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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족 전용 남창이 되었다-22화 (22/523)

〈 22화 〉 (2)

* * *

지하.

지금도 디스펜서들이 한창 정액을 뽑아대고 있을 채취장보다도 더 지하에 있는 감옥은 물리적인 방법으론 애당초 갈 수도 없는 곳에 있었다.

말 그대로 땅 밑에 덩그러니 있는 곳이나 다를 바가 없는 곳이었으니까.

그곳에 릴리스의 손을 잡고서 따라 들어온 나는 주위를 둘러봤다.

감옥이라고 해서 음산한 분위기일 줄 알았는데 그런 느낌은 아니었다. 오히려 위쪽보다도 현대적이라고 해야 하나, 미래적인 디자인이었다.

이걸 미래적인 디자인이라고 할 수 있는가 싶기도 하지만.

사방이 새하얗고, 일방통로로 되어있어서 감옥보다는 어딘가의 연구소 같은 느낌도 들었다.

“자, 여기야.”

그렇게 통로를 걷다가 한 문 앞에 서서 릴리스가 그렇게 말했다.

“여기라고요?”

“그래.”

릴리스의 대답에 문을 쳐다봤다.

금속으로 되어있는 문이었지만, 딱히 잠금장치가 있는 것도 아니고 그냥 평범한 문이었다. 이래서야 어지간한 이종족이라면 죄다 탈출할 수 있을 듯싶어 보였다.

당장 내가 두 눈으로 직접 봤던 이종족 중 하나인 에일레야만해도 이것보다 더 두꺼운 엘리베이터 문을 종잇장이 마냥 맨손으로 구겨버렸다.

그야 괴력으로 유명한 웨어비스트, 그중에서도 특히 힘이 강하다고 알려진 웨어울프였던 그녀니까 그 정도인 거라고 쳐도, 사티로스인 그년도 그 정도는 못하더라도 적어도 이 정도의 문은 가볍게 부수고 남을 정도의 힘은 있을 게 분명했다.

근데도 겨우 이걸로 되는 건가 싶었다.

“문, 이걸로 괜찮은 거예요?”

“아, 이거? 신경 쓰지 마. 그냥 장식인 셈이니까.”

문이 장식이라고?

내가 의아해하고 있자 릴리스가 그런 나를 보며 키득거렸다.

“왜 웃어요?”

“뭐, 보면 아니까 그렇게 걱정하지 말고.”

그렇게 말하면서 문을 여는 릴리스.

안에 있는 사티로스 년이 어쩔 줄 알고 냅다 문을 열어버리는 릴리스의 행동에 놀랐지만, 아무리 기다려도 갑자기 릴리스에게 사티로스 년이 달려든다거나 하는 일은 없었다.

“뭐해? 안 올 거야?”

“진짜 괜찮은 거죠?”

“괜찮다니까. 새끼, 지금 보니까 존나 쫄보 새끼였네. 뭐하면 이 엄마가 손이라도 잡아줄까?”

히쭉, 웃으면서 내게 손을 흔들며 묻는 릴리스를 보고서 고개를 끄덕였다.

“잡아주면 저야 고맙죠.”

“...진짜로? 넌 쪽팔리지도 않냐?”

“쪽팔린 게 목숨보다 중요한가요?”

“그건 또 그런데... 야, 진짜 괜찮다니까?”

“테엥, 마망. 나 무서워. 손 잡아조...”

그런 나를 못 볼 것이라도 봤다는 냥 썩은 표정을 지으면서 쳐다보는 릴리스. 이윽고 한숨을 폭 내쉰 릴리스가 입을 열었다.

“...그만 까불고 빨리 와.”

더 까불면 쥐어박을 듯싶어서 릴리스의 말대로 하기로 했다.

“자, 한 번 봐봐. 이래도 무섭냐?”

그런 릴리스의 말대로 안쪽을 들여다보자, 사티로스 그 망할 년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양팔과 다리엔 푸른 빛을 띤 구속구를 차고서, 온몸을 꽁꽁 감싸고 있는 두꺼운 띠가 몇 중으로 그녀의 몸을 묶고 있었다. 더군다나 금속으로 된 마스크가 그녀의 얼굴의 태반을 가리고 있었다.

거기에 입마저도 볼 개그로 막혀있으니, 이래서야 제아무리 괴력을 지니고 있다고 한들, 마법을 쓸 수 있다고 한들, 존나 아무 소용이 없을 것만 같았다.

“와, 장난 아니네요?”

“우리가 대가리가 없는 것도 아니고, 이딴 세상인데 범법자를 아무렇게 두겠어?”

“하긴 그것도 그렇네.”

마법이 존재하고.

초능력도 존재하며.

심지어 무공과 주술, 그 밖에도 수많은 초상 능력이 공존하는 세상.

그런 세상인 만큼 저 정도는 해야 하지 않을까 싶기도 했다.

물론 나 같은 평범한 인남은 그냥 쇠고랑만 채워서 어디 가둬두면 충분하겠지만. 이 세상은 나 같은 인간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었으니까.

모든 인간이 약한 것도 아니고.

평균적으로 종족값이 모든 종족을 통틀어서 하위에 처박혀있는 인간이었지만, 그중에선 존나 강한 인간도 종종 튀어나오기도 했다.

무공을 익힌 인간이라던지, 마법이나 주술을 익힌 인간이라던지, 초능력을 다루는 인간이라던지, 하다못해서 강화 인간이나 기프트가 있는 인간도 있기 마련이었으니까.

물론 난 그딴 특별한 인간은 아니었지만.

아무튼, 그런 인간만이 아니라 이 세상엔 존나 많은 종족들이 살고 있었다.

엘리베이터 문짝을 두 손으로 찌그러뜨리는 웨어비스트는 물론이거니와 앞서 말한 마법이나 주술, 무공같은 걸 다루는 이종족도 있었다. 그냥도 센 종족들이 별걸 다 배운다 싶었지만 어쩌겠는가, 그 새끼들은 그런 세계에서 살았을 뿐인데.

어쨌거나 이 망할 년이 저렇게 묶여있는 꼴을 보니, 이 꼬라지가 된 세상이 어떻게든 멀쩡한 척 굴러가는 이유를 알게 된 기분이었다.

“그나저나, 저게 다 뭐래요?”

“저거?”

나를 흘끗 쳐다보며 릴리스가 입을 열었다.

“팔과 다리는 드래곤의 비늘로 만든 구속구야, 아무튼 존나게 튼튼하지. 몸을 묶어둔 저 띠는 아라크네가 짜낸 실을 몇백 겹이나 꼬아서 만든 거고, 불에 조금 약한 걸 빼면 몇십 겹만으로도 오우거도 쉽사리 풀 수 없는 녀석인데 그 열 배가 넘으니까 오우거고 지랄이고 풀려면 존나 힘들걸? 저 얼굴에 씌운 건 마안이나 초능력을 봉인하는 아티펙트고, 저 볼 개그도 영창을 못 하게 하는 입을 막는 것도 겸해서, 지 혼자 혀 깨물고 뒈지는 걸 방지하는 용이지.”

아무렇지도 않게 말하는 릴리스를 보며 차마 뭐라고 할 말이 나오지 않았다.

그야 그럴 수밖에 없었다.

드래곤의 비늘이라니.

불과 하루 전에 봤던, 하늘을 날아다니던 드래곤을 떠올렸다.

가볍게 수백 미터는 되어 보이는 거대한 드래곤. 하늘을 날다가 뭐라도 싸는 순간 다 같이 좆되지 않을까 걱정을 하기까지 한 그 드래곤.

그런 드래곤의 비늘이라니.

더욱이드래곤이 무시무시한 건 단순히 크기 때문만이 아니었다.

그들은 하나같이 상상하기도 어려운 마법을 부려대는 괴물들이었으니까.

덩치와 그 덩치에서 나오는 힘만으로도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종족을 통틀어서도 제일 위로 칠 수 있을 만큼 강한 종족인데, 거기에 마법까지 써재끼니 답이 없는 종족이었다.

그렇다고 단순히 존나 세고 존나 마법을 써재끼기만 하는 것도 아니었다.

그 몸 자체로도 훌륭한 흉기이기도 했지만, 드래곤의 몸에 나있는 비늘은 애당초 같은 드래곤이 아니면 흠집을 내기도 어려울 만큼 단단하고, 마법 그 자체를 흩어버리는 힘을 지니고 있었으니까.

릴리스같은 서큐버스만해도 인간 따위랑 비교하면 비교하기도 미안할 만큼 높은 고위종족인데, 드래곤은 그보다 더하면 더한 종족. 아니, 애당초 종족이라고 할 순 있는가 싶은 존재들이었다.

하나같이 살아 움직이는 핵폭탄 같은 존재들을 과연 일개 생명체로, 종족이라고 쳐도 되는 건가 싶었으니까.

아무튼 그런 드래곤의 비늘로 구속구 같은 걸 만들었다는 릴리스의 말이 도무지 믿기지 않았다.

거기에 사티로스 년의 몸을 두르고 있는 띠도 아라크네의 실로 만들었단다. 아라크네는 아라크네대로 드래곤만큼은 아니더라도 나름 희소한 종족이었다.

그리고, 그만큼 능력이 있는 종족이기도 했다.

세상이 이 꼬라지가 된 이후로, 어지간한 고급 의류들은 그리 많지도 않은 아라크네들이 독점하다시피한 것은 물론이거니와 그녀들이 뽑아내는 실들은 하나같이 튼튼하면서도 무척이나 부드러웠다.

더군다나 용도에 따라서 여러 종류의 실을 뽑아낼 수 있었는데, 그중에서도 아주 그냥 튼튼하게만 뽑아낸 실 같은 경우에는 가느다란 실 한 가닥이 몇 센티미터나 되는 두께의 강철보다도 튼튼한데다가 내구성마저도 좋았다.

고작 실 한 가닥만으로도 그랬는데, 그걸 꼬아서 띠를 만들어서, 또 몇백 겹이나 몸에 두르다니.

제아무리 괴력을 지니고 있다고 해도, 힘만으로 몸에 잔뜩 묶인 저 끈들을 풀어서 탈출하는 건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는 소리였다.

근데 그걸로도 모자라서 마법이나 여타 다른 초상 능력을 원초적으로 막아버리기까지 했으니... 문이 그냥 장식이라는 릴리스의 말이 이해가 가는 순간이었다.

저걸 다 무시할 수 있는 존재라면 문으로 뭘 달아놓든 아무 쓸데도 없을 테니까.

하지만 그런 모든 것들을 듣고서 가장 먼저 떠올린 것은 이거였다.

“...존나 비싸겠네요.”

“존나 비싸지.”

지금이야 어디까지나 범법자를 가두는 용으로 쓰이고 있지만, 하나같이 다른 물건으로 만들었어도 어마어마하게 비싸질 재료들이었다.

사실상 온몸에 값비싼 아티펙트를 주렁주렁 달고 있는 셈인 사티로스를 보며 중얼거리자 릴리스가 고개를 끄덕이며 그렇게 대답했다.

턱 하니 앨릭서 같은 보물을 내게 마시게 했었던 릴리스마저도 존나 비싸다고 할 정도면 대체 얼마나 비싼지 상상하기도 어려웠다.

그런 나를 보며 릴리스가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

“뭐, 그래도 비싼 값은 해. 이론상으론 그 망할 년도 묶이면 꼼짝도 못 할걸? 애당초 몇 개는 그년이 만든 물건들이긴 한데.”

“망할 년이요? 저년 말고?”

“저년 말고. 뭐, 그런 년이 있어.”

넌 몰라도 되고, 그렇게 말한 릴리스가 사티로스 년에게 손을 뻗으려다가 입을 열었다.

“아,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내 뒤에 서 있어.”

릴리스의 말대로 그녀의 뒤에 서자 그런 나를 보며 고개를 끄덕인 릴리스가 이윽고 사티로스 년이 얼굴에 쓰고 있던 마스크 같은 것을 손으로 벗겼다.

“흐, 흐븝...!”

아무래도 마스크가 청각도 어떻게 봉인하고 있었는지, 마스크가 벗겨진 사티로스 년이 릴리스를 보고는 화들짝 놀라더니 발작해대는 것이 보였다.

그래봤자 옴짝달싹도 못 하는 데다가 입까지 막혀있어서, 실시간으로 창백하게 얼굴이 물들이는 것만이 사티로스 년이 할 수 있는 것의 전부였지만.

“쉿... 시끄럽게 굴면 가만 안 둘 거야.”

“흐읍...”

속삭이듯 말하는 릴리스의 말을 듣고는 사티로스 년이 바싹 굳는 것이 보였다. 그리고 릴리스의 말대로 숨소리조차 내지 못하고서 겁에 질려있는 사티로스를 보며 릴리스가 키득거렸다.

“그래그래, 말 잘 듣네. 그런 년이 그 지랄을 떠셨어요?”

“흐, 흐븝... 흡...”

“뭐라는 건지 잘 모르겠네. 가만히 좀 있어 봐, 풀어줄 테니까... 대신, 시끄럽게 굴면 진짜 뒈진다?”

이윽고, 입을 막고 있던 볼 개그마저 릴리스가 풀어주자 사티로스 년이 허겁지겁 말하기 시작했다.

“사, 살려주세요. 죄송해요...! 정말로 죄송해요...! 여기가 릴리스님이 관리하는 곳인지 몰랐어요...! 한 번만, 제발...!”

“하, 이 씨발년.”

그런 사티로스 년의 말에 릴리스가 이죽거리며 말했다.

“내가 관리하는 곳인지 몰랐으니 봐달라고? 그럼, 씨발. 내가 관리하는 곳이 아니었으면 어쩌려고 했대? 응?”

“그, 그...”

“아니, 말하지 않아도 돼. 어차피 대충 견적 나오니까.”

스윽, 릴리스가 손으로 그런 사티로스 년의 뺨을 손톱으로 어루만졌다. 겁에 질려 몸을 떠는 사티로스를 보며 릴리스가 입을 열었다.

“그거 알아? 한 달에 한 명씩은 꼭 너 같은 년이 나온다? 주제도 모르고 나대다가, 선을 넘어버리는 년들이 말이야. 그년들이 매번 끌려와서 하는 말이 뭔 줄 알아?”

주르륵, 릴리스의 손톱에 긁힌 사티로스의 뺨에서 피가 흘렀다.

“살려주세요. 죄송해요. 잘못했어요. 다신 그러지 않을게요, 어째 하나같이 그 지랄하고 자빠졌는지 모르겠단 말이지. 어디서 대본이라도 써주기라도 하는 거야? 응? 거기에 살려주긴 뭘 살려줘? 누가 보면 내가 툭하면 사람을 죽여대는 살인귀라도 되는 줄 알겠다? 앙?”

그럼에도 불구하고, 릴리스는 멈추지 않았다. 손톱은 이곳저곳으로 옮겨가며 사티로스의 얼굴을 도화지 삼아 선을 그어갔다.

하나, 둘, 늘어나는 선에서 핏물이 흘렀다.

“흐, 아. 윽...”

사티로스 정도라면 하루도 걸리지 않고 나을 상처에 불과했지만, 사티로스 년은 마치 칼로 살점이 저며지는 것마냥 겁에 질려하고 있었다.

하긴, 내가 봐도 지금의 릴리스가 존나 무섭긴 했다.

내가 사티로스 저년 좀 털어 달라고 부탁하긴 했지만 이 정도까지 해줄 줄 몰랐으니까. 릴리스가 저렇게까지 연기를 잘할 줄은 나도 몰랐다.

아니, 사실 연기가 아닌 게 아닐까?

“그리고 죄송해야 할 건 네 년들이 신세를 조진 애들한테 해야지 왜 또 나한테 그 지랄인지 모르겠고, 응? 그렇지 않아?”

이윽고, 릴리스의 손톱이 콕하고 사티로스 년의 눈가를 찔렀다.

깊이, 깊이 파고 들어간 손톱에 사티로스의 눈동자가 마구 떨리는 것이 보였다. 아무리 재생능력이 좋은 이종족이라고해도 안구가 터져나가도 멀쩡하게 재생할 수 있는 종족들은 얼마 되지 않았다.

그리고 사티로스는 그런 얼마 안 되는 종족은 아니었나 보다.

사티로스 년의 안색이 더더욱 새파래지다 못 해서 새하얗게 질려가는 것이 보였다. 그런 사티로스에게 릴리스가 말했다.

“그렇지 않냐고 내가 묻잖아. 대답 안 해 이 썅년아?”

“맞아요, 네, 그 말이 맞아요...! 제, 제발...”

오들오들 떠는 사티로스 년을 보고서 릴리스가 히죽, 웃었다.

“그래? 너도 그렇게 생각하지? 그러니까, 제대로 사과해.”

“네, 네...! 사과할게요. 죄송합니다, 죄송합...”

“나 말고 이 씨발년아. 내가 여태 한 말 좆으로 들었어? 나 말고, 네가 사과해야 할 사람이 따로 있잖아?”

“흐읏, 윽...!”

머리채를 잡혀서 고개를 들어 올려진 사티로스 년의 시선이 나에게로 향했다.

“아. 으? 에...?”

이제야 날 발견이라도 했는지 놀란 표정을 짓는 사티로스 년에게 가볍게 손을 흔들어주며 말했다.

“거, 존나 통쾌한 꼴로 계셔서 보기 좋네요. 이 애미 뒈진 년아.”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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