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1화 〉 엄마가 뿔 났다 (2)
* * *
집으로 가는 동안 몇 번이나 릴리스에게 전화를 걸어봤지만 도무지 받지를 않았다.
문자도 마찬가지였다.
하긴 나라도 늦으면 늦는다고 연락한다고 해놓고 연락도 없이 문자고 전화고 죄다 씹으면 빡칠 것 같았다.
그렇다고 마냥 손 놓고만 있을 수도 없어서 몇 번이나 더 전화를 걸어봤지만, 받지를 않으니 아무 소용도 없었다.
초조하게 다리를 떨다가, 이내 생각을 바꿨다.
좋아.
작전을 바꾼다.
나는 급히 검색창에 삐진 어머니를 달래는 법을 검색했다.
평생을 어머니의 얼굴도 모른채 살아왔던 나였기에, 어머니랑 화해하는 방법을 알 턱이 없었다.
그렇기에 그런 나랑 달리 애미가 있었던 지식인들의 도움이 필요했다.
[어머니랑 싸우셨나요~? 어머니랑 화해하는 방법]
검색하자 제일 위에 떠오른 게시글의 제목.
내가 원하던 것 그 자체였다. 빠르게 터치하자 화면에 내용이 떠올랐다.
[여러분~ 어머니랑 싸우셨군요. 그러면 안돼요. 싸우지 말고 화목하게 지내야죠~ 하지만 사람이라면 그런 날도 있는 법이죠? 그렇다면 오늘은 사진을 통해 위로의 시간과 어머니와 화해하는 법을 알아보도록 할게요~]
뭔가 이상했다.
대충 애새끼가 애미라고 벽에 낙서를 하는 사진과 함께 시작하는 내용을 보고서 뭔가 이상함을 느낀 나였지만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밑으로 쭉 내려봤다.
[어머니랑 싸우는 일, 자주 있지요. 저도 사춘기 때문이였는지 뭐 어쨌는지...]
그 다음으로 이어진 내용은 나랑 존나 상관도 없는 사춘기가 어쩌니 저쩌니하는 내용과 함께 대충 웬 여자가 재수 없게 삿대질하는 사진이 있었다.
씨발, 사춘기라고?
사춘기를 겪을 나이도 아니거니와 애당초 사춘기의 사도 겪어본 적이 없는 나였다. 사춘기도 다 비빌 건덕지가 있어야지 비벼보지, 고아 새끼가 뒈질라고 사춘기를 겪어봤을 리가 없었다.
그야 나도 사람인 만큼 어린 시절에 다소 심란하고 감정적인 시기가 아주 없었던 건 아닌데, 좆같은 고아원의 물리치료 덕에 사춘기의 시옷자도 구경도 못해보고 조기에 나아버린지라 내 인생에서 사춘기란 것은 없어져 버렸다.
보통 그때 흑역사를 잔뜩 만든다고하니 난 그런게 없었으니 오히려 다행인걸까?
아무튼, 사춘기를 겪어본 적도 없었고 내가 원하던 내용이 아니라 빠르게 화면을 터치해서 다시 밑으로 내렸다.
[어머니의 잔소리 때문에 언성을 높이거나 하신 적도, 그래서 후회하신 적도 있지요~?]
릴리스에게 잔소리를 들은 적이 있었던가?
대충 애새끼가 귀를 처막고 비명을 지르는지 쌍욕을 하고 있는지 모를 사진과 함께 그런 내용이 적혀져 있는 걸 보고서 곰곰이 생각했다.
아니, 잔소리를 들은 적은 없었던 것 같은데.
잔소리보단 쌍욕과 함께 정수리를 내리꽂힌 적은 있었지만.
대딸도 받아봤고.
아니, 이게 아니라.
아무튼, 릴리스가 내게 잔소리를 한 적은 없었다. 입보다는 주먹이, 발이 먼저 날아오는 릴리스였다.
아무튼 이것도 아니다.
다시 화면을 밑으로 내리자, 이제야 본론이 나오기 시작했다.
[어머니의 화를 푸는 방법, 첫 번째~! 가벼운 쪽지나 편지 전해드리기!]
편지...?
쪽지...?
전화는커녕 문자도 안보고 있는데 얼어죽을 쪽지랑 편지 타령을 하는 것을 보고서 다시 밑으로 내렸다.
[두 번째~! 어머니가 좋아하시는 음식을 해드리기!]
릴리스가 뭘 좋아했더라.
그냥 다 잘먹었던 것 같았는데.
릴리스가 데려다줬던, 엘프 쉐프가 운영하는 레스토랑에서 먹어본 호화스러운 요리도 그렇고, 내가 했던 콩나물만 잔뜩이었던 밥도 그렇고, 전부 잘 먹었던 릴리스였다.
그 외에도, 내가 차려놓는 음식들도 딱히 별 말 없이 맛있다며 잘 먹는 릴리스였다.
반찬으로 풀밭만 있으면 투덜거리기야 하는데, 그것도 고추장에 슥슥 비벼서 먹을만큼 먹성도 좋고, 입맛이 까다롭지도 않았다.
요리라...
나쁘진 않은 생각인 것 같은데, 이것도 지금은 별 소용이 없을 듯 싶었다.
요리고 자시고 그런걸 할 시간이 없었으니까.
다시 화면을 밑으로 내렸다.
[세 번째~! 어머니가 좋아하시는 선물이나 용돈을 드리기!]
릴리스에게 선물을 주라고...? 아니, 그것보다 내가 릴리스한테 용돈을 주라고...?
릴리스에게 진 빚만 30억인데?
용돈보단 빚부터 갚는게 우선이 아닐까. 애당초 나로선 상상도 하기 힘들만큼 재력이 넘치는 릴리스였다.
재력만이 아니라, 비공인이라고는 해도 세계 정부의 기관, 그 총괄 책임자라는 자리에 앉아있는 릴리스는 하나같이 은퇴해서 은거해버린 다른 스물둘의 영웅들과는 달리 나름대로 권력도 지위도 가지고 있는 존재였다.
그런 릴리스에게 선물이나 용돈이라니.
내 깜냥에 대체 무슨 수로...?
그야 나도 선물은 가치같은 것보단 정성이 중요하단건 아는데.
그 정성을 들일 시간이 없잖는가.
...이건 정답이 아닌 것 같다, 한조야.
더는 볼 것도 없어서 그냥 창을 닫았다.
어쩌지...
나랑 달리 애미가 있을 지식인들이 적어둔 것들일텐데 글을 적어놓은 꼬라지를 보니 애미없던 나보다 애미가 없었다.
아니, 사실 이게 진짜 어머니를 두고 있는 사람들이나 생각할 수 있는 정답인걸까?
아무튼 여기서 얻은 정보들은 지금의 나랑 존나 상관이 없어보였다.
이제 진짜 어쩌지...
고민 끝에, 나는 검색창에 써놓은 질문을 바꿨다.
그리고 떠오른 것을 보고서, 대충 훑어보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차라리 이쪽이 훨씬 나은 것 같았다.
[삐진 여자친구를 달래는 방법 10가지]
그런 제목의 글을 나는 빠르게 읽기 시작했다.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자 방 안이 깜깜했다.
시작부터 느낌이 좋지 않은걸.
일단 불부터 켜자 보이는 릴리스의 신발. 괜스레 안도의 한숨이 나왔다.
다행히 자기 집으로 가거나 하지는 않은 모양이니까.
그랬다면 진짜 좆됐을 텐데.
그야 릴리스가 어디서 사는지야, 나는 전혀 아는 게 없었으니까.
...아니, 그것만이 아니라 릴리스에 대한 걸 아는 것 자체가 별로 없었다.
스물둘의 영웅 중 하나.
이종간지원센터란 이름의, 세계 정부의 비공인 기관은 총괄 책임자.
거기에 엄청난 미인에, 돈도 많고, 힘도 센데다가, 가슴도 큰...
남들도 다 아는 거나 아는 수준에 불과했다.
“......”
지식인의 도움으로 집으로 오기 전에 근처 빵집에서 사온 케이크를 물끄러미 바라봤다. 릴리스가 단걸 좋아하는지조차도 모르는데, 대뜸 이딴거나 사들고 온게 정말로 잘한 짓인걸까.
그나마 알고 있는, 릴리스가 좋아하는 맥주도 한아름 사오기는 했는데.
케이크랑 맥주.
이거 진짜 정답이 맞는 걸까?
알 수 없었다.
알 수 없었지만, 이제와서 도망칠 수도 없었다.
구두를 벗고서, 안으로 들어갔다.
인기척이 없었다.
내가 들어온 소리야 진작 들었을 텐데, 평소랑 달리 밖으로 나올 기미도 보이지 않는 릴리스를 보고서 괜히 속이 쓰렸다.
그러다, 식탁 위에 있는 음식들을 볼 수 있었다.
배달, 시켰다고 했던가.
포장을 뜯지도 않은 채로, 그대로 있는 음식들을 보고서 나는 묵묵히 걸음을 옮겼다.
똑, 똑.
문을 두드렸다.
내 방인데.
노크를 해야 한다는 사실이 조금 이상했지만, 그때 그 일이 있는 이후로는 릴리스가 있는 방에는 일단 노크부터 박고 들어가는 습관이 생겨서 어쩔 수 없었다.
“저 왔어요, 어머니.”
대답이 없었다.
쓰리던 속이 답답하다.
두근두근, 심장이 마구 뛰었다.
뭐지, 부정맥인가.
오늘 무리하기야 했으니까 건강에 무슨 문제라도 생긴 걸지도 몰랐다.
“...저, 들어가 봐도 되죠?”
그렇게 묻고서, 또 릴리스의 대답을 기다려봤다.
대답이 없었다.
“...저 들어갈 거에요? 말했으니까, 멋대로 들어갔다고 화내거나 하지 마요? 아니, 애당초 내 방인데 이게 뭔 짓이야.”
답답한 나머지, 괜히 이상한 소리나 하면서 문고리를 붙잡았다.
그리고 열었다.
릴리스가 있었다.
어두컴컴한 방.
무릎을 끌어안고서, 릴리스가 내 쪽을 보고 있었다.
어두운데도, 선명하게 빛나는 붉은 눈만은 또렷하게 볼 수 있었다.
“...깜짝이야.”
거짓말이 아니고, 진짜로 놀랐다.
문을 열자마자 보인 게 붉게 빛나는 두 눈동자뿐인데 누군들 놀랐을 거다.
“불도 안 켜고 왜 그러고 있어요. 일단 불 켤 테니까...”
“...켜지마.”
불을 켜려는 나에게, 릴리스가 그렇게 말했다.
“키면, 진짜 용서 안 할 거니까. 거기서 다가오지도 말고.”
“...네, 네. 그럼 그럴게요.”
릴리스의 말에, 그냥 그렇게 하기로 했다.
내가 본 거기선, 말을 잘 들으라고 적혀져 있었으니까. 아니, 그게 이런 뜻으로 한 말이 아니었던 것 같기는 한데.
그렇다고 하지말라는걸 해서 더 화를 돋울 이유도 없었다.
그렇게 한참을.
어두컴컴한 방 안에서, 릴리스를 바라봤다.
어둠에 차츰 익숙해져 가자, 흐릿하게나마 릴리스의 모습이 보였다.
또.
나는 입 밖으로 나오려던 말을 삼켰다.
“......”
그렇게 말을 삼키자, 안 그래도 답답했던 가슴이 더욱 숨 막히듯 무거워진 기분이 들었다.
불을 켜지 말라고 했던 릴리스의 말의 이유.
그 이유를 알게 되어버려서, 그저 망부석처럼 서 있었다.
“...왜, 답장 안 했어? 전화는 또 왜 안 받고?”
그런 나를 보며 릴리스가 물었다.
변명하지 말랬지.
사과하는 것도 자제하고.
그럼 어쩌란 거지?
존나 난이도가 높지 않나, 이거?
이렇게 하면 용서받을 수 있다고? 진짜? 말이 되나 이게?
하지만, 씨발.
그렇다고 내게 무슨 다른 방법이 있는 것도 아니니, 솔직하게 말하기로 했다.
“자고 있어서 못 들었어요.”
“......”
“......”
침묵이 내려앉았다.
빤히 나를 쳐다보는 릴리스의 시선이 존나 어이가 없다는 듯이 변한 것이 느껴졌다.
“자, 잤다고... 그걸 나보고 믿으라고...?”
“진짠데...”
이건 진짜 거짓말도, 변명도 아닌 사실이라서 못 믿으면 좀 억울해질 것 같았다.
다시 침묵이 내려앉았다.
이번에는 조금 다른 분위기의 침묵이었지만.
뭐라고 해야 할까, 릴리스의 기세가 처음과 달리 무척이나 바뀐 기분이 들었다.
“아, 그래. 그 염소년이랑 붙어있다가... 시간 가는 줄도 몰랐다는 거구나. 나한테 연락하겠다는 말도 깜빡 잊고, 잠이나 퍼자고 있을 정도로. 난 호아란, 그 여우 년이 뭔 짓이라도 한 줄 알았는데, 염소년이었나보네. 흐응, 그래. 그렇구나.”
하지만 그것도 잠시, 다시금 팍하고 무거워진 분위기가 덮쳐왔다.
...이것도 말해야 되나?
거짓말하지 말라고 했으니까?
아니, 진짜 이게 맞는 거 맞아?
잠깐 내적 갈등이 있었지만, 어차피 이렇게 된 거 그냥 그대로 밀고 가기로 했다.
“사실 걔랑은 별로 오래 있지 않았고요. 그게...”
나는 릴리스에게 사실을 털어놨다.
깜빡하고 별생각도 없이 사티로스를 가둬두고 있던 방문을 열어버렸다가 사티로스 년한테 덮쳐졌던 거를 시작해서, 어찌저찌 벗어나긴 했는데 그년 뱃속에서 꼬르륵대는 소리에 나도 모르게 그냥 한 번 해주기로 한 것, 근데 씨발 그게 어쩌다 보니 다섯 번이 되어버린 것까지.
더군다나, 거기에 이어서 에일레야한테 쪽 빨렸다가 결국 뻗어서 잠에 든 것까지 전부다.
그런 내 이야기를 묵묵히 듣고 있던 릴리스가, 눈을 감았다.
“후우...”
그리고 한숨을 내쉬고서, 다시 눈을 뜬 릴리스의 붉은 눈동자가 나를 바라봤다.
“야.”
“네.”
“너 혹시 병신이야?”
그렇게 묻는 릴리스의 말에 뭐라 할 말이 없었다.
“...잠깐 나가 있어봐.”
그런 릴리스의 말에 아무 말도 못하고 가만히 서있는 나를 보더니, 대뜸 그렇게 말하는 릴리스.
이유야 이미 알고 있었기에 가타부타 말꼬리를 잡지 않고그냥 방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 쭈그려 앉아서는 이름 모를 지식인에게 감사를 표했다.
말대로 따르니까 정말로 릴리스의 화가 풀렸으니까.
몬가...
몬가 좀, 내 평판이 깎여나간 것 같은 기분이 들지 않은 것도 아니지만. 그딴 게 뭐가 중요한가.
릴리스가 화를 풀었다는 것만이 중요했다.
“하, 진짜... 어이가 없어서...”
이내 방문을 열고서 나온 릴리스가 그렇게 중얼거리며 머리를 벅벅 긁다가 쭈구려 앉아있는 나를 보더니, 퍽하고 발로 내 엉덩이를 걷어찼다.
아프진 않았다.
그래도 괜히 아픈 척하는 나를 보며 릴리스가 말했다.
“이 씹새. 괜히 걱정이나 시키고.”
화가 풀린 릴리스를 보니, 이젠 그 말대로 안 해도 되겠지.
“죄송해요.”
“...됐어. 그보다 그건 다 뭐야?”
내가 들고 있는 케이크 박스랑 맥주 봉투를 보며 묻는 릴리스에게 내가 대답했다.
“음... 혹시, 어머니. 단 거 좋아하세요?”
다행히도 릴리스는 단 걸 좋아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