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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족 전용 남창이 되었다-56화 (56/523)

〈 56화 〉 호아란과의 주술 수업 (5)

* * *

호아란의 제자가 된 지 이틀째.

그러니까, 백발 여자로부터 습격을 받은 지도 이틀째.

본격적으로 호아란에게 주술을 배우기에 앞서 시작한 것은 주술이 대체 무엇인가에 대한 이론 수업에 가까웠다.

흔히들 전공 수업에 앞서 시작하는 기술의 역사같은 걸 배우는 느낌으로.

호아란이 내게 말했다.

“주란 바람이니라. 바람, 소망, 소원... 바라고 비는 것. 자신에게 없는 것을 바라고 비는 것, 그것이 주의 시작이었느니라.”

추위에 몸이 얼어 붙어가는 자가 소원하리라, 따듯한 불씨를.

굶주려 배가 곯는 자는 소원하리라. 주린 배를 채워줄 양식을.

그렇게, 자신에게 없는 것을 바라는 것에서부터 주는 시작되었노라고 호아란이 말했다.

주의 기원은, 말 그대로 기원에서부터 시작되었음을 내게 알려주었다.

풍요를 바라며 동굴의 벽에 칠하던 그림도, 주의 일종이며.

병을 앓는 아이가 건강해지기를 바라고 기도하는 것 또한 주의 일종이고.

제물을 바쳐가며 무언가를 바라는 것 또한, 주의 일종이라며.

태고적부터 존재해왔던 주의 역사.

짐승에게, 자연에게, 그 밖에도 당시에는 이해조차 닿지 않았던, 모든 자연의 현상에게 빌고, 바라는 것.

그것이 주의 시작이었다.

“허나, 바람은 소박하느니라. 소망은 가냘프고, 소원은 다만 덧없느니라.”

자신이 아닌 다른 무언가에게 빈다는 것은 그런 것이다.

결국 무언가를 쟁취할 수 있는 것은 오로지 그 자신이기에.

남에게 빌어서 얻을 수 있는 것은 소박하고 가냘프고 다만 덧없는 것뿐이었다.

벽에 칠하는 그림은, 다만 그림일 뿐이었다.

병을 앓는 이가 건강해지기를 바라는 것은, 다만 바람일 뿐이었다.

제물을 바쳐가며 무언가를 기원하는 것 또한, 그저 기원에 불과했다.

“고대의 주는, 그렇기에 도태되었느니라. 바라고 비는 것만으로 해결되는 것은 없기에, 주는 단순한 위안으로 그쳤을 뿐임이니.”

바라고 비는 것만으로는 풍요는 오지 않는다.

바라고 비는 것만으로는 병은 낫지 않는다.

제물을 바쳐가며 기원하는 것만으로는, 그 기원은 이루어지지 않는다.

덧없다는 것은 그런 것이었다.

풍요를 바란 자는, 풍요롭지 않기에 풍요를 바랬다. 그리고, 주린 배를 틀어쥐며 죽었다.

병이 낫기를 바라는 자는, 다만 아이의 건강을 위해 빌었던 자는 결국 땅에 자신의 아이를 묻었다.

제물을 바쳐가며 기원하는 자의 소망은, 결코 이루어지지 않기에, 그렇기에 기원하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그럼에도 바라는 자는 사라지지 않았다.

소망하는 자는 사라지지 않았다.

다만, 덧없는 소원을 비는 자는 사라지지 않았다.

세상이 수천 번이 바뀌더라도, 그러한 이들이 사라질 일은 영원토록 오지 않을 테니.

단순한 위안이라도 얻기 위해 바라고 비는 자들.

그러한 자들은 언제나 존재하는 법이었으니.

“그러나, 믿음만으로는 부족하다, 부족하기에, 그 부족한 것을 채우려 한 이가 생겨났노라.”

바라고 소망하고 소원하는 것만으로는, 무언가를 이루는 것에는 부족했기에.

거기에 의지를 담았다.

시작은 작고 사소했다.

불가능에 가까웠던 것을, 단지 바라기만해서는 결코 이룰 수 없었던 것을.

끝내 이루어내는 기적.

“단지 덧없어야 할 소망에 의지를 담아 붙잡고, 형을 이룬다. 그렇게 다만 바라고 빌기만하던 무형의 것에 의미를 부여하고, 형상을 부여하며, 동시에 힘을 불어넣는 것. 자신의 의지로 바라던 것을 이루기 위해, 그러한 힘을 지닌 것을 만들어내는 것. 의지만으로, 세상의 첫 번째의 이치에 달하노니. 바라고, 부리기에 비로소 주술이 되었노라.”

그리고 그것이.

“그것이 가장 처음으로, 네가 배워야 하는 주술의 이치. ‘심’의 이치니라.”

대개 이론이라는 것이 모두 그렇듯.

호아란의 말을 전부 들었음에도 이해할 수 있는 것들은 얼마 되지 않았다.

그러니까...

“뭐하면 되는 건데요? 명상?”

의지가 어쩌니하는 걸 들었는데, 그래서 그걸 어떻게 하라고?

“음, 이걸 한번 들어보려무나.”

그런 내 말에 가볍게 손을 휘젓는 호아란.

그러자 내 앞으로 날아든 자그마한 돌멩이가 보였다.

들라고?

저걸?

무슨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시키는 대로 내 앞에서 우뚝 선 돌멩이를 잡는 순간이었다.

“윽...!”

갑작스레 느껴지는 무게감에 그대로 돌멩이를 땅에 떨어뜨릴 뻔한 것을 간신히 붙들어잡을 수 있었다.

“오호, 땅에 떨어뜨리지 않았구나.”

자그만 돌멩이.

손바닥으로도 감싸고 남을 그런 돌멩이인데 쌀가마를 두셋을 통째로 들어 올린 듯한 무게감에 내가 말했다.

“이게, 대체 뭐에요?”

끙끙대며, 자꾸 내려가려는 돌멩이를 들어 올리며 그렇게 묻자 키득거리며 호아란이 대답했다.

“호석, 여우 구슬이라고도 부르는 것이니라. 오직 의지만으로 들어 올릴 수 있는, 본녀의 세상에서도 몇 없는 보물이니라.”

“여우, 구슬...?”

호아란은 구미호다.

웨어비스트, 여우 수인과 비슷한 것이 아니라. 요괴라는 잘 모르겠는 카테고리에 들어가 있는 구미호.

아무튼, 중요한 것은 구미호도 일단은 여우라는 사실이었다.

그리고 이 돌멩이 이름은 여우 구슬이고.

뭔가, 덕분에 조금 기분이 그랬다.

“집중하거라. 호석이 내려가지 않느냐?”

딴 생각을 하기 무섭게 무게감이 늘어난 것처럼 밑으로 쭉 내려가는 여우 구슬을 다시금 들어올렸다.

“끄으응...”

존나 빡세다.

“우선은, 그 호석을 머리 위로 들어 올리는 것부터 시작하자꾸나. 호석을 들어 올린 채로, 일다경을 버티는 것이 네가 처음으로 해야 할 수련이니라.”

일 다경.

그러니까... 15분 정도였나?

느껴지는 무게만 해도 거뜬하게 100kg은 되어 보이는 걸 들어 올린 채로 15분을 버티라고?

존나 엄하다니, 진짜로 존나게 엄한 수련이었다.

“아니... 정말로... 이걸 들어서 15분을 버티라고요?”

“정말이니라. 기초 중의 기초이니 너무 엄살 부리지 말거라.”

아니.

아니다.

아무튼 까라니까 까야지.

호아란의 말대로, 여우 구슬을 머리 위로 들어 올리기 위해 안간힘을 써봤다.

“끄, 으윽...”

씨발...

들어 올리면 들어 올릴수록 무게가 늘어나는 기분이었다. 아니, 늘어나고 있는 것이 틀림없었다.

분명 가슴보다 밑에 있을 때는 그럭저럭 들 수 있었던 것이, 가슴 언저리까지 왔을 때는 그 전보다 두 배는 무겁게 느껴졌으니까.

이래서야 15분을 버티기는커녕 머리 위로 들어 올리는 것도 힘들 것 같았다.

흘끔, 도로 여우 구슬을 내리고서 호아란을 보자, 내게 여우 구슬을 들어올리라는 과제를 내준 채로, 어디서 꺼냈는지 모를 책을 꺼내 읽고 있는 것이 보였다.

살랑살랑, 흔들거리는 호아란의 꼬리들.

그새 독서에 푹 빠진 듯한 호아란을 보자 힌트라도 들을 수 있을 것 같아 보이지는 않았다.

아니면.

애당초 힌트 같은 게 필요 없었다던가.

...호아란이 뭐라고 말했었지?

다시금 호아란이 내게 말해줬던 것들을 떠올렸다.

의지.

단순한, 덧없어질 뿐인 ‘주’가, 마침내 ‘주술’이 될 수 있었던 이유가 의지라고 호아란이 처음에 말했었다.

그리고...

주술의 첫 번째 이치 ‘심’ 또한 그러한 의지와 관련된 거고.

그 뒤에는...

여우 구슬에 대한 이야기를 했을 때 뭐라고 했었더라?

그러니까... 오직 의지만으로 들어 올릴 수 있다고. 그렇게 말했었던가?

애당초 의지란 무엇인가?

그런 것을 살면서 생각해본 적도 없었는데.

그런 것을 대뜸 하라고 시켜 놓고서, 아무런 조언조차 없는 것은 호아란답지 않은 일이었다.

릴리스조차도 그런 짓은 하지 않았으니까.

즉, 호아란이 느끼기엔 이 이상의 조언이 필요 없다고 여겼다고 하는 것이 옳으리라.

이미 내가 알고 있는 것.

이미 내게 알려준 것.

거기에 답이 있다는 뜻이었다.

한참을.

대가리를 굴린 끝에, 나는 천천히 여우 구슬을 쥐고 있던 손을 떨어뜨렸다.

들어 올린다.

단지, 그것을 바라면서.

내 예상이 맞는다면, 그렇다면 여우 구슬은 내가 손을 놓더라도 마땅히 떠오를 것이 분명했다. 오직 의지만으로 들어 올릴 수 있다는 여우 구슬이라면, 굳이 손으로 들어 올린다는 가정 자체가 불필요한 것이니.

그리고...

내가 여우 구슬에서 완전히 손을 떼는 순간이었다.

퍽...!

떨어진 여우 구슬이 내 발등을 찍었다.

그것도 존나 세게.

“애미...!”

씨발, 존나 아파...!

하지만 순간적으로 여우 구슬이 떠오르려고 했던 것만큼은 볼 수 있었다.

이 방법이 맞았다는 소리였다.

맞기는 한데.

“끄으으윽...”

그래봤자 떨군 것은 변함없는 사실이었다. 발등에서 느껴지는 통증에 온몸이 비틀리는 느낌이었다.

하지만, 덕분에 또 알 수 있었던 것은, 여우 구슬이 내가 직접 들어 올렸을 때에 비해서... 발등에 떨어졌을 때에 느낀 통증은 너무나 작다는 거였다.

즉, 체감상 느껴지던 100kg가 넘는 무게는 구라였다.

무게가 아예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정말로 그만한 무게였다면 아픈 걸로 끝나는 게 아니라 내 발이 아작이 났을 테니까.

“좋아... 해보자고.”

다시 한 번 여우구슬을 향해, 떠오르라고 생각했다.

의지로.

의지만으로.

그저 내 발치에 굴러다니는 여우 구슬을 들어올린다.

우웅...

그러자 떠오르기 시작하는 여우 구슬.

와, 이게 되네.

내게 염동력같은 초상 능력이 있는 것도 아닌데, 스스로 들어올려지는 여우 구슬을 보며 나도 모르게 감탄하는 순간이었다.

퍽...!

다시 한 번 떨어진 여우 구슬이 이번에는 내 새끼발가락을 찍었다.

“아아아아악...!”

애미, 씨발 진짜.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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