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9화 〉 외전) 사티로스 사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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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티로스, 그래서 사티.
너무하다 싶은 이름이었지만, 그럴 수밖에 없었다. 이 이름조차도 스스로 지은 것에 불과했으니까.
사티로스는 성욕이 무척이나 강한 종족이었다. 더군다나 술도 좋아하고, 도박도 좋아하는, 방탕하고 음란하기 그지없는 종족이었다.
얼마나 방탕하고 음란한지, 아이를 낳자마자 또 떡이나 치러 나가버릴 정도였다.
태어나자마자 어머니에게 버림받은 자식.
나는 그런 흔하다면 흔해 빠진 고아였다.
운이 좋은 것이 있다면, 워낙 그런 종족이 살아가고 있는 세상이다 보니 고아원이 이곳저곳 존재했다는 사실이고, 마지막 양심인지 아니면 그냥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된 것인지 그런 내가 태어난 곳이 고아원이 있는 곳의 근처였다는 것이었다.
또 운이 좋은 것이 있다면, 내가 사티로스였다는 점이었다.
내가 본래 살고 있었던 차원의 세상은 사티로스 외에도 여러 종족이 사는 세상이었다.
더욱이, 그런 세상에서 사티로스는 귀족이나 마찬가지인 존재였다. 더군다나 음란한 주제에 자식은 잘 생기지 않는 사티로스였기에, 설사 고아인 나라도 먹고사는 데엔 큰 지장이 없었다.
고아라고 한들, 나는 어디까지나 귀족 계층인 사티로스였고, 같은 고아임에도 불구하고 너저분하게 지내는 다른 종족들의 아이보다도 훨씬 나았으니까.
그런 나였기에 사치를 부리진 못하더라도, 굶어죽을 걱정은 할 필요가 없었다.
그랬던 내 인생이 송두리째 바뀌게 된 것은, 당연하게도 그런 내가 살아가던 세상이 별안간 아주 딴 세상으로 바뀌었기 때문일 것이다.
처음 1년은, 당연하게도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고아라고는 해도, 내가 살고 있던 세상에서 사티로스는 귀족 계층이었고, 애당초 사티로스란 종족이 허다하게 고아들을 만들어대는 종족이었던 탓에 내가 고아란 사실은 특별히 이상할 필요가 없고, 오히려 평범한 일이었다.
그런데 별안간 바뀌어버린 세상 속에서, 나는 그냥 종족이 사티로스일 뿐인 평범한 소시민이 되어버렸다.
그래도 큰 문제는 없어 보였다.
내가 이전 세계에서 사는 동안 나름대로 쌓아왔던 재산이 남아있었으니까. 나도 사티로스가 아닌 건 아니었기에 그리 많은 재산은 아니었지만, 1년 정도는 무리 없이 지낼 수는 있었다.
그렇게 세계 정부가 세워지고, 언제까지나 혼란스러울거라고만 생각했던 세상이 차츰 안정되기 시작했을 때...
재산이 바닥나버렸다.
당연한 일이었다.
돈은 쓰다보면 사라지기 마련이었고, 그리 많은 재산이 있었던 것도 아니었으니까. 더욱이 내 씀씀이가 눈에 띄게 좋아졌던 것도 아니고.
세상이 좆망했으니, 차라리 있는 거라도 다 쓰고 죽는게 이득이 아닐까하는 심정으로 아낌없이 펑펑 써댔으니 말이다.
단지 망할 거라고 생각했던 세상이 망하지 않았을 뿐이었다.
그래도 문제는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야, 이전 세상에서 사티로스가 귀족으로 군림한 이유는 그만한 능력이 있었으니 그런 것이었다.
뛰어난 마법 능력, 빼어난 미색, 그리고 월등하다고 해도 좋을 만큼 강한 정력.
별다른 능력도 없어서, 노예나 다를 바 없는 취급을 받았던 인간을 비롯해서, 드워프나 엘프마저도 있던 세상에서 사티로스가 귀족 계층으로 군림할 수 있었던 이유는 그들보다 사티로스가 더욱 뛰어났기 때문이었다.
그러니까 처음으로 일을 하게 될 상황에 처한 나였지만 별다른 고민은 없었다.
거, 까짓거 하면 되지.
그런 생각이었으니까.
더군다나 세계 정부에서는 이런저런 직업들을 알선해주기까지 했으니, 금방 직업을 구할 수 있을 것이라고만 생각했다.
그렇게 처음으로 세계 정부에서 알선해준, 이런저런 세상이 합쳐진 덕에 구할 수 있는 소재들을 연구하는 마탑에 찾아갔을 때,
그런 나에게 얼굴에 주름이 자글자글한 드워프 노마법사가 거절 의사를 표했다.
“...사티로스는 좀.”
얼마 전에 찾아왔던 사티로스가, 연구중이던 마법사와 연구실에서 떡치다가 사고가 터졌다는 말과 함께 거절당한 나는 멍한 얼굴로 마탑을 뒤로 했다.
아니.
그 썅년이 다 늙어서 죽어가던 마법사랑 떡을 치다가, 그래서 그 마법사가 복상사로 죽은 것이 나랑 무슨 상관이라고?
내가 그 썅년도 아니잖아.
거절당한 것보다 거절당한 이유에 얼탱이가 나간 나였지만, 그래도 아직 구할 수 있는 직업들은 많이 남아있었다.
하지만 다른 곳도 마찬가지였다.
다음으로 찾아간 곳도.
또 그다음으로 찾아간 곳도.
마지막에 마지막, 자존심마저 굽혀가면서 찾아간 빵집 호객 알바조차도.
“...거, 사티로스는 믿을 수가 없어서.”
그렇게 말하며 거절당하고 말았다.
터덜터덜, 거리를 걷는 내 눈에 TV가 보였다.
이전에, 내가 살았던 세상에서는 볼 수 없었던... 인간을 비롯한 여러 종족들이 번성한 차원의 세상에서, 과학이란 걸로 만들었다는 기계 장치라고 불리는 것.
그런 TV에서, 사티로스가 나오고 있었다.
속보입니다냥.
웨어비스트, 수인이라고도 불리는 종족. 그중에서도 묘족이라고 해야 하나. 고양이 귀를 달고 있는 여자 앵커가 말하는 것이 들렸다.
공공장소에서 행인에게 매료 마법을 걸고서 강간했던 사티로스가 현재 검거되어...
놔, 이거 놔 이 씹새끼들아...! 어딜 만져?! 내가 누군 줄 알고...! 야! 너도 좋았잖아! 존나 내 보지에 질질 싸댔으면서...! 야...! 야...!
끌려가면서도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대는 사티로스 여성과 그런 사티로스로부터 보호하듯이 경찰복을 입은 여러 종족들 사이에서, 흐느끼고 있는 인간 남자가 보였다.
아무튼 저 염소 새끼들 존나 미친 새끼들 같다냥.
저기, 뮤나 앵커? 마이크가 켜져 있는데요...?
아차냥. 실수했다냥.
그것이 난생 처음으로, 자신이 사티로스로 태어난 것을 후회한 순간이었다.
그 뒤로도 변하는 것은 없었다.
그년 말고도, 온갖 곳에서 말썽을 부려대는 사티로스 종족들은 허구헌날 뉴스를 장식하고는 했다.
그러면 그럴수록, 사티로스란 종족 그 자체의 평판은 한없이 낮아질 따름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가리에 든게 없는 듯한, 아니, 대가리에 든거라곤 오직 섹스뿐인 것만 같은 사티로스 종족들은, 원래 세상에서 고아들을 싸질러대는 것마냥, 여전히 사고를 쳐댈 뿐이었다.
그러니까, 사티로스란 종족의 평판은 결국 좆창이 나고 말았다.
결국에는....
“죄송합니다만, 더 이상 소개시켜드릴 직업이...”
끝내 수많은 세상이 뒤섞여버린, 이 넓고 넓은 세상에서 내가 구할 수 있는 직업이 사라지고 말아버렸다.
“하.”
손에 쥔, 구직활동비란 명목으로 받은 몇 안 되는 돈을 바라보니까 헛웃음이 나왔다. 이마저도 이젠 구직활동 자체가 막혀버렸으니 구할 수도 없게 된 돈이었다.
이것마저 써버리면 쫄딱 거지꼴이 되어버린다는 소리였다.
“하, 하하.”
난 아니잖아.
내가 그런 게 아니잖아.
왜.
입안에서 맴돌기만 하는 그 말은, 끝내 입밖으로 나오지 못했다.
“힉...!”
길을 걷다가 자신을 본 행인이 기겁하면서 뒷걸음질치다가, 그대로 내빼는 광경을 봤으니까.
내가 그런 짓을 저지른게 아니더라도.
단지 내가 사티로스란 이유만으로.
그것만으로도 저들에겐, 내가 그 미친년놈들이랑 다를 바가 없음을 절실하게 느낄 수 있었다.
그렇게 나흘을 굶었다.
손에 쥔, 마지막 남은 돈을 쓸 수 없어서.
그대로 쫄쫄 굶었다.
주린 배를 붙잡았다.
처음으로 굶주림을 느껴봤고, 그 결과로 알게 된 것은 굶는다는 것은 정말이지 좆같다는 사실이었다.
하지만, 얼마 안 되는 돈밖에는 아무것도 남지 않은 내가 할 수 있는 거라곤 없었다.
그마저도 쓸 수 없는, 쓰고 싶지 않은 돈밖에는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
“아하하...”
꼴이 우스웠다.
이전 세상에서는, 그래도 귀족 취급을 받았는데.
고아라도, 귀족이긴 했는데.
이 세상은, 만인이 평등한 세상이었다.
이전 세상에서 귀족? 이전 세상에서 왕족? 그딴 건 아무래도 좋았다.
전부 평등한 세상.
모두가 평등한 세상.
“뭐가 평등이야...”
빛깔만 좋은, 말만 번지르르한 그런 평등.
무릎을 감싸 안고서, 멍하니 하늘을 쳐다봤다.
해도 저물은데다가 구름이 잔뜩 껴서 어두컴컴한게 꼭 내 미래를 보는 것만 같았다.
정말로 평등하다면, 사티로스란 이유만으로 내가 차별받아서는 안되잖아.
난, 정말로 아무것도 안했는데...
솔직히 말하자면, 이전 세상에서도 그랬다.
나는, 다른 사티로스랑 달리 제법 건실한 편이었으니까. 스스로 말하는 것도 조금 우습긴 했지만, 연애도 딱 세 번정도밖에 하지 않았다.
이 정도면 사티로스치고는 거의 처녀나 다를 바가 없는 소리였다.
하지만 그딴게 어쨌다는 걸까.
결국, 사티로스인데.
“...얘, 너 저번에 그 녀석 어땠어?”
“자지는 좀 작은데, 그래도 오래 하더라...”
그런 내 귀에 들려온 목소리.
웨어비스트 둘이 거리를 걸어가면서 둘이 대화하는 소리였다.
“디스펜서라니, 이름 진짜 웃기다니까.”
“그래도 잘 됐지, 발정기만 되면 존나 힘들었는데... 옛날처럼 아무나 붙잡고서 할 수도 없고...”
디스펜서?
그게 뭔데.
그렇게 그 둘을 따라가며 이야기를 훔쳐들었다. 그렇게, 우연으로 디스펜서란 존재를 알 수 있었다.
이종족을 대상으로 한, 몸을 파는 존재들을 알게 됐다.
웃음이 나왔다.
애당초 저마다 자신들의 종족을 제외하면 전부 이종족이나 다를 바 없으면서도, 가장 숫자가 많은 인간을 기준으로 한 그 명사에, 웃음이 다 나왔다.
내가 살던 세상에선 인간은, 노예나 다를 바가 없었는데.
이 세상에서 인간은, 그래도 세상의 기준이 되는 존재들이었다.
“......”
꼬르륵, 배가 울렸다.
오늘로 닷새째.
솔직히 이 이상은 아무리 사티로스라도 슬슬 버거울 시간이었다.
비칠거리며, 걸음을 옮겼다.
그 둘에게 들었던 대로라면, 이 근처에 이종족간지원센터인지 뭔지하는 곳이 있을 터였다.
지원이라는 이름이 붙어있으니 혹시 밥이라도 얻어먹을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하며 그렇게 한참을 걷다가, 한 남자를 볼 수 있었다.
“어으... 뒤지겠네... 그래도 오늘은 좀 벌었네...”
헬쓱한 얼굴로, 걸어가는 인간 남자.
그 남자의 팔목에 걸려있는 팔찌가 보였다.
디스펜서가 차고 다닌다는 팔찌.
저 남자가 그 디스펜서인지 뭔지하는 거구나.
저 남자한테 어딨는지 물어보면 되겠다.
“저기...”
“네?”
남자를 쫓아가서, 말을 걸자 뒤를 돌아보던 남자가 나를 봤다. 그리고,
“으악...!”
비명을 지르며 냅다 뛰기 시작했다.
나는 아무것도 안 했는데.
괴물이라도 본 것처럼, 비명까지 질러가며 도망치는 남자를 보고서.
뚝, 하고 무언가가 끊겼다.
“왜...?”
멀어져가는 남자를 보며 내가 물었다.
대체, 내가 뭘 했다고ㅡ
내뱉는 숨결에서 달콤한 포도향이 났다.
이전 세상에서는, 정말로 좋아했던 과일인 포도향이. 사티로스 종족 특유의 체향이, 이성을 발정시키는 것밖에는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그저 귀찮을 따름일 뿐인 종족 특성.
하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달려 나가던 남자가 멈칫했다. 이윽고, 뒤를 돌아 나를 바라봤다.
벌겋게 충혈된 눈, 입가에 흐르는 침. 무엇보다도 바지 위로 솟아난 융기.
누가 봐도, 발정이 난 듯한 남자를 보고서.
다름 아니라, 자신이 내뿜은 향기로, 자신의 탓으로 발정해서 눈이 돌아간 남자를 보고서.
“...오빠, 나랑 좋은 거 할래?”
나는, 여느 사티로스랑 다를 바가 없는 존재가 되었다.
거친 숨소리를 내뱉으며 날 덮쳐오는 남자를 받아들였다.
몇 번이고, 안에 사정 당했다.
배가 불렀다.
음식만이 아니라, 이성으로부터 얻을 수 있는 정기에서도 에너지를 얻을 수 있기에 사티로스가 그토록 음란하게 되어버린 걸까.
이런 능력이 있기에, 사티로스는 그런 짓을 벌이는 걸까.
알 수가 없었다.
알 수 없었지만, 배가 불렀다.
“끄윽...”
기절해버린 남자에게서 몸을 일으키자, 보지에선 남자가 싸지른 정액이 흘러내렸다.
하늘을 올려다봤다.
새까맸다.
마치 내 미래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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