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5화 〉 언젠가는 생각해주겠지 (5)
* * *
“다녀왔습니다.”
오늘도 열심히 일하고서 집에 돌아오니 그런 나랑 달리 출근하지도 않고 집에서 밍기적거리고 있었을 릴리스가 빼꼼하고 내 방문 너머로 얼굴을 내밀며 반겨줬다.
“오, 맥주 사왔냐?”
내가 아니라 내가 사온 맥주를.
사람 얼굴을 보자마자 대뜸 그렇게 묻는 릴리스. 덕분에 어이가 나갈 것 같았다. 그래서 내가 물었다.
“저보다 맥주가 더 반가워요?”
“징그럽게 덩치만 큰 사내새끼가 뭐가 반갑다고. 그래서, 맥주 사왔냐?”
씨발.
근데 릴리스의 말이 틀린 것도 아니라서 할 말은 없었다. 나도 나 같은 사내놈 새끼보단 맥주가 더 반가울 것 같으니.
“여기 사왔어요.”
오는 길에 잔뜩 사 들고 온 맥주가 들은 봉투를 흔들자, 그제야 완전히 몸을 내민 릴리스가 보였다.
넓고 편하다는 자기 집은 내팽개쳐놓고서 출근하지 않는 날이면 좁아터진 내 집에서 머물기 시작한 릴리스는 세상 편해 보이는 차림을 하고 있었다.
내가 입으려고 사뒀던 런닝에 몇 년 전에 시장에서 대충 사왔다가 너무 작아서 입지도 못했던 츄리닝 반바지를 대충 걸쳐 입은 릴리스의 모습을 보고서 내가 말했다.
“근데 너무 편하게 지내는 거 아니에요?”
“엉?”
내가 사온 맥주가 든 봉투를 건네받으면서 고개를 갸우뚱하는 릴리스를 보니 지금 자기가 어떤 모습을 하고 있는지 모르는 것이 분명했다.
내가 입는 크기라 몇 치수는 더 클 텐데 커다란 가슴 때문에 오히려 작아 보이기까지 하는 런닝에 나랑 달리 다리가 길쭉길쭉한 릴리스에겐 짧은 반바지라고 해야 할까, 그냥 숏팬츠에 가까운 느낌으로 허벅지에 찰싹 달라붙어 있는 츄리닝 반바지까지.
몸에 굴곡이 죄다 드러나는, 얇디얇은 차림의 릴리스는 솔직히 말해서 존나 꼴렸다.
분명 입고 있는 것들은 죄다 내 옷이었던 것들인데, 입은 사람이 바뀐 것만으로도 이렇게나 차이가 났다.
조금 전까지 존나 쪽 빨리다 돌아와서 망정이지, 그게 아니었다면 발기해버렸을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그랬으면 릴리스의 성격상 그런 날 존나 놀려댔겠지.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릴리스가 이상하다는 얼굴로 나를 보며 말했다.
“편하면 좋은 거지 뭐 어떻다고. 새끼, 괜한 소리 말고 내 맥주나 내놔.”
“제가 사온건데요?”
근데 생각해보니 릴리스가 뭔 옷을 입고 있던 아무래도 좋은 일이긴 했다.
나야 보기 좋기도 하고.
아무튼, 투덜거리면서 릴리스에게 봉투를 넘기고서 신발부터 벗고 있자니 그런 나를 돌아보며 릴리스가 말했다.
“아무튼 빨리 들어와, 혼자 마시는 것도 재미없었는데 잘됐네.”
“네, 네.”
대충 대답하자 그대로 내가 사온 맥주를 들고서 내 방으로 들어가는 릴리스가 보였다.
그런 릴리스를 따라 방으로 들어가자, 그새 내 침대 위에 드러누워 버린 릴리스가 맥주캔을 따고 있었다.
“자, 너도 마셔.”
그대로 딴 맥주캔을 내게 내미는 릴리스.
그런 릴리스로부터 맥주를 받아든 나는 내 침대를 보고서 한숨을 내쉬었다.
내 침대는 내가 일하는 동안 죽치고 앉아있었던 릴리스에게 온갖 능욕을 다 당한 꼴을 하고 있었다.
사방팔방에 흩어진 과자봉지들이나, 내가 없는 동안 릴리스가 혼자 마셔댄, 비어버린 맥주캔들을 보면 한숨이 나올 수밖에 없었다.
저걸 또 치우는 게 내 일이었으니까.
자고 일어났는데 온몸에 끈적끈적하게 과자부스러기들이 달라붙은 꼴을 보기 싫으면 치워야지 별수가 없었다.
어지르는 사람 따로 치우는 사람 따로 있다더니, 딱 내 꼴이었다.
더이상 못참겠다.
내가 그렇게 깔끔 떠는 성격인 것도 아닌데, 좀 치우고 살면 어디가 덧나는지 치우는 꼴을 보기가 힘든 릴리스의 꼬라지를 보고 있자니 견디기 힘들었다.
그래도 대놓고 말하긴 좀 그러니 돌려서 말하기로 했다.
“아니, 근데 존나 넓다는 집은 냅두고 왜 매일 여기 와요? 안 그래도 좁아터졌는데.”
“좁아서 그런가? 여기 있으면 뭔가 아늑하단 말이야.”
그렇게 말하고서 내가 사온 맥주캔을 따다가 들이켜는 릴리스가 보였다.
그런 릴리스를 아니꼽다는 듯이 쳐다보자, 내 시선에 릴리스가 말했다.
“안 마시고 뭐해? 너도 안주 줄까?”
그렇게 말하고서 내 입에 과자도 쑤셔 넣어줬다.
짭쪼름하면서 달달한 과자 맛이 입안에서 서서히 퍼져나갔다. 맛이 진하다고 해야 할까, 딱 맥주 마시기 좋은 느낌이었다. 그래서 그대로 들고 있던 맥주를 들이켰다.
겨우 그거뿐인데 방금까지 짜증이 났던 게 사그라드는 이유가 대체 뭘까.
“푸하...!”
시원하게 맥주를 들이켜고 나니 아무래도 좋아졌다.
뭐, 여기 있는 게 편하다니 내가 뭐 별수 있나. 성격 괴팍한 어머니를 둔 죄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크... 그래서, 오늘은 어땠어? 많이 벌었냐?”
입가에 묻은 하얀 맥주 거품을 핥으며 묻는 릴리스의 말에 내가 대답했다.
“뭐, 그럭저럭요?”
오늘은 월급 들어왔다고 들이닥친 에일레야한테 지명받고 끌려가서 쪽 빨리고 오는 길이었다. 지명은 지명이다보니 평소보다 더 많이 벌긴 했는데.
요 며칠간 매일같이 개근하다 보니 급할 건 없다고 생각했는지 딱히 경쟁이 붙거나 하지는 않아서 아주 많이 벌었다고 하기엔 애매한 부분이 없잖아 있었다.
이건 나중에 어떻게 조절을 하던가 해야 할 것 같긴 했다.
열심히 일했더니 오히려 수입이 줄어드는 일이었으니.
그래도 뭐, 불과 며칠 전의 내 꼴을 생각해보면 상상도 못할 만큼 벌긴 했으니까 좋은게 좋은 거 아닐까.
“흐응... 그건 별로 중요한 건 아니지. 야, 배 까봐.”
“또요? 어제 봤잖아요. 그새 뭐 변한 것도 없을 텐데.”
“까라면 그냥 좀 까.”
“네, 네.”
릴리스의 말에 훌렁, 입고 있던 셔츠를 벗어 던지자 배에 새겨진 문양이 드러났다.
음문이라고 해야 할까, 자지모양의 문양은 그래도 그동안 열심히 했다는 증거로 반쯤 차있었다.
“이야, 부지런하게도 쌓고 있네. 잘하고 있어.”
“그래요?”
뮤뮹뮤뭉 때는 한 번에 꽉 채워졌던 것이 요 며칠 동안 나름 열심히 했는데도 이제야 반쯤 찼으니 적게 찬 것 같기도 했지만.
아니, 진짜 적은 거 아닌가?
내가 서큐버스도 아니고 적게 찬 건지 많이 찬 건지 알 수 있을 리가 없었다.
하지만 이 속도라면 다음 레벨업?을 하려면 일주일은 더 걸릴 것 같았다.
그동안 섹스한 상대만 십수 명이 넘는 걸 생각하면 부진하다고 해야 할까, 잘 안 차는 기분이라서 내가 물었다.
“근데 이거 생각보다 잘 안 차네요?”
그런 내 물음에 과자를 입에 넣고 있던 릴리스가 말했다.
“응, 원래 처음이 제일 많이 빨거든. 그래서 서큐버스한테도 처녀는 중요하단 말이지. 첫 상대가 쩔면 쩔수록 스타트부터가 다른 법이니까. 뭐, 뮤뮹뮤뭉 그년이 그렇게 보여도 나름 격이 높은 년이기도 했고. 너한텐 운이 좋았던 거지.”
“그 운이 좋아서 얻은 걸 죄다 자지 길이에 몰빵한 거라고요?”
그 말에 릴리스가 고개를 돌리는 것이 보였다.
“아니, 고개 돌리지 말고 좀 말해봐요.”
“시끄러워, 너도 잘못한 거잖아.”
그건 그렇긴 한데.
에이, 이미 지나가 버린 일이었다. 릴리스에게 따져 묻는다고 내 아다 레벨 드레인이 돌아오는 것도 아니고.
솔직히 자지가 존나 크다는 이유로 날 지명하거나 하는 이들이 꽤, 아니 상당히 다수였으니 손해를 본 것도 없었다.
“아, 근데, 그럼 어머니.”
“왜?”
문득 떠오른 생각에 내가 물었다.
“그럼 어머니도 아다 떼면 지금보다 더 강해진다는 거예요?”
놀랍게도 아직까지도 처녀를 지켜오고 있는 서큐버스인 릴리스였다.
본래 서큐버스는 하면 할수록 특성인 레벨 드레인을 통해서 강해지는 종족이었다. 릴리스는 그런 서큐버스 중에서도 최강이고, 그런데도 처녀라는 모순적인 존재였다.
분명 강할수록 음란할 수밖에 없는 것이 서큐버스인데, 릴리스는 존나 강한데도 처녀였다.
그런데 릴리스의 말대로라면, 그녀가 처녀를 깨는 날이 오면 지금보다 훨씬 강해진다는 뜻이 아닌가?
그럼 대체 여기서 얼마나 더 강해진다는 거야?
그런 생각이 문득 들어서 물었다가 아차 싶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미 내뱉은 말을 주워담을수도 없었다.
“......”
릴리스가 말없이 나를 쳐다봤다.
그 시선에 이번에는 내가 고개를 돌릴 수밖에 없었다. 그런 나를 보던 릴리스가 한숨을 내뱉고는 말했다.
“헛소리하지 말고, 옷이나 다시 입어.”
“넹.”
릴리스의 말대로 도로 벗었던 셔츠를 입고 있을 때, 맥주캔을 입에 가져가던 릴리스가 고개를 갸우뚱하는 것이 보였다.
“아, 근데. 너 그년 어쨌냐?”
“뭔 년이요?”
“그년 있잖아, 그년... 이름이 뭐였지?”
그렇게 말하는 릴리스의 말에 그제야 나도 릴리스가 말하는 년이 누구인지 떠올릴 수 있었다.
사티로스 년의 이야기가 틀림없었다.
“아, 씨발. 까먹고 있었네.”
굳이 변명하자면 요 며칠간 존나 많은 일이 있었다 보니 어쩔 수 없었다.
채취소에서 디스펜서들의 원활한 사정을 위해서 온갖 개쩌는 야동에 자위도구를 제공한다는 걸 알게 되거나, 릴리스가 데려다준, 수백 년동안 요리만 해왔다는 엘프 쉐프가 운영하는 레스토랑에서 나온 풀코스를 먹어보고 내가 여태껏 먹었던 게 음식이 아닌 인간용 사료 비스무리한 무언가였다는 걸 알게 되거나.
그 밖에도 여러 가지로.
좆태창에 슬라임박이 외에도 이런저런 박이들이 잔뜩 늘어나는 등등.
요 며칠 동안 내 인생에서 이렇게나 알차게 시간을 보내왔던 적이 있었을까 싶을 만큼 바쁘게 살고 있었으니 사티로스 년을 까먹는 거야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그렇다고 아예 새까맣게 잊고 있었던 건 좀 심했다 싶긴 한데.
내가 그렇게 생각한 것처럼 릴리스도 그런 생각을 했는지 나를 보던 릴리스가 말했다.
“미친놈... 그럼 여태 한 번 들여다본 적도 없는 거야?”
“어쩌다 보니까 그게 그렇게 됐네요?”
“진짜 미친놈이네 이거.”
대충 셈해보니까 그날로부터 오늘이 딱 5일째였다.
즉, 사티로스 년은 5일동안 계속해서 절정하는 상태로 방치된 셈이었다. 막상 그렇게 생각하니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물론 그년 말고, 내 걱정.
혹시라도 그년이 헤까닥했기라도 했으면 그 책임은 전부 내가 져야 했으니. 이제 좀 살만해질라 하는데 감옥신세를 지고 싶진 않았다.
“...괜찮겠죠?”
“글쎄다. 튼튼하니 죽지야 않았겠지만.”
인간이라면 탈수니 뭐니로 죽고도 남았을 텐데 별 문제는 없나보다.
“그럼 괜찮겠네요. 뭐, 내일 가서 보죠. 오늘은 늦기도 했고.”
죽지만 않으면야 릴리스가 어떻게든 해준다고 하기도 했고. 덕분에 한시름 놓은 내가 릴리스가 먹고 있던 과자를 집어 입에 넣었다. 그러자 릴리스가 그런 내게 외쳤다.
“야, 그거 내꺼야!”
“어머니도 제가 사온 맥주 드시고 계시잖아요.”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지.”
존나 쪼잔하네, 진짜.
치사해서 안 먹는다.
“끄응...”
눈을 뜨자 가슴팍에 올려져 있는 새하얀 다리가 보였다. 그리고 그 다리의 주인인 릴리스는 내 가슴 위로 다리를 올려놓은 채로 어떻게 침대에 허리만 걸치고선 숙면 중이었다.
“푸우...”
대체 자면서 뭔 짓을 하면 침대 위에서 자던 사람이 침대 밑에서 자던 사람 가슴 위로 다리를 올리고 자빠졌는지 모르겠다.
작게 한숨을 내쉬곤 아슬아슬하게 침대에 걸친 채로 자는 릴리스를 바라봤다. 술도 약한 주제에 또 그 술은 존나 좋아하는 내 어머니께서는 존나 칠칠맞은 모습으로 주무시고 계셨다.
잠버릇이 험한지 이리저리 구겨져서 위로 잔뜩 올라간 런닝. 그 덕분에 보이는 릴리스의 군살 하나 없는 배라든지, 브래지어같은 게 눈에 들어왔다.
아침부터 정신이 번쩍 드네.
발딱 든다고 해도 좋고.
한숨 푹 잤더니 어제 에일레야한테 잔뜩 빨렸던 게 회복이라도 됐는지 기운을 차리기 시작한 아들내미를 보고서, 여전히 내 가슴팍을 누르고 있는 릴리스의 다리를 치우고서 몸을 일으켜 세웠다.
그리곤 침대에서 삐져나오다시피 한 릴리스를 도로 침대에 제대로 눕혀주고서 이불도 덮어줬다.
“으웅...”
이불을 덮어주자마자 다시 발로 뻥 차버리긴 했는데.
“에효.”
다시 이불을 덮어주고선, 릴리스가 일어나서 먹을 아침을 차렸다. 그리고 나도 대충 씻고 옷을 갈아입은 뒤에 나갈 채비를 했다.
어제는 정말로 너무 늦은 시간이라 그렇다고 쳐도, 까먹고 있었던 걸 알았으니 그 썅년이 살아있는지 확인이나 하는 것이 도리였다.
솔직히 좀 귀찮은 감이 없잖아 있기도 한데.
그렇다고 그대로 내버려 두면 나도 그년이랑 마찬가지나 다름없는 개쌍놈새끼가 되어버리니 그건 또 그랬다.
아무튼 그렇게 나가려고 하는데, 덜컥 내 방문이 열리고서 눈가를 부비며 릴리스가 튀어나왔다.
“어디 가...?”
멀뚱멀뚱, 나를 쳐다보던 릴리스가 멍한 얼굴로 그렇게 물었다.
솔직히 좀 귀여웠다.
“어제 말했던 거요. 그거 보러 다녀오게요.”
“아, 그거...”
잠에서 덜 깬건지 아님 술에서 덜 깬건지 비칠거리는 릴리스를 보고서 내가 말했다.
“아침 대충 해뒀으니까 이따 그거 드세요.”
“응...”
“그럼 저 다녀올테니까 그동안 집 좀 봐주고 계세요.”
“응... 금방 와...?”
“어...”
그냥 대충 어떤지 보고 오는 거니까 금방 올 것 같긴 한데.
그년도 그만큼 호되게 당해봤으면 정신 좀 차리지 않을까?
“일단은요.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늦을 것 같으면 연락해둘게요.”
“응...”
내 말에 대답한 건지 잠결에 그냥 중얼거린 건지 잘 모르겠다.
“그럼 다녀올게요”
“응...”
그런 내 말에 고개를 끄덕이는 릴리스. 그냥 진짜 졸려서 응응거리는 것 같은데.
아무튼 그런 릴리스를 보고서 다녀온다고 말하고선, 집을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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