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7화 〉 외전) 수련편, 호아란의 시점 (1)
* * *
흘끔, 발등에 떨어진 여우 구슬에 몸을 비트는 한조를 보며 호아란이 미소를 지었다.
‘빠르구나.’
주술의 숫자는 방대하다.
아홉의 이치에 이르렀다고 자부하는 자신조차도 그 모든 주술을 전부 알고 있는 것이 아닌 것처럼.
그렇기에 주술을 배우는 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재능이 무엇인가를 논하자면, 저마다 다른 답이 나올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공통적으로 모든 주술에 있어서 필요한 재능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또 이야기가 달라졌다.
하나는, 기를 받아들이는 것에 대한 재능.
이점에 대해선 한조에겐 아무런 걱정이 없었다.
한조는 이미 기프트를 보유하고 있었으니.
수십 수백, 그 숫자마저도 제대로 파악되지 않은 수많은 차원의 세상이 한데 섞인 세상이 지금의 세상이었다.
그러한 세상에서, 각자의 세상이 품고 있던 기마저도 한 곳에 합쳐진 세상은, 본래 하나의 세상이었을 적에는 일어나지 않았던 기이한 현상을 일으켰다.
그것이 기프트.
타고나기를, 마법사로든 주술사로든, 무인으로든, 대성할 재능을, 기를 받아들이는 것에 있어서 특출한 재능을 갖춘 자가 그 무엇도 배우지 않은 상태에서.
다시금 우연에 우연이 겹쳐져 그 기를 받아들이던 신체의 일부가 변이, 새로운 능력을 갖춘 신체로 뒤바뀌는 현상.
육신이 기를 받아들여서, 스스로 이질적인 힘을 지닌, 새로운 힘을 지닌 육신으로 재탄생하는 현상이 기프트였다.
즉, 기프트를 갖고 있는 한조에게 주술에 있어서 필요로 하는, 기를 받아들이는 재능은 이미 충분히 갖춰져 있다는 뜻이었다.
그러니, 이점은 아무 걱정도 없었다.
다만, 다른 쪽의 걱정은 있었다.
이쪽은... 굳이 말로 표현하자면 오성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이리라.
하지만, 조금 달랐다.
‘만물의 본질을 알아차리는 능력.’
스스로 답을 구할 수 있는 능력.
머리가 좋은 자는 분명히 존재한다.
타고난 오성이 좋아, 하나를 가르치면 열을 깨우치는 자들이야 수두룩하게 많았다.
허나, 주술이 요구하는 것은 머리가 좋은 것과는 조금 거리가 있었다. 주술은 본질적으로 아무것도 없는 것에서, 스스로의 의지로 세상에 획을 긋는 행위의 연장이었다.
단순히 가르치고, 그것을 배우는 것만으로는 부족했다.
모든 현상에서 비롯되는 이치, 진리, 도리, 그 밖에 무엇이든간에. 보고, 느끼고, 탐구하는 것을 통해서 스스로 답을 구하는 것이 주술.
하지만, 그렇게 답을 구하기 위해선 우선 문제를 보아야하는 능력이 있어야 했다.
그렇게 자신이 본 문제의 답을... 스스로 깨우칠 수 있어야만, 자신만의 심상으로 획을 그어낼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만 했다.
그렇기에 세상에는 그토록 수많은 주술이 존재하는 것이었다.
하나의 주술사가, 하나의 주술을 만드는 것과 다름이 없으니.
아무리 그래도 주술의 주도 모르던 초보자인 한조에게 그런 능력을 요구할 수는 없었다. 그건 갓난아이에게 뛰라고 말하는 것과 다름없었다.
그러하니, 스스로 깨우침을 바라는 것은 동일하나 그 실마리는 주었다.
그것만으로 난이도가 대폭으로 낮아진 것은 확실하나, 그렇다고 해도 곧바로 본질에 다가선 한조의 능력은, 분명히 재능이 있는 자의 것이었다.
‘그저 자연히 존재하는 것에서 본질을 끄집어내어야 하는 능력이, 네게는 있었구나.’
보통은 실마리를 주었다고 한들, 빠르게 그 본질에 다가서는 이들은 얼마 없었으니까.
호석, 여우 구슬.
의지만으로 들어 올릴 수 있는, 기이한 힘을 지닌 돌.
하지만 그러한 물건이 정말로 존재할 리가 없었다.
그렇기에, 이 호석은 호아란이 만들어낸 물건이었다. 하지만 자신의 세상에서도 얼마 없는 보물이란 점은 틀린 말은 없었다.
새로운 꼬리가 하나 생겨날 때마다, 그 꼬리와 함께 생겨난 구슬.
그것이 호석의 본질이고, 그것을 다듬어 만든 것이 지금의 호석이었으니.
의지에 반응하여, 움직이도록 만든 일종의 주구.
그것이 호석의 정체였다.
그러나, 생김새는 어디에나 있는 돌멩이에 불과했다.
다듬었기에 겉은 반질반질하나, 결국에는 강가나 바닷가에서도 흔히 볼 수 있을 법한 그런 돌멩이에 불과했다.
이것을 들어 올린다고 말한다면, 설령 의지로 들어 올리라고 하는 실마리를 내준다고 한들, 돌멩이라는 모양에 속아 그저 힘으로만 들려고 하는 이들이 태반이었다.
이제껏 자신에게 자기를 제자로 받아달라고 부탁하였던 이들의 대부분이 이 호석을 끝내 들어 올리지 못했듯이.
돌멩이라는 형태에 생각이 갇혀, 들어올린다는 것이란 상식에 갇혀, 그 본질을 알아차리지 못하는 이들이 태반이었으니 말이다.
허나, 한조는 이를 단번에 알아차렸다.
굳이 손으로, 힘으로 들어 올리는 것에서 곧바로 벗어나서... 호석의 본질에 다가섰다.
설령 앞선 다른 이들과는 달리 실마리가 주어졌다고 한들, 일각이 채 지나기도 전에 그 사실을 알아차린 점에선 한조에겐 분명히 주술을 익히는데 필요로 하는 재능 중 하나인, 본질을 알아차리는 능력이 있는 것은 틀림없었다.
‘하지만, 힘들 게다.’
한 자를 들어 올릴수록, 그 전보다 배가 무거워지는 호석을 들어 올린다는 것은 힘든 일이었다.
머리 위로 호석을 들어 올릴 무렵에는 처음의 여섯 곱절이 훌쩍 넘는 무게가 되는 한조에게는 더더욱 그러했다.
그 정도라면 이미 주술 한두 개 정도는 익힌, 초보 주술사나 가능한 일이나 다름없었다.
그마저도 가까스로 들어 올리는 것에 가깝지, 15분을 그 상태로 버티라는 것은 어림도 없었다.
허나 괜찮았다.
어차피 이 수련은, 한조의 재능이 얼마나 있는지... 또 얼마나 끈기 있는지를 알아보기 위한 수련에 가까웠다.
호석을 들어 올리는 것 그 자체보단, 얼마나 오랫동안 이를 포기하지 않느냐를 알아보는 시험에 가깝다고 해도 좋았다.
그보다...
끙끙대며 발등을 어루만지고 있는 한조를 바라보던 호아란은 시선을 옮기다가 이내 흠칫하고서 다시금 서적으로 시선을 옮겼다.
자꾸만 시선이, 크게 부풀어있는 한조의 하물로 향하는 자신이 있었으니까.
‘돌아버렸느냐, 호아란...?’
발정기도 아닌데, 자꾸만 그쪽으로 생각이 뻗어나가는 것을 이해할 수 없었다.
아니, 발정기도 아니었는데, 라고 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대체, 이게 어찌 된 일인지...’
본래라면, 다음 주는 되어야 올 예정이었던 발정기.
그것이 오고 있음을, 스스로도 알 수 있었다.
가슴 한구석이 먹먹해지는 느낌과 함께, 하복부가 저릿해지는 감각.
이치를 깨달았으나, 결국에는 천리에서 벗어나지 못하였기에, 그렇기에 벗어날 수 없었던 굴레.
짐승의 특성을 이어받은 요괴로 태어난 업이 자신의 몸에 찾아오는 감각을 모를 리가 없었다.
수백 년을 살아온 요호이자, 천호.
당연하게도 그 세월 동안 겪어온 수천 번의 발정기가 있었으니 모를 리가 없었다.
문제는, 이제껏 단 한 번도 틀어진 적이 없던 주기가 어째서 이제와서 틀어졌느냐는 거였다.
하필이면, 한조를 제자로 들인 날부터 그 발정기가 시작되려고 하는 이유가 뭐냐는 거였다.
‘...설마, 그 일 때문에?’
한조의 정... 아니, 씨... 아니 이것도 좀 그렇고.
하여간에, 그것을 뒤집어써서 이렇게 된 걸까?
그나마 생각할 수 있는 거라면 그것뿐이었으니, 그것이 정답일지도 몰랐다.
하지만 그래서야, 자신의 꼴이 우스워지는 것은 여전했다.
수백 년을 남자를 모르며 살아왔다고는 해도, 설마 남자의 정을 뒤집어썼다고 해서... 발정기가 오게 된다니.
‘...허나, 아직은 괜찮다.’
발정기가 온 것은 아니다.
몸의 조화가 무너지는 것이나, 발정기가 오는 것을 늦추는 방법 또한 없는 것도 아니었다.
아니, 설령 오더라도 큰 문제는 없으리라. 말이 발정기지, 평소랑 다른 거라고는... 성욕이 다소 강해지는 정도에 불과했으니.
그 정도야 오랜 수양을 쌓아온 자신에게 있어서 그다지 큰 일은 아니었다.
심한 경우에도, 스스로 해소할 수 있는 수준에 불과했다.
그러니 발정기 자체는 큰일은 아니었다.
큰일이라고 할 만한 건 고작 남자의 정을 뒤집어썼다는 것만으로 드디어 때가 왔구나! 마침내! 믿고 있었다고...! 그렇게 말하는 것처럼 곧바로 발정기가 오기 시작한 자신의 육신에 무너진 천호의 자존심뿐이었다.
수백년을 쌓아온 수양이, 육신에서 채 벗어나지도 못한 채 자신을 옭아매고 있다는 증거였으니.
‘허나, 그 또한 들키지만 않으면 그만이니라.’
그래, 들키지만 않으면...
...들키지만 않으면 되니까, 딱히 봐도 상관없는 것이 아닐까?
슬쩍, 다시금 내린 서적 너머로, 다시금 끙끙대며 호석을 들어 올리려하는 한조의, 여전히 우뚝 서있는 하물이 보였다.
‘다시 봐도 정말로 크구나.’
저기서 뿜어낸 정을, 자신이 뒤집어 썼다는 사실을 떠올린 호아란이 얼굴을 붉혔다. 워낙에 경황이 없는 중에 벌어진 일이었지만, 남성의 하물을 직접 눈으로 본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서적으로는, 음과 양의 이치를 배우기 위해서 자주 접하긴 했으나...
‘그때 보았던 것 중 무엇과 비교해도 견줄 데가 없겠구나.’
언뜻 봐도, 한 자에 이르는 하물이, 전혀 일반적이지 않은 하물이 그런 서적에 적혀져 있을 리가 없다는 것쯤은 알고 있었지만.
아니, 오히려 그렇기에 더더욱 시선이 가는 걸지도 몰랐다.
저런 것이 정말로 여성의 몸에 들어가기나 한다는 말인가?
아니, 애당초 넣기 위해 존재하고 넣어지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니 가능이야 하겠지만, 그것이 음양의 조화인 것은 알지마는...
저게 정말로 들어가기는 할까?
‘...냄새도 좋았느니라.’
무척이나 달콤한, 마치 과일향 같은 냄새.
‘...혹시 맛도 좋은 것일까?’
서적에서 보았을 때는 그 묘사가 제각각이어서 구태여 무엇이 진짜인지는 알 수 없었으나, 몇몇에서는 연인의 정을 받아마시며 맛있다고 좋아하던 내용이 없던 것은 아니었다.
이제까지는 그저 과도한 비유에 불과하다고 여겼거늘, 그때 맡았던 한조의 정의 향기는 실로 맛있게 느껴질 수 밖에 없을만큼 달콤했다.
‘그때 전부 닦아버리는 것이 아니... 핫?! 정신 차려라, 호아란...!’
발정기가 다가와서인지, 이성이 흐릿해지려 하는 것을 다잡으며 호아란은 머리를 휙휙 내저었다.
‘그리고 들키지만 않으면 그만이니 뭐니, 그것이 천호로서 할 생각이더냐?!’
스스로를 꾸짖고서, 마음을 다스린 호아란은 이내 한숨을 내쉬며 다시금 서적을 펼쳤다.
심신을 다스리고 싶을 때는 서적을 읽는 것이 최고였으니.
『임신해랏! 임신해! 내 정을 받아내서 아이를 낳아랏...!』
『응앗♡ 이 천인공노할 악적놈이잇...♡』
『하핫, 말로는 그리 말하면서 기쁘다는 듯이 내 하물을 놓아주지 않는 년이 할 소리는 아니로구나. 더군다나, 느껴지지 않느냐?』
『헛소리하지 말고 이거나... 어서 빼... 옷♡ 오옷♡』
『자, 느껴보거라. 내 하물을 받아들인 네년의 몸이... 내 명령을 따르기 위해 배란하기 시작한 것을...!』
『뭐, 뭣이...?! 그, 그럴 리가 없다...! 그럴 리가... 흐오옷♡』
『발정나 헐떡이며 아이를 낳기 위해 배란이나 하는 년이 아직도 기세는 좋구나...! 아주 좋다! 임신시키는 맛이...』
텁, 하고 펼쳐졌던 서적을 덮었다.
‘...서적을 잘못 꺼냈구나.’
하필이면 펼쳤던 부분이, 색마에게 붙잡힌 검후가 나오는 부분일 줄은 몰랐다.
게다가 하필이면 그 내용이, 돌연 발정기가 찾아오기 시작한 자신과 조금 유사한 묘사가 있다는 것일 줄은...
발정기, 말 그대로 발정기는 아이를 가지려고 몸이 그 준비를 하는 과정이었으니.
색공에 당하며 멋대로 색마의 아이를 낳기 위해 배란하기 시작하는 검후나 발정기나 비슷한 부분이 많았다.
...비슷한 부분이 많으니, 어쩌면 검후가 악한에게서 벗어나는 것도 적혀져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에 다시금 서적을 펼쳤다.
『안 돼...! 안된다, 내 몸아...! 본녀는 이 악한의 아이를 절대로 갖... 오곡♡』
『꽉 조여대면서 말이 많구나! 자, 네년이 원하는 대로 안에 가득 싸줄 테니 내 아이나 빨리 배거라...!』
『싫... 어어엇...♡』
‘타락해버렸구나. 싫다는 대사에 천박한 것이 붙지 않았더냐.’
하긴 이런 류의 서적은 거의 대부분 이러했었지.
그걸 알면서도 도로 다시 서적을 펼쳐본 이유는 대체 무엇인가.
‘아니니라, 본녀는 일부로 더 보려고 했던 것이...!’
그렇게 말하면서도, 불안감을 떨칠 수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스스로도 느끼기에도 평소보다 훨씬 상태가 좋지 못했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발정기가 오는 와중에는 이러한 경향이 있기는 했지만, 이 정도로 심한 경우는 발정기 당일에나 그러했는데...
아직 발정기가 오지 않은 지금도, 평소의 발정기때만큼이나 버거웠다.
‘느낌이 좋지 않구나.’
결국, 색마와 검후편을 전부 독파한 호아란은 여전히 끙끙대며 호석을 조금씩 들어 올리고 있는 한조를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천호로서의 직감이 말하고 있었다.
이번 발정기를 버텨내는 것은 정말로 가혹할 것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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