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6화 〉 드리아데스 아리아드 (2)
* * *
“나야아 언제나처러엄 잘 지냈지이. 변함없는 햇빛을 쬐고오, 덧없는 시간을 보내며어. 내 자매들과 함께에 말이야아.”
“그래?잘 지냈나 보네.”
아리아드가 이름인가.
그렇게 생각했을 때, 아리아드라고 불린 여자가 나를 바라봤다.
“그쪽도 미안해애, 작은 인간 꼬마야아. 내 동생들이 겁먹게 했구나아. 무서웠니이?”
동생들...
저 요정들이 동생들이라면, 아리아드도 요정이라는 건가?
그야 닮기는 했는데.
요정들은 모두 어린 아이 같은 모습이라고 들었었는데.
“으응? 왜 그러니이?”
나를 보며 고개를 갸우뚱하는 아리아드.
덕분에 출렁이는, 고작 해봐야 나뭇잎으로 가려진 젖가슴이 보였다.
다른 요정들과 달리 아리아드는 아무리 봐도 아이라고 할 수가 없는 외모를 하고 있었다. 어딜 가도 거유라는 소리를 들을 릴리스마저도 몇 수는 접어줘야 할 만큼 압도적인 젖가슴이 있었으니까.
미노타우로스 암컷, 그중에서도 홀스타인, 젖소라고도 불리는 미노타우로스의 뺨을 후려갈길만한 젖가슴이.
저런 가슴을 출렁거리고 있는 아리아드가 대체 어딜 봐서 저기 보이는 다른 요정들이랑 똑같은 요정이라고 생각할 수 있을까?
가슴만이 아니라 엉덩이나 허벅지도 장난 아니었다.
아리아드가 정말로 요정이라면 혼자서 요정의 평균을 아득하게 높이고 있지 않을까?
하지만 옆에서 날 보는 릴리스의 심기가 불편해져 가는 것이 느껴져서 내 발등의 안위를 위해 서둘러 고개를 내저으며 말했다.
“아뇨, 아무것도 아닙니다. 게다가 그렇게 무섭진 않았고요.”
“그래애? 그럼 다행이네에. 그보다아...”
스윽, 아리아드가 시선을 옮기자 순식간에 자라나는 나무들이 탁자와 의자들을 만드는 것이 보였다.
“오랜만의 손님들인데에, 대접을 해줘야겠지이. 릴리스으, 그리고 작은 인간 꼬마야아, 편한 대로 앉아도 좋아아.”
“고마워, 아리아드.”
아리아드의 말에 선뜻 자리에 앉는 릴리스에게 요정들이 어디선가 찻잔과 주전자를 머리 위로 들고서 나타났다.
그리고 쪼르륵, 릴리스에게 주홍빛의 액체를 따라주는 것이 보였다.
차?
아니, 그건 아닌데.
여기서까지도 달짝지근한 향기가 풍겨오는 것을 보니 차는 아니었다.
“오늘 새벽에 갓 짜낸 수액이라 맛이 좋을 거야아. 인간 꼬마야아, 너도 앉아서 마셔보려엄?”
“수액이요?”
갓 짜낸?
어디서?
내가 아리아드를 쳐다보자, 그런 내 시선에 미소 지으면서 풍만한 젖가슴을 그러 모으는 아리아드가 보였다.
설마 저기서 짜낸 건가.
“...네가 생각하는 그런 거 아니니까 빨리 자리에나 앉아. 그리고 아리아드, 너무 장난치지 말아 주겠어? 쟤가 이상한 생각하잖아.”
장난이라고?
그런 릴리스의 말에 아리아드가 키득거리며 말했다.
“어머나아, 미안해애. 릴리스으. 네가 인간 꼬마야를 데리고 오는 건, 아니지이, 누군가를 데려오는 건 처음이라서 나도 모르게 그마안.”
진짜 장난이였다고.
뭐야, 돌려줘요. 내 맘마.
“야.”
귓가에 들려온 릴리스의 짜증이 섞인 목소리.
그런 릴리스의 목소리에 이러다가 진짜 화낼 것 같아서 냉큼 자리에 앉자, 요정들이 내 몫의 수액을 가져다주는 것이 보였다.
얘네들이 방금까지 날 보면서 침을 질질 흘리던 그 녀석들이 맞나?
아니, 애당초 아리아드랑 얘네들이 자매가 맞기는 한 건가?
녹색 머리카락인걸 제외하면 전혀 안 닮았는데.
전체적으로 몸매가 전혀 딴판이다.
얘네는 하나같이 도마가 나란히 서 있는 것 같은데, 아리아드는 특대 항아리니까.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맞은 편에 앉은 아리아드가 다리를 꼬며 말했다.
“그러엄, 릴리스으. 어쩐 일로 여기에 왔는지 물어봐도 좋을까아? 이런 이른 아침부터 네가 일어나서 나를 찾다니이 상상도 못했거드은.”
스윽, 나를 쳐다본 아리아드가 말했다.
“호옥시, 너랑 같이 온 저 인간 꼬마와 관련된 일이려나아?”
“그래, 맞아.”
“헤에에?”
“뭘 헤에야? 맞다니까. 쟤 때문에 찾아온 거.”
“그냐앙, 의외라서 그랬지이. 네가 솔직하게 무언가를 밝히는 경우가 드무니까아. 인간 꼬마야아, 릴리스랑 대체 무슨 사이인지 물어봐도 좋을까아? 혹시이...?”
재미있다는 듯이 나를 쳐다보는 아리아드.
싱글거리는 미소를 띤 채로 묻는 아리아드를 보고서 나는 릴리스를 쳐다봤다.
말해도 되나? 그렇게 묻는 내 시선에 릴리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말해도 돼. 저 녀석도 일단... 내 친구니까.”
“어머나아, 기쁜거얼. 나를 친구라고 말해주다니이. 대체 그 얼음 같은 릴리스를 누가 이렇게 솔직하게 만든 거지이?”
“시끄러워.”
투덜거리는 릴리스가 보였지만, 내 눈에도아리아드나 릴리스나 서로 친해 보이긴 했다.
호아란과 릴리스가 서로 투닥거리는 친구 같은 느낌이라면 아리아드와 릴리스는 장난기가 많은 언니와 여동생 같은 느낌이긴 했지만.
아무튼 말해도 된다고하니 말하기로 했다.
나는 아리아드를 보며 살짝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얼마 전에 릴리스의 양자가 된 강 한조라고 합니다.”
“양자아?”
고개를 갸우뚱하며 되묻는 아리아드에게 릴리스가 퉁명스레 말했다.
“내 아이라고.”
“...아이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서 나와 릴리스를 번갈아 보던 아리아드가, 이내 키득거리며 웃더니 릴리스에게 말했다.
“어머나아, 정말로 그것뿐이니이?”
“...무슨 의미야?”
“아니, 아무것도 아니야아. 그래, 그렇구나아. 아이라아... 대충은 어떻게 된 건지 알 것도 같네에.”
그렇게 중얼거리던 아리아드가 키득거리며 말했다.
“외로웠구나아, 우리 귀여운 릴리스으.”
“그런 거 아니거든?! 야, 이상한 소리하면 나 그냥 간다?”
“미안, 미안해애. 모처럼 왔잖아아? 좀 더 있어주라아.”
아니.
뭔가 좀 이상한데.
릴리스가 아리아드의 도움이 필요해서 여기까지 온 거 아니였나? 어째 정작 매달리는 건 왜 아리아드가 되는 건지 도통 모르겠다.
“아무트은, 그래애... 내가 뭘 도와주면 될까아? 릴리스으.”
드디어 본론이 나오는구나, 그렇게 생각했을 때 릴리스가 입을 열었다.
“이 녀석, 기프트가 생긴 모양인데 내가 봐선 전혀 모르겠거든. 좀 알아봐 줄 수 있겠어?”
“기프트라아.”
나를 보던 아리아드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 정도야 뭐어, 아주 쉬운 일이지이. 하지마안, 릴리스으. 아무리 너랑 나 사이라도 마땅한 대가가 필요해애. 알고 있지이?”
“그래. 뭘 원해?”
손가락을 까딱거리는 아리아드를 보고서, 릴리스가 귀찮다는 표정을 지으며 그런 아리아드에게 다가갔다.
소곤소곤.
다가온 릴리스의 귓가에 속삭이는 아리아드.
“이, 미친년이. 야, 나랑 장난쳐?”
“그치마안, 모처럼이잖니이?”
“모처럼이고 지랄이고, 이 썅년아!”
대체 뭔데 저러는 거야.
“알겠어어, 그대신에 내 수액도 덤으로 줄테니까아. 그럼 괜찮지이?”
수액?
아리아드의 수액?
왠지 들려온 무척이나 흥미가 돋는 소리에 내가 귀를 쫑긋거렸다. 아리아드의 제안이 릴리스에게도 뭔가 혹한 것인지 끄응, 하고 고민하는 릴리스가 보였다.
“...아무리 그래도.”
“아, 혹시 벌써 한 거니이? 그럼 대가를 바꿔야 겠는데에.”
“아직 아니거든 이 미친년아?!”
하다니 뭘?
“...후후, 아직이구나아. 그래애?”
“...입 닥쳐, 아리아드.”
“그래애, 그래서어 어쩔래애 릴리스으?”
잠깐 고민하던 릴리스가 한숨을 내쉬고는 입을 열었다.
“......좋아, 단 아직은 멀었으니까 좀 기다려.”
“나야아 언제든지이 기다릴 수 있지이. 언제나처럼, 이곳에서 기다리고 있을 테니까아.”
“빌어먹을 변태년.”
대체 뭘 주고받고 한 거길래 릴리스의 입에서 변태년 같은 소리가 나온 거야.
나도 좀 알려줬으면 좋겠다.
“그러엄, 계약은 끝났으니이. 인간 꼬마야아, 이리오려엄.”
“저요?”
릴리스를 보자, 말을 따르라는 듯이 턱짓하는 릴리스가 보였다.
그렇다니, 뭐.
내가 자리에서 일어나 아리아드에게 다가가자, 그런 나를 보고는 아리아드가 말했다.
“조그음, 따끔할 거란다아?”
“따끔이요?”
그렇게 묻는 순간, 갑자기 존나 손가락이 따끔했다.
“악, 씹...!”
조금 따끔할 거라며!
깜짝 놀라서 손을 들어 올리자, 웬 끝이 존나 뾰족한 나무가 내 손가락에 구멍을 내놓은 것이 보였다.
작은 구멍이었고, 무슨 짓을 한 건지 순식간에 뚫려있던 구멍이 메워졌지만 나무줄기의 끝에 맺힌 핏방울을 보아하니, 저게 내 손가락의 순결을 앗아간 것이 틀림없었다.
“흐음? 으응?”
고개를 이리저리 꼬던 아리아드가, 이내 입을 열었다.
“정말로, 이 인간 꼬마야가 기프트가 있는 게 맞니이? 릴리스으?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는 거얼?”
“뭐? 아니, 그럴 리가 없...”
말하다가 말고서 나를 쳐다보는 릴리스.
이 새끼 설마, 하는 표정을 짓는 릴리스를 보고서 나 역시 이새끼 설마하는 표정을 지으면서 내 하반신을 바라봤다.
그런 나를 보더니 릴리스가 말했다.
“아이, 씨발. 이 변태 새끼야. 대체 어떤 기프트길래...!”
“아니, 내가 원해서 이런 게 생긴 것도 아닌데 왜 저한테 그래요?”
“네가 변태 새끼니까 기프트도 그 모양인 거 아니야? 아니, 어떻게 아리아드가 감지를 못하지? 존나 말도 안 되는데. 이 개 변태 새끼.”
“무슨 소리니이? 나 따돌리면 슬퍼어.”
내 잘못도 아닌데 변태니 뭐니하는 릴리스와 그런 릴리스와 나를 보더니 따돌리지 말라는 아리아드까지.
잠깐 소란이 있었지만, 결국 릴리스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잠깐 좀 기다려봐, 아리아드.”
그렇게 말하며 자리에 일어난 릴리스. 그런 릴리스를 보며 아리아드가 고개를 갸우뚱하더니 말했다.
“으응? 그래애, 기다리는 건 익숙하니까아.”
뭔데 저러지, 싶었는데 그런 나를 보며 릴리스가 말했다.
“그리고, 너. 나 따라와 봐.”
“네?”
갑자기 왜?
“따라오라면 따라와...!”
“넹.”
릴리스의 말에 몸을 일으키고서 아리아드를 보며 말했다.
“그럼 잠깐 실례할게요.”
“그래애, 무슨 일인지는 모르겠지마안 다녀오려엄, 인간 꼬마야아.”
아리아드의 대답에 이미 저만치까지 혼자 걸어간 릴리스를 뒤쫓자, 우뚝 선 릴리스가 나를 바라봤다.
“갑자기 뭔데요?”
그렇게 물었지만, 릴리스는 주변을 둘러보다가 이내 손가락을 튕겼다.
뭐지.
그렇게 생각했는데, 나랑 릴리스의 주위로 무언가 반투명한 막 같은 것이 쳐진 것이 보였다.
“뭐에요, 이건?”
“차폐막. 이거라면 아리아드도 보지 못할 테니까.”
보지 못한다고?
근데 그걸 왜?
그런 생각을 하며 릴리스를 쳐다보자 릴리스가 그런 내 시선에 입을 열었다.
“...뭐해? 빨리 안 세우고.”
“네?”
갑자기?
여기서?
“미쳤어요?”
“어차피 밖에서는 안 보여.”
“아니, 아무리 그래도.”
내가 여기서 아리아드가 훤히 보이는데, 여기서 세우라고?
“설 리가 없잖아요. 이 미친 어머니야.”
“뭐, 미친 어머니?”
“제가 뭐 틀린 말 했어요? 아니 집도 아니고 여기서 세우라니. 장난해요?”
쁘득, 하는 소리가 들렸다.
그 소리에 아차, 했지만 이미 때는 늦어버렸다.
“...서면 어쩔 건데?”
붉게 빛나는 눈동자.
릴리스가 나를 보더니 그렇게 말했다.
“...아니, 안 선다니까? 내가 무슨 진짜 개 변태 새끼인 줄 아세요? 나도 사람이에요, 사람!”
릴리스의 시선에 조금 쫄렸지만, 할 말은 해야 했다. 그런 내 말에 릴리스가 입을 열었다.
“...그래서, 서면 어쩔 건데?”
불안하게시리 왜 거듭해서 묻는 건지 모르겠지만.
안 되는 건 진짜 안되는 거였다.
나한텐 노출증 같은 성벽은 없었으니까.
“여기서 세우면 내가 개 변태 새끼인 거 인정할게요.”
“그래? 그거랑 또 뭐?”
뭔 또야.
“너 개 변태 새끼 맞잖아. 그걸 인정해봤자 똑같은데, 그거랑 또 뭐 할 건데?”
아니.
이건 좀 자존심이 상하는데...?
그렇게 생각했을 때, 그런 나를 보며 릴리스가 말했다.
“정말로 안 선다면, 그래... 네가 어제 그렇게 원하던 거, 집에 돌아가서 해줄게.”
어제? 내가 원하던거라면...
...이건 못 참겠다.
솔직히 내가 변태 새끼라는 건 인정한다. 변태 새끼가 아니라고 하기엔 내 양심이 버젓하게 살아있어서 못했다. 근데 내가 개 변태 새끼인 건 인정할 수 없었다.
그럼 사티로스, 그 썅년이랑 동급이 되잖아.
내가 아무리 그래도 그 정도는 아니었다.
더군다나, 이기면 릴리스의 펠라치오는 못 참...
잠깐만, 이거 어디서 많이 본 흐름인데...?
아니다, 그래도 내겐 방법이 있었다.
“좋아요. 대신 저한테 손가락 하나 안 건드는 조건으로. 당연히 마법도 금지고요.”
아무리 릴리스라고 해도 나를 건들지도 않고, 마법도 쓰지 않고선 아무것도 못 할 수밖에 없었다.
이건 어떠냐?
“그래? 그거면 되겠어?”
아니, 불안하게 시리 왜 이렇게 자신감이 넘치지...?
하지만 아무리 릴리스라고 해도 이건 진짜 안 되는 일이었다.
“어디 한 번 해봐요.”
“그으래...?”
설마 손도 안 대고, 하물며 마법도 안 쓰고 뭘 할 수 있을까 싶어서 릴리스를 쳐다봤다.
그런 내 눈에 치마 끝자락을 붙잡는 릴리스가 보였다.
아니, 잠깐만.
닥쳐올 미래를 알면서도 막을 수가 없었다.
눈을 감아버리면 그만인데, 감을 수가 없었다.
아니, 씨발 이걸 어떻게 감으라고.
그리고 그런 내 눈에, 들어 올려진 치마와 함께 그 밑으로 보이는 순백의 팬티가 보였다.
옷도 소녀틱하게 입더니, 속옷도 그렇게 한걸까.
평소의 릴리스의 이미지랑은 전혀 다른, 티끌 하나 묻지 않은 새하얀 팬티에 숨을 들이켰다.
순백의 팬티, 그리고 그 팬티 사이를 가로지르는 굴곡이.
도저히 눈을 감을 수 없게 했다.
함정인데.
이러면 안되는데.
알면서도 할 수가 없었다.
스읍...♡
그런 팬티에 얼룩이 생기는 것이 보였다.
뭐지 저건하고 생각하던 찰나에 스윽, 다시 모습을 감춰버린 팬티와 함께, 멍한 시선을 차마 옮기기도 전에 릴리스가 그런 내 멱살을 잡아당겼다.
끌어 당겨져서, 마주친 릴리스의 붉은 눈동자.
그 붉은 눈동자에 얼굴이 시뻘게진 내 모습이 비쳐 보였다. 정작, 그런 내 모습을 담고 있는 붉은 눈동자의 주인인 릴리스 역시도, 조금 얼굴이 발갛게 물든 것 같아 보였지만.
그런 나를 바라보면서 릴리스가 입을 열었다.
“...잘만 서는데? 이 개 변태 새끼야♡”
내뱉어진 릴리스의 숨결에서 어쩐지 달콤한 향기가 났다.
이건 씨발 반칙이야.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내 패배를 인정하기로 했다.
개 변태 새끼도 할 만 한 것 같은 기분이었으니까.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