수 없지.”
그 대신에 다른 걸로 갚게 해야지.
그렇게 말하면서, 씨익, 웃은 릴리스가 말을 이었다.
“그러니 말만 해. 필요한 게 있으면 전부 구해다 줄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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