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2화 〉 외전) 기프트 (2)
* * *
“...근데, 그게 뭐 어쨌다는 거야? 우리 같은 존재한테는 위험하다니?”
“너나 나나 결국은 여자니까아. 여자에게만 발휘한 힘이니, 당연히 위험하지이.”
뭐야, 그런 뜻이었어?
그야 자신에게도 힘을 발휘할 정도로 강력하긴 했지만.
그래봤자, 좀 강한 기프트에 불과했다.
아직 미숙한데도 그만큼 강력한 것은 두고 볼 일이긴 해도, 설령 완전히 성장하더라고 해도 특별히 위험하지는 않을 것이 분명했다.
대비만 해두면, 그렇게 영향을 받지도 않을 테고.
애당초 녀석의 기프트는 힘이 강해지는 종류의 기프트도 아니었다.
기껏해야 성욕...
서큐버스인 자신이 성욕을 기껏해야, 그렇게 말하는 것이 조금 우습긴 하지만.
결국은 성욕에 불과한 것이었다.
그게 뭐가 위험하다고 그러는 걸까?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데, 그런 릴리스에게 아리아드가 말했다.
“아아, 그런데에 그러면... 릴리스으, 네게 한조의 기프트가 그런 식으로 힘을 발휘한 이유가아ㅡ”
“......?”
아리아드의 말에 고개를 갸우뚱하던 릴리스가 이내 얼굴을 붉혔다.
“닥쳐, 아리아드.”
한조의 기프트가 대상에 따라 다르게 능력을 발휘하는 것이 사실이라면.
녀석 기프트가 자신에게는, 마치 강한 수컷을 연상케하는 듯한 힘으로 능력을 발휘한 이유는...
자신의 취향이 그런 것이기 때문이란 소리였으니까.
자신에게 있어서 호의를 품게 하는 남성이, 강한 남자라는 뜻이었으니까.
강한 수컷...
아니지, 강한 남자.
아무튼, 내가 강한 남자를 좋아했었다고?
내가?
“그러며언, 이해가 가네에. 릴리스으, 네가 여태껏 한 번도 누굴 좋아하거나 사랑하거나 한 적 없는 이유우... 너보다 강한 남자가 있기는 했었니이?”
“......”
그런 아리아드의 말에 릴리스는 입술을 꾹 다물었다.
다만 존재하는 것으로, 주변의 생명들을 먹어 치우는 존재.
자신이 다른 서큐버스들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강한 이유도 그런 이유에서였다.
숨을 쉬는 것만으로도, 주변에 있는 모든 것들의 생명을 조금씩, 조금씩 먹어 치우면서 강해지는데, 강하지 않을 리가 없었다.
일반적인 서큐버스의 레벨 드레인이, 관계를 맺은 자에게서 힘을 흡수하는 것이라면.
내 레벨 드레인은 그냥 가만히만 있어도 주변의 모든 것에서 힘을 흡수하는 종류의 것이었니까.
그래서, 세상이 이렇게 되기 전의 세상에서 나보다 강한 남자라고는 단 한 명도 존재하지 않을 수밖에 없었다.
세상이 이 모양이 되고서도 마찬가지였다.
여러 세상이 합쳐진 덕분에 제법 강한 녀석이야 꽤 있었지만, 그래봤자 하나같이 나보다는 약했으니까.
오히려 이상하게도 강한 여자 쪽이 훨씬 많았다.
당장 나와 마찬가지인 스물둘의 영웅도 과반수가 여성이었고.
설마, 진짜로.
내가 여태껏 누군가를 좋아해본 적도 없었던 이유가 그래서 그런 거였다고?
나보다 강한 남자가 좋아서, 그래서 여태 누구한테 반하거나 한 적이 없던 거라고?
“후후후, 강한 남자가 취향이라니이, 릴리스으도 꽤나 귀여운 구석이 있네에. 남자에게 지켜지고 싶었다거나아, 뭐 그런 거야아?
“...내가 닥치라고 했지?”
강제로 커밍아웃하게 된 자신의 취향.
더군다나 스스로도 몰랐던 취향에 얼굴이 뜨거워지는 기분이었다.
아니, 실제로도 새빨개졌을 것 같았다.
자신을 보며 키득거리며 웃는 아리아드를 보면, 그럴 것이 분명했다.
한 대 쥐어갈길까.
무심코 드는 충동에 릴리스가 주먹을 들어올리려고 했을 때, 아리아드가 말했다.
“그래도오, 좋지는 않은 거얼. 정말로, 농담이 아니고오. 한조의 기프트가 위험하다는 말은 사실이야아. 적어도오, 한조에겐 무척이나 위험하겠지이.”
“...왜?”
“그야아, 한조는 아직 자기 기프트도 제어하지 못하는데에 너도 알다시피 이 세상에는 별의 별 종족들이 있단 말이지이. 한조 같은 기프트에게 있어선, 무척이나 위험한 종족들이 말이야아.”
그 말에 멈칫한 릴리스가, 아리아드가 말한 종족들을 떠올렸다.
......있지.
그것도 아주 많이.
“아이, 진짜...”
성욕과 동반한 식욕을 느끼는, 위험한 나머지 특별관리 대상으로 취급받는 종족이나, 교미 후에는 상대를 잡아 먹으려 드는 종족이나, 자신의 마음에 드는 남자를 발견하면 마치 사냥하듯이 그 남자를 공격하려드는 종족이나, 그것도 아니면... 자신이 사랑하는 존재를 얼려버리려고 하는 종족들도 이 세상에는 존재했다.
이런저런 차원에서 온갖 종족들이 살아가고 있었고, 그들이 모두 한세상에 뒤섞이다 보니, 별 좆같은 종족들도 다 같이 살게 된 세상이었으니까.
만약, 한조 그 녀석이 어떤 이유로든 기프트가 발현하고 있는데 그 주위에 그런 종족이 있으면...?
제법 강한 아리아드조차도 폭주해버리게 만든, 자신에게도 영향을 끼쳐버린 기프트인데?
그렇게 된다면...
“애미, 씨발. 진짜...”
발정이든, 친애이든, 애정이든, 그것이 뭐든 간에.
녀석에게 달려들 미친년들이 눈앞에 그려지는 듯싶었다.
약해빠진 인간인 한조가 거기서 저항이라도 할 수 있을까?
그냥 그대로 잡아먹히든, 얼어버려서 동사해버리던, 어떻든 간에 좋지 않은 결과만이 있을 뿐이었다.
“그 새끼 존나 약한데.”
인간치고는, 덩치도 크고 힘도 세긴 했지만.
그래봤자 겨우 인간이었다.
딱히 무공이나 마법을 익히거나 한 것도 아니고, 하물며 이렇다 할 초상 능력조차도 없었다.
자신이 부여한 레벨 드레인과 녀석의 기프트도 있긴 했지만.
어느 쪽도 무력과는 전혀 관계가 없는 힘들이었다.
즉, 한조 그 녀석은 그냥 자지만 존나 큰 새끼일 뿐이었다.
그것도 훌륭하다면 훌륭한 재능이기는 한데, 어디까지나 디스펜서로서 그렇다는 거지 자지가 크다고 싸움도 잘하는 것은 아니니까.
“...어디서 무공 같은 거라도 갖고 와서 가르쳐야 하나?”
가르친다 치고서, 대체 어느 세월에 강해지고?
애당초 나는 태어날 때부터 지금까지 계속해서 강했다. 딱히 무슨 수련을 하면서 강해진 것이 아니라서 남을 가르치거나 할 줄 아는 것이 없다는 소리였다.
“아씨, 진짜...”
오히려 그런 쪽으로 재능이 있는 것은 따로 있었다.
단순한, 작은 여우 요괴.
수많은 요괴와 그러한 요괴들을 퇴마하려 들던 인간들, 무공과 주술, 마법...
그러한 능력들이 공존하던 세상에선 밑바닥이라고 해도 좋을 만큼 약한, 그저 단순한 여우 요괴에서 시작해서, 태생부터 강하게 태어나서, 계속해서 강해졌던 자신과 동등한 스물둘의 영웅이라고 불릴 만큼 강해진 호아란.
그녀라면, 원래부터 강했던 자신보다도 훨씬 더 한조 녀석을 잘 가르칠 수 있을 것이 분명했다.
적어도 한조가 자기 한 몸 지키는 정도는, 그게 아니라면 내가 도우러 올때까지 버티게 할 수 있을 정도는 금방 가르칠 수 있겠지.
근데...
“걔한테 부탁하긴 싫은데...”
그 여우 년도 기프트의 영향을 받았던 건지 녀석에게 호의를 갖고 있었으니까. 심지어 자신의 앞에서 대놓고 자기를 어머니로 부르니 마니라는 소리까지 할 정도였다.
그 바보 녀석의 어머니는 난데.
그 사실을 밝혔는데도, 눈앞에서 녀석을 빼앗아 들려고 했던 년인데.
걔한테 부탁하라고?
그건 진짜 싫었다.
하지만 딱히 그 망할 여우 년만큼 적성에 맞는 녀석을 아는 것도 아니었다.
그렇다고 부하나 마찬가지인, 다른 곳들을 담당하고 있는 녀석들에게 부탁하기도 뭐했다.
나름대로 강하고, 자신의 말을 잘 들을만한 녀석들로만 세워두다보니까 하나같이 서큐버스들이었으니까.
한조, 그 녀석을 서큐버스한테 가르치게 하면 어떤 꼴이 날지 뻔했다.
차라리 생선 가게를 고양이한테 맡기고 말지.
자신의 좁디 좁은 교우관계에 이렇게나 짜증이 났던 적이 있었을까?
짜증스레 애꿎은 손톱만을 씹었다.
결국, 그 망할 여우 년밖에는 없나?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봐도, 호아란 밖에는 답이 없었다.
아니지, 조금만 더 생각해보면 다른 방법이 있을지도 몰랐다.
다른, 더 좋은 방법이...
“아아, 귀여워라아.”
작게 속삭이듯이, 중얼거리는 아리아드는 평소였다면 그런 자신의 중얼거림을 듣고도 남았을 릴리스가 전혀 듣지 못한 채로 자신의 손톱을 깨물며 고민하는 것을 바라보며 미소 지었다.
저러면서도, 자기가 집착하고 있지 않니 뭐니하는 릴리스가 무척이나 귀여웠으니까.
하지만 차라리 이쪽이 더 나을지도 몰랐다.
그야, 릴리스가 자기의 감정에 솔직해진다면 그런 릴리스를 막을 수 있는 존재는 얼마 되지 않을 테니까.
처음으로 누군가를 사랑하게 되어버린, 서큐버스 퀸.
무려 한 차원의 세상을 무력으로 지배하던 존재였던 릴리스가 자신의 감정에 솔직해진다면 어떻게 될지야 뻔했다.
한조를 자신의 영역에 꽁꽁 숨겨두고서, 매일 같이 한조에게 달라붙어 있겠지.
그러면...
‘나한테는 기회도 오지 않겠지이?’
제법 강하다고는 생각하지만, 자신의 영역이나 다름없는 이곳에서조차도 릴리스에게 철저하게 패배했는데, 하물며 릴리스의 영역에서라면 정면승부로는 답이 없었다.
답이 없는 수준이 아니라, 아예 다가가지도 못할 것이 분명했다.
‘하지마안. 릴리스는 내 친구인데에.’
근데 그것이 그렇게 중요한 걸까?
‘뭐어... 친할수록 나눠야한다는 말도 있다니까아.’
나눈다고 나눠지는 것인가 싶지만.
딱히 상관 없을지도 몰랐다.
부족하면, 채우면 그만이었다.
어차피 수액이야 넘치도록 많으니까.
‘생각해보니까 나눌수록 좋은 점이 많은 거얼...?’
생명력 그 자체나 마찬가지인 자신의 수액을 마시면, 체력이 고갈되는 일이야 거의 없어지다시피 할 테니까.
거기에 서큐버스 퀸의 힘이 더해진다면.
‘응, 역시 좋은 점만 가득하네에.’
한조의 기프트가 발현했을 때, 아리아드는 그야말로 친애, 모성애라고 부를 법한 감정이 일었다.
무엇이든 해주고 싶어지는 마음, 귀여워해 주고 싶은 마음, 그런 감정이 샘솟았다.
자신의 수액을 아낌없이 내어주고, 끌어안고, 입술을 맞추고, 사랑해주고 싶어지는 마음.
세계수에서 태어난 요정.
그렇게 태어나 수백 년을 살아온 요정.
그 수백 년의 삶 속에서 처음으로 느껴본 감정이었다.
마치 오랜 겨울이 지나고, 첫 봄날의 햇살을 내리쬐는 듯한 따스함이 몸 전체에 퍼지는 듯한 감각.
한조의 정액이 맥동치며 자신의 안에 쏟아졌을 때 느꼈던 그 감각.
아직도 자신의 안에서 자지가 꿈틀거리는 듯한 느낌에 아리아드는 두 눈을 감았다.
아아...
조금만 더어, 릴리스가 늦게 왔으면 좋았을 텐데에.
그런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괜찮았다.
‘뭐어, 시간은 많으니까아.’
느릿하지만, 그러나 확실하게 뿌리를 뻗어가는 세계수처럼. 그 세계수에서 태어난 아리아드는 느긋하게 기다릴 줄 아는 요정이었다.
기회는 언제든 찾아올 것이다.
그전까지는.
‘릴리스으, 눈치채지 말아주라아?’
너랑은 싸우고 싶지 않으니까.
아리아드는 다만, 사랑스럽고 어리석은 자신의 친우가 조금만 더, 아주 조금만 더 자신의 감정을 깨닫는 것이 늦어지길 바랬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