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7화 〉 반 세계 정부 주의자 (2)
* * *
출근하는 길, 여느 때처럼 택시에 탄 채로 ‘맘마통’을 켜서 시간을 때웠다.
릴리스가 타고 다니라고 준 내 애차, 씽씽이가 있긴 했지만 굳이 택시를 타는 이유는 하나였다.
운전하기 귀찮았다.
씽씽이에겐 미안한 말이지만 거리도 별로 멀지도 않고, 주차하려고 끙끙대거나 할 필요가 없다는 점에서 택시를 타는 쪽이 훨씬 나았다.
이젠 택시비가 부담스러울 정도도 아니고.
아무튼 그렇게 ‘맘마통’에서 뭔가 새로운 소식이라든지, 요즘 유행하는 디스펜서에 대한 것이 뭐가 있는지 확인하고 있었는데, 눈에 띄는 게시물이 보였다.
『우리 동네에 여제 떴다ㅋㅋㅋ3초순살허접뷰지』
짧다면 짧은, 더군다나 평소 ‘맘마통’에서는 보기 드문 건전한 제목이었지만 어째선지 조회수가 장난 아니었다.
여제라니.
내가 아는 여제는 릴리스 정도뿐인데.
음마들의 여제, 그런 이명을 가진 릴리스였으니까.
그런 생각을 하며 게시물을 확인해보자 20초가량의 짧은 영상이 있었다.
슬쩍, 옆에 있는 택시 기사의 눈치를 보며 음소거한 뒤에 영상을 재생했다. 올라온 곳이 올라온 곳이다 보니 괜히 이상한 영상일 수도 있었으니까. 근데, 재생되는 영상에서 릴리스가 나왔다.
“엄...”
엄마가 왜 거기서 나와, 그렇게 말할 뻔했던 걸 간신히 참을 수 있었다.
흘긋, 나를 쳐다보는 택시 기사의 시선에서 영상을 가리고서는 다시금 재생한 영상을 들여다봤다.
잘못본게 아니었다.
릴리스다.
갑자기 웬 릴리스?
아무튼 영상을 보니 내용 자체는 별거 없었다.
허공에 떠 있던 릴리스가 주변을 두리번거리다 이내 엄청난 속도로 날아가는 짧디짧은 영상.
이게 대체 왜 여기에 올라오고, 또 왜 그렇게 많이들 보고 있는가 싶어서 댓글을 확인해봤다.
『와, 씨발. 주변 공간 다 찢어지는 거 봐 얼마나 빨리 날아가는 거야? 저게 가능한 건가? 마법도 아니고 그냥 날개로만 나는 것 같은데 날개 안 탐?하피는새대가리아냐』
『여제님이 왜...? 거기 뭔 일 났음?상시발정중인젖소』
ㄴ『어제 어떤 년이 디스펜서 납치함3초순살허접뷰지』
ㄴ『좆됐네... 어지간히 사고 치지 않으면 나서지도 않는 분인데, 개좆됐네 진짜...상시발정중인젖소』
ㄴ『열도가 언제나 그렇지 뭐, 항상 사고 치는 년들은 죄다 거기서 나오더라 대단하다...! 미친년들ㅇㅇ』
ㄴ『자기들은 뭐 얼마나 얌전하다고 개지랄이지? 로갓하고 지랄 말고 로그인하고 말해 썅년아허접뷰지』
ㄴ『응 디스펜서 관련 사고 발생 1위 지역~ 매년 골로 가는 디스펜서도 제일 많은 지역~ㅇㅇ』
ㄴ『얼마 전에도 단체로 따먹다가 디스펜서 골로 보낼 뻔했던 병신년들 말이라서 안 들리는데~ㅇㅇ』
ㄴ『응~ 니보지 허벌보지 껌정보지3초순살허접뷰지』
ㄴ『반박 못하니까 욕하네 병신년ㅋㅋㅋㅇㅇ』
ㄴ『응~ 존나 태평양 보지라 조루 디스펜서도 하루 종일 좆질해도 못 싸서 매일 쫄쫄 굶는 년3초순살허접뷰지』
ㄴ『이 씨발련아 너 어디 사냐ㅇㅇ』
『헤으응, 여제님 오늘도 존나 예쁘시다... 없는 쥬지가 돋아날 것 같네 ㄹㅇ왜여자디스펜서는없어』
ㄴ『ㄹㅇㅋㅋ 허벅지 개 꼴리는 거봐 저게 섹스퀸이지세계정부는뷰빔서비스를제공하라』
『그나저나 여제는 대체 남자를 얼마나 따먹었길래 저렇게 강한거임?요정은페도아냐』
ㄴ『최소 천 단위일 듯ㅋㅋ 내가 아는 서큐버스도 백 명은 따먹었다는데 저것보다 훨씬 약한데 저 정도면 최소 천명이지ㅇㅇ』
ㄴ『우리 언니 음해하지 마, 이 썅년아헤으응릴리스언니』
ㄴ『응 느그 언니 보지 개걸레보지ㅇㅇ』
ㄴ『이거 가겠네헤으응쥬지주세요』
ㄴ『유동 방패가 무적인 줄 아나 봄오네쇼타붐은온다』
ㄴ『여기 관리자가 릴리스 빠순이인건 알고 있나 모르겠네인어는체외수정안한다고씨발새끼들아』
릴리스의 인기가 생각보다 많았구나.
근데 인기만큼이나 안티도 있어 보이기도 했다.
하긴 ‘맘마통’을 사용하는 유저들이야 이쪽에 관한 걸 알고 있기도 하고, 당연한 걸지도 모르겠다.
당장 사티도 릴리스를 보고서 벌벌 떨었던 것도 있고.
릴리스가 등판했다는 사실 하나로 좆됐니 뭐니 하는 댓글들을 보아하니 대충 그녀가 여기서 어떤 취급을 받고 있는지는 알 것 같았다.
릴리스의 모습이 찍힌, 20초 남짓밖에 안 되는 영상이 이토록 관심이 쏠리는 이유도 대충 그런 이유일 것이다.
영웅이라 불리는 릴리스지만, 동시에 학살자로도 불리는 것이 릴리스였다.
릴리스뿐만이 아니라 다른 스물둘 영웅 모두가 그랬다. 그들은 동경, 선망의 대상이면서도 동시에 공포와 두려움의 대상이기도 했다.
은거하다시피한 다른 스물둘의 영웅과는 달리 그럭저럭 이곳저곳에서 얼굴을 비추는 등의 활동을 하는 릴리스는 특히나 그럴 거다.
영웅, 동시에 학살자.
현 세상에 존재하는 유일한 정부, 세계 정부가 승리했고 릴리스가 그런 세계 정부를 세운 이들 중 하나였기에 영웅이라고 불리고 있을 뿐이지, 릴리스의 손에 묻은 핏물만 해도 한가득할 것이 분명했다.
릴리스를 포함한 스물둘의 영웅에게 원한을 가진 자들도 수두룩하겠지.
지금도 술에 취한 릴리스는 때때로, 아니 꽤나 자주 주정을 부리고는 했다.
그리고 그때마다 하는 말은 언제나 비슷했다.
‘좀 더 잘할 수 있었다고 생각했는데, 잘 안됐어.’
‘후회하지 않냐고? 하지. 할 수밖에 없지. 그런데, 아마 지금도 그때로 돌아간다면... 같은 선택을 할 거야. 그게 최선이었으니까. 그때는 그게... 가장 적게 죽는 방법이었으니까.’
최후의 전쟁, 그런 거창한 이름이 붙여진 것과 달리 수개월이 채 걸리지 않은 전쟁.
하나의 세상을, 아니 수많은 세상이 뒤섞이고 혼란스러워, 하나라 할 수 없는 세상을 통일하는 정부가 세워진 전쟁이라고 하기엔 지나치게 짧은 시간이 걸린, 그런 전쟁.
스물둘의 영웅이 가진 압도적인 무력으로 모두를 누르다시피해서 승리를 쟁취해낸 최후의 전쟁은, 세계를 통일한 전쟁이라고 하기엔 극단적으로 적은 사상자만이 생긴 전쟁이었다.
하지만 사상자가 전혀 없던 것은 아니었다.
불행해지지 않은 자들이 생기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다들 행복하게 잘 지냈답니다, 그렇게 될 줄 알았지. 멍청하게도.’
술에 취한 주정뱅이들이 으레 그렇듯이, 했던 말을 또 반복하고, 다시 반복하는 릴리스가 자주 하는 말.
모두가 행복하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말할 수 있는... 그런 세상을 만드는 건 당연하다시피 불가능했다.
당장 얼마 전까지만 해도 나도 존나 욕했던 게 세계 정부였고.
그러니까, 저런 이들이 있는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그렇다는 것은 알고 있다.
알고 있는데...
딴 건 몰라도 릴리스에게 걸레 보지니 뭐니하는 건 참기 힘들었다.
ㄴ『릴리스 걸레 아니고 처녀임 내가 봄극태쥬지붐은온다』
평소에는 내 작은 리뷰에나 추천을 박고 다니던 계정으로 처음으로 댓글을 써보고서 한숨을 내쉬었다.
이게 지금 뭔 짓이지, 하는 생각이 뒤늦게 몰려들었다.
애당초 내가 봄이라고 쓴 건 또 뭐야?
역시, 그냥 지우자.
그렇게 생각하고서 썼던 댓글을 지우려고 했는데 우웅, 하고 답글이 달렸다는 알림이 날아왔다.
“미친, 존나 상주하고 있나.”
아무튼 대체 무슨 답글을 달렸나 확인해봤다.
ㄴ『처녀인 걸 확인했는데 어떻게 처녀야 ㅂㅅ아ㅋㅋㅋ 안쳐지는 실드를 치려니까 별 병신같은 소리를 다하네ㅋㅋㅋ 릴리스가 니한테 보지라도 까서 보여줬단 소리냐? 릴리스단 수준 존나 낮네ㅋㅋㅋㅋㅇㅇ』
댓글을 보고서 할 말을 잃었다.
말만 보자면, 논리적으론 저쪽이 훨씬 옳긴 했다.
나도 그런 식으로 릴리스가 진짜 처녀인 걸 확인할 줄은 몰랐으니까.
아니, 근데 이 새끼 왜 말끝마다 처웃어서 사람 빡치게 하지?
열받네?
덕분에 한참을 키배를 뜨게 됐다.
근데 이쪽은 순전히 내 정체를 숨긴 채로 이야기해야 하고 저쪽은 세간에 잘 알려진 서큐버스의 특징에 따라서 릴리스가 강한 이유가 그렇고 그런 것 때문에 그런거라고 말해오니, 어떻게 반박하기가 힘들었다.
서큐버스가 떡을 치면 칠수록 강한 건 분명한 사실이었고, 릴리스는 그런 서큐버스 중에서 최강자였으니까.
논리적으로는 릴리스는 처녀일 리가 없다는 것이 사실이었다.
나도 확인하기 전까진 존나 믿지도 못했던 거기도 하고.
근데 처녀인걸.
그것도 존나 분홍색... 아니, 이게 아니고.
아무튼, 내가 릴리스가 처녀임을 알고 있어도, 어떻게 그걸 증명할 방법이 없었다.
내가 릴리스의 양아들이고, 내 눈으로 직접 릴리스가 처녀인걸 확인했다고 말할 수도 없고, 말해줘봤자 믿을 리가 없었다.
내가 저 새끼라도 믿지 못할 소리였으니까.
심지어 같이 릴리스의 실드를 치던 릴리스단? 아무튼 그렇게 불리는 사람들도 내 릴리스 처녀 소리에는 그건 좀, 하고 난색을 표하기까지 하는데 말 다했다.
덕분에, 어떻게든 하고 싶은데 할 수 있는 게 유동의 댓글마다 비추나 박는 것밖에는 없었다.
ㄴ『팩트로 때리니까 릴리스단들 아무 말도 못 하고 비추나 박는 거 봐 ㅋㅋㅋ 개웃기네 기다려봐라 택배 온 거 같으니까 그것 좀 받고 다시 놀아 줄테니까ㅋㅋㅋㅇㅇ』
그렇게 택배 받고 온다는 댓글을 남기고 사라져버린 유동.
열만 잔뜩 올리고 튀어버린 유동이 돌아오길 기다리고 있는데, 그런 나를 보며 택시 기사가 말했다.
“저, 손님? 도착했는데요.”
“아... 잠시만요.”
택시 기사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고는 택시비를 내는 도중에도 ‘맘마통’을 확인해봤지만, 여전히 유동은 돌아오지 않았다.
그 대신에 밑으로 X니 R.I.P이니하는 댓글들이 달리는 것이 보였다.
결국, 직장인 이종족간지원센터까지 도착했을 때까지도 돌아오지 않는 유동.
그리고 유동이 마지막으로 남긴 댓글 밑으로 수십 개가 넘는 조의를 표하는 댓글들을 보고서 살짝 무서웠다.
“아니, 진짜 잡혀간 건 아니겠지?”
설마, 그럴 리가.
그냥 어디에나 있는 농담 같은 거겠지.
그럴 거다.
그렇겠지?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