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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족 전용 남창이 되었다-40화 (40/523)

〈 40화 〉 드리아데스 아리아드 (6)

* * *

“미안해애, 미안하니까아... 용서해주라아? 으응? 릴리스으으...”

땅에 파묻힌 채 머리만 내놓은 아리아드의 말에 릴리스가 흥하고 고개를 돌려버리는 것이 보였다.

“릴리스으...”

그런 릴리스를 보며 머리만 내밀고서 눈물을 글썽거리는 아리아드.

조금 전에 저 아리아드의 젖가슴에 파묻힌 채로 질식해서 죽을 뻔했던 나조차도 애처롭게 보일 정도로 불쌍해 보였다.

아리아드가 이런저런 말을 걸어봐도 철저하게 외면하니까 울상이 된 아리아드가 입을 열었다.

“그, 이번 거언 내가 실수한 거니까아... 그러니까아, 이번에는 대가 같은 것도 치르지 않아도 돼니까아, 으응?”

그런 아리아드의 말에 스윽, 하고 다시 고개를 돌린 릴리스가 아리아드를 바라봤다.

화악, 드디어 자신을 보는 릴리스를 보며 밝아진 아리아드의 표정이 이어지는 릴리스의 말에 다시금 어두워졌다.

“그리고?”

“그리고오...?”

“그건 양심이 있으면 당연히 해야 하는 거고. 쟤한테 한 짓은 어떻게 할 건데? 애당초, 이 썅년아. 나보다는 얘한테 사과해야 하는 거 아냐? 나도 좆같지만, 쟤는 더 좆같았을 건데?”

“그, 좋아했던 것 같았는데에...?”

“뭐?”

“아니, 아무것도 아니야아...”

그런 릴리스의 모습에 속으로 절로 이런 소리가 나왔다.

마망...

입 밖으로 내면 릴리스가 싫어할 테니까 참았지만.

아무튼, 자신이 당한 것보다 내 생각을 먼저 해주는 릴리스에 감동하고 있을 때 릴리스가 말했다.

“그러니까, 그거랑 별개로 뭔가 더 내놓아야지. 안 그래?”

아니, 그냥 아리아드한테 더 뜯어내려고 그러는 것 같기도 하고.

계속 감동해야 할지 아니면 짜게 식은 표정을 지으면서 릴리스를 바라봐야 할지 모르겠다.

끄응, 앓는 표정을 짓던 아리아드가 말했다.

“수, 수액, 줄 테니까아...”

“그건 원래 받기로 했던 거고. 그거랑 또 뭐?”

나도 당해봐서 아는 건데 릴리스의 그거랑 또 뭐 줄 건데 압박감이 장난이 아니었다.

차라리 뭘 달라고 콕 집어서 말하면 몰라도, 대체 뭘 어떻게 해야 만족할지 예측하기 힘들다고 해야 할까...

자기도 모르게 일단 냅다 지르고 보게 만든다고 해야 하는 것이 좋을 것 같았다.

뭘 줘야 할지 모르겠으니까, 일단 가진 것 중에서 가장 가치가 있는 걸 알아서 갖다 바치게 하는 화술을 구사하는 것이 릴리스였다.

마치 신하에게 조공을 받는 여왕처럼.

위에서 오랫동안 군림해온 자 특유의 오만함이 표정이나 몸짓, 어투에 녹아있었다.

저건 어디서 배운 걸까, 아니면 저런 게 익숙한 삶을 살아왔던 걸까.

나야 릴리스가 과거에 어떤 일을 하던 사람이였는지 아는 바가 전혀 없었지만, 적어도 평범한 삶을 살았던 것은 아니라는 것쯤은 알 수 있었다.

애당초, 릴리스만큼 강한 존재가 평범했을 리도 없고.

“그래서, 그거랑 또 뭐 줄건데. 아리아드?”

그리고, 그런 릴리스의 말에 한참을 고민하던 아리아드가 입을 열었다.

“그, 이거언 어때애? 이번에 열린 건데에...”

그렇게 말하는 아리아드와 함께 릴리스의 앞으로 나무 줄기가 뻗어왔다.

분홍빛의 열매를 달고서.

뭔가 맛있어 보이는 열매긴 한데, 고작해봐야 열매로 뭐 어떻게 되는 걸까 싶었는데 그런 열매를 본 릴리스가 고개를 끄덕이고는 말했다.

“그래, 이 정도는 해줘야 진짜 사과지.”

휙, 하고 낚아채듯이 나무줄기로부터 열매를 빼앗다시피 한 릴리스가 대뜸 그 열매를 내게 내밀었다.

“자, 이거 먹어.”

“뎃?”

“몸에 좋은 거니까 먹으라고.”

이미 아리아드의 수액 때문에 개고생을 한 덕분에 좀 찝찝한데...

그래도 지금은 릴리스도 있으니까 일단 받기는 했다.

제대로 빡친 릴리스가 얼마나 강한지도 충분히 알았고.

아리아드를 일방적으로 두들겨 패다가 그대로 땅에 꽂아 넣어버릴 정도로 강한 릴리스가 옆에 있는데 딱히 무서울 게 뭐가 있을까 싶었다.

애당초 딱히 아리아드의 수액이 문제라기보다는, 갑자기 폭주한 아리아드 쪽이 문제였던 것이기도 했고.

그래도 여전히 조금 찝찝해서 릴리스를 보며 내가 물었다.

“이거 정말로 먹어도 돼요?”

“먹으라면 먹지 뭔 말이 그렇게 많아? 이상한 건 아니니까 걱정하지 말고 먹어.”

그렇게 말하는 릴리스를 보고서 한 입 크게 열매를 베어 물었다.

아삭, 아삭.

아리아드의 수액만큼이나 달달한 과즙이 입안 가득 퍼졌다.

그렇지만 딱히, 아리아드의 수액 때처럼 몸에 활력이 돌거나 몸이 뜨거워지거나 하는 일은 없었다.

좀 시간이 걸리는 타입인가 싶었는데,

“......?”

열매 하나를 다 먹을 때까지 딱히 별일은 없었다.

“그래서 이게 뭔데요? 맛이야 좋은데.”

씨앗만 덜렁 남아버린 열매를 손에 들고서 그렇게 묻자, 릴리스가 말했다.

“뭐긴 뭐야, 저년의 본체가 맺은 열매지.”

“본체요?”

본체.

그러니까 진짜 몸?

내 시선이 아리아드를 향했다.

존나 커다란 가슴이 눈에 들어왔다.

그래, 저게 진짜일 리가 없지.

세상에 저만한 가슴이 어떻게 존재할 수 있을까 싶었는데 다 가짜였던 거다.

그래, 그런 거겠지하는 수긍과 사무치는 배신감이 몰려들고 있는데 그런 나를 보며 릴리스가 말을 이었다.

“아니, 본체라고 하기엔 좀 애매하겠네. 거기서 태어났을 뿐이지, 정말로 본체인 건 아니니까. 뭐, 그쪽이 죽어버리면 아리아드도 죽어버리긴 하지만.”

그러고 보니 그런 이야기를 어디서 들어본 적이 있던 것 같았다.

요정은 자연에서 태어나는 것이라고.

나무에서 태어나면 나무의 요정, 돌에서 태어나면 돌의 요정하는 식으로.

마나가 잔뜩 깃들어있는 자연물에서 태어나는 생명, 그것이 바로 요정이라는 이야기를.

그러니까, 내가 방금 먹은 열매가, 아리아드가 태어난 나무의 열매였던 걸까?

그리고 저 가슴이 가짜가 아니고 진짜고?

“아리아드는 무슨 나무에서 태어났는데요?”

“지금 네가 보고 있잖아.”

보고 있다니.

뭘?

그야 나무야 주변에 잔뜩 있었다.

식물원이니까 당연한 일이었다.

사방이 나무들로 가득했으니까. 이제보니 전부 한 종류의 나무처럼 보이는 건 조금 특이하긴 했지만... 뭐, 그런 식물원인가보지 하고 납득했다.

근데, 그래서 저 나무 중에서 대체 뭐가 아리아드가 태어난 나무인데.

그렇게 물으려고 할 때, 아리아드가 입을 열었다.

“여기에 있는 모든 나무우, 아니이, 이 나무 하나가아 우리가 태어난 나무란다아. 내가 살아가고 있던 세상에서언... 세계수라고 불리던 나무지이.”

세계수...?

세계수라고?

내가 아는 그 세계수?

“뭐, 신화에서나 나오는 아홉 세상에 가지를 뻗친다니 뭐니하는 그런 세계수는 아니지만. 한 뿌리에서 계속해서 자라나면서, 결국에는 거대한 숲을 이루는 나무일 뿐이야. 시간만 있다면 결국 세계를 덮어버릴 정도로 자라날 수도 있겠지만... 보통은 불가능하지.”

결국은 그냥 나무니까.

“누가 뿌리를 뽑지 않는 이상 죽는 일이 없다시피할 정도로 수명이 길다 보니까, 오래 묵다 보면 쌓인 마나 때문에 아리아드 같은 요정이 종종 태어나고는 하지만 말이야.”

그렇게 말하는 릴리스의 말이 있었지만, 여전히 조금 머리가 멍했다.

나는 여전히 씨앗만 덜렁 남아버린 열매를 보다가 릴리스에게 말했다.

“아무튼, 내가 세계수의 열매를 먹은 거라고요?”

“네가 생각하는 그런 건 아니라니까?”

“아무튼요.”

“뭐... 그렇지. 이름만 세계수인 거고, 그쪽 세상에서 넘어왔을 때 대부분은 망가져 버려서 남은 건 겨우 이 식물원만한 크기 정도뿐이지만.”

세계수의 열매.

이름만 들어봐도, 개쩌는 영약 같은 느낌이었다.

“그래서 이거 효능이 뭔데요? 이제 저도 막 검기라도 뽑아내고 그러는 거예요?”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겠는데, 그런 효과는 없거든? 그랬으면 너한테 안 주고 내가 먹었겠지.”

“아니, 이미 강하면서 뭘 또 더 강해지려고.”

“더 강해져서 나쁠 건 없으니까.”

그건 그렇지.

하지만 덕분에 좀 실망스러웠다.

하지만 이어지는 릴리스의 말에 실망한 걸 취소하기로 했다.

“뭐, 그래도 수천 년을 살아온 세계수야. 이름만 세계수라고는 했지만, 정말로 평범한 나무였으면 그런 거창한 이름조차 붙여지지 않았겠지. 지금은 많이 약해지기는 했지만, 그래도 한때는 세계의 반을 덮었다는 세계수라고 했고. 아리아드 정도의 요정이 태어났을 정도의 나무니까 원래는 엄청났을걸?”

세계의 절반을 뒤덮었다고.

도저히 상상이 가질 않았다.

내가 본래 살았던 세상의 지구도 어마어마한 크기인데, 그걸 하나의 나무가 반이나 덮어버린다면.

그게 대체 세계수가 아니고 뭐라고 불러야 한다는 걸까.

아리아드가 있었던 세상에선 그야말로 세계수, 그 이름대로의 위상을 갖고 있었어도 이상할 건 없었다.

어쩌면, 신적인 무언가로 여겨졌을 가능성도 있을 테고.

아니, 분명 그랬었겠지.

근데, 그걸 고작 나무이라고 말하는 릴리스의 감상은 범인의 것은 아니었다.

“아무튼, 아리아드의 수액도 귀한 편이긴 하지만, 네가 먹은 열매보단 못할걸? 잘 흡수만한다면 네가 상상하던 것처럼 검기도 뽑아댈 수는 있겠네.”

뭐?

내가 검기를 뽑는다고...!

릴리스의 말에 내가 기대를 가득 담고서 릴리스를 쳐다봤다. 그런 나를 보며 릴리스가 짓궂은 표정을 지으며 말을 이었다.

“근데 너 심법이니 뭐니하는 것들 하나도 모르잖아?”

아.

줬다 뺏는 것도 아니고, 들었다가 놨다하는 릴리스를 빤히 쳐다보자 그런 내 시선에 피식, 웃은 릴리스가 말했다.

“그래도, 뭐... 수명이 좀 늘어나는 정도는 하겠지.”

“수명이 늘어난다고요?”

내 수명이 복사가 된다고?

“얼마나요? 얼마나 늘어나는 건데요?”

“...글쎄, 나야 잘모르겠는데. 야, 아리아드. 얼마나 늘어나는 거야?”

“대추웅 10년 정도밖에는 안 될 거얼? 올해 열린 열매니까아, 아직 뿌리를 그렇게 넓게 뻗친 게 아니거드은.”

“뭐, 그렇다네.”

아리아드의 대답에 어깨를 으쓱이는 릴리스. 그런 릴리스를 보다가, 나는 씨앗만 남은 열매를 입에 넣었다.

“...뭐하냐?”

“몸에 좋은 건데, 전부 먹어야죠.”

우득, 우드득하고 꼭꼭 씹어서 꿀꺽 삼키자, 무슨 미친놈 보듯이 나를 보는 릴리스가 보였다.

“그거 먹어도 과육보단 훨씬 못할 텐데? 게다가 그거 시약의 재료로도 쓸 수 있으니까 가져다가 팔았으면 몇백은 했을 텐데.”

아니, 씨발.

그걸 먼저 말했어야지...!

내 돈!

아니다, 실망하지 말자.

못하다고 했지, 효과가 없다고는 안 했고.

결과적으로 내 수명이 10년이나 복사됐다고 하니까. 씨앗이 효과가 덜하다고는 해도 1년은 더 늘어났겠지 싶었다.

내가 대체 얼마나 살지는 모를 일이었지만. 적어도 갑자기 요절해버리는 일은 없어진 내가 배를 어루만지고 있으려니 릴리스가 아리아드를 보며 말했다.

“근데 하나는 너무 적은데? 아리아드, 더 있지? 몇 개 더 내놔봐.”

“뭐어...? 그러언... 이번에 열린 열매도 얼마 되지 않는 거얼...?”

“어차피 계속 열리는 거잖아? 확, 용서 안 해준다?”

“그건, 더 싫은 데에... 히이잉...”

결국, 릴리스가 아리아드에게서 강탈하다시피하며 착취한 친구비로 세계수의 열매가 두 알이 더 생겼다.

세계수의 열매를 손에 들고 있는 릴리스. 그런 그녀를 내가 빤히 쳐다봤다.

“...뭘 봐? 이건 따로 쓸 거니까 탐내지 마.”

“하나만, 아니 반개만 더 주시면 안 돼요?”

“지랄하지 마. 여러 번 먹는다고 효과가 있는 것도 아니거든?”

“아, 그럼 됐어요.”

추가로 수명이 복사되는 게 아니라면야, 굳이 탐낼 필요는 없었다.

“아니, 근데 생각해보니까 너무 오래 살아도 개고생이나 할 것 같은데.”

딱히 예전부터 몸이 어디 아프거나 한 적도 없었고, 이미 무병장수한다고 하는 엘릭서까지도 세 병이나 마셨는데, 추가로 수명이 늘어나서 좋은 건가 싶었다.

오래 살면 좋기야 한데, 오래 살면서 벽에 똥칠이나 하게 되는 거라면 이야기가 달라졌으니까.

그런 내 말에 릴리스가 말했다.

“수명만 늘어나는 게 아니라 노화 자체가 느려지는 거니까 그건 걱정하지 않아도 될걸?”

그러니까 수명이 10년이 늘어난다기보다는, 10년 정도 늦게 늙어간다는 걸까?

어느 쪽이든 수명이 늘어난다는 것은 변함 없었지만, 노화가 늦어진다는 점에서는 치매나 그런 쪽은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걸까?

그럼 상관없는데.

“열매도 줬으니까아, 이제에 용서해주는 거지이? 으응? 릴리스으, 한조야아...”

그리고 그런 나와 릴리스에게 애달픈 목소리로 말하는 아리아드.

나야 이미 수명이 복사된 걸로 진작 용서한 상황이었다.

이종족을 대상으로 까불다가 혼난다는 걸 잘 알고 있었으면서 순간 까먹어버린 내가 잘못한 거기도 했고.

문제는 릴리스였다.

믿었던 친구에게 느닷없이 내쫓기지 않나, 이런저런 고생까지 했던 릴리스.

나야 릴리스랑 아리아드의 사이를 잘 모르지만, 릴리스가 먼저 친구라고 내게 소개했을 정도인 사이였는데, 막말로 그 친구에게 배신당했다고 해도 좋은 상황이었으니까.

여태껏 내가 봤던 릴리스의 인간관계라고 할만한 건 무척이나 좁았으니까.

봤다고 해봤자 호아란과 아리아드정도뿐이지만.

아무튼, 내가 아는 릴리스의 친우는 딱 이 둘 뿐이었는데, 그중 하나에게 배신당한 셈이었다.

내 친구가 그딴 짓을 저질렀다고 생각하면 엄청나게 화났을 것 같았다.

딱히 친구라고 부를만한 관계를 맺은 적도 없었긴 한데.

“...다음에 또 이딴 짓을 하면, 그때는 다시는 안 볼 줄 알아.”

하지만 결국 릴리스도 아리아드를 용서해준 모양이었다.

릴리스가 착해빠진 걸까, 아니면 친구비로 뜯은 세계수의 열매가 그 정도의 가치가 있던 걸까.

잘은 모르겠지만, 그런 릴리스의 말에 밝은 미소를 지으면서 아리아드가 땅에서 솟구쳐 나왔다.

“고마워어, 릴리스으!”

그대로 와락, 하고 릴리스를 안아버리는 아리아드.

못 나오던 게 아니라 안 나오던 거였구나.

덕분에 나처럼 아리아드의 가슴에 파묻혀버린 릴리스가 신경질적으로 아리아드를 밀어내는 것이 보였다.

“이, 씹... 이 젖탱이 좀 치워!”

“그러언, 매정해애... 나 슬퍼어... 안아조오, 릴리스으...”

“이, 썅년이...”

릴리스에게 매달리려하는 아리아드와 그런 아리아드를 떨쳐내려고 하는 릴리스를 옆에서 지켜봤다.

출렁출렁.

흔들흔들.

응, 무척이나 보기 좋았다.

거유라기보다는 폭유라고 할만한 아리아드나 그런 아리아드만은 못해도 충분히 넘칠 정도로 커다란 가슴을 가진 릴리스가 서로 티격태격하는 모습은 옆에서 보고 있으면 정말로 보기 좋은 흐뭇한 광경이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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